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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한국의 가벌] #20. 신격호와 동생 9명 재벌가와 문어발 혼맥

현대·한진·동부·태평양·태광 등…현해탄 너머까지 뻗쳐

소종섭│편집위원 ㅣ 승인 2015.03.26(Thu) 16: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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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잠실에 짓고 있는 123층 초고층 빌딩은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강한 의지가 투영된 프로젝트다. 브랜드를 강화해 장기적인 위상을 확보함으로써 승부를 걸겠다는 전략이다. 이 건물이 완공되면 서울의 랜드마크가 되면서 롯데그룹의 브랜드 가치는 크게 상승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금 롯데그룹은 내부적으로도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일본롯데’를 책임지며 그룹 후계자로 유력시됐던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모든 직책에서 물러났다. 대신 ‘한국롯데’를 책임졌던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그룹 후계자로 급부상한 흐름이다. 여느 때처럼 신격호는 말이 없지만 안팎에서 일고 있는 이런 변화는 롯데그룹이 창사 이래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상징한다.

신격호는 1922년 경남 울산군 삼남면(지금은 삼동면) 둔기리(일명 둔터) 문수산 아래에서 태어났다. 영산 신씨 문중 10남매(5남 5녀) 중 맏아들이다. 어린 시절 집에서는 그를 ‘호야’라고 불렀다. 4년제 삼동보통학교를 마친 그는 왕복 30리가 넘는 언양의 6년제 언양공립학교로 편입해 먼 길을 통학했다. 어린 그를 눈여겨본 사람은 ‘명동댁’ 큰아버지 신진걸이었다. 알아주는 곧은 선비였던 신진걸은 중농 이상의 부유한 선비였다. 그는 ‘둔기의숙’이라는 야학을 세웠으며, ‘근농조합’이라는 금융기관도 만들었다. 신진걸은 면 의원이었던 동생 신진수(신격호의 부친)에게 “쟤(신격호)는 농사보다 공부를 시켜라”라고 말하곤 했다. 신격호는 1941년 세상을 향한 도전에 나섰다. 사촌형이 마련해준, 당시 면서기의 두 달 치 봉급인 83엔을 손에 쥐고 집을 나온 것이다. 그는 고향 문수산을 넘어 일본 후지 산을 향해 갔다. 그의 나이 19세 때였다.

   
2014년 9월2일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 신영자 롯데장학복지재단 이사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앞줄 맨 왼쪽부터) 등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롯데센터 하노이’ 그랜드 오픈 행사에서 테이프커팅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신격호는 “하도 가난해 일본에 가서 공부해 성공하겠다고 생각했다. 반대하실 것 같아 아버지께는 말씀드리지 않고 어머니에게만 조용히 말씀드렸다”고 밝힌 적이 있다. 신격호의 어머니 김순필 여사는 큰아들이 일본으로 간 뒤  아들의 앞날을 기원하며 문수사(당시는 문수암)를 찾아 불공을 드리곤 했다. 이를 기억한 신격호는 훗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문수사에 크게 시주를 했다.

   
일본에서 60대 고물상 주인 만나 인생 전환 

관부연락선을 타고 일본으로 간 신격호는 시모노세키 항에서 일본 형사에게 불려갔다. 소지품과 가방을 수색한 형사는 신격호가 혹시 공산당에 가입하려고 온 것이 아닌가 추궁했다. 매를 맞으며 2시간여 동안 혹독한 조사를 받고서야 풀려났다. 그가 지금껏 일본으로 귀화하지 않은 데는 이런 악연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닥치는 대로 우유·신문 배달, 공장 청소 등을 하며 일본에 적응한 신격호는 징병을 피하기 위해 와세다 고등공업학교(지금의 와세다 대학 이학부) 야간부 화학과에 입학했다. 전쟁 중이었지만 이공계 학생들에 대해서는 징집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교를 졸업한 신격호는 26세에 ‘히카리 특수화학연구소’를 설립했다.

기자 또는 작가의 꿈을 키웠던 신격호의 운명을 바꾼 것은 한 고물상 주인이었다. 어느 날 평소 그를 눈여겨봤던 고물상 주인이 찾아왔다. 하나미쓰라는 60대 남자였다. 그는 아르바이트생으로 잠시 인연을 맺었던 신격호를 신뢰했다. “군수용 커팅오일(기계를 갈고 자르는 선반용 기름)이 품귀 상태다. 자네가 공장을 차려 제조해보겠다면 5만~6만 엔 정도 출자할 용의가 있다. 수요처는 내가 주선해주겠다. 어떤가? 해볼 텐가?”

