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권 주자 이미지 만드는 데만 치중”
  • 광주=엄민우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5.03.17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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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연합 탈당하고 광주 서 을 무소속 출마 선언한 천정배

“이번 4월 재·보선 아주 만만치 않을 거야. 특히 천정배 전 장관이 무소속 출마라도 하면 문재인 대표로선 아주 골치 아파지지.” 한 달 전쯤 새정치민주연합 광주 지역의 한 관계자는 기자에게 불쑥 이런 말을 던졌다. 그의 우려대로 천 전 장관은 3월9일 탈당을 선언함과 동시에 4·29 광주 서구 을 보궐 선거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갑작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졌지만, 지역에서는 진작부터 이런 조짐이 움트고 있었던 셈이다. 새정치연합은 발칵 뒤집혔고 즉각 “명분 없는 탈당”이라고 비난했다. 텃밭인 광주에서 천 전 장관이 무소속으로 당선되면, 가뜩이나 호남에서 지지 기반이 허약한 문 대표 입장에선 난처한 입장에 처할 수밖에 없다. 한때 ‘민주당 귀신’을 자청하면서 당에 끝까지 남겠다고 했던 천 전 장관은 왜 갑자기 문 대표에게 비수를 꽂은 것일까. 3월11일 광주시 서구에 위치한 캠프 사무실에서 천 전 장관을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탈당 기자회견 전에 문재인 대표와 만났고, 그 자리에서 문 대표가 탈당을 만류했다고 하던데.

내가 먼저 만나자고 했다. 탈당을 결심했다는 이야기를 전하려 한 것이 아니라 “시민 후보로 나서달라는 요청이 있어 출마를 고심 중이다. 조만간 결정하려고 한다”는 정도의 이야기를 했다. 문 대표는 당에 남아서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했고, 그것이 전부다. 2월 말쯤의 일이다.

ⓒ 시사저널 이종현
당에 남아서 경선에 참여하는 게 더 명분이 있지 않나. 왜 탈당을 선택했나.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새정치연합은) 지난 10년처럼 하면 수권 정당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광주 및 호남 지역으로 좁혀서 생각하면 이렇게 무기력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새로운 수권 세력으로 야권을 재구성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냥 국회의원만 되려고 마음먹은 것이라면 당내 경선에 참여했을 것이다. 아무리 (경선에서) 당내 조직이나 세력이 중요하다 하지만, 솔직히 비교적 수월하게 (본선에) 진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공천을 받아 새정치연합 소속의 한 명의 국회의원이 된다고 해서 당을 변화시키고 호남 정치를 복원할 순 없을 것이다. 변화를 이끌어내기는커녕 당내 정치에 편입돼버리게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번만큼은 일찍부터 당의 후보가 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오히려 내가 고심했던 것은 탈당 여부가 아니라 출마할 것이냐 말 것이냐다.

일각에선 전략 공천을 바랐다가 잘 안 되자 당을 나간 것이라는 말도 있던데.

전략 공천을 준다고 받을 수도 없는 것이다. 천정배가 그렇게까지 해서 국회의원 1년 하면 뭐 하겠나. 단순히 의원을 할 것이면 내년 총선 때 해도 될 것인데 그걸 못 기다렸겠나. 사실이 아니다.

‘안철수 신당’ 참여 이야기가 나올 때인 2년 전 당시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선 민주당을 지키겠다고, 탈당하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나.

당시엔 탈당하고 안철수 신당으로 갈 생각이 전혀 없었고 당에 대한 일말의 기대가 있었다. 지난해 7월만 해도 재·보궐 선거를 나가려고 했을 정도로 당내 쇄신을 이끌어낼 생각과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7·30 재·보선에서 참패하고 이후 박영선·문희상 비대위를 거치는 과정에서도 문제점을 해소하거나 쇄신하지 못했고, 여전히 구태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전당대회에서도 전혀 새로운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과정을 보면서 도저히 현재의 당 내에서는 쇄신해서 무언가를 바꿀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당 밖에서 새로운 세력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을 굳혔다.

새정치연합에 대해 가장 실망한 부분이 무엇인가

나는 늘 당에서 국민들에겐 비전을, 당원들에겐 보통선거권을 줘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런데 우선 당이 전혀 비전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대체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지조차 분명치 않다. 또 당 시스템이 계파 패거리들의 패권주의와 기득권 구조로 딱 굳혀진 모습이다.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파 정치는 여전히 살아 있다. 지난 10년 동안 대선에서 두 번 실패했다. 특히 지난 2012년 대선과 총선에선 이긴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총선은 이긴다고 봤고, 대선도 60% 가까운 국민이 정권교체가 필요하다는 분위기였는데, 모두 졌다. 그럼 우리가 왜 민심을 못 얻는지 좀 반성하고 성찰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그런 것이 전혀 없다. 패거리 세력들의 패권주의는 비전도 못 내놓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번엔 문 대표가 ‘탕평 인사’를 했다는 평가도 많았다.

탕평 같지 않다. 논공행상이었고 어떤 의미에서 보면 탕평이라기보다는 기존 주류의 외연을 확장한 모습이다. 기존 계파에다가 몇 명 더 붙인 정도다. 아무리 정치에서 이미지도 중요하다고 하지만, 문 대표가 대권 주자 행보만을 보이고 있는 것 아닌가. 당을 어떻게 쇄신하고 지지를 얻어 수권 정당을 만들지 고민하기보단 대권 주자로서 자신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만 치중하고 있다. 이번 재·보선 세 지역(서울 관악 을, 경기 성남 중원, 광주 서 을)의 공천 과정을 보자. 경선 과정도 구태를 전혀 벗어나지 못했다. 호남에서는 새정치연합 후보가 되면 곧 당선됐다. 현실적으로 말하면 당내 후보 선정 과정이 곧 국회의원을 뽑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어떻게 합리적으로 민의를 반영할지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당내 경선 과정 등 후보 선정 과정을 보면 계파 구도하에서 공천받을 사람, 즉 국회의원 만들 사람 정해놓고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새 지도부가 쇄신을 약속했는데 왜 이번 공천부터 쇄신이 안 되는 것인가.

과거 ‘호남 지역주의’를 비판했다. 그런데 이번 탈당 명분이 호남 지역 정치의 복원이다. 앞뒤가 안 맞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왜곡된 이야기다. 지금도 호남의 기득권 세력은 내가 아니라 당 안에 따로 있다. 이런 기득권자들이 호남에 안주하면서 가는 것을 반대한다는 것이다. 난 역사적으로 소외되고 경제적으로 낙후된 호남이 제대로 힘을 받아 복원돼야 된다고 생각한다. 호남 사람들의 정당한 정치 세력을 기르자는 것이 호남 정치 복원의 의미다. 이를 퇴행적 지역주의라고 하는 것은 왜곡이다.

‘국민모임’과의 연대는 어떻게 진행할 계획인가.

내가 이번에 무소속을 자청한 것은 당내 기득권 구조에 편입돼서는 쇄신을 이루기가 불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만약 내가 당선이 된다면 광주 시민들이 내 노선을 지지해준다는 것이니 새로운 판을 짤 것이다. 새정치연합과 제대로 경쟁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고자 한다. 아직 ‘신당’이라고까지는 말을 못하겠지만, 내년 총선까지 세력을 모을 계획이다. 온건하고 합리적이고 개방적인 진보와 개혁 세력을 총망라해서 새로운 세력을 만들고 총선에 출마할 것이다. 진보 세력 중에선 정의당 같은 건전한 진보 세력도 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선거 이후 정치 세력을 만드는 과정에서 함께할 수 있다. 국민모임도 그중 하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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