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PX, 36억 추징금 폭탄 맞았다
  • 조해수·엄민우·김지영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5.02.11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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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불법 면세담배’ 단독 보도 후폭풍 담뱃값 인상 후 블랙마켓 커질 듯

주한미군부대 공급용 국산 면세담배를 빼돌려 시중에 불법으로 유통한 미군부대 내 스낵바(PX) 점주 등에게 ‘추징금·벌금’ 폭탄이 떨어졌다. 검찰 수사를 통해, 미군부대 내 대다수 스낵바에서 면세담배가 불법 유출된 사실이 확인된 만큼 추징금·벌금 규모는 앞으로 더욱 커질 전망이다. 그러나 미군부대에서 면세담배가 불법 유출되는 문제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국산 면세담배의 미군부대 공급 자체를 차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인천지검에 따르면, 주한미군용 면세담배 불법 유통 혐의로 형을 확정받은 스낵바 점주 등은 지금까지 11명이다. 이들에게 부과된 추징금은 모두 35억8933만원, 벌금은 4100만원에 이른다. 미군부대 면세담배 불법 유출과 관련해 기소된 인원이 25명인 것을 감안하면, 추징금·벌금 규모는 2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인천지검 외사부는 미국 국방부 수사국(DCIS)과 공조해 지난해 6월18일 서울 용산을 비롯해 경기 의정부·평택·동두천, 대구, 부산, 전북 군산 등 전국 13곳의 미군부대를 동시에 압수수색했다. 인천지검 관계자는 “미군부대장의 허가를 받고 압수수색에 필요한 수사 인력 5명을 지원받아, 미군부대 내의 스낵바 29곳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했다”고 밝혔다.

서울 용산에 위치한 주한미군부대 게이트(오른쪽 사진은 국산 면세담배). ⓒ 시사저널 우태윤·임준선
상훈유통 지소장도 불법 유출에 개입

사회적 파장을 고려해 검찰의 압수수색은 은밀하게 진행됐고, 미군부대 내부의 폐쇄적 특성상 외부나 국내 언론에 알려지지도 않았다. 시사저널은 지난해 8월, 관련 사실을 확인하고 ‘사상 초유로 대한민국 검찰이 치외법권 지역인 미군부대를 압수수색했다’는 기사를 단독 보도한 바 있다(2014년 8월23일자, ‘검찰, 600억원대 면세담배 유출 미군부대 압수수색’ 기사 참조). 이와 함께 미군부대로 들어가야 할 국산 면세담배가 동대문 풍물시장과 남대문시장 등에서 불법으로 유통되고 있는 실상도 고발했다. 

검찰수사 결과, 미군부대 면세담배의 불법 유출 실태는 심각했다. 압수수색한 29곳의 스낵바 중 24곳이 기소될 만큼 면세담배 불법 유출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광범위하게 일어났다. 서울 용산 미군기지의 경우, 8곳의 스낵바 전부에서 면세담배 불법 유출 사실이 적발됐다.

이번 수사를 통해 미군부대 면세담배의 불법 유통을 관리·감독해야 할 ‘상훈유통’ 지소장이 면세담배를 대량으로 불법 유통한 사실도 드러났다. 대한상이군경회 산하 단체인 상훈유통은 지난 20여 년간 주한미군에 대한 국산 면세담배 유통권을 독점하고 있다. 상훈유통은 1994년부터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에 따라 미군의 군수불용품 처리를 맡아왔다. 미군이 사용했던 중고품 등을 양도받아 판매하는 사업이다. 주한미군은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적자를 보전해주기 위해 상훈유통에 국산 면세담배 판매 사업권을 승인해줬고, 상훈유통은 KT&G로부터 면세담배를 독점적으로 공급받아 이를 각 지소에서 직접 판매하거나 부대 내의 스낵바를 통해 판매해왔다.  

검찰은 미군부대 스낵바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하며 상훈유통에 대한 압수수색도 함께 진행했다. 인천지검 관계자는 “상훈유통 본사는 물론 미군부대 내의 상훈유통 지사 4곳도 압수수색했다”며 “상훈유통이 (미군부대 면세담배의) 관리·감독을 소홀히 했는지, 더 나아가 (면세담배의 불법 유출에) 방조 내지는 동조한 사실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절차였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허술한 관리·감독은 물론 상훈유통 지소장의 개입 사실까지 드러났다. 구속 기소된 지소장은 스낵바 업주와 공모해 면세담배를 미군이나 군무원에게 판매한 것처럼 판매대장을 허위로 작성한 후, 면세담배 운반 차량을 통째로 빼돌리는 이른바 ‘차떼기’ 방식까지 동원했다. 인천지검 관계자는 “상훈유통에 대해서는 지소장의 면세담배 불법 유통에 대한 관리·감독 소홀이 인정돼 양벌 책임으로 약식명령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미군부대 면세담배가 이처럼 대량으로 불법 유출될 수 있었던 것은 미군부대 내에서 소비될 수 있는 담배 물량이 적정 공급량을 초과했기 때문이다. 상훈유통은 미군부대 내의 미군, 군무원 등의 수를 특정한 후 그 인원 중 평균 흡연자 비율에 따른 흡연자 수를 산정한다. 이렇게 산출된 흡연자가 월 40갑을 흡연하는 것으로 가정해 면세담배 공급량이 결정된다. 그러나 상훈유통이 산정한 인원은 미군부대 내의 근무 인원을 초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처음부터 초과 공급이 이뤄질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면세담배 수요, 공급량의 10%에도 못 미쳐

