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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콘돔, 미성년자에겐 안 팔아요”

의사·성교육 전문가도 모르는 청소년 콘돔 구입 실태

노진섭 기자 ㅣ no@sisapress.com | 승인 2015.04.16(Thu) 16:3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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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돔을 미성년자가 살 수 있을까. 시사저널은 몇몇 청소년과 함께 편의점·할인점·슈퍼마켓·약국에서 콘돔을 사보기로 했다. 이 아무개양(18)은 4월8일 대기업이 운영하는 할인마트에서 콘돔을 집어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계산대 직원은 이양에게 신분증을 요구하면서 미성년자에게 콘돔을 팔 수 없다고 했다. 콘돔은 청소년도 구입할 수 있는 물품이라고 설명했지만 소용없었다. 편의점의 반응도 비슷했다. 편의점 직원은 “라이터와 콘돔은 신분증을 확인한 후 판다”며 콘돔을 팔지 않았다. 청소년도 콘돔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팔지 않는 매장도 있었다. 편의점 점주는 “콘돔을 미성년자에게 팔아도 되는 것은 알지만 부모 된 사람으로서 팔지 않겠다”고 했다.

“일반 콘돔은 청소년 유해물 아니다”

아무런 제재 없이 콘돔을 파는 편의점도 있다. 그러나 청소년이 콘돔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몇몇 편의점은 콘돔을 미성년자에게 팔지 않는다고 했다가 이양이 콘돔은 미성년자 판매 금지 물품이 아니라고 설명하자 점주에게 물어보거나 매뉴얼을 찾아본 후 판매했다.

   
청소년이 편의점에서 콘돔을 집어들고 있다. 미성년자도 일반 콘돔을 살 수 있지만 현실적인 제한이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19세 미만 청소년이 콘돔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아는 편의점과 약국도 있다. 박수아 약사는 “담배나 술과 달리 콘돔은 청소년에게 팔 수 있는 것으로 안다”며 “청소년기에 성관계를 갖지 않으면 좋겠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라면 콘돔을 사용하는 일이 여러 불미스러운 결과를 예방하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동네 슈퍼마켓 대다수는 ‘청소년이 무슨 콘돔이냐’는 반응을 보였다. 손님을 보자 반갑게 맞이하던 슈퍼마켓 주인은 콘돔을 사러 왔다는 이양의 말에 표정이 굳어지며 “없다”고 했다. 이양은 “콘돔이 있으면서도 내가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팔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며 “콘돔을 판매하는 근처 편의점이나 약국을 안내해주는 슈퍼마켓 주인도 있었다”고 말했다.

성인에게는 콘돔이 반드시 사용해야 할 물건으로 인식돼 있지만 청소년에게는 그렇지 않은 게 현실이다. 고등학생인 성 아무개군(17)은 “지하철 자판기에서 신분증 없이 콘돔을 살 수 있는데  편의점·할인점 등에서 콘돔 구입이 왜 어려운지 이해할 수 없다”며 “청소년이나 성인이나 안전한 성관계를 위해 콘돔이 필요하긴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법적으로 일반 콘돔은 성인용품이 아니라서 미성년자가 구입할 수 있다. 청소년보호법에 일반 콘돔에 대한 제재 사항이 없다. 여성가족부의 청소년 유해 물건 고시에도 일반 콘돔에 대한 제한이 없고, 돌출형이나 사정 지연형 등 특수 콘돔의 유해성만 언급하고 있다. 특수 콘돔은 성인용품이어서 청소년이 살 수 없지만 일반 피임용 콘돔은 미성년자의 구매가 가능하다. 여성가족부 유해매체물 담당자는 “일반 콘돔은 청소년 유해물이 아니다. 다만 사정 시간을 늘리기 위해 약품이 발라져 있거나 모양이 변형된 콘돔은 성인용품으로 분류된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학교에 콘돔 비치해 10대 미혼모 감소

