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의 도발…소신이냐 노림수냐
  • 경남 창원=이승욱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5.03.23 14:2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도꼬다이’의 무상급식 중단…정치적 운명 건 도박

3월18일 오후 4시30분쯤.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자신의 사무실을 나섰다. 앞에서 기다렸던 기자는 홍 지사와 함께 청사 현관 앞까지 걸어 나오며 10여 분간 대화를 나눴다. 이날 오전 홍 지사는 경남도청을 방문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만나 ‘무상급식 중단’과 관련해 격론을 벌였다. 

 

오전에 문 대표 만나셨죠? 어땠습니까.

“문 대표가 (무상급식) 내용도 잘 모르는 것 같습디다.”

두 분 회동에 기대를 거는 사람이 많았는데요.

“문 대표가 정치적으로 ‘무상급식 쇼’를 하러 온 것으로 봐야 하는 것 아니에요?”

앞으로 대화 여지는 없는 것인가요?

“제가 당 대표를 (먼저) 한 사람인데, (문 대표보다는) 정치는 한 수 위입니다. 무상급식을 해결하겠다면 대안을 내놔야 하는데, 그것도 없이 뭐 하러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시사저널과 정식으로 인터뷰를 했으면 합니다만.

“지금은 일정 관계로 제가 공항에 나가야 합니다. 내일부터는 해외 일정이 있고…(보좌진에게 인터뷰 일정을 잡으라고 당부한 후) 4월에 꼭 봅시다.”

 

3월18일 오후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경남도청을 나서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이날 오전 10시30분. 창원의 경남도청사 2층에 있는 도지사 접견실은 언론사 취재진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33㎡(10평) 남짓한 접견실에는 지방 언론사는 물론이고 서울에서 내려온 중앙 언론사의 취재 및 사진·영상 기자 70여 명이 뒤섞여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만큼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의 회동은 전국적인 관심사였다. 이미 회동이 있기 1시간 전부터 풀 기자단 운영을 사전 논의한 언론사 취재진들이었지만 좀 더 좋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군데군데서 승강이를 벌이는 등 소란스러웠다. 접견실 중앙에서 이를 지켜보던 홍 지사가 슬며시 자리를 뜨더니 지역 주재기자들과 대화를 이어갔다. 전날 박종훈 경남교육감(진보 성향)이 내놓은 대안과 관련해 그는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예산에 대한 기본이 안 돼 있다”며 웃었다.

이날 낮 12시. 기자는 창원시 반송초등학교로 이동했다. 이 학교 시청각실에서 문재인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무상급식 중단과 관련한 학부모 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간담회에는 경남 지역 학부모 10명이 참석했다. 김해에서 온 40대 초반의 최 아무개씨가 마이크를 이어받았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네 자녀를 둔 어머니 최씨는 “무상급식이 중단되면 월 25만원이나 급식비를 내야 하는 실정”이라며 “어느 날 아이가 ‘(저소득층을 증명하고) 급식비 지원을 신청하면 정말 가난하게 되는 거니까, 그냥 급식비는 내고 대신 학원은 그만두겠다. 급식비 때문에 친구들한테 가난한 거 보여주기는 싫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어 감정에 복받친 듯 울먹이자, 다른 학부모들도 흐느끼기 시작했다.

‘영원한 도꼬다이’란 별명을 갖고 있는 홍준표 지사가 지난해 10월 경남도육청에 대한 무상급식 예산 지원 중단 가능성을 언급할 때만 해도, 무상급식 중단이 현실화될 것이라는 데는 회의적인 반응이 많았다. 무상급식 문제가 보수와 진보 진영 사이의 뜨거운 논쟁거리지만, 민심의 저변에는 ‘아이들의 밥그릇을 걷어찬다’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홍 지사는 달랐다. 무상급식 예산 삭감 이야기를 꺼내놓은 지 5개월 만에 경남 지역에서는 오는 4월부터 전면 무상급식이 사라지게 됐다. 홍 지사가 단박에 지난 8년간 이어졌던 무상급식 체제를 완전히 무너뜨린 것이다.

홍 지사가 지역민의 반대 여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무상급식 지원을 중단한 것을 두고, 지난 2011년 8월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이 추진했던 무상급식 주민투표 제안과 비교하는 시각이 많다.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의 대표였던 홍 지사는 오 시장이 주민투표와 시장직을 연계하는 데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이와 관련해 전략통으로 분류되는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홍 지사가 지역에서의 반대 여론이 확산되는 데도 일방적으로 일처리를 한 것은, 감정적으로 흐를 수 있는 무상급식 문제를 그런 (오세훈) 방식으로 다루면 백전백패라는 점을 잘 알기 때문”이라며 “홍 지사가 속전속결로 무상급식 문제를 처리해야 한다는 점을 잘 알고 행동에 나선 것이다. 마치 ‘일은 이렇게 해야 한다’는 걸 (오 전 시장에게) 보여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3월18일 오전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경남도청에서 무상급식 관련 회동을 마친 후 악수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오세훈의 실패’ 보란 듯 속전속결”

홍 지사는 무상급식 중단 사태에 대한 지역민의 반대 여론이 강한 상황을 개의치 않는 것 같다. 문 대표와의 회동에서도 홍 지사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은 채 대화의 여지도 닫았다. 홍 지사는 “내가 잘못된 길을 가는지 안 가는지는 나중에 판단해보라”고 따졌다.

