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146억 신종균, 그도 한땐 ‘미생’이었다
  • 김병용│파이낸셜뉴스 기자 ()
  • 승인 2015.04.09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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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유의 뚝심과 디테일 경영으로 위기 딛고 샐러리맨 신화

삼성전자 휴대전화 사업을 총괄하는 신종균 IM(IT·모바일)부문 사장은 요즘 시쳇말로 가장 ‘핫’한 최고경영자(CEO)로 꼽히는 인물이다. 이른바 ‘월급쟁이’임에도 세계 5위 자동차기업의 오너인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을 제치고 ‘연봉 킹’에 올랐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지난 3월31일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2014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신 사장은 지난해 급여 17억2800만원, 상여금 37억3200만원, 특별상여 91억1300만원 등 총 145억7200만원을 회사로부터 지급받아 CEO 연봉 순위 1위를 차지했다. ‘샐러리맨 신화’를 새로 쓰고 있는 신 사장은 지난해 스마트폰 사업부문 부진으로 경질설이 공공연하게 나돌 정도로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올해 갤럭시S6와 갤럭시S6엣지가 대박 조짐을 보이면서 글로벌 정보통신(IT)업계에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인하공전 다니다 광운대 편입한 엔지니어

‘갤럭시 신화’의 주인공으로 불리는 신 사장이지만, 시작은 더없이 초라했다. 신 사장의 젊은 시절은 지난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TV 드라마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와 너무 닮았다. 스펙에서부터 그렇다. 삼성에는 유학파나 유명 MBA(경영전문대학원) 출신 CEO들이 넘쳐난다. 신 사장은 인하공전을 다니다가 광운대 전자공학과에 편입한 엔지니어 출신이다. 첫 직장도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이었다. 신 사장은 1981년 에코전자에 입사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맥슨전자로 잠시 자리를 옮겼다. 삼성전자에는 1984년 경력사원으로 합류했다. 이른바 학벌이나 인맥은 내세울 것이 없었고 오로지 자신의 실력으로 삼성 특유의 치열한 내부 경쟁을 이겨냈다.

3월1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삼성 갤럭시 언팩 2015’에서 신종균 삼성전자 사장이 ‘갤럭시S6’와 ‘갤럭시S6엣지’를 소개하고 있다. ⓒ 뉴시스
신 사장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스마트사업본부의 전신 격인 무선전송그룹을 맡으면서부터다. 이때가 1994년이다. 이후 2000년 무선사업부 개발팀 연구위원이 되며 이사보로 임원 대열에 합류했고, 2004년 개발팀장 전무, 2006년 개발실장 부사장에 오르며 6년 만에 부사장 자리까지 오르는 고속 승진을 이어갔다.

그가 갤럭시S를 개발할 당시 성탄절부터 신정까지 회사에서 먹고 자며 개발에 몰두한 일화는 지금도 삼성전자 내부에서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다. 2010년 갤럭시S를 발표할 때 ‘삼성엔 영어 잘하는 사람이 없느냐’는 외신 기자들의 비아냥거림에 모든 영어 발표 자료를 외워버린 얘기도 신 사장의 강한 승부근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지독한 ‘일벌레’ 소리를 들으며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던 신 사장은 2012년 삼성전자 정보기술 모바일부문장, 사장을 거쳐 2013년 삼성전자 대표이사 반열에 오른다. 그해 삼성전자 스마트폰은 미국 애플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스마트폰이라는 영예를 안았다.

신 사장은 요즘도 사석에서 SGH-600을 개발할 당시 악전고투했던 얘기를 임직원들에게 들려주곤 한다. 무수한 제품을 히트시킨 그이지만 SGH-600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1990년대 중반만 해도 국내 업체들의 휴대전화 단말기 제조 실력은 형편없었다. 삼성전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내수 시장에서도 모토로라 등 외산 휴대전화에 밀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1994년 무선전송그룹의 수장이었던 신 사장이 꺼내든 무기는 유럽 표준 GSM 방식 휴대전화다. 유럽 시장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신 사장의 계산이 깔린 전략이었다.

