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의 요리는 ‘일’이 아닌 ‘놀이’
  • 정덕현│대중문화평론가 ()
  • 승인 2015.03.31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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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쿡방’ 전성시대, 요리하고 싶은 욕구 자극…큰 꿈보다 작은 행복 추구 세태

이른바 쿡방(cooking 방송) 전성시대다. tvN <삼시세끼> ‘어촌편’은 이 쿡방을 통해 케이블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최고 시청률이 13%를 넘어섰다. 이는 금요일 동시간대 지상파 시청률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JTBC <냉장고를 부탁해>는 훈남 셰프들을 대거 등장시켜 게스트 출연진의 냉장고 속 재료를 이용한 요리 대결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여기 출연한 최현석 셰프나 샘킴은 이미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SBS <식사하셨어요>나 KBS <한국인의 밥상> 같은 프로그램 역시 형식은 약간 달라도 그 안에 쿡방의 요소가 들어가 있다. 특히 <식사하셨어요>에 출연하는 임지호 요리연구가는 자연에서 나는 식재료를 즉석에서 활용해 요리를 만드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남자가 하는 소꿉놀이’로 재미 배가

물론 요리 프로그램은 오래전부터 방송 포맷의 단골이었다. 하지만 최근 불고 있는 쿡방 트렌드는 기존 요리 프로그램들과는 결이 다르다. 기존 요리 프로그램들이 전문가가 나와 요리의 정석과 비법, 레시피 등을 알려주는 정보 제공 프로그램에 가깝다면, 쿡방은 ‘놀이적인 성격’이 더 강하다. <삼시세끼> ‘어촌편’에 출연해 무려 80여 가지의 요리를 해낸 차승원을 떠올려보라. 그는 만재도 인근 섬에서 채취한 홍합으로 홍합짬뽕을 만들었고, 바다에서 잡은 우럭으로 우럭탕수를 조리했으며, 아궁이를 개조해 빵과 피자를 구워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요리사가 아니다. 요리 잘하는 배우일 뿐이다. 또 이 프로그램이 그의 요리 레시피를 하나하나 자세히 시연해가며 정보를 알려준 것도 아니다. 차승원은 한마디로 요리를 즐긴 것뿐이다. 그의 요리는 그래서 설렁설렁 대충 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그건 그만한 내공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tvN ⓒ tvN
이런 사정은 <냉장고를 부탁해>에서도 마찬가지다. 여기에는 일류 셰프들이 출연하지만 그들의 요리를 놀이로 만드는 장치가 등장한다. 그것은 시간 제한을 두는 것과 무엇이 들어 있을지 알 수 없는 게스트의 냉장고 속 재료들을 즉석에서 보고 요리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놀이적인 성격은 쿡방이 과거의 요리 프로그램과 달리 열광적인 반응을 얻는 가장 큰 이유가 된다. 한때 유행처럼 불었던 ‘먹방(먹는 방송)’이 음식을 먹는 욕구를 자극했다면, 쿡방은 마치 놀이를 하듯 요리를 만들고 싶은 욕구를 자극한다. 그러니 요리가 너무 어렵거나 정석대로 나오게 되면 일반 시청자들이 접근하기가 어려워진다. 예컨대 괜찮은 쿡방은 보고 나면 왠지 나도 저런 요리 하나쯤은 만들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흥미로운 건 이 쿡방 전성시대를 이끌고 있는 이들이 대부분 남자라는 점이다. 물론 유명한 요리사들이 대부분 남성이라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 앞치마 두른 남자들이 이끄는 쿡방 전성시대에는 다른 문화적 요인들이 들어 있다. 일단 앞에서도 얘기한 대로 여성들보다는 남성들의 요리가 왠지 따라 하기 쉽게 보인다는 점이다. <삼시세끼> ‘정선편’에 나왔던 이서진은 요리에는 영 재주가 없는 사람이고 또 하고 싶은 욕구도 그리 없는 사람이다. 그러니 무작정 하루에 세 끼를 차려 먹으라는 나영석 PD의 요구에 투덜대며 억지로 이런저런 요리를 해본다. 잘 모르기 때문에 때로는 얻어걸린 요리가 의외로 맛있을 때 나오는 리액션은 더 리얼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대충대충 만들어내는 음식은 그래서 요리라기보다는 놀이처럼 보인다. 남자들이 하는 소꿉놀이. 요리놀이는 이서진 같은 차도남(‘차가운 도시 남자’라는 뜻의 신조어)도 할 수 있으니 일반 대중 누구도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재미도 있고 때로는 힐링 받는 느낌까지 주니 욕구는 더더욱 커진다. 예능이 가진 웃음과 재미를 추구하는 성격을 생각해보면 여자보다는 확실히 남자들이 더 흥미로움을 줄 수밖에 없다.

