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들 저항에 벌벌 떨기만 할 건가
  • 정창률 | 단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 승인 2015.03.05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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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연금 개혁 논의 지지부진…여야와 주무 부처 사생결단해야

지난 한 해 우리나라를 지배했던 이슈 가운데 하나는 ‘공무원연금 개혁’이었다. 보험료 수입으로 급여를 감당할 수 없어 막대한 세금을 정부보전금이라는 이름으로 투입해 퇴직 공무원의 연금을 지급하는 현실은 많은 국민을 공분케 했다. 현재의 제도가 유지되는 경우, 연 2조원인 2013년 정부보전금은 2016~25년 사이 향후 10년 동안 70조원에 이를 전망인데, 그럼에도 지금의 제도가 계속 지속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는 책임 있는 자세라 볼 수 없다. 국민연금에 대해서는 수십 년 후에 발생할 재정 위기에 대비해 미리 과감한 개혁을 실시한 데 반해, 공무원연금은 이미 재정 위기가 발생하고 있음에도 문제가 없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는 공무원 이해 당사자들의 행태에 국민이 흥분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국민의 이런 반발은 공무원연금 개혁의 당위성을 어느 정도 높이는 데 기여했고, 연금 개혁의 필요성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올해 들어 공무원연금 개혁 논의 진행이 지지부진해지는 인상이다. 자칫 이러다가 이전 정부에서의 개혁 실패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용두사미로 끝나게 되지는 않을지 걱정스럽다. 대타협 기구 등 특위가 가동되고 백가쟁명식 논의가 있지만 이게 성과로 이어지지 않고 ‘빈 수레’가 되지 않을지 우려스럽다.

공무원 이해 당사자들의 저항 극복해야

어느 나라에서나 공무원연금 개혁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모든 나라에서 공무원은 국가의 엘리트 그룹인데, 공무원연금 개혁은 국가 운영의 근간인 이들의 권리를 일정 부분 포기하라는 것인 만큼,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많은 선진국이 최근 공무원연금의 특권적인 요소를 제거하는 개혁을 성공시켰던 데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몇 번의 시도가 모두 좌절됐다.

우리의 경우 공무원연금 개혁 논의 때마다 공무원 이해 당사자들이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2006년부터 시작됐던 연금 개혁 과정에서 발전위원회가 개혁안을 내놓은 바 있다. 그런데 행안부가 발전위원회를 해체하고 개혁의 내용이 후퇴한 새로운 안을 만들어 스스로 통과시켜버렸다. 예를 들어, 2009년 공무원연금법 개정 때 개혁을 했다고 자체 홍보를 한껏 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10년 이상 재직 공무원들은 개혁 대상에서 모두 제외시키는 등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는 데 여념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공무원들은 이렇게 항변한다. “열악한 환경에서 박봉으로 근무하며, 공무원이라는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관대한 연금을 통해 보상받아야 한다.” 그러나 진짜 이처럼 대한민국 공무원들의 처우가 열악하다면, 공무원에 대한 선호가 줄어들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해마다 공무원시험 경쟁률은 치솟고 있다. 신분제 공무원제를 운영하면서 공무원들의 특수성을 인정하던 많은 국가에서도 공무원연금 제도에서의 여러 특권을 제거하는 마당에 우리만 특수성을 인정하자는 주장은 궁색하다.

공무원들의 주장 가운데서도 납득할 수 있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과거 정부에서 공무원연금 기금을 자의적으로 사용한 결과 그 피해를 현재 공무원들이 떠안게 되었다는 주장은 사실이다. 그러나 공무원연금 재정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공무원연금이 납부하는 보험료에 비해 급여 수준이 과다하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과거 연금 개혁 때마다 지속적으로 있었음에도 기득권 지키기 차원에서 외면한 결과가 오늘에 이른 것이라 볼 수 있다.

공무원연금 제도는 공무원 이해 당사자들의 저항을 극복하고 시급히 개혁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제시되고 있는 정부나 여당의 개혁안으로는 곤란하다. 정부·여당의 개혁안이 개혁의 최대 목표인 재정 건전성 개선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공무원연금 개혁이 필요한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재정 문제를 개선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여당의 개혁안은 놀랍게도 재정 개선 효과가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구체적으로 보자. 정부·여당 안에서는 신규 입직 공무원들을 국민연금 수준으로 맞추자고 한다. 얼핏 국민 시각에서는 형평성에 맞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은 신규 입직 공무원들의 보험료 수준을 국민연금 수준으로 낮춤으로써 단기적으로 보험료 수입을 낮추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는 재정 개선 효과를 크게 줄여버리게 된다. 또한 공무원 집단 내에서의 세대 간 형평성에 대한 고려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비판받아야 한다. 정부·여당 안의 불합리한 부분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 지속적인 비판이 있음에도 이를 고집하는 것은 지극히 우려스럽다. 현재의 안으로는 개혁의 목표인 재정 개선이 크지 않다는 지적을 받아들이고 대안 마련에 좀 더 열린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다.

야당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긴 마찬가지다. 공무원노조 등 노동단체들의 눈치를 보느라 공무원연금 관련 논의가 한창인 가운데서도 야당은 자신들의 개혁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는 책임 있는 정당의 자세가 아니다. 공무원연금의 당위성에 공감한다면 정부·여당의 불합리한 안을 극복하는 개혁안을 제시해 정부·여당과 생산적인 논의를 해야 한다.

공무원노조원들이 2014년 9월22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공무원연금 개혁 정책토론회에서 연금개혁에 항의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공무원연금 개혁 실패하면 다른 것도 난망

주무 부처인 인사혁신처(얼마 전까지는 안전행정부)의 어정쩡한 태도도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청와대의 강한 개혁 의지와는 반대로 행정 부처는 과거 공무원연금 개혁 때와 마찬가지로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애매모호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는 과거 연금 개혁 실패 때처럼 개혁을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대통령이 강한 개혁 의지를 보였음에도 정부 주무 부처가 이러한 행태를 보이는 것은 결국 대통령이 제대로 부처를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인데, 이래서야 과연 의미 있는 개혁이 가능할지 걱정이다.

박근혜정부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공무원연금 개혁에 나서야 한다. 공무원연금 개혁은 현 정부의 첫 번째 개혁 정책의 성격을 갖는데, 여기에서 실패하면 다른 정책에서도 성공은 난망하다. 앞서 지적한 대로 정부의 안은 상당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좀 더 다양한 개혁안을 검토해 합리적인 안을 제시해야 한다. 현재의 안으로는 공무원들의 불안감만 가중시킬 뿐 개선 효과는 별로 없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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