처음에는 강력한 내부 반대에 부닥쳤다. GSM 방식은 한국에서 사용조차 하지 않는 데다 유럽에는 노키아·모토로라 등 당시 세계 휴대전화산업을 선도하는 기업들이 버티고 있어서다. 그럼에도 신 사장은 유럽폰 개발팀을 직접 진두지휘하며 관련 프로젝트를 밀어붙였다. 이때 터진 것이 1998년 신 사장이 주도적으로 개발한 SGH-600이었다. SGH-600은 유럽 시장에서만 960만대가 팔렸다. 이 제품은 유럽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안착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줬을 뿐만 아니라, 우리도 ‘텐 밀리언 셀러 폰(1000만대 이상 팔린 대박 폰)’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계기가 됐다.

SGH-600이 신 사장의 성공 시대를 열어준 제품이라면 그가 지닌 꼼꼼함은 삼성의 제품 경쟁력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신 사장이 ‘디테일의 신’으로 불리는 이유다. 그가 지닌 디테일의 힘이란 제품을 꿰뚫어보는 수준의 엔지니어 감각이다. 일례로 신 사장은 액정표시장치(LCD) 화질을 정량적으로 수차례나 분석한 후에도 대규모 소비자 테스트를 벌인다. 스마트폰 출시를 앞두고 1만건 넘는 소비자 반응과 행태를 분석했다. 출시일이 코앞에 다가온 제품도 원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하면 원점으로 돌아간다.

신종균,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다

신 사장은 부하 직원들에게도 구체적인 지침을 내려준다. 가령 “반드시 유기발광다이오드(AMOLED)를 써야지요” “GPS 성능은 높이고 메모리 입출력은 개선하면 좋겠어요”, 이런 식이다. 그에게 지시를 받은 부하 직원이 무슨 말인지 몰라 혼선을 빚는 경우는 거의 없다. 최지성 삼성미래전략실장(부회장)도 신 사장의 내공을 높이 샀다. 최 부회장은 2009년 자신의 뒤를 이어 삼성전자 무선사업부를 총괄할 적임자로 그를 낙점했다. 최 부회장이 공식 석상에서 신 사장을 ‘모바일의 신’이라고 치켜세운 적도 있다.

승승장구하던 신 사장도 지난해 큰 위기를 겪었다. 애플과 샤오미로 대표되는 중국 업체들의 공세에 밀려 삼성전자는 세계 1위 스마트폰 제조사라는 명예를 내려놓았다. 모든 비난의 화살은 신 사장에게 날아들었다. 그룹 안팎에서 신 사장 흔들기가 시작되면서 급기야 지난해 말에는 경질설까지 나돌았다. 언론들도 신 사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것이라는 관측을 쏟아냈다. 근거는 충분했다. 신 사장과 함께 갤럭시 신화를 일구었던 이돈주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전략마케팅실장이 지난해 12월 물러났다. 무선사업부 역시 칼바람을 피하지 못했다.

그러나 신 사장은 또 한 번 그룹 수뇌부의 신임을 받았다. 당시 이준 삼성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장은 “신 사장은 삼성전자가 글로벌 모바일 1위 회사로 올라서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며 “앞으로 변화된 환경에서 새로운 도약을 시도할 기회를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절치부심하던 신 사장은 갤럭시S6와 갤럭시S6엣지를 내놓았다. 아직 예단하기 힘들지만 제품의 초반 반응이 예사롭지 않다. 출시 첫날인 4월1일 예약 판매 집계가 지금까지 출시됐던 역대 삼성전자 갤럭시 스마트폰 시리즈 가운데 최고 수준으로 나타났다. 그렇다고 삼성 휴대전화 사업에 켜진 비상등이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애플은 여전히 건재하고 중국은 추격 속도를 늦추지 않고 있다. 신 사장은 임직원에게 “휴대전화는 졸면 죽는다”는 말을 자주 한다. 제품 트렌드가 워낙 빨리 변하는 만큼 긴장감을 늦추지 말라는 얘기다. 신 사장은 늘 그렇듯 오늘도 스스로 고삐를 당기며 또 다른 신화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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