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함께 추억에 젖고 판타지에 빠지다
  • 허남웅│영화평론가 ()
  • 승인 2015.02.13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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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대목 볼 만한 영화…<조선명탐정2> <쎄시봉> <킹스맨> <주피터 어센딩> 등

설 연휴는 추석과 더불어 영화계가 주목하는 대목이다. 가족이 모두 한자리에 모이는 최대의 명절인지라 여느 때와 다르게 모두가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들을 집중 배치한다. 그래서 한국 영화는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이, 외국 영화는 오락성과 볼거리가 풍성한 작품이 눈길을 끈다.

<조선명탐정2> vs <쎄시봉>

최근 몇 년 동안 설과 추석 시즌에 가장 크게 재미를 본 장르는 단연 사극이다. 추석을 겨냥했던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년), <관상>(2013년)이 모두 900만명 이상을, 설 연휴를 관통했던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2011년)은 500만명 가까운 관객을 끌어모았다. ‘고유의 명절’이라는 특수성이 맞아떨어진 결과다. 이번 설에도 사극인 <조선명탐정: 놉의 딸>과 시대극 <쎄시봉>이 가족 관객을 유혹한다.

영화 ⓒ 쇼박스미디어플렉스 제공
<조선명탐정2>는 전편에 이어 조선판 홈스와 왓슨이라 할 만한 김민(김명민)과 서필(오달수)의 활약을 다룬다. 어찌 된 영문인지 왕의 총애를 받던 명탐정 김민은 외딴 섬에 유배된 상태다. 서필이 매일같이 찾아와 바깥소식을 전하는데 김민은 조선 전역에 불량 은괴가 유통된다는 얘기를 듣자 탐정 본능이 꿈틀거린다. 이에 유배지를 탈출해 사건을 조사하던 중 불량 은괴 제작에 어린 소녀들이 강제로 투입된 정황을 포착한다. 그 와중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미모의 여인 히사코(이연희)가 개입하면서 사건은 오리무중에 빠진다.

속편답게 <조선명탐정2>는 추리와 액션 그리고 볼거리까지 전편을 능가하는 스케일을 과시하는 쪽으로 진행된다. 영화 시작과 함께 김민은 적의 발걸음과 보폭을 짐작해 은괴가 숨겨진 비밀 장소를 추리하는 데 성공하고 적에게 쫓기던 서필은 63빌딩을 능가하는 높이의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액션을 과시한다. 볼거리를 더 풍성하게 만들자는 감독의 의도대로 육지에만 머무르던 전편과 다르게 육·해·공을 넘나드는 스케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는 휴머니즘을 강조하려는 목적이다. 죄 없는 아이들을 볼모로 이득을 보려는 어른들의 대담한 악행은 <조선명탐정2>가 단순히 과거를 배경으로 한 사극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쎄시봉>의 시대적 배경 역시 과거인 1970년대지만, <건축학개론>(2012년)처럼 현재와 교차하는 구성을 선보인다. 올드팬의 추억을 자극하는 한편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줌으로써 전 세대를 공략하려는 전략이다. 아닌 게 아니라 <쎄시봉>에는 2010년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조영남·이장희·윤형주·송창식·김세환 등이 추억의 음악을 선보이며 전국적으로 ‘쎄시봉’ 열풍을 불러일으킨 것이 한몫했다. 다만 영화는 ‘윤형주(강하늘)와 송창식(조복래)이 주축이 된 트윈폴리오에 제3의 멤버가 있었다면’이라는 상상을 가미해 가슴 시린 첫사랑의 기억을 현재로 소환한다.