신격호는 흥분했다. 당시 일류 회사에 다니는 회사원의 월급은 80엔 정도였다. 큰돈을 빌려주고 수요처까지 알선해주겠다는데 마다할 사람이 있겠는가. 신격호는 도쿄 오오모리 지구에 공장 건물을 얻었다. 하지만 행운의 여신은 쉽게 오지 않았다. 공장을 가동하기도 전에 미군기의 폭격을 받아 공장이 불에 탄 것이다. 그러나 신격호는 좌절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중앙선 주변의 하치오지 지구에 건물을 빌려 다시 커팅오일 제조에 들어갔다. 하치오지에 공장을 차리기 직전 그는 가출 후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문안 편지를 보냈다. 공장 가동 직후 보낸, 근황을 알리는 두 번째 편지에서 신격호는 두고 온 어린 딸 영자가 눈물겹도록 보고 싶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그의 공장은 또다시 B-29의 폭격을 받아 건물·기계·원료가 모두 불에 탔다. 하나미쓰는 “이것도 운명이다. 너도 살길을 찾아라. 나는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짓고 살겠다”고 신격호를 위로했다. 하지만 신격호의 머릿속에는 어떻게든 돈을 벌어 은혜를 갚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신격호는 도쿄의 스기나미구 ‘오기구보’에 있는 군수공장 기숙사 자리에 다시 사업장을 차렸다. 공장 입구 기둥에다 직접 붓글씨로 쓴 ‘히카리 특수화학연구소’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1946년 5월이었다. 이번에는 커팅오일뿐 아니라 비누, 화장품도 만들었다. 물자가 부족한 시대여서 화장품은 그야말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돈을 걷기 위해 하루 200군데 상점을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녀야 했을 정도였다. 신격호는 공장을 가동한 지 1년 반 만에 하나미쓰에게 빌린 6만 엔을 모두 갚았다. 신격호는 “화장품 사업을 벌여 1년 반 만에 빚 6만 엔을 모두 갚고 하나미쓰 선생께 집을 한 채 사드렸다. 당시에는 어떻게든 돈을 빨리 벌어 그 어른에게 보답하겠다는 마음뿐이었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1947년 신격호는 자신의 근황을 알리는 편지와 어른 손바닥만 한 금덩이 2개를 고향에 계신 아버지에게 보냈다. 마침 일본에 들렀던 독립운동가 정한경 박사가 금덩이 전달책 역할을 했다.

   
롯데그룹 신격호 총괄회장(가운데)이 2011년 5월1일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 고향 마을잔치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친구가 건넨 미군 껌, 롯데 탄생 계기

과거에 ‘롯데’ 하면 떠오르는 것은 ‘껌’이었다. 신격호가 껌 사업에 나선 것도 우연한 계기에서였다. 어느 날 친구 한 명이 신격호의 공장에 놀러왔다. 그는 영어 문자가 쓰인 추잉껌을 꺼내며 말했다.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것인데 씹어봐.” 신격호는 추잉껌의 원료인 남미산 천연수지가 소량이지만 이미 일본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완벽주의자인 신격호는 품질의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약제사 한 명을 고용했다. 이렇게 해서 당시 일본에서 제일 품질이 좋은 껌이 ‘히카리 특수화학연구소’에서 생산됐다. 소문이 퍼지자 사람들이 줄을 섰다. 신격호와 약제사, 그리고 종업원 5~6명에 불과했던 공장은 밀려드는 주문 수요를 맞출 수 없었다. 오늘날 롯데그룹의 모체가 바로 이 연구소다. 신격호는 괴테가 지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속 여주인공 샤로테의 이름을 따서 회사 이름을 ‘LOTTE’라고 정했다.

신격호는 세 번 결혼했다. 세 부인과의 사이에 2남 2녀를 뒀다. 1940년 고향 처녀인 노순화와 혼인해 장녀 신영자 롯데장학복지재단 이사장을 낳았다. 하지만 신영자가 태어나기도 전에 신격호는 일본으로 갔다. 노순화는 1951년 29세에 세상을 떴다. 신영자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지도 못한 채 유년 시절을 보내야 했다. 신격호는 시게미쓰 다케오(重光武雄)라는 일본 이름을 갖고 있다. 그는 일본에서 두 번째 부인 시게미쓰 하쓰코(重光初子)를 만나 동주·동빈 두 아들을 뒀다. 하쓰코의 외삼촌은 1930년대 주중 일본 대사를 지낸 시게미쓰 마모루(重光葵)다. 1932년 윤봉길 의사의 중국 상하이 훙커우 공원 의거 당시 중상을 입었던 인물로 1945년 미군 전함 미주리 호에서 거행된 항복문서 조인식에 일왕 히로히토와 함께 참석하기도 했다. 신격호는 이후 미스롯데 출신의 영화배우 서미경과 만나 막내딸 신유미 호텔롯데 고문을 얻었다.

