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수석’ 사람들이 검찰 핵심 라인 접수
  • 엄민우·조해수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5.03.05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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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우 민정수석, 중간 간부 인사 챙겨…김진태 총장과 마찰 가능성도

“이제 보람은 가슴에 품고 짐은 내려놓고자 한다.” 2013년 4월 한 40대 검사는 검찰 내부통신망 이프로스에 글을 남기고 홀연히 검찰을 떠났다. 당시 검찰 고위 간부 인사에 포함되지 않고 동기와 후배 기수가 검사장으로 임명되자 내린 결단이었다. 그런데 불과 2년 만에 그가 청와대 민정수석 자리에 오름과 동시에 정권은 물론 검찰 조직을 장악할 실세로 떠올랐다. 주인공은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다. 검찰을 떠나 변호사 개업을 했던 그가 지난해 5월 민정비서관으로 발탁되자 여의도 정가에서는 청와대에 ‘비서관 4인방’ 시대가 열렸다는 말이 나돌았다. ‘문고리 권력 3인방’으로 회자되던 이재만·정호성·안봉근 비서관 등에 우 비서관까지 더해졌다는 것. 하지만 올해 1월 그가 민정수석이 되고 ‘왕실장’으로 불리던 김기춘 비서실장이 퇴진하면서 “왕수석 시대가 올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1월26일 박근혜 대통령이 신임 특보 및 수석들과 티타임을 하는 가운데 우병우 민정수석(왼쪽에서 네 번째)이 박 대통령 옆에 서 있다. ⓒ 연합뉴스
“장급은 총장이, 그 아래는 우 수석이 챙겨”

실제 청와대 인사와 함께 검찰 인사가 맞물리면서 그는 어느새 실세 반열에 올랐다. 지난 2월17일 법무부는 검찰 중간 간부 인사를 발표했다. 이때 일명 ‘우병우 사단’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이 주요 보직을 차지했다.

청와대 민정 라인이 재편된 이후 나온 인사라 논란이 더했다. 우병우 수석 내정 이후 기존의 민정 라인은 마치 사전 기획이라도 한 듯 모조리 사퇴했고, 이후 대부분 우 수석과 같은  TK(대구·경북) 검사 출신들로 채워졌다. 공직기강비서관에 우 수석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유일준 평택지청장이 임명됐고, 민정비서관에는 TK 출신 권정훈 부산지검 형사1부장이 임명됐다. 그는 검찰 내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은 이로 법무부에서 직접 추천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회 법사위 소속의 한 야당 의원은 “민정 라인에 현직 검사들을 배치하고 검찰 인사마저 우병우 라인으로 만든 것을 보면 결국 검찰의 사정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겠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검찰 내 우병우 라인의 약진으로 눈여겨볼 부분은 결국 향후 우 수석과 김진태 총장의 관계다. 우 수석이 검찰 내 영향력을 넓히게 되면 총장과의 마찰이 불가피하다. 검찰 내부에선 벌써부터 우병우 라인의 약진으로 김 총장과의 보이지 않는 완력 싸움이 불거질 것이란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장급 인사에는 총장 의중이 반영되고 그 이하 급은 우병우 사람으로 맞춰진 거야. 이렇게 복잡하게 인사가 되면 심각하지.”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이번 검찰 인사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한마디로 검사장급 인사는 김진태 총장이 챙겼지만, 부장급  이하 인사는 우 수석 몫이었다는 것이다. 이번 검찰 인사는 김 총장으로 대표되는 검찰과 우 수석으로 대표되는 청와대 간 팽팽한 샅바 싸움 결과라는 시각이 많다. 당초 청와대에서는 김주현 법무부 검찰국장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임명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김 총장이 이를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김 총장의 신뢰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박성재 대구고검장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임명됐다.

“조직 특성상 우 수석 장악 힘들 것” 반론도

대검 중수부 폐지와 더불어 권력층 수사를 도맡게 된 서울중앙지검장의 위상은 막강하다. 게다가 중앙지검장은 정권 실세들과 ‘직통’하는 자리로 알려져 있다. 중앙지검장과 청와대의 핫라인이 구축되면 검찰총장은 자칫 고립될 수 있다. 김 총장이 이 자리에 특히 신경 쓴 이유이기도 하다.

중앙지검장 자리는 청와대가 김 총장에게 양보한 모양새지만, 그 외 주요 보직 인사에서는 우병우 라인이 약진했다. 중앙지검장 자리를 양보한 탓에 더욱 뚜렷한 ‘청와대 맞춤식’ 인사가 단행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권력층 인사의 사정을 주도하는 자리가 모두 우 수석과 가까운 이들로 채워졌다. 특수 등 인지수사를 총괄하는 3차장에는 최윤수 대검찰청 선임연구관이 임명됐다. 우 수석과 서울대 법대 동기이며 두 사람은 절친한 사이로 알려졌다. 형사 사건을 총괄하는 1차장 자리도 우 수석과 대학 동기인 전현준 검사장이 차지했다.

특수1부장에는 임관혁 중앙지검 특수2부장이 발령 났다. 그는 법무부에서 우 수석을 직접 모셨던 인물이다. 특히 임 부장과 관련해 뒷말이 무성하다. 김 총장의 하방 인사(서울중앙지검에서 1년간 부장검사로 재직했을 경우 지방으로 내려보내는 인사) 원칙을 정면으로 깼기 때문에 지방으로 내려간 이들로부터 불만이 제기될 가능성이 내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특수2부장에 임명된 조상준 전 대검 수사기획과장은 우 수석이 대구지검 특수부장을 맡을 때 함께 일했다. 대검 중수부의 역할을 일부 물려받은 반부패부장에는 우 수석이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을 지낼 때 중앙지검 3차장으로 함께 호흡을 맞춰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윤갑근 대검 강력부장이 올랐다.

이렇게 세밀하게 검찰 내 주요 세력을 확보하게 된 우 수석이지만 조직 특성을 감안할 때 검찰을 장악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검찰 내부 관계자는 “직보 체계 특성상 김진태 총장과 가까운 서울중앙지검장을 배제하면서 3차장이나 특수1부장이 마음대로 우 수석과 통하기는 힘들 것이다. 또 기수문화를 깨고 사법연수원 19기인 우 수석이 총장(14기)과 맞서기는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검찰 조직이 우 수석이 일하기 편한 환경으로 맞춰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일단 ‘판은 깔아졌다’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이번 검찰 인사에서 우 수석의 선배인 16기와 17기 검사장 7명이 전례 없이 옷을 벗었고, 18기는 대다수가 지방으로 내려갔다. 반면 19~20기는 전진 배치되다시피 했다. 상대적으로 기수가 낮은 우 수석으로선 한결 부담이 덜해진 셈이다.

무엇보다 김 총장의 임기가 올해 말로 끝난다는 것이 주요 변수다. 한 전직 검찰 고위 간부는 “대통령 임기는 3년 남았고 김진태 총장 임기는 1년도 안 남았다. 3차장 등은 훗날 승진이 보장된 자리인데, 인사권 없는 총장보다는 청와대 눈치를 볼 게 빤하다. 지금 총장은 가진 칼이 없는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결국 시간은 김 총장보다는 우 수석 편이란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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