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품업체에서 면세담배 불법 유통 조장했다”
  • 조해수·김지영·엄민우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5.03.12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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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 물량 줄여달라” 해도 막무가내 상훈유통 전직 관계자 및 소매상들 증언

2월27일 오전 8시40분쯤. 출근 중이던 기자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낯선 전화번호였다. 전화를 건 사람은 한 미군부대 내에서 스낵바(PX)를 운영하고 있는 점주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 이전에는 상훈유통에서 오랜 기간 근무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취재팀은 곧바로 제보자 ㄱ씨를 만났다. 그는 미군부대 면세담배와 관련해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과거 상훈유통에서도 10여 년 이상 근무하면서 제법 비중 있는 역할을 담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취재팀은 그의 증언 및 여러 관련 사항을 확인하기 위해 전국 미군부대의 스낵바 점주 등 관계자 여러 명을 수소문해서 만났다. 지난해 8월 시사저널 단독 보도(2014년 8월23일자 ‘검찰, 600억원대 면세담배 유출 미군부대 압수수색’ 기사 참조)로 수면 위로 떠올랐던 ‘미군부대 면세담배 불법 유통 카르텔’ 실태가 7개월 만에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주한미군 면세담배 독점 유통업체인 ‘상훈유통’ 사무실. 왼쪽 사진은 면세담배. ⓒ 시사저널 우태윤·최준필
면세담배 불법 유출 책임 소매상들에게 전가

사상 초유의 전국 미군부대 동시 압수수색으로 시작된 주한미군 면세담배 불법 유출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 면세담배 약 590만 갑을 빼돌린 미군부대 내 PX 점주 등 총 25명이 기소돼 수십억 원의 추징금과 벌금형을 받았다(시사저널 2월12일자 ‘주한미군 PX, 36억 추징금 폭탄 맞았다’ 기사 참조). 그러나 불법 유출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된 주한미군 면세담배 독점 유통업체 ‘상훈유통’은 관리·감독 소홀에 대한 약식명령 처분이라는 솜방망이 처벌만 받았다. 주한미군 면세담배 불법 유출의 모든 책임이 PX 점주 등 소매 판매업자들에게만 떨어진 것이다.

그래서일까. ㄱ씨의 제보에 이어 시사저널이 만난 소매 판매업자들의 분위기는 격앙되어 있었다. 기자들의 접근에 대해 대부분 처음에는 경계하던 이들도 한 번 말문이 열리자 상훈유통에 대해 비판을 쏟아냈다. “상훈유통의 ‘물량 밀어내기’ 때문에 불법 유출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상훈유통이 불법 유출을 알고 있었고, (면세담배 불법 유출을) 사실상 조장했다”고 입을 모았다. 심지어 “상훈유통이 주한미군 면세담배 독점 판매업자 지위를 악용해 돈을 뜯어가거나 상훈유통 제품을 강매하기도 했다”는 새로운 의혹도 제기했다.

이 수사가 큰 의미를 갖는 것은 소매 판매업자뿐만 아니라 주한미군에 국산 면세담배를 독점 공급하고 있는 상훈유통에 대한 압수수색도 함께 진행됐다는 점 때문이다. 당시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을 보면, “이○○ 상훈유통 대표의 ‘담배사업법 위반 방조’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압수수색이 필요하다”고 적시돼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이 대표가) 권△△이 담배사업법을 위반하여 면세담배를 판매하는 것을 ‘알면서도’ 권△△을 판매 소매인으로 지정하고 (면세담배를) 공급하는 방법으로 그 범행을 용이하게 함으로써 담배사업법 위반 범행을 ‘방조’하였다”는 것이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더욱 구체적인 진술과 증거가 나오기 시작했다. 상훈유통이 불법 유출을 방조한 대상이 단순히 권씨 한 명만이 아니라 전국의 모든 소매 판매업자들이라는 것이다. 즉, 상훈유통이 정상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양 이상으로 면세담배를 과다 공급했고, 이로 인해 소매 판매업자들이 불법 판매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문제는 상훈유통이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주한미군의 담배 수요를 조작하면서까지 면세담배 판매 증대를 강요했다는 것이다.

ㄱ씨는 “내부 규정·법규를 지켜서는 도저히 팔 수 없는 물량이 들어왔다. 한 달에 200박스(1박스에 50보루) 정도가 들어왔는데, 아무리 해도 그 절반 정도만 정상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물량이다. 통상 110박스 정도는 비정상적으로 법규를 어겨 판매할 수밖에 없다. 물량 소비에 대한 걱정 없이 팔 수 있는 분량은 딱 50박스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초과 공급 탓에 최소 50% 이상의 면세담배가 불법 유출되고 있다는 말이다.  

