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정권의 포스코 장악, 국정원 동원됐다
  • 박혁진 기자 (phj@sisapress.com)
  • 승인 2015.03.24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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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득과 가까운 직원, 삼창기업 인수 때 언론 동향까지 체크

이명박(MB) 정부의 국가정보원이 포스코가 민간 기업임에도 담당 직원을 두고 회사와 관련한 광범위한 정보 수집 활동을 벌였던 것으로 시사저널 취재 결과 확인됐다. 포스코는 민간 기업이기 때문에 국정원이 산업 기밀과 관련한 분야를 제외한 회사 관련 정보를 수집해서는 안 되는데 국정원은 담당 직원으로 하여금 포스코 관련 정보를 수집하도록 했다. 이는 MB 정권이 포스코를 민간 기업이 아닌 정부 소유의 기업 혹은 ‘전리품’처럼 여겼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노무현 정부 때는 포스코 담당 국정원 직원이 없었다.

국정원이 지난 정권에서 정보 수집을 한 내용 중에는 현재 검찰이 수사하고 있는 포스코 부실 기업 인수건, 베트남 법인 비자금 조성 의혹뿐만 아니라 2012년 중앙수사부가 나서서 수사했던 양재동 파이시티 사업 등이 포함돼 있다. 공교롭게도 두 사건에는 모두 이상득 전 의원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등 MB 정권 실세들이 연루됐다는 말이 나오고 있으며, 국정원 역시 이들에 의해 좌지우지됐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특히 당시 포스코를 담당했던 직원이 MB 정권 실세 중 한 인사와 가까운 인물로 알려져, 수집된 정보들이 현재 포스코 비리 의혹에 연루된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에게 건네진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국정원이 MB 정권의 포스코 사유화 과정에 간접적으로 동원됐거나, 적어도 사유화를 방조했다는 비판을 피해갈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 시사저널 이종현
민간 기업 포스코에 담당 정보원 배치

포스코 고위 인사 및 복수의 정부기관 관계자에 따르면 국정원은 2009년 3월 원세훈 원장이 취임한 후 이상득 전 의원 측 인사로 분류되는 직원을 산업자원부(현 산업통상자원부)에 배치했다. 국정원은 통상적으로 산자부에 2명 정도의 직원을 배치하는데, 한 명은 부처 담당, 다른 한 명은 산하 공기업을 맡는다. 이 중 산하 공기업을 담당하는 직원이 포스코를 정보 수집 대상에 포함시켜 관련 정보를 보고했다. 각 기관 담당 국정원 직원들이 해당 기관의 ‘장’과 독대했던 것처럼, 정준양 전 회장 역시 국정원 직원과 정기적으로 독대하기도 했다.

최근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삼창기업 원자력 부문 인수 건도 국정원이 2012년 인지해 보고했던 사건 중 하나다. 포스코 계열사인 포스코ICT는 2012년 1월 삼창기업의 원자력 부문을 인수해 포뉴텍이라는 계열사를 새로 설립했다. 삼창기업은 울산 지역 기업인 이두철 회장(70)이 설립한 회사다. 이 회장은 경주 이씨 중앙종친회장을 맡으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 이상득 전 의원과 가깝게 지낸 사이다. 17대 대선이 있었던 해인 2007년에 열린 경주 이씨 종친회 주최 제사는 이 전 대통령과 이 전 의원, 이재오 의원 등이 참석해 크게 치러졌는데 당시 이 회장이 종친회장을 맡고 있었다.

 포스코ICT가 삼창기업의 원자력 부문을 인수한 가격은 1023억원이었다. 이 가격은 현금 213억원과 삼창기업의 채무 809억원을 포스코ICT가 대신 떠안는 조건 등이 포함돼 책정됐다. 당시 포스코 내부에서는 삼창기업 인수의 적정성을 놓고 뒷말이 무성했다. 업계에서는 200억원에서 300억원이면 적절하다는 평가가 많았지만 이보다 몇 배 더 주고 샀기 때문이다. 결국 포뉴텍은 2013년 58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삼창기업 역시 포스코에 원자력 부문을 넘긴 2012년부터 회사의 재무제표를 회계법인에 제출하지 않고 있다.

삼창기업 인수와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국정원에도 보고됐다. 삼창기업 자체에 대한 내용뿐만 아니라  인수와 관련한 포스코 내부 동향 및 언론 동향 등도 포함돼 있었다. 언론 동향 등이 보고 내용에 포함돼 있었다는 것은 국정원에서 이 사안을 단순히 사업적 측면에서만 바라보지 않았다는 걸 방증한다.

2014년 11월13일 서울남부구치소에서 파이시티 사업 및 원전 비리로 2년 6개월의 수감 생활을 마친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차에 타고 있다. ⓒ 시사저널 포토
최시중·박영준 연루, 파이시티도 연관 의혹

통상적으로 국정원이 수집한 정보는 관련 분야 및 등급별로 분류돼 활용되는데, 공기업의 비리 첩보 등은 청와대로 넘어가 민정수석실에서 이를 확인해 검찰이나 경찰 등에 수사를 의뢰하거나 감사원으로 자료를 넘긴다. 국정원이 포스코를 공기업으로 여기고 정보를 수집했다면, 포스코 관련 비리 첩보는 청와대 등에 보고해 적절한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하지만 국정원은 삼창기업 인수 과정에서 정치권과의 연루 의혹이 끊임없이 불거졌음에도 결과적으로 이를 방관했고, 포스코 부실화의 간접적 원인을 제공한 셈이 됐다.