판매 대상 역시 불분명하다. 지방세법 시행령 제63조 2항 5호는 ‘주한 외국군의 종사자에게 판매하는 담배’를 면세담배로, 담배사업법 시행령 제7조 1항 8호는 ‘주한 외국군의 관할 구역 안에서 판매하는 담배’를 특수용 담배로 규정하고 있다. 상훈유통은 전자의 규정을 따르면서 ‘주한 외국군의 종사자’ 개념을 광범위하게 해석해, 미군부대에 출입하는 내국인 및 한국군 등에게도 제한 없이 면세담배를 판매했다. 하지만 주한 외국군용 담배에 세금을 면제하는 규정의 취지는 우리나라의 방위를 위해 주둔하고 있는 주한 외국군 장병과 소속 근로자 등에게 편익을 제공하는 데 있다. 인천지검 관계자는 “주한 외국군용 면세담배의 판매 대상자는 SOFA의 인적 대상 범위와 동일하게 ‘주한 외국군 및 군속(외국 국적)과 그 가족’으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며 “일부 지역의 주한미군 사령관은 면세담배 불법 유통이 문제가 되자 SOFA 인적 대상 범위로 판매 대상을 제한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담뱃값 인상 후 블랙마켓 기승 부릴 듯

한 발짝 더 나아가 미군부대에 국산 면세담배를 공급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수사 결과, 주한미군 및 군속과 그 가족 등에게 판매되는 면세담배는 공급량의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용산 미군기지에서 근무하는 한 한국인 군속은 “담배는 호불호가 강한 기호식품이다. 미국 담배도 면세로 공급되고 있다. 굳이 미군이 한국 담배를 피울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관련 정부 부처를 중심으로 미군부대에 국산 면세담배를 공급하지 않게 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행정자치부에서는 최근 미군 면세담배 유통 방식을 전면 손질해야 한다는 쪽으로 목소리가 모이면서 관련 부처와 협의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아직 구체적인 방안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현재 분위기로 볼 때 전면 손질될 가능성이 크다. 면세담배에 대한 당국의 단속 바람도 거세지고 있다. 관세청은 최근 재래시장 등 면세담배 불법 유통 경로로 추정되는 곳들을 청장의 특별지시로 일제 단속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일련의 움직임은 최근 면세담배에 대한 수요 폭증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해 본지가 예상한 대로 담뱃값이 오르자 면세담배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담배 가격 인상 전 정상 담배는 2250원에 출고돼 소비자에게 2500원에 판매됐지만, 주한미군용 면세담배는 1350원에 출고돼 시중에서 1700원에 판매됐다. 최종 소비자에게는 1900~2100원 선에서 거래됐다. 정상 담배와의 가격 차이가 400~600원이었다.

그러나 올해부터 담뱃값이 2000원 인상되면서 가격 차이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게 됐다. 담뱃값 인상분의 대부분은 세금이기 때문에 면세담배인 주한미군용 담배는 가격 변동이 거의 없다. 정상 담배보다 훨씬 싼 가격에 불법 면세담배의 가격이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시사저널이 2월5일 면세담배 블랙마켓을 취재해본 결과, 현재 불법 면세담배의 가격은 3500원 선이었다(15쪽 딸린 기사 참조). 정상 담배가 4500원인 것을 감안하면, 담뱃값 인상 전보다 가격 차이가 훨씬 더 벌어진 것을 알 수 있다.

담뱃값을 인상시킨 이유는 흡연 인구 감소와 세수 확보에 있다. 그러나 블랙마켓을 잡지 않고서는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캐나다는 담뱃값 인상 후 불법 담배가 급증하면서 오히려 담뱃값을 50% 내려야만 했다. 말레이시아는 담뱃값을 7.5% 올린 후, 블랙마켓 규모가 전체 담배 시장의 40%에 육박할 정도로 커졌다. 우리나라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될 개연성이 크다. 관세청에 따르면, 블랙마켓에 깔린 면세담배는 2011년 40억9200만원어치, 2012년 32억7500만원어치, 2013년 436억9000만원어치, 지난해 7월까지 1255억9600만원어치로 폭증했다. 이 중 상당수는 주한미군용 면세담배일 것으로 추정된다.

미군부대에 공급되는 국산 면세담배는 연간 2700여 만갑, 액수로는 600여 억원에 이른다. 이 중 미군이 소비하는 담배는 10갑 중 1갑에 불과하다. 한 해 540여 억원어치의 면세담배가 블랙마켓으로 흘러 들어가는 셈이다. 시사저널이 만난 한 불법 면세담배 소매상은 “지금은 (면세담배가) 없어. 그렇지만 한 3개월 후면 될 거야”라고 말했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 역시 막을 수 없다. 면세담배 블랙마켓이 조용히 기지개를 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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