JTBC ⓒ JTBC
이 시대 남성들, 거대한 야망보다 작은 행복 추구

앞치마 두른 남자들이 쿡방에서 요리를 하는 데는 이것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그것은 요리가 지금껏 여자들이 해야 하는 ‘일’처럼 여겨져왔다는 점이다. 물론 사회가 바뀌면서 이런 고정관념은 조금씩 깨지고 있지만 깊이 뿌리박힌 그 문화적 정서가 순식간에 바뀔 수는 없다. 따라서 요리는 여전히 여자들에게는 일로서 다가온다. 하지만 남자들은 상황이 다르다. 가끔 한 번씩 해주는 남자들의 요리는 일보다는 놀이적 성격이 강하다. 매번 끼니 때마다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고 가끔 하고 싶을 때 하는 것이니 놀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망쳐도 그만’이라는 남자들의 요리는 즐거운 놀이가 된다. 하지만 이것이 여성 시청자들의 눈에는 달리 보일 수밖에 없다. 여성들에게는 남성이 요리를 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힐링 요소’가 되기도 한다. 늘 주방에서 손에 물기 마를 날 없이 살림을 하는 여성들은 그 고단한 노동에도 불구하고 남성들에게 “도대체 집구석에서 뭐 하느냐”는 핀잔이나 듣기 일쑤다. 그러니 요리의 ‘요’자도 모르고, 살림의 ‘살’자도 모르는 남자들이 주어진 재료로 말도 안 되는 요리를 하는 모습을 보면 은근한 쾌감이 느껴지지 않겠는가. 한 끼를 준비하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남자들의 모습을 보며 여성들은 ‘그래 한번 해봐라’ 하는 마음이었을 게다. <삼시세끼>를 보면 늘 나오는 이야기가 아침 먹고 나니 점심때가 되어 있고, 점심 먹고 돌아서니 또 어느새 저녁때가 되어 있더라는 것이다. 그만큼 끼니 준비하는 것 하나만으로도 하루 일과가 꽉 차는 것이 살림이라는 것을 이들 쿡방이 남자들의 진땀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남자들의 쿡방 전성시대에는 이른바 ‘셀프 힐링’적인 요소도 들어가 있다. 지금의 서민들에게 ‘야망’이나 거대한 ‘꿈’에 대한 욕망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 꿈꾼다고 해서 이뤄질 수 있는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야망의 시대를 이끌었던 남자들도 이제는 거대한 꿈을 꾸기보다는 작은 행복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하나의 소꿉놀이처럼 요리는 남자들에게도 스스로 작은 위안을 줄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준다. 물론 앞치마 두른 남자들이 자연스러워지는 건 바람직한 일이다. 과거의 성 역할 구분은 현대인의 삶에서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자들의 쿡방 전성시대 이면에서 어딘지 ‘쓸쓸함’이 감지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현실에 치일 대로 치이고 꿈이 좌절된 그들이 요리를 통해 작은 위안을 얻는 모습이 늘 즐거울 수만은 없는 일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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