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관예우의 몸통은 대법관 출신이다”
  • 조해수 기자·정리 김지영 기자(女)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5.04.09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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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옥 후보자에게 개업 금지 서약서 요구한 하창우 대한변협 회장

“법조 개혁은 시대적 사명이다.” 지난 2월 말 제48대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으로 취임한 하창우 변호사(사법연수원 15기)의 행보는 파격 그 자체다. 하창우 회장은 법조 개혁의 필수 조건인 ‘전관예우’를 근절하기 위해 차한성 전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신고서를 반려했다. 변협이 대법관 출신 변호사의 개업신고서를 반려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에게는 대법관 퇴임 후 개업을 금지하는 서약서에 서명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 서약서는 하 회장이 직접 만든 것이다. 법원·변협과 함께 법조 3륜의 한 축인 검찰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검사평가제’를 시행할 예정이다. 지난 2008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시절 하 회장이 처음으로 도입한 ‘법관평가제’의 검찰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취임 후 이슈를 몰고 다니는 하창우 회장을 두고 ‘정계 진출을 위한 사전 포석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도 나온다. 4월2일 대한변협 회장 집무실에서 만난 하 회장은 “회장 임기가 2년밖에 되지 않는다. 초반부터 밀어붙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며 “‘여의도’는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해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 시사저널 이종현
차한성 전 대법관의 개업신고서를 반려한 것을 두고, 법조계 일각에서는 법적 근거가 미약하다는 지적이 있다.

어떤 사람이 그러더라. “변호사단체의 수장이 돼가지고 법에 없는 것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법률가가 법을 모르겠나. 법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법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일도 있다. 법으로 전관예우를 막고자 하면 어떤 법이 있어도 요리조리 피해간다. 변호사법 31조에 전관예우를 막는 조항이 있지만 유명무실하다. 전관예우는 사실상 전관 ‘비리’다. 이로 인한 국민들의 피해가 너무 심각하다. 이런 상황에서 ‘법’ ‘법’ 하다가는 결국 전관예우를 막을 수 없다. 이때는 새로운 전통을 세워야 한다. 전관예우의 맥을 끊는 하나의 획기적인 선을 긋고자 했다. 앞으로는 대법관 출신들이 변호사 개업을 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대법원 쪽에서) ‘내 임기가 언제 끝나는가’ 이러고 있다는데, 설령 내 임기가 끝나더라도 한 번 그어진 선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에게 개업 금지 서약서를 요구하기도 했다.

차 전 대법관 개업신고서를 반려한 것은 전관예우의 ‘출구’를 막고자 한 것이었다면,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의 서약서는 ‘입구’를 막기 위한 것이다. 인사청문회에 앞서 서약서를 국회에 보내드렸다. 청문회 때 (서약서가) 나올지 안 나올지 초미의 관심사다. 나올 것이라고 본다. 우리나라처럼 최고 법관을 지낸 분이 변호사를 해서 돈을 버는 사례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일본에서는 전관예우라는 용어 자체가 없다. 우리나라 대법관들도 퇴임 후에는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모습을 보여야만 한다. 

대법관 출신 외의 전관예우는 어떻게 할 것인가.

전관예우가 가장 심한 곳, 그 몸통은 대법관 출신이다. (대법관과) 같은 지위에 있는 헌법재판소 재판관이라든가, 검찰총장, 법무부장관 등이 대법관 출신 변호사처럼 전관예우를 그렇게 심하게 받는지는 현재로서는 모르겠다. 아직까지 (이들에 대한) 뚜렷한 방침은 없다. 그러나 대법관 출신처럼 심한 비리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 확인된다면 변호사 개업을 제한할 것이다. 전관예우라는 것은 사실 ‘도장 값’이다. 사건 내용도 모르면서 도장(이름) 빌려주고 돈을 챙기는 것이다. 이런 형태로 돈을 버는 건 용납할 수 없다.

검사평가제에 대해 기대와 함께 우려도 나온다.

법관평가제 할 때도 법원의 반발이 엄청났다. 7년이 지난 지금 전국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법관 평가 결과를 법원 인사에 반영할 수 있다는 법원조직법 개정안까지 나왔다. 법관 평가보다 검사 평가가 훨씬 더 중요하다. 법관 평가는 원고와 피고라는 이해관계자가 소송할 때 판사가 중간에서 공정하게 판단했느냐의 문제지만, (검사 평가는) 조사를 받는 피의자가 헌법에 보장된 ‘인권’을 제대로 보장 받았느냐의 문제다. 결국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피의자와 변호인의 접견권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데 검찰은 사무규칙으로 접견권을 제한하고 있다. 시급히 시정돼야 할 문제다.

사법고시의 존치를 주장하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존치가 아니라 ‘병행’이다. 사시를 로스쿨과 같이 가게 하겠다는 것이다. 독일에서도 로스쿨을 도입한 후 사시를 무려 13년간 병행시켰다. 결국 독일은 로스쿨을 폐지하고 사시를 다시 선택했다. 우리 역시 우리 실정에 어느 제도가 맞는지 적어도 10년 이상 병행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변호사 수를 조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가지 지표만 보면 알 수 있다. 일본 인구는 우리나라의 2.5배, 국민총생산은 4배다. 그런데 지난해 일본은 1810명이 (사시에) 합격했고, 우리는 2500명이 나왔다. 우리가 일본보다 700명이나 많이 뽑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건 과잉 상태다. 적정 숫자를 유지해야 한다. 일본이 1810명이니까 우리는 1000명 정도가 적당하다.

앞으로 대한변협이 추가적으로 보일 행보에 대해 벌써부터 관심이 많다.

지금 변협 집행부가 풀가동되고 있다. 변협의 전 임원이 개혁과제를 하나씩 맡고 있다. 곧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것이다. 검사 평가제는 곧 시행될 것이다. 반면 변호사 배출 수 제한, 사법시험 병행 등 입법이 필요한 부분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헌법에 명시돼 있듯,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국민이 주권자다. 지금은 법원과 검찰이 국민 위에 군림하고 있는 구조다. 이 구조가 50년 이상 지속됐다. 누군가는 이 틀을 깨고 국민을 위해 기득권을 내려놓아야만 한다. 사법 개혁은 법원이 해야 하고, 검찰 개혁은 검찰이 해야 하지만 스스로 하긴 힘들다. 그래서 변협이 해야 한다. 변협이 견제를 통해 이것을 만들어야 한다. 국민에게 권리를 되돌려주는 것, 이 일에 대한변협이 앞장서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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