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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 삶이란 게 다 그런 거지

임권택의 <화장>, 강제규의 <장수상회>

허남웅│영화평론가 ㅣ 승인 2015.04.09(Thu) 17:2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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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10여 편씩 새로운 영화가 쏟아져 나오지만, 20~30대의 젊은 층을 겨냥한 장르와 이야기가 태반이다. 이채롭게도 각각 중년의 삶과 죽음, 그리고 노년의 사랑을 다룬 두 편의 영화가 같은 날(4월9일) 개봉한다. 임권택 감독의 <화장>과 강제규 감독의 <장수상회>다.

<장수상회>, 꽃할배와 꽃누나가 만났을 때

<장수상회>에서는 감독의 이름이 먼저 눈길을 끈다. <쉬리>

(1999년), <태극기 휘날리며>(2004년), <마이웨이>(2011년) 등을 연출한 강제규 감독이다. 강제규 감독은 스케일이 큰 전쟁물을 통해 가족애·우정과 같이 점점 퇴색돼가는 가치를 옹호하며 많은 관객을 모아왔다. <장수상회>는 전작들보다 스케일은 작아졌지만, 강 감독의 특기인 인간적인 감정의 회복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 <장수상회>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성칠(박근형)은 융통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노신사다. 새로 이사 오는 사람을 향해 왜 트럭으로 길을 막느냐며 버럭 소리부터 지를 정도다. 앞집의 금님(윤여정)은 그런 성칠에게 먼저 다가가 저녁을 먹자고 제안한다. 외롭게 살아온 성칠은 금님의 호의가 반갑지만 겉으로는 까칠한 척, 속으로는 어떻게 하면 금님에게 잘 보일 수 있을까 노심초사한다. 장수마트의 오랜 직원인 성칠을 위해 사장 장수(조진웅)는 데이트를 위한 노하우를 전수한다.

장수 ‘마트’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되 제목은 ‘상회’로 표기한 이유는 이 영화의 지향점을 잘 나타낸다. 로맨스 영화로 분류되지만, 성칠과 금님이 나누는 사랑은 젊은 커플의 영화에 익숙한 관객에게는 어딘가 시대착오(?)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하지만 그런 콘셉트가 먹히는 게 요즘의 문화 트렌드다. <장수상회>의 노년 커플을 연기한 박근형과 윤여정은 각각 <꽃보다 할배>와 <꽃보다 누나>로 TV 예능 프로그램을 접수했던 인물들이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순수에 대한 대중의 욕망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와도 같다.

장수마트의 장수를 비롯해 온 동네 사람이 성칠의 데이트를 위해 발 벗고 나선 이유가 있다. 동네 재개발을 두고 성칠만 동의하지 않아서다. 금님이 혼자 사는 성칠과 맺어져 그를 설득하면 재개발 동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동네 주민의 열망이 반영된 행동이다. 재개발 추진을 위해 동네 주민 모두가 노년의 사랑을 응원한다? 현실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테다. 그래서 <장수상회>는 순수에 대한 판타지에 가깝다.

그것이 노년의 서투른 사랑법으로 웃음과 감동을 선택한 강제규 감독의 이유일 것이다. 강제규 감독은 보편적인 감정을 극대화하면서 전 연령대의 관객을 겨냥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편으로 할리우드 볼거리에 버금가는 기술력 도입으로 한국 영화의 수준을 한 단계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장수상회>에서는 화려한 볼거리 대신 노년의 사랑과 동네 사람들의 정(情) 같은 소소한 이야기에 집중하며 변화를 꾀한다. 장동건, 오다기리 조를 캐스팅하고도 흥행에는 별 재미를 못 봤던 <마이웨이>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강제규 감독에게 <장수상회>는 초심프로젝트다. 요즘 관객은 볼거리가 뛰어나도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가 없으면 좀체 반응하지 않는다. 마트의 기계적인 상품 진열처럼 전반부는 웃음, 후반부는 감동을 주는 도식적인 이야기 구성에도 피로감을 느끼는 터다. ‘상회’라는 이름이 주는 가치는 결국 순수의 회복이다. <장수상회>의 성패는 바로 여기에 있다. 마트용 한국 영화가 판을 치는 작금에 <장수상회>는 관객의 마음을 건드릴 수 있을까.