또 다른 소매 판매업자 ㄴ씨는 “○○ 지역에서 규정대로 판매하면 월 200박스 정도만 공급하면 적당하다. 그런데 평균 710박스 이상씩 (상훈유통이) 공급을 해줬다. 사실 나머지는 전부 (불법) 유출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군무원 등 면세담배를 살 수 있는 사람들이 각 매장을 돌아다니면서 면세담배를 구입하고 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보면 60% 이상이 유출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규정 어겨서라도 면세담배 많이 팔라는 식”

소매상인들은 상훈유통이 면세담배 불법 유출을 알고 있으면서도 판매 증대에만 몰두했다고 주장했다. 소매상인 ㄷ씨는 “내가 수시로 상훈유통 직원들에게 얘기했다. 우리가 받는 담배가 너무 많다는 취지로. 모든 가게에 주는 담배를 일률적으로 줄여달라고도 했다. 그러나 상훈유통에서는 ‘네가 뭔데 줄여라 마라 하느냐. 너에겐 그러한 권한이 없다’고 화를 낼 뿐이었다”고 말했다. ㄴ씨는 “이 대표에게 서신을 작성해 독대했을 때 직접 말하기도 했다. (이 대표가) 모를 수가 없다”며 “그 외에도 연판장을 돌려 상훈유통의 과잉 공급 등 부정부패를 시정하라는 문서가 공식적으로 올라가기도 했다”고 밝혔다.

판매대장만 봐도 면세담배가 불법 유통되고 있는 것을 모를 수가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최초 제보자인 ㄱ씨는 “주한미군 면세담배를 판매할 때는 사간 사람의 육필로 대장에 기록을 남긴다. 이렇게 작성된 판매대장을 매월 상훈유통에 보낸다. 그런데 이 판매대장을 보면 같은 필체로 쓰인 것이 많다. 대장의 80% 이상은 허위 작성된 것이다. 상훈유통이 이를 모를 리 없다”고 주장했다.

상훈유통은 ‘주한 외국군용 면세담배 유통 질서 확립 지도교육’이라는 세미나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그런데 오히려 이 자리를 통해서 불법 판매를 조장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ㄱ씨는 “이 대표는 세미나에 참석한 우리에게 ‘면세담배 많이 팔아라. 대신 무슨 일 일어나지 않도록 하라’고 말한다. 이 대표의 ‘많이 팔아라’는 말은 우리에게 ‘규정을 어겨서라도 많이 팔아라. 사고만 안 나게 팔아라’는 말로밖에 안 들린다. 이 대표는 우리가 규정을 어겨서 팔고 있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라며 “다만 이러한 세미나 같은 교육은 이 대표가 교육 사진 등을 이용해 소매지정인 교육을 모두 완료했는데, 소매지정인들이 알아서 규정을 어겨 판매한 것이라고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ㄷ씨는 “이 대표는 항상 세미나에서 ‘사고만 내지 말고 팔아라. 판매대장에는 오른손·왼손으로 번갈아가면서 써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서울 용산의 미군부대. 미군부대를 통해 면세담배가 시중에 유통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상훈유통에서 명절 떡값·보훈기금 요구도”

상훈유통은 미군부대 내 담배 독점 판매권을 가지고 있다. 소매 판매업자들에게는 ‘슈퍼 갑’의 위치에 있는 것이다. 상훈유통이 이러한 지위를 이용해 명절 떡값이나 보훈기금 명목으로 돈을 요구하거나 상훈유통이 생산한 농산물을 강매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ㄷ씨는 “상훈유통에서 돈을 내라고 해서 주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상훈유통에서 보훈병원·보훈원 등에 위문 갈 때 위문품을 사는 데 썼더라. 상훈유통은 모든 비용을 소매업자에게 내라고 하면서 자기네가 마치 좋은 일을 하는 것처럼 행세하고 있다”며 “명절 때도 마찬가지로 관행적으로 상훈유통에 돈을 줬다. PX당 100만원씩 갹출한다. PX가 전국에 30개 정도 있으니, 3000만원 정도 될 것 같다. 이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는 모른다. 안 주면 불이익을 받을 것 같아서 관행적으로 지급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ㄹ씨는 “상훈유통은 상훈영농조합을 운영한다. 때가 되면 상훈유통에서 ‘농산물 주문을 받습니다’라는 문자를 보낸다. 그러면 소매업자들은 통용되는 수량을 의무적으로 주문한다. 주문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할까 봐 방울토마토·오이·감자·쌀 등을 주문한다. 문제는 가격이 싸지 않다는 것이다. 수량도 수량이지만 가격이 시중의 약 2배 정도 되니까 부담이 안 될 수가 없다. 그래서 최소한으로 사려고 주변의 다른 소매업자들과 합의해 주문량을 맞추기도 한다”며 “한두 번도 아니고 자주 내야 되는데 누가 좋아서 내겠느냐”고 토로했다.

