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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켈의 담대함, 아베를 초라하게 하다

역사수정주의 비판한 아사히신문사에서 강연 “과거사 해결 노력 일본이 자발적으로 해야”

강성운│독일 통신원 ㅣ 승인 2015.03.16(Mon) 15:5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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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최근 행보에 대해 한국의 관심이 뜨겁다. 3월9~10일 메르켈 총리는 G7 회의 준비를 위해 일본을 방문했다. 이번 G7 회의는 올해 6월 독일에서 열리기 때문에 참가국 순방길에 나선 것이다. 메르켈이 일본을 방문한 것은 2008년 이후 7년 만이다. 

일본에서 메르켈 총리는 파격을 보였다. 일본의 과거사 문제를 공적인 자리에서 연거푸 언급했다. 독일 언론들은 한국 언론과 비슷한 관점에서 메르켈의 행보를 바라봤다. 메르켈이 호소한 평화 정책을 독-일 대테러 공동 대응이나 유럽-일본 간 자유무역협정(FTA)과 같은 내용보다 비중 있게 다뤘다. 독일의 총리가 아시아 제2의 무역 대상국인 일본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린 이유는 무엇일까.

해답은 메르켈 총리가 3월9일 오전 아사히신문사 강당에서 한 연설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아사히신문 관계자와 구독자, 대학생들 앞에서 최근 국제 정세와 유럽 정책에 관해 30여 분간 기조연설을 했다. 최근 세계 자유 질서에 대한 위협이 증가하고 있으며, 국제사회가 협력해 이를 막아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연설이었다. 메르켈 총리는 “G7 국가는 공동의 가치와 신념을 바탕으로 함께 세계적인 도전에 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3월9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아베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마친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AP 연합
다른 언론사 제의 거부하고 아사히 선택

‘공동의 가치와 신념’이라는 말이 그저 듣기 좋은 빈말이 아님을 메르켈은 이번 일본 방문에서 분명히 했다. 일본이 나머지 G7 국가와 함께 ‘세계의 자유 질서’를 지키고자 한다면 그에 어울리는 행동을 해야 한다고 촉구한 셈이다. 이는 연설 후 이뤄진 질의응답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연설 직후 “일본이 전쟁의 과거를 극복하기 위해 독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알고 싶다”는 질문을 받았다. 메르켈은 “독일 정부의 수장으로서 일본인들에게 ‘충고’를 해줄 순 없다”며 “과거사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일본 사회 안에서 생겨나야 하며, 독일이 프랑스 등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적국과 화해할 수 있었던 것 역시 독일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과거와 마주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결국 메르켈이 일본 사회에 던진 메시지의 핵심은 ‘자발성’이다.

독일 언론은 메르켈 총리가 기조연설 장소로 아사히신문사를 택한 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메르켈이 다른 언론사들의 제의를 거부하고 아사히신문의 초청을 수락하면서 아베 정권의 우경화 드라이브를 간접적으로 비판했다는 것이다.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너 차이퉁(FAZ) 온라인’은 “아사히신문이 주요 일간지로서는 유일하게 아베의 역사수정주의를 비판해왔다”며 기조연설의 상징적 의미를 소개했다.

실제로 아사히신문은 지난해 8월5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직시해야 한다’는 취지의 특집 기사를 내 일본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하지만 보도 직후 위기를 맞았다. 기사에 소개된 “제주도에서 위안부를 강제 동원했다”는 요시다 세이지의 증언이 거짓으로 판명된 탓이다. 결국 아사히신문이 해당 기사 전체를 철회했고, 보수 세력의 역공은 거세졌다. 독일의 ‘슈피겔 온라인’은 메르켈 총리가 아사히신문의 초청을 수락한 배경을 소개하면서 “기사에 오류가 있다고 해서 일본인들의 전쟁 책임을 근본적으로 의문시할 수 없다”며 오보 논란을 일축했다.

독일 언론이 아베 일본 총리에게 거는 기대는 낮다. 독일의 대표적인 보수 성향 일간지 ‘FAZ’는 아베 정권 들어 역사교과서가 왜곡되고 종군위안부 문제가 부정당하고 있음을 보도하면서 “국가주의자임을 자인하는 아베 일본 총리가 동아시아에서 화해 정치의 선구자가 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단언했다. “아베가 종전 70주년 기념 기조연설을 국가주의 어젠다를 가속화하기 위한 도구로 삼지만 않아도 큰 수확일 것”이라는 FAZ의 지적은 바꿔 말하면 “아베가 망언만 또다시 안 해도 다행”이라는 말과 다름없다.

   
“자신의 과거 해결하는 게 화해의 전제조건”

이번 독-일 정상회담에서 메르켈 총리는 직접 역사 문제를 거론하지는 않았다. 외교적 결례이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와의 공동 기자회견 자리에서 그의 어투는 불과 몇 시간 전 아사히신문사 강연 때와 비교하면 누그러져 있었다. 한 일본 기자가 물었다. “일본이 독일로부터 전쟁의 과거를 해결하는 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메르켈 총리는 “나는 일본이 뭘 해야 할지 지시를 내리러 온 게 아니다”며 한 발짝 물러섰다. FAZ는 “이 대답에 긴장으로 굳어졌던 아베의 얼굴이 풀렸다”고 전했다. 하지만 메르켈은 해야 할 말은 했다. “나는 다만 우리가 독일에서 뭘 했는지를 얘기할 수 있을 뿐이다. 자신의 과거를 해결하는 것이 화해의 전제조건이다.” 메르켈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아베의 얼굴 근육은 단 한 치도 움직이지 않았다.

독일 유력 일간지인 ‘쥐드도이체 차이퉁’은 “메르켈 총리는 타국을 향해 표면화된 통보가 종종 의도와 반대되는 효과를 낳는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일본에 대한 비판은 가급적 피하고 대신 독일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를 설명했다”고 보도했다. 물론 가끔은 대놓고 비판도 한다. 메르켈 총리가 해외 국가 정상에게 쓴소리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3년 6월에는 탁심 광장의 시위대를 폭력으로 진압한 에르도안 총리의 터키 정부를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시위대를 이런 식으로 대하는 것은 내 관점에서는 용납할 수 없다. 터키에서 벌어진 일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시위의 자유, 의사 표현의 자유의 모습과 부합하지 않았다. 나는 몹시 충격받았다”고 말해 에르도안 총리를 머쓱하게 만들었다.

지난해 초부터 유럽과 구소련 지역 간 경계 지점에서 군사적 긴장을 높이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역시 메르켈의 ‘한 방’을 피할 수 없었다. 메르켈은 지난해 11월 호주에서 열린 G20 회의에서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몰도바, 조지아 공화국도 문제다. 계속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세르비아나 서발칸 국가들 상황도 우려해야 할 지경”이라고 푸틴을 몰아붙였다. 독일 야당에서조차 “과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을 정도다. 터키와 러시아에 비하면 일본은 살살 다룬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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