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너무 많고 신비감도 사라졌다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5.04.21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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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력 대권 주자 힐러리 가로막는 다섯 가지 장애물

“이런 일,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대통령이 되겠다던 힐러리 클린턴의 꿈이 좌절된 2008년, 기자들 사이에 선 그녀는 선거에 진저리를 치며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시간과 체력을 모두 쏟아부었다. 막대한 돈도 들었다. 모든 것을 걸고 싸운 뒤 패배하면 그 아쉬움만큼 피로감이 더 몰려온다.

7년이 흐른 2015년 4월12일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던 그 여정에 힐러리는 도전장을 내밀었다. “미국인들은 챔피언을 원하고 있고 나는 챔피언이 되고 싶다.” 전망은 2008년보다 훨씬 밝다. 당선 가능성의 가늠자는 후보 캠프의 수금 능력이다. 힐러리는 이 점에서 압도적이다. 클린턴 재단에서 데니스 챔버스라는 재정 담당 인물을 기용한 다음부터 날개를 달았다. 2011년 그를 고용한 이후 2억4800만 달러(약 2700억원)를 끌어들였다. 물론 그 뒤에는 ‘힐러리 클린턴’이라는 이름이 큰 힘을 발휘했다.

지지자도 많다. 미국 의회 전문지 ‘더 힐’이 자체 집계한 결과를 보면, 민주당 하원의원의 3분의 1인 62명과 상원의원의 60%에 달하는 27명이 힐러리의 대권 도전을 지지하고 있다. 누구나 그녀를 차기 미국 대통령으로 첫손에 꼽는다. 투자의 달인 워런 버핏은 “2016년에 힐러리가 이길 것이다”며 그녀에게 베팅했다. 누구나 그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장애물이 없는 건 아니다.

4월12일 미국 대선에 재도전하겠다는 의사를 공식적으로 표명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 AP 연합
■ 첫째 장애물-남편 클린턴

‘지퍼게이트’. 힐러리에게는 끔찍한 기억인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성추문 사건은 일견 국민의 지지 덕분에 탄핵을 면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후에는 공식 석상에서 보이는 힐러리의 의연한 태도가 대중의 마음을 움직였고 점수를 얻었다. 스캔들 처리 과정에서 동정을 산 부분도 없지 않다. 이번 출마 선언 동영상에 등장한 힐러리도 가족 이야기를 먼저 끄집어냈다. “첼시(클린턴 부부의 딸)를 낳았을 때는 긴장했지만, 손자가 태어났을 때는 즐거움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며 어머니가 되었던, 그리고 할머니가 된 경험을 늘어놓고 있다. 하지만 이건 뒤집어 말하면 클린턴 부부가 정말 미국을 대표하는 가족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지 의심을 가진 사람도 적지 않다는 뜻이다.

■ 둘째 장애물-69세 나이

정치인에게 건강 정보는 치명적이다. 사소한 질병에도 함구령을 깔고 표면적으로는 건강 상태를 속이는 경우가 적지 않은 이유다. 그런 점에서 힐러리의 69세 나이는 고민거리다.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병치레도 그렇다. 2012년 12월 ‘시리아 프렌즈 회의’와 ‘G8-아랍 국가 국제회의’에 힐러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뇌진탕이라고 공식적으로 공개됐지만 공화당의 선거 전략가인 칼 로브는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뇌 손상이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다음 대통령 선거에 나선다면 유권자는 그녀의 건강 문제를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는 게 로브의 설명이다. 69세라는 나이는 비단 건강 문제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민주당 내부에서 제기되는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첫해에 70세가 되는데 새로운 아이디어와 메시지가 다음의 8년간 계속 나올 수 있겠느냐”는 지적도 결국 나이에서 비롯된 문제다.

■ 셋째 장애물-빈부 격차 주범 이미지

민주당의 전략가인 올리비아 달튼은 2016년 대선의 화두를 ‘격차 줄이기’라고 말한다. “교육 지원과 이민 개혁 등 차세대를 위한 기회를 확대하는 등 중산층을 위한 경제정책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게 그녀의 지적이다. 힐러리는 빈부 격차의 주범으로 공격받는 ‘월가의 친구’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지난해 12월 월가의 한 행사에 참석한 힐러리는 “월가가 나쁜 곳이 아니다”고 말했는데 이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월가 사람들의 가장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발언이었다. 그런 이미지가 위험하다고 여겨서일까. 4월14일 아이오와 유세에 나선 그녀는 “헤지펀드의 매니저가 간호사와 트럭운전사보다 낮은 세율로 세금을 지불하는 것은 이상하다”며 강공을 펼쳤다. 민주당과 관계가 틀어져 있는 월가에서는 ‘그나마 힐러리만이 대안’이라고 보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반전이었다. 문제는 힐러리 정치자금에서 가장 큰손도 월가라는 점이다. 세금, 금융 규제, 성장의 문제에서 가장 덜 공격적이라는 힐러리의 선택은 앞으로도 계속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 넷째 장애물-외교 정책 검증

불과 1년 전 일이다. 힐러리가 외교정책에 관한 생각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시도해볼 가치는 있다”면서도 “개인적으로 이행 약속에 관해서는 의심스럽게 생각한다”고 회의적으로 바라본 건 오바마 정부가 공을 들이고 있던 이란 핵협상이다. 지난해 8월 ‘애틀랜틱’과의 인터뷰에서는 “시시한 일을 하지 말라”고 언급했다. 외국의 분쟁 개입 전반에 관해 “바보 같은 일”이라고 말하는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을 반박한 표현이었다. 현 정부의 외교정책과 다른 길을 주장하는 힐러리지만 대통령이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라면 또 다른 차원의 고민이 된다. 중동과 아시아 정책에서 좀 더 적극적인 개입을 원하지만 미국 국민들은 개입에 피로감을 가지고 있다. 오랜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생긴 후유증이다. 최근 2~3년간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10명 중 6명 정도가 군사 개입에 반대한다.

■ 다섯째 장애물-20년간 노출된 워싱턴 생활

영부인과 상원의원, 그리고 국무장관을 거치면서 힐러리는 20년간 워싱턴 생활을 했다. 노출이 많았던 만큼 공격당할 거리도 많다. 민주당 경선을 통과하더라도 공화당의 집요한 공격이 기다리고 있다. 최근 사적인 이메일 계정으로 공무를 처리했던 이메일 게이트와 스티븐슨 대사를 포함해 4명이 사망한 리비아 벵가지 습격 사건에서의 미진한 대응은 힐러리의 아킬레스건 중 하나다. 특히 벵가지의 경우 국무장관으로서 판단 미스가 거론되는 만큼 국정 수행 부적격자로 몰고 가려는 게 공화당의 전략이다.

오랜 노출은 싫증을 불러오는 법이다. 지난해 6월에 발매된 힐러리의 회고록 <하드 초이스(어려운 선택)>는 초판만 100만부를 찍어냈다. 첫째 주 판매량은 약 8만6000부. 2~3주째는 매출이 1주차와 비교해 줄어들었다. 2003년 힐러리가 출판한 회고록 <리빙 히스토리>는 당시 발매 일주일 만에 60만부가 팔렸다. 대권 주자로 번쩍 하고 번갯불처럼 등장했던 2003년과 비교해 지금의 힐러리는 워싱턴 체제의 일원으로 너무 오래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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