그러나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심지어 의사, 약사, 성교육 전문가조차 모른다. 성 문화 개선을 위한 소셜 벤처기업 ‘부끄럽지 않아요’는 지난해 성년의 날(5월19일)에 서울 신촌 부근에서 20~30대 성인 남녀 400명을 상대로 콘돔이 성인용품인지를 물었다. 전체 응답자 가운데 40%는 그렇다고 답했고, 아니라고 응답한 비율은 50%, 나머지 10%는 모른다고 했다. 이 업체의 성민현 대표(24·한양대 경영학과 2학년)는 “설문 응답자가 젊은 층인데도 10명 가운데 4명은 콘돔을 성인용품으로 알고 있다. 조사 대상을 40~50대로 확대하면 콘돔을 성인용품으로 아는 사람은 더 늘어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기성세대의 인식 탓에 미성년자가 온라인 콘돔 쇼핑몰을 이용하기도 어렵다. 통신판매업에 대한 법적 기준상 콘돔을 파는 인터넷쇼핑몰을 이용하려면 성인 인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 네이버·다음 같은 포털 사이트도 미성년자의 콘돔 사이트 접속을 막고 있다. 성인 인증 과정을 통하지 않으면 콘돔 구입은 말할 것도 없고 콘돔을 파는 온라인쇼핑몰에 접근하기조차 어렵다. 포털 사이트에서 ‘콘돔’을 검색하면 콘돔의 정확한 사용법이나 구입처보다 가십거리만 가득하다. 세계적인 콘돔 회사인 듀렉스 관계자는 “그동안 업체들과 협의해온 끝에 올해 4월부터 누구나 성인 인증 없이 온라인 쇼핑몰에서 콘돔을 구입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여성가족부의 ‘2012년 청소년 유해환경 접촉 종합실태조사’ 결과, 청소년의 절반 가까이(45%)는 인터넷을 통해 성인물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첫 성 경험 나이는 평균 15세이며, 이들의 60%는 아무런 피임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이 가운데 4분의 1은 임신한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안홍준 의원(새누리당)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19세 미만 청소년 분만·유산 통계(2011?2013년)’에 따르면 3년간 임신한 19세 미만 청소년이 20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산부인과 의사 출신인 안 의원은 “콘돔 사용은 임신뿐만 아니라 성병 예방 차원에서라도 필요하다”며 “콘돔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꿔서 누구나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원하지 않는 임신은 비극이다. 예방하는 방법은 성관계를 못하도록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가치관을 심어주는 것이다. 미성년자의 콘돔 사용을 막는다고 성관계가 줄어들지 않고, 반대로 콘돔 사용을 허용한다고 청소년의 성관계를 부추기는 것도 아니다. 미국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80년대 말까지도 혼전 순결 교육을 강조하던 미국은 10대 미혼모가 증가하면서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자 성교육 방향을 바꿨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혼전 순결 교육을 피임 교육으로 대체했다. 금욕 대신 피임을 가르치는 게 현실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10대 미혼모 수와 성병 감염자 수가 감소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미국에서 콘돔을 교내에 비치하기 시작한 1990년대의 연구에 따르면 콘돔 비치 전과 후 사이에 성관계 경험이 있는 학생 비율에는 변화가 거의 없다. 오히려 성생활을 하는 학생들이 피임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현재 미국 고등학교에서는 정기적으로 성교육을 실시하면서 콘돔을 무료로 나눠주기도 한다. 학생은 학교 화장실에 마련된 자판기나 양호실에서 콘돔을 구할 수 있다. 미국 뉴욕에서 고등학생 딸을 키우고 있는 박 아무개씨는 “교내 체육실에 콘돔 포스터가 걸려 있고, 청소년이 학교 밖 쇼핑몰이나 마트에서도 콘돔을 구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청 직원들이 중학교를 방문해 성과 관련된 정보와 올바른 실천법을 알려주고 있다. ⓒ EPA연합
입시 공부 탓에 성교육 외면하는 학교

성인이 된 후엔 성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다. 청소년기에 인터넷이나 친구를 통해 접한 성 지식은 왜곡된 것일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청소년기의 올바른 성교육은 중요하다. 국내 중·고등학교는 보건 교육을 선택과목으로 채택할 수 있다. 그러나 입시 교육이 중요한 판에 무슨 성교육이냐는 인식이 팽배하다. 전국 5300여 개 중·고등학교 가운데 5.7%(360개)만이 보건 과목을 채택했다. 보건 과목을 선택한 학교도 교장의 재량에 따라 시간이 축소되고 내용도 재단된다. 성폭행 예방에 초점을 맞추거나 성교육을 생물 수업이나 자습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배정원 행복한 성문화센터 대표는 “청소년이 콘돔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성병이나 임신을 예방하는 일이고, 이에 앞서 올바른 성교육이 행해져야 한다”며 “그러나 교장은 학부모 눈치를 보느라 보건 교육을 선택하지 못하는 실정이고 내용도 부실하다”고 지적했다.

피임 교육을 제대로 받은 청소년이라면 지하철 자판기에서라도 콘돔을 구입해 사용하겠지만 피임의 중요성을 모르는 아이들은 위험한 성관계에 노출된다. 윤하나 이대목동병원 비뇨기과 교수는 “청소년기에는 성에 대한 호기심이 많을 뿐이다. 그들에게 콘돔 사용법 등을 알려준다고 해서 갑자기 성관계가 잦아지거나 문란해지는 것이 아니다”며 “실제 성인이 된 후 안전한 성관계를 위해서라도 청소년기에 올바른 콘돔 사용법 등 피임법을 가르쳐야 하고, 그 교육은 외국처럼 구체적이고 사실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임 위해 늘 콘돔 가지고 다녀야 하나” 
외국에선 아이들 궁금한 점 구체적으로 가르쳐



10대 임신율이 낮기로 유명한 핀란드는 1970년대 성교육을 필수과목으로 채택해 연간 40~50시간 교육한다. 핀란드 성교육은 실질적이다. ‘자위는 몸에 해로운가’ ‘피임을 위해 항상 콘돔을 가지고 다녀야 하나’ 등 아이들이 궁금해하는 점을 가르친다. 혼전 순결을 강조해온 일본은 1990년 후반부터 남녀 성기와 성교 등의 내용을 담은 구체적인 성교육을 한다. 독일은 초등학교 때부터 여성이 아이를 출산하는 영상을 보여준다. 또 피임법, 성관계 체위 등을 교육하면서 성은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라 생명의 시작이라는 점을 깨닫게 한다. 세계 최초로 모든 아동에게 성교육을 의무화한 스웨덴은 나이에 따라 남녀 차이, 임신, 성기 구조, 자위, 피임법, 육아 등의 내용을 전달한다. 중학생이 되면 학교에서 피임법을 배운다. 부모가 자녀의 학교 성교육을 반대할 수 없도록 법으로 정할 정도로 성교육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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