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품위 있는 죽음’ 누가 가로막는가
  • 허대석│서울대병원 내과 교수 ()
  • 승인 2015.03.12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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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피스·간병인 지원 외면…후진적 연명치료 집착

매년 우리나라에서는 약 26만명이 사망한다. 이 중 사고나 급성질환 등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경우를 제외한 20여 만명은 대부분 만성질환으로 투병하다 임종을 맞이하는데, 이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두 가지 상황을 떠올려볼 수 있다.

첫째는 부산한 대형 병원 중환자실이나 병실에서 의식을 잃고 생명의 끈이 끊어지는 순간을 조금이라도 뒤로 미루기 위해 수많은 튜브와 약제에 의존한 채 누워 있는 모습이다. 둘째는 안락한 분위기의 침실이나 호스피스 시설에서 편안하게 돌봐주는 전문 간병인이 옆에 있고, 마지막 가는 길이 외롭지 않게 손을 잡아주는 가족이 모여 있는 풍경이다. 이 중에 자신이 원하는 삶의 마지막 모습을 고를 수 있다면, 대부분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내 호스피스 병동에서 가족이 환자를 보살피고 있다. ⓒ 시사저널 포토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의 실제 상황은 정반대다. 말기 암 환자의 경우, 1991년 19.1%에 불과했던 병원 임종 비율이 2010년에는 무려 86.6%로 증가했다. 특히 사망 한 달 전에 중환자실에서 진료받은 환자의 비율은 2.7%에서 19.9%로 7배 이상 늘어났다. 다른 중증 질환 환자의 경우도 비슷한 상황이며, 임종 기간 동안 인공호흡기와 같은 연명 의료 기기에 의존하는 비율도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급속도로 상승하고 있다. 이렇듯 우리나라의 말기 암 환자들이 호스피스 시설이나 자택보다 대형 병원을 선호하고, 임종 직전까지 항암제를 투여받거나 응급실·중환자실을 이용하는 비율이 현저히 상승한 데는 정부의 건강보험급여 정책도 한몫을 했다.

호스피스보다 장례식장에 더 투자

그동안 정부가 추진해왔던 4대 중증 질환에 대한 건강보험급여 보장성 강화 정책 자체는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었지만, 중증 질환자의 투약과 시술·검사 비용을 줄여주는 방향 위주로 추진되다 보니, 대형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주로 혜택을 받게끔 의료 전달 체계를 왜곡시키는 부작용을 낳았다. 현대 국가의 의료복지는 출생부터 사망까지 국민들의 삶과 함께해야 하는데, 과거 후진국 시절처럼 일부에게 시혜적으로 베푸는 방식은 전체 국민에게 돌아가야 할 의료 자원을 일부가 남용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

4대 중증 질환 보장 확대 정책으로 암과 같은 중증 질환자들의 본인 부담금 비율이 2005년 9월부터 20%에서 10%로 낮아진 데 이어, 2009년 7월에는 다시 5%로 하락했다. 암 환자들이 병원에서 고가의 검사를 받거나 항암제를 투여받고 연명의료를 위해 중환자실을 이용하는 게 본인 부담 5%의 비용만으로 항상 가능해진 셈이다. 한 대학병원 조사에 따르면, 중증 질환 보장 확대 정책 이후 말기 암 환자 중 사망하기 4주 전까지 항암제를 투여받은 환자의 비율은 2002년 16.4%에서 2012년 42.7%로, 사망 2주 전까지 항암제를 투여받은 환자 비율도 10년 사이 5.7%에서 23.8%로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사망하기 4주 전에 사용하는 항암제는 환자에게 도움을 주기보다는 부작용으로 고통을 가중시키고 오히려 생명을 단축할 위험이 있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임종이 가까운 환자에게는 항암제를 투여하지 않는 것을 적정 진료로 평가하고 있으며, 환자가 편안하게 임종을 준비할 수 있도록 호스피스 진료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환자의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한 완화의료와 간병을 주로 수행하는 호스피스 진료에 대해서는 건강보험에서 지원을 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 보니 대학병원들은 호스피스 병상 확보보다는 수익성이 높은 장례식장과 같은 부대사업 투자에 더 집중하는 형편이다. 현재 호스피스 진료를 하고 있는 의료기관들은 재정 상태가 나빠 시설이 낙후되어 있으며, 환자의 거주지와 멀리 떨어진 지역에 위치하고, 자원봉사자 등의 인력에 의존하고 있다.

호스피스 병원, 지방에 있고 시설 낙후

말기 암과 같은 중증 질환자와 그 가족들은 경제적 이유와 편의를 위해 진료를 받던 대형 병원에서 임종 기간을 보내고 장례식장까지 이용하기를 원하고 있다. 이런 현실적인 이유와 연명의료 결정 과정에 대한 제도적 장치 미비, 이로 인한 의사들의 방어 진료가 겹쳐 매년 3만명 이상의 말기 암 환자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와 같은 무의미한 연명의료 수단에 의지한 채 고통스럽게 임종하고 있다. 투약과 시술, 검사 위주로만 건강보험급여를 확대할 뿐, 주변 선진국에서 당연히 실시하고 있는 호스피스와 간병인에 대한 지원은 제대로 하지 않는 지금의 보험급여 정책은 품위 있는 죽음을 원하는 국민들에게 걸림돌이 되고 있다.

암 보장성 강화 정책 이후 암 환자의 건강보험급여비 총액은 2004년 9915억원에서 2012년 3조8970억원으로 4배 증가했으나, 우리나라에서 암으로 인한 환자 사망률은 낮아지지 않았다. 말기 암 환자에게 고가의 항암제와 중환자실에서의 연명의료 비용을 95% 지원하기 위해 투입되었던 예산의 일부만이라도 호스피스 진료에 썼더라면, 그들은 평소에 원했던 삶의 마지막 모습으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올 2월초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건강보험 중기 보장성 강화 계획에 호스피스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계획을 처음으로 포함시킨 것은, 많이 늦은 감이 있지만 그나마 다행스러운 결정이다. 문제는 암 환자와 같은 중증 질환자 중 대다수가 수도권에 위치한 대형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있는 반면, 호스피스 진료를 전문으로 하는 의료기관들은 영세한 데다 전국에 분산되어 있어, 환자 연계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는 점이다. 왜곡된 의료 전달 체계로 인해 대형 병원에서 의료 집착적인 진료를 받는 데 익숙해진 환자 및 그 가족들이 시설 수준이나 편의성이 떨어지는 호스피스 의료기관으로 옮겨갈 수 있게 하는 일은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최근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는 것은 많은 사람이 현재의 임종 문화를 불편하게 느끼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미 1~2인 가구가 50%를 넘고, 노인이 노인을 돌봐야 하는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었다. 본인이든 가족이든 언젠가는 부딪쳐야 할 문제이기에 간병과 임종 문제에서 자유로운 국민은 없다. 대다수 국민이 원하는 편안하고 품위 있는 임종을 맞이할 수 있게 호스피스 제도의 정착과 함께 정부의 전체적인 의료정책의 틀도 다시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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