영화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킹스맨> vs <주피터 어센딩>    

문제의 멤버는 바로 오근태(정우). 미성으로 여심을 사로잡은 윤형주와 음악 천재 송창식 사이에서 근태는 중저음 목소리로 팀의 균형을 잡는다. 이들 앞에 나타난 뮤즈 민자영(한효주)에게 첫눈에 반한 근태는 청춘을 바치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평생을 괴롭히는 기억으로 남는다. <쎄시봉>은 실제 인물을 연상시키는 배우들의 연기가 눈길을 끌지만, 첫사랑은 이뤄지지 않는다는 속설에 기대 근태가 왜 트윈폴리오에서 사라졌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추억의 노래는 옛 기억을 불러오기 마련인데 그것이 첫사랑에 대한 것이라면 얼마나 마음을 움직일까. 그래서 <쎄시봉>은 특정 세대가 아닌 모두가 공감할 만한 영화다.

설 연휴 한국 영화들이 과거를 거쳐 현실에 개입한다면 두 편의 외국 영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과 <주피터 어센딩>은 미래 지향적인 스타일을 뽐내는 데 주력한다. <킥 애스: 영웅의 탄생>(2010년),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2011년)로 코믹스 원작 영화의 구세주로 우뚝 선 매튜 본 감독은 <킹스맨>으로 첩보물에 신선한 감각을 불어넣는다. 그에 걸맞게 베테랑 첩보요원이 거리에서 스카우트(?)한 신입을 키우는 내용이다.

ⓒ 20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에그시(태런 에거트)는 높은 아이큐와 체조대회 우승 경력을 가지고도 동네 불량배들과 어울리며 재능을 낭비한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국제 비밀 정보기구 ‘킹스맨’의 베테랑 요원 해리 하트(콜린 퍼스)는 에그시를 지도해 최정예 요원으로 키운다. 이 영화의 핵심은 첩보 활동의 노하우 전수와 이의 창의적 습득에 있다. 감독은 기존에 인기를 끌었던 첩보물의 클래식을 적극 차용해 에그시가 새 인물로 거듭나는 것처럼 첩보물의 새로운 전형을 제시한다.

첩보물의 대표 시리즈인 <007>부터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2011년)까지, 패러디가 일품인 <오스틴 파워>(1999년)부터 매튜 본 자신의 출세작인 <킥 애스: 영웅의 탄생>(2010년)까지, 첩보물이라고 하면 으레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를 연상하기 마련이지만, <킹스맨>은 온갖 영화의 인용과 더불어 원색을 강조한 특수효과까지 더해져 첩보물도 유쾌하고 밝을 수 있음을 증명한다.

<주피터 어센딩>은 <매트릭스>(1999년), <클라우드 아틀라스>(2012년) 등으로 유명한 워쇼스키 남매의 신작이다. 철학적이고 혁명 정신을 일깨우는 내용이 이들 작품의 특징이다. <주피터 어센딩>은 그런 부담스러운 메시지에 다소 부드럽게 접근한 SF라 할 만하다. 전작들과 다르게 스케일은 우주적으로 팽창했다. 지구가 잠재적인 우주의 식민지라는 설정이기에 태양 저 너머에 존재하는 아브라삭스 가문이 등장한다. 

영화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이들 가문의 삼남매는 지구가 서로의 소유라고 주장하며 대립하는 지경에 이른다. 하지만 그들 앞에 지구의 미래를 책임질 강력한 계승자가 등장한다. 화장실 변기나 청소하는 별 볼일 없는 러시아 출신의 미국 이민자 주피터(밀라 쿠니스)다. 사실 그녀는 아브라삭스 가문 삼남매의 작고한 어머니가 지구에서 환생한 인물로 군인 출신인 케인(채닝 테이텀)의 도움을 얻어 새로운 모험에 뛰어든다.

이 영화는 워쇼스키 남매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한 작품이다. 하지만 내용의 깊이보다는 우주인의 지구 침공에 맞선 주피터의 활약, 지구와 우주라는 서로 다른 성장 배경을 초월한 주피터와 케인의 사랑 등으로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춘 듯한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매트릭스> 3부작 이후 워쇼스키 남매의 흥행 성적이 안 좋았던 것을 고려하면 이해할 만한 구성이다. 현대 시카고를 중심에 두고 우주로 그 무대를 넓혀가며 화려한 장관을 펼치는 <주피터 어센딩>의 볼거리는 확실히 워쇼스키 남매의 새로운 면모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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