장녀 신영자는 1967년 장오식 전 선학알미늄 회장과 결혼해 1남 3녀를 뒀지만 이혼했다. 신영자는 삼동초등학교 5학년 때 부산으로 이사해 중·고등학교는 부산에서 다녔고, 이화여대를 졸업했다. 복지기금 570억원으로 ‘롯데삼동복지재단’을 울산에 만들어 이사장으로 있다. 신영자의 장녀는 장혜선이다. 개인 사업을 하며 혼자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버드 대학 심리학과를 졸업한 둘째 딸 장선윤은 블리스 대표다. 그녀는 롯데쇼핑 이사 시절 롯데백화점의 대표 명품관인 애비뉴엘 개점을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롯데백화점에서만 12개의 매장을 내며 사업을 확장했다. 재벌 빵집 논란에 휩싸여 매각한 ‘포숑’도 장선윤이 추진했던 사업이다. 장선윤은 2007년 10월 양성욱 브이앤에스 대표와 몰디브에서 재혼했다. 양성욱은 양해엽 전 재불 한국문화원장의 셋째 아들이다. 장남인 장재영은 유니엘을 운영하고 있는데 7년째 매출이 없는데도 해마다 수십억 원을 배당받고 있다는 기사가 보도되기도 했다.

동생들과 재산·상표 소송 등 갈등 빚기도

신격호의 장남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은 재미교포 사업가인 조덕만의 차녀 조은주와 결혼해 슬하에 아들 한 명을 두고 있다. 남덕우 전 경제부총리가 주례를 섰다. 일본 아오야마 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한 신동주는 미쓰비시상사에서 10년간 샐러리맨으로 일하다 1987년 한국롯데에 입사한 후 일본으로 건너갔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부인은 일본인이다. 일본 최대 건설사 중 하나인 다이세이(大成)건설의 오고 요시마사(大鄕淡河) 부회장의 차녀 오고 마나미(大鄕眞奈美)와 결혼했다. 오고 마나미는 일본 귀족학교 ‘가쿠슈인(學習院)’을 졸업했고, 일본 황실의 며느리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전 일본 총리 후쿠다 다케오가 중매를 섰고 나카소네 전 총리가 결혼식에서 축사를 했다. 오고 마나미는 일본에 거주하며 대외적으로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1955년 도쿄에서 태어나 20대 초반까지 일본에서 생활한 신동빈은 컬럼비아 대학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노무라증권에서 7년 동안 일한 경험이 있다.

신격호의 바로 아래 동생인 신철호는 부인 송수영과의 사이에 2남 6녀를 뒀다. 이 가운데 첫째, 셋째, 넷째 사위가 모두 변호사다. 장남인 신동림의 부인은 정승원 수원지방법원 부장판사다. 신격호의 셋째 남동생 신선호 일본 산사스식품 회장의 장녀 신유나의 남편은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이다. 넷째 여동생인 신정숙은 최현열 전 NK그룹 회장과 결혼해 1남 2녀를 뒀는데, 장녀 최은영(남편 고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은 한진가로 시집갔다. 차녀 최은정은 정몽익 KCC 사장과 결혼했다.

넷째 남동생인 신준호 푸르밀 회장은 신격호와 롯데제과 양평동 부지 소유권을 놓고 법정 소송을 벌이면서 사이가 벌어졌다. 신준호는 한순용 전 롯데칠성 감사의 딸인 한일랑과 결혼해 2남 1녀를 뒀다. 차남 신동환이 최병석 전 대선주조 회장의 딸인 최윤숙과 혼인했다. 신준호는 부산의 향토 기업인 대선주조를 600억원에 인수해 4년 만에 3600억원을 받고 팔아 ‘먹튀’ 논란을 빚기도 했다. 딸 신경아는 2010년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과 결혼했다. 신격호의 막내 여동생은 동화면세점을 운영하는 신정희다. 신격호와 나이 차가 24살이나 난다. 신격호는 신정희의 남편 김기병 롯데관광개발 회장에게 소송을 내 ‘롯데’라는 브랜드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등 갈등을 빚기도 했다. 신정희·김기병 부부는 두 아들을 뒀다.

장남 신격호가 일본에 건너간 후, 몸이 약했던 차남 신철호를 대신해 실질적으로 가장 역할을 했던 3남 신춘호는 동향 출신의 김낙양과 결혼해 3남 2녀를 낳았다. 라면 사업을 하는 농심그룹을 창업하는 과정에서 신격호와 의견 차이를 보인 끝에 스스로 농심그룹을 일궜다. 신춘호의 장녀 신현주는 농심그룹 광고기획사인 농심기획 부사장으로 있는데, 고 박남규 전 조양상선 회장의 4남 박재준과 결혼했다. 장남 신동원 농심 대표이사는 민철호 전 동양창업투자 사장의 딸 민선영과 결혼했고, 일동레이크 골프장을 운영하는 3남 신동익 메가마트 부회장은 노홍희 전 신명전기 사장의 딸인 노재경과 살고 있다. 차남 신동윤은 고 김진만 전 국회부의장의 딸이자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의 동생인 김희선과 결혼했다. 막내딸 신윤경의 남편은 서성환 태평양그룹 회장의 아들인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대표이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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