홍 지사는 거침없는 언행으로 자주 논란을 빚기는 하지만, ‘검사’ 출신 특유의 저돌성과 돌파력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새누리당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대표적인 ‘비주류’인 그는 당 내에 확실한 자기 기반이 없다는 제약에도 여당의 원내대표와 당 대표까지 올랐다. 이슈를 만들고 트러블을 일으키는 특유의 정치 스타일이 통했다는 평이다. 정치권에서는 이와 결부해 진주의료원 폐업에 이은 무상급식 논란을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에 따른 것으로 보는 분석이 많다.   

지방자치단체장은 지방 행정을 대표하는 자리지만, 중앙 정치 무대에서는 소외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중앙 무대에서 중량감이 있던 정치인이라도 지방의 단체장으로 내려가면 존재감이 미미해진다. 경남도 공보관실 관계자는 “지난 3월9일 무상급식 중단 선언을 한 이후 (홍 지사는) 하루에 9차례나 언론과 인터뷰를 할 정도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상급식 논란에 불을 지핀 후 한껏 주가를 올리고 있는 홍 지사의 위상을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진보 쪽과 대립각을 세워서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보수 진영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며 “어차피 다음 도지사 선거에는 크게 연연하지 않겠다는 점에서, 지역을 뛰어넘어 전국적인 위상 제고를 꾀하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행보”라고 분석했다.

3월18일 경남 창원시 반송초등학교 학생들이 학교에서 무상으로 제공한 점심을 먹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침묵 지키는 여당, 홍 지사 행동에 내심 ‘불쾌’

지난해 10월 무상급식 예산 지원 중단 선언이 있은 후 지금까지 갈등의 주체였던 박종훈 교육감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있는 것 역시 이 같은 분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여영국 경남도의원(노동당)은 “애초 지난해 10월 무상급식 논란이 시작될 때만 해도 홍 지사는 도교육청에 대한 감사를 주장하면서 ‘감사 없이는 예산 없다’고 말했고, 이후에는 ‘좌파들의 무상 파티’ ‘예산이 없다’ ‘보편적 복지가 아닌 선별적 복지를 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을 바꿔왔다”며 “일관성 없는 무상급식 때리기는 대권 욕심에 포커스를 맞춰놓고 보수 진영에서 스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전략이라고 봐야 한다”고 비판했다.

일부 정치 전문가들은 지역 여론이 당장 악화될 수 있지만, 대권 후보로 거론되는 홍 지사의 정치적 행보에는 득이 될 것이란 분석도 내놓고 있다. 실제 무상급식 중단이 현실화된 지난 3월9일부터 13일까지 리얼미터가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2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차기 대선 주자 여론조사 결과, 홍 지사는 전주보다 1.2%포인트 상승한 5.7%로 8위를 기록했다.

지역 내에서는 무상급식에 반대하는 지역민의 여론이 들끓고 있지만, 이른바 ‘노이즈 마케팅’을 통해 전국적으로는 정치적 위상을 높인 셈이다. 황태순 위즈덤센터 수석연구위원은 “무상급식의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인 학부모보다는 학부모가 아닌 유권자가 더 많다”며 “보수 진영에서는 ‘저 사람이 돈키호테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더 공고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무상급식 중단 사태로 홍 지사의 여당 내 입지는 더 좁아질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초유의 무상급식 중단 사태에도 새누리당은 3월20일 현재까지 공식 입장을 내놓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는 모양새다. 경남 진주 갑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박대출 새누리당 대변인은 “지역 현안이지만 당의 공식 입장이 정리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대변인으로서 (무상급식 중단 사태와 관련한) 의견을 밝히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당내 일각에서는 무상급식 중단 사태와 관련해 당 측과 공식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홍 지사에 대해 불쾌해하는 기색도 보인다. 경남 지역의 한 국회의원은 “무상급식 반대라는 대원칙에는 공감하지만 일방적인 추진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홍 지사는 지역 현안을 두고 다른 의견을 보이는 지역구 출신 국회의원을 “경남도의 행사에 초청하지 않겠다”고 공언하는 등 독선적인 태도로 비판을 받아오던 터였다.  

당장 4월 들어 무상급식 중단이 경남 지역 학교 현장에서 현실화되면, 민심 이반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홍 지사가 무상급식을 어젠다로 내세워 주가를 올리고 있지만, 결국 자기 덫에 갇힐 수 있다”며 “당장 4월 재·보선에서의 영향은 미미할 수 있지만, 내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텃밭인 경남에서 고전한다면 홍 지사가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