상훈유통은 주한미군에 공급하는 홍삼이나 홍삼음료 등을 소매 판매업자들에게 강매했다고 한다. ㅁ씨는 “이 대표는 세미나에서 홍삼음료 판매 실적에 대한 교육을 많이 하는데, 홍삼 제품은 잘 안 팔리지만, 실적을 올리도록 회사에서 독려한다. 이 때문에 회사에서 받는 값보다 더 싼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팔면 팔수록 소매업자들이 손해 보는 구조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홍삼 판매 실적이 좋지 않으면 담배를 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ㄱ씨는 “2013년 의정부에서 담배 불법 유출이 적발된 적이 있다. 이후부터 상훈유통 측이 손해배상 예치금으로 1000만원을 내라고 하더라. 갑자기 이런 큰돈이 어디서 나나. 울며 겨자 먹기로 보증보험증권을 들어서 1000만원 대신 제출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소매 판매업자들은 검찰의 대대적인 조사를 받을 당시 이를 모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도 상훈유통의 방조 혐의에 초점을 맞춰 조사를 진행했다고 한다. 실제로 검찰은 수사 결과 발표 당시 “면세담배의 불법 유통의 근본 원인은 미군부대에 적정량을 초과하는 면세담배가 공급된 것으로 파악된다”고 발표했다. 원인을 정확히 파악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검찰은 상훈유통에 면세담배 공급 체계의 개선을 ‘권고’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ㄷ씨는 “상훈유통에서 면세담배 판매량 기준을 높게 잡고 있으니 우리 같은 소매상인들은 불법 유출을 할 수밖에 없다. 상훈유통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한마디로 상훈유통 멋대로 해왔다. 상훈유통은 우리 소매상인들이 마치 자기들 때문에 호의호식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이번 검찰 수사를 지켜보면서 상훈유통이 당연히 처벌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우리 소매상인들만 나쁜 놈이 됐다. 너무 억울하다. 도대체 상훈유통 뒤에 누가 있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사저널은 ㄱ씨를 비롯한 소매상인들의 이와 같은 주장에 대해 상훈유통 측에 확인을 요구했다. 상훈유통 측은 “이번 사건이 터진 후 면세담배 불법 유출에 연루된 소매 판매업자들과 전부 계약 해지를 했다. 이에 불만을 품은 소매업자들이 음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에 대해 명예훼손 등 법적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우리가) 불법 유출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은 말도 안 되고 강매도 없었다. 검찰 수사 결과 상훈유통은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 수사 결과를 믿어달라”는 입장을 밝혔다. 


“미군은 국산 면세담배 안 피운다”  


국내 미군부대 내에서 직접 면세담배를 판매하는 소매업자들은 국산 담배를 주한미군에 공급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주한미군 중에 국산 면세담배를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주한미군에 공급되는 면세담배의 대부분이 불법 유출된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올해 초 담뱃값이 인상되면서 기승을 부릴 것으로 예상되는 담배 블랙마켓의 주 공급원이 주한미군 면세담배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대한상이군경회 산하 단체인 상훈유통은 지난 20여 년간 주한미군에 대한 국산 면세담배 유통권을 독점하고 있다. 상훈유통은 1994년부터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에 따라 미군의 군수불용품 처리를 맡아왔다. 미군이 사용했던 중고품 등을 양도받아 판매하는 사업이다. 주한미군은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적자를 보전해주기 위해 상훈유통에 국산 면세담배 판매 사업권을 승인해줬고, 상훈유통은 KT&G로부터 면세담배를 독점적으로 공급받아 이를 각 지소에서 직접 판매하거나 부대 내의 스낵바를 통해 판매해왔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제가 발전하고, 미군부대에서도 ‘빌트-인(주택 안에 가전제품, 주방기기, 냉·난방 기기, 붙박이장, 가구 일부 등을 구비해 놓은 것)’ 방식이 늘어나면서 주한미군에서 나오는 군수불용품 자체가 전무하다시피하다고 한다. 담배 소매업자 ㄱ씨는 “물량 자체가 없다. 1년에 미군에서 나오는 불용품이 한두 건 정도인 것으로 알고 있다. 미군부대에 국산 면세담배를 공급하게 된 원인인 ‘군수불용품 적자 보전’이라는 의미가 없어진 것이다”고 지적했다.

주한 외국군용 담배에 세금을 면제하는 규정의 취지는 우리나라의 방위를 위해 주둔하고 있는 주한 외국군 장병과 소속 근로자 등에게 편익을 제공하는 데 있다. 따라서 주한 외국군용 면세담배의 판매 대상자는 SOFA의 인적 대상 범위와 동일하게 ‘주한 외국군 및 군속(외국 국적)과 그 가족’으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시사저널이 입수한 면세담배 판매대장에는 외국인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군이 국산 담배를 사지 않기 때문에, 주한미군에게는 국산 면세담배가 ‘편익’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대구의 주한미군 사령관은 면세담배 불법 유통이 문제가 되자 미군 캠프에 국산 담배를 들여오지 못하도록 했다. ㄱ씨는 “상훈유통은 미군부대 내의 종사자, 군인 중에서 흡연 인원을 파악해 공급량을 결정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정확한 인원도 아니고, 주먹구구식으로 무조건 많은 인원을 산출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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