포스코건설이 연루됐던 파이시티 사업도 국정원의 주요한 정보 수집 대상이었다. 파이시티는 강남 노른자위 땅인 서울 양재동 옛 화물터미널 9만6000㎡ 부지에 3조원을 투입해 오피스빌딩·쇼핑몰·물류시설 등을 조성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복합유통단지를 짓는 사업이다. 총 사업비만 2조4000억원이 넘는 초대형 프로젝트로 당초 대우자동차판매와 성우종합건설이 시공을 맡았다. 하지만 2010년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갔고, 결국에는 8월 채권단이 시행사 파산신청을 냈다. 그 이듬해인 2011년 1월 파이시티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같은 해 5월 채권단은 시공사를 재선정했는데 이때 현대건설·대우건설 등 13개 대형 종합건설회사가 입찰에 참여했다. 문제는 지급보증조차 하지 않은 포스코건설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불거졌다. 보통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사업은 시공사가 대출 지급보증을 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국정원은 파이시티 사업과 관련해 채권단에 의해 시행사가 파산된 2010년 8월부터 포스코건설이 본격적으로 참여한 2011년 말까지 관련 정보를 상부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이시티 사업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인사들은 국정원의 동향 보고에 대해 “전 정권 실세들이 이 사업에 관심이 많았고 이 과정에서 국정원이 역할을 했던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들은 파이시티 사업이 망가지는 과정에는 우리은행이 주요한 역할을 했고, 결국 이 사업을 포스코를 통해 전 정권 실세들이 가지려 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실제로 파이시티 사업은 2012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서 직접 수사했는데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박 전 차관이 인허가 과정에 개입된 사실이 드러났다. 두 사람은 인허가를 도와달라는 청탁과 함께 각각 8억원과 1억6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됐다. 이 사업에 참여했던 한 시행사 관계자는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있을 때는 (정권 실세들이) 인허가와 관련해 도와준다며 돈을 받아갔는데, 나중에 이 사업이 민원 문제도 해결되고 어느 정도 성사 단계에 이르니까 욕심이 생겼던 것 같다”며 “결국은 이 사업을 빼앗기 위해 국정원을 비롯한 이런저런 힘을 이용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파이시티 이정배 대표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파이시티 사업권을 강탈하기 위해 포스코건설과 우리은행이 밀약을 맺었고, 이명박 정부 실세들이 이를 주도하고 있다는 말이 나왔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2007년 5월3일 경북 경주시의 경주 이씨 표암시조 향사에서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관모와 관복을 갖춰입고 입장하고 있다. 이 전 대통령 뒤편에 관복을 입은 사람이 삼창기업 이두철 회장이다. ⓒ 시사저널 이종현
전 정권 실세들이 국정원 좌지우지

MB 정권의 국정원과 포스코는 정권 실세들에 의해 좌지우지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상득 전 의원과 박영준 전 차관이 의혹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들이다.

국정원의 경우 원세훈 전 원장 임명에 두 사람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당시 사정에 밝은 정치권 인사는 “일각에서는 원 전 원장이 이명박 서울시장 재직 시절 정무부시장을 하면서 신임을 받아 국정원장에 임명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원 전 원장을 추천한 것은 박영준 전 차관”이라며 “박 전 차관은 이명박 시장 밑에서 서울시 정무국장으로 일하며 원 전 원장을 좋게 봤고, 그래서 이상득 전 의원에게 추천해 국정원장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원 전 원장은 결국 정치 개입 혐의로 법정에 서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는 현재 불법 정치 개입 혐의로 2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포스코의 경우 정준양 전 회장 선임 과정에서 박 전 차관이 압력을 가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2009년 4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에서 우제창 당시 민주당 의원이 박 전 차관에게 포스코 회장 선임 직전 정준양 당시 포스코건설 사장을 면담했던 사실을 추궁하기도 했다. 면담 자리에는 박 전 차관과 친분이 두터운 이동주 제이엔테크 회장도 동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정 전 회장이 경쟁자였던 윤석만 포스코 사장을 물리치고 회장으로 선임된 이후 제이엔테크도 사업을 따내며 급속 성장을 이뤘다.

대선 개입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2014년 9월11일 서울중앙지법 1심 선고가 끝난 후 법원을 나서던 중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시사저널 포토
지난 정권에서 국정원장이나 포스코 회장을 선임한 과정이나, 이후 국정원·포스코 내부에서 있었던 일들을 따라가보면 어떻게 정권 실세들이 권력을 사유화했는지 적나라한 실상을 엿볼 수 있다. 정치권의 입김에 놀아난 국정원과 포스코가 치러야 하는 대가는 컸다. 국정원은 국가안보를 위해 음지에서 일해야 하는 것이 본연의 임무임에도, 정치 개입으로 인해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초일류 기업으로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포스코는 7조원이나 쌓아놓았던 유동성이 불과 몇 년 만에 사라져 위기를 겪고 있다. 국정원의 활동이 수사 대상이 되지는 않겠지만, 검찰이 과연 성역 없는 수사를 통해 포스코를 쥐고 흔든 실체를 파악할 수 있을지 국민의 눈과 귀가 검찰 수사에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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