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예술의 속살, 축구의 나라 유혹하다
  • 브라질 상파울루=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5.02.13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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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충만 : 한국 현대미술의 물성과 정신성> 상파울루에서 개최

브라질에서 한국은 어떤 이미지일까. 현지 젊은이들의 로망이라는 현대차 투싼의 나라일까, 삼성과 LG 로고가 붙은 휴대전화를 만드는 나라, 또는 싸이와 K팝의 나라일까.

브라질에서 제일 큰 도시인 상파울루에서 한국산 대중문화와 공산품 이면에 자리 잡고 있는 한국 문화의 본질을 알리는 전시가 열렸다. <텅 빈 충만 : 한국 현대미술의 물성과 정신성>이 브라질 조각미술박물관(MuBE·무베)에서 2월10일부터 24일까지 열린다. 현대 한국의 K컬처를 현지인들에게 선보이는 자리다. 권영우·윤형근·정창섭·하종현의 회화 작품과 민병헌의 사진, 이기조·김익영·권대섭·이강효·문평의 달항아리 등 30여 점이 1970년대 이후 현대 한국미술의 전통성과 현대성이 어떻게 만났고, 어떤 고민을 하며 시대를 통과했는지 한눈에 보여준다.

이 전시되고 있는 브라질 조각미술박물관 ⓒ 시사저널 김진령
① 브라질 국민 작가 아미오카르 데 카스트로 갤러리와 작품 ② 문범 Acrylics, car paint on panel 2003 ③박기원 214x150cm No6
자동차·스마트폰·K팝의 나라 한국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함께 기획한 이 전시는 해외문화원 패키지 프로그램 순회 사업의 하나로 ‘웰 메이드 공산품 제조국’ 한국이라는 피상적인 인식을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로까지 넓히는 프로젝트다. 지난해 상반기 중국 상하이를 시작으로 베이징, 베를린, 자카르타에서 현지인들의 열띤 호응을 얻은 이번 전시는 드디어 한반도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대척점에 자리 잡은 남미 제1의 도시 상파울루까지 상륙했다.

7세 때 이민 와서 20년 넘게 상파울루에서 살고 있는 브라질의 큐레이터 박혜진씨는 “여기서 한국은 교육에 투자를 많이 해 갑자기 성공한 나라쯤으로 인식되고 있다. 현대차·삼성·포스코 같은 한국 대기업이 들어오면서 현지인에게 한국인은 규칙적이고 딱딱하지만 틀을 준수하고 자기 조절을 잘한다는 이미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K팝이라는 대중문화 외에는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낮은 브라질에서 한국 컨템퍼러리 회화를 신기해하는 분위기다. 정상화의 거칠고 검은 표면을 형상화한 작품을 보면서 브라질의 국민 작가로 추앙되는 아미오카르 데 카스트로의 작품이 떠올랐다”고 한국 현대 회화를 접하는 느낌을 전했다. 박씨는 두물머리 풍경을 잡아낸 민병헌의 사진 작품에 대해서는 자신의 정서 속에 뿌리박고 있는 근원적인 것이 떠올랐다고 했다. “이 풍경 이미지는 깊은 울림을 준다. 사진을 보면 한국의 <아리랑> 같은 슬픈 민요 가락이 들려오는 듯하다. 아마 한국인이 아니라면 이 작품에서 서정적인 또는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에만 집중할 것이다.”

전시를 기획한 정준모 감독은 “지금 유행하는 K팝 이전에 한국에 어떤 문화가 있었고, 한국산 공산품과 대중문화가 어떤 문화적 바탕 위에서 형성된 것인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베를린과 자카르타에서 <텅 빈 충만>을 접한 현지 문화계 인사와 관람객의 공통적인 반응을 예로 들었다. “한국은 번잡스럽고 알록달록한 나라인 줄 알았는데 현대 회화 작품을 접하고는 한국이 이렇게 생각이 많은 나라인 줄 몰랐다는 반응이 많았다. 한국의 전통적 철학에 기반을 둔 일련의 작품을 보면서 그들은 한국을 철학의 나라로 재인식한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작품들은 대체로 단색조를 띠고 있다. 또 반복적인 작업을 통해 작품 표면에 단순해 보이지만 복잡한 표현이 구현됐다. 정 감독은 “삼천배를 하듯, 성경 필사를 하듯, 작가가 일심 일획을 끝없이 반복하는 작업을 통해 행위의 과정을 보여준다. 달항아리는 보는 사람에 따라, 보는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김택상의 <숨 빛>이나 최명영의 반복된 행위와 우연성이 결합된 작품은 한국 현대 회화의 단색조 작품이 서양의 미니멀리즘이나 일본의 모노하(物派)와 외양은 비슷하지만 정신은 다른 지점에 있음을 보여준다”고 소개했다.

단순해 보이면서도 복잡한 디테일

그는 국산 스마트폰을 예로 들었다. 한국산 스마트폰은 경쟁사와는 달리 수십 가지의 모델이 있고 그 모델은 완성형이 아니라 계속 진화한다. 변화의 과정에서 어떤 지점이 소비자에게 모델로 선보일 뿐이지 그 자체가 완성형이 아니듯 이번에 소개되는 한국 현대미술 작품도 완성된 세계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변화와 모색의 과정을 관객과 공유한다. 전시된 작품을 작가가 당장 내일 가져가 작업을 하면서 또 다른 변화의 과정을 담아낼 수 있는 그런 작품이란 것이다. 그 과정에 참여해 작품의 각기 다른 면모를 해석과 유추로 공유하는 건 바로 관객의 몫이란 얘기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달항아리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처럼 관객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모타 무베 홍보전시감독은 “한국 현대 회화 작품이 심플해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그 과정이나 표현방법에 복잡한 디테일이 들어가 있다. 작품의 질감이 흥미진진하다”고 평했다.

① 최명영 Acrylic on Canvas 162x112cm 2008 ②이기조 2014 ③장승택 Scretched P.E.T film 80x60cm 2013
정 감독은 “문화는 깊이 있는 것을 보여줘야 오래간다. 단물이 빠지면 껌은 오래 못 씹는다. 이번 전시는 한국 문화의 속 깊은 생각의 근저를 보여주는 것이다. 197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서 계속 그려지면서 표현과 방식에 대한 고민이 이어지고 있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이세영 상파울루 한국문화원장은 “남미에서 한류 1세대가 태권도였다면 K팝은 2세대다. 지난해 브라질월드컵과 내년의 리우올림픽은 한국을 남미에 이해시킬 수 있는 결정적인 이벤트다. 한국이 자동차와 스마트폰, K팝만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알릴 필요가 있다. 이번 전시가 브라질 주류 사회에 한국 문화의 본진을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장인 무베는 상파울루의 상류층 거주 지역에 자리 잡고 있고 전시회 개막식에는 상파울루 시 고위 관리와 현지 미술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큰 관심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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