   
영화 <화장> ⓒ 리틀빅픽쳐스 제공
<화장>, 화장(火葬)과 화장(化粧) 사이

임권택 감독의 <화장>은 <장수상회>와 다르게 영화적 허구와 환상을 허용하지 않는다. 임권택 감독의 철학이 그렇다. 산다는 것은 고통이라는 것을 전제한 채 이를 견디고 결국 받아들이는 이야기로 100편 넘는 영화를 만들어왔다. <화장>은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영화이자 영화계의 어른이 문단의 중추인 김훈 작가의 동명 단편소설을 영화화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오상무(안성기)는 지금 막 아내(김호정)를 잃었다. 4년간의 투병 끝에 숨진 아내 옆에서 오상무는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다. 오랜 병간호에 지치기도 했거니와 그의 마음속에는 부하 여직원이 자리 잡고 있다. 병으로 생기를 잃은 아내와 다르게 추은주(김규리)는 오상무가 보기에 아름다움이 절정에 오른 상태다. 암에 걸려 죽은 아내라는 현실과 어쩔 수 없이 마음이 가는 추은주라는 욕망 사이에서 오상무는 갈등을 겪는다.

김훈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두고 “드러나는 것보다 드러나지 않는 게 더 많은 소설”이라고 자평했다. ‘화장’(火葬)이라는 제목부터가 그렇다. 장례의 의미도 있지만, 오상무가 화장품회사에 오랫동안 근무한 직원이라는 점, 얼굴을 꾸미는 ‘화장’(化粧)이라는 중의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소설에선 오상무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가운데 아내에 대해서는 신문 기사처럼 건조하게 묘사한다. 반면, 추은주에게는 시적인 고백 조로 ‘제가 당신의 이름으로 당신을 부를 때, 당신의 이름으로 불린 그 사람인지요’ 식의 문장을 이어가며 대비하는 화법을 구사한다. 

대비는 임권택 감독이 영화에서도 가져가는 연출법이다. 화법은 다르다. 소설과는 차이가 있다. 이것이 영화

<화장>의 특징이다. 병든 아내가 괄약근을 조절하지 못해 흘린 똥을 닦는 오상무의 적나라한 간병 과정과 병세에 대한 설명 등을 사실적으로 가져간다. 백미는 오상무의 시선에 비치는 추은주의 모습이다. 화장품회사 홍보팀의 간판답게 흐트러지지 않는 외모를 지니고 맡은 일을 척척 잘 해내는 슈퍼우먼에 가깝다. 화장과 화장 사이, 삶과 죽음 사이에 끼인 오상무의 내적 갈등은 지극히 현실적인 아내와 주관적인 시선에서 아름다운 피조물로 묘사되는 추은주의 모습으로 극대화된다.

두 개의 선택 사이에서 갈등하는 주인공의 테마는 그리 낯설지 않다. 보통의 상업영화라면 아름답고 예쁜 볼거리의 형태로 해피엔딩을 가져가겠지만, <화장>은 가벼운 영화가 아니다. 오상무는 아내의 장례식을 치르는 중에도 해결해야 할 회사 문제가 하나 있다. 곧 출시될 화장품의 홍보 문구를 고르는 일이다. ‘내면 여행’과 ‘가벼워지다’에서 오상무가 선택하는 건 후자다. 이건 아내와 추은주 사이에서 오상무가 장고 끝에 내리는 결론이기도 하다. 아내는 이미 재가 되었고 추은주 또한 중국으로 이직을 결심한 상태다. 오상무는 이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마음의 업보에서 벗어나기로 한다. 계절이 바뀌듯이 인간의 삶 또한 번뇌와 극복을 순환한다는 의미일 터다. 그것이 삶이다. <화장>에는 어른이 경험으로 깨달은 진짜 인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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