이완구 총리 지명에 숨은 뜻
  • 이승욱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5.02.03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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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의 검투사’ 내세워 반전 꾀하다…‘비박’ 일색 잠룡 구도 흔들기

“청와대가 굳이 왜 ‘충청 출신 총리’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는지 좀체 감이 안 잡힌다. VIP(박근혜 대통령)는 MB(이명박 전 대통령)의 핍박을 받으면서도 세종시 원안 고수를 주장했다. (박 대통령이) 충청권을 끌어안는 일은 할 만큼 한 것이다. 그러면 (충청권을 여전히 배려하고 있다는) 제스처 정도만 취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이완구 원내대표를 차출해 충청 대망론까지 키우다니…. 청와대의 셈법을 이해하기 어렵다.” TK(대구·경북) 출신의 새누리당 ‘친박(근혜)계’ 인사가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 내정 발표 직후 내놓은 반응이다.

이 인사가 예상한 것처럼 충남 청양 출신인 이완구 원내대표가 총리 후보자로 내정되면서 정치권에서는 충청 대망론이 한껏 무르익고 있다. 충청 대망론은 역대 대선마다 ‘캐스팅보트’ 역할을 해온 충청도에서 대통령을 배출해야 한다는 의미로, 그동안 정치권에서 끊임없이 제기돼온 논리다. 역대 정권마다 ‘현재 권력’은 깜짝 총리 후보자를 지명해 ‘미래 권력’을 인위적으로 만들며 영향력을 과시했다. 김영삼 정권의 이회창·이수성, 김대중 정권의 이한동, 노무현 정권의 이해찬, MB 정권의 정운찬 등은 총리를 발판으로 대권 주자로 발돋움했다. 2010년 당시 비록 청문회 과정에서 낙마하긴 했지만, MB가 김태호 총리 후보자를 발탁한 배경에는 당시 유력 대권 주자인 박근혜 의원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

ⓒ 시사저널 구윤성
‘충청 대망론’ 차곡차곡 준비해온 이완구

과연 이완구 후보자는 ‘미래 권력’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현재 여권의 ‘잠룡’ 구도에서 앞서 나가는 사람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다. 김 대표는 ‘비박’으로, 이 후보자는 ‘친박’으로 분류된다. 이 후보자는 충남도지사 시절인 2009년 12월3일 MB 정부의 세종시 수정 방침에 반발해 지사직 사퇴와 지방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 후보자는 당시 “세종시 수정 논의에 당사자인 충남지사가 한 번도 참여한 적이 없다”며 “그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세종시 원안 추진에 지사직을 걸겠다고 약속해왔다”고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했다. 최고 권력자인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항명이었다.

이 후보자의 항명에는 정부의 세종시 수정 방침에만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니었다는 것이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당시 이 대통령이 충남 공주 출신의 정운찬 총리를 앞세워 ‘세종시 백지화’를 하려 했다는 점이 이 후보자를 떨치고 일어나게 했다는 것이다. 당시 MB가 차기 대권 주자였던 정 총리를 내세워 충청권 공략에 나서자 이에 대한 견제로 도지사 사퇴라는 초강수를 뒀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 후보자는 2013년 4월 재·보궐 선거로 국회에 다시 입성했다. 그리고 도지사직 사퇴 5년 만에 그는 총리 후보자가 됐다. 이 후보자는 오래전부터 치밀하게 미래 권력을 향한 준비를 해온 것으로 보인다. 이 후보자가 총리에 내정된 후 야당과 언론의 부동산 투기 의혹 등 후보 검증이 시작되자 그의 ‘검은색 가방’이 언론에서 회자됐다. 이 가방에는 이 후보자의 중학생 시절 X-레이 검사 결과지와 첫 공직 급여명세서까지 담겨 있다고 한다. 이 후보자의 꿈이 총리에만 머무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는 이유다.

이 후보자가 총리로 내정되면서 주가도 덩달아 올라가고 있다. 이 후보자는 리얼미터의 1월 3주 차(19~23일) 여권 내 차기 대권 주자 지지도 조사에서 전주보다 0.2%포인트 하락한 4.4%로 7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국무총리로 내정된 23일 하루 집계에서는 전일 대비 1.5%포인트 오른 5.8%를 기록했다. 이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과해 총리로 정식 임명될 경우 그의 보폭은 훨씬 넓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벌써부터 그는 “헌법과 법률에 규정된 총리의 권한을 행사하겠다”며 ‘힘 있는 총리’에 대해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앞서 언급한 친박계 인사의 우려도 이 부분에 쏠려 있다. 이완구 후보자는 박 대통령과 세종시 수정 논란 당시 뜻을 함께하며 ‘친박’의 길에 들어섰지만, 엄밀히 따져 친박 내에서는 그를 ‘신(新)박’으로 분류하고 있다. ‘원조 친박’보다는 박 대통령과의 동지 관계가 흐릿할 수밖에 없다. 이명박 대통령과 힘겨루기를 한 전력이 있는 그가 실세 총리로 행세하려 할 경우 집권 하반기로 접어들수록 박 대통령과 마찰을 빚을 공산도 적지 않다. ‘돌직구’ 스타일인 그가 언제 신박에서 ‘탈(脫)박’으로 돌변할지 모르는 것이다.

2007년 1월17일 충남 천안에서 열린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충남도당 신년교례회에서 박근혜 전 대표가 이완구 충남도지사와 대화를 나누는 것을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지켜보고 있다. ⓒ 연합뉴스
당분간 ‘친박 대표 주자’로서 특혜 누릴 듯

집권 후 권력 2인자를 용납하지 않는 행보를 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이 이 후보자를 총리로 발탁한 것은 당장의 위기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보다는 현재에 대한 위기감이 박 대통령으로 하여금 ‘이완구 카드’를 꺼내게 한 것으로 보인다. 정홍원 총리는 박근혜정부 초기 2년을 보냈지만 총리로서 위상은 극히 미약했다. 박 대통령이 부처의 시시콜콜한 인사까지 챙기는 ‘만기친람’ 스타일이라 운신의 폭이 좁았던 탓이다.

인사 난맥과 문고리 3인방 등 측근들의 전횡 논란으로 박 대통령의 견고했던 지지율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이다.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1월27일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박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도는 29.7%로 내려앉았다. 이는 전날(30.1%)보다 0.4%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취임 후 리얼미터 자체 조사에서 처음으로 20%대로 지지율이 추락했다. 이미 레임덕이 시작됐다는 징후가 지표상으로도 나타난 것이다.

박 대통령은 레임덕 위기를 이 후보자 지명으로 돌파하려고 하고 있다. 이 후보자를 단박에 대권 후보 반열에 올려놓음으로써 ‘비박계’ 주자들을 견제하면서 몰리는 상황을 반전시키려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김무성 대표를 비롯해 김문수 전 지사, 정몽준 전 의원, 홍준표 지사, 원희룡 지사, 남경필 지사 등 ‘비박’ 일색인 정치 지형에서 이 후보자의 등장이 얼마만큼의 파괴력을 가질지는 미지수다. 이 후보자는 일정 수준 이상으로 지지율이 올라가기 전까지 ‘친박 인큐베이터’에서 특혜를 받을 것으로 관측된다. 그 과정에서 김무성 대표 등과의 갈등이 표면화할 수도 있다. 아무튼 청와대의 이 후보자 발탁은 여러 면에서 관전 포인트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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