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치만 커졌지 속은 부실하네
  • 박혁진 기자 (phj@sisapress.com)
  • 승인 2015.04.23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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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박근혜 정부 경제 활성화 히든카드 ‘코넥스’

2013년 3월11일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첫 국무회의. 이 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위원들에게 가장 먼저 강조했던 사안이 있다. ‘주가 조작 근절’이었다. 박 대통령은 “개인투자자를 절망으로 몰아넣고 막대한 부당 이득을 챙기는 각종 주가 조작에 대해 상법 위반 사항과 자금 출처, 투자 수익금의 출처, 투자 경위 등을 철저히 밝혀 제도화하고 투명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새 정부 첫 국무회의라는 상징적 의미가 있는 회의에서 대통령이 주가 조작 근절을 강조하고 나서자 공직사회가 들썩였다. 금융위원회·법무부·국세청 등 유관 기관들이 머리를 맞댄 끝에 약 한 달 뒤인 4월18일 ‘주가 조작 등 불공정 거래 근절 종합대책’이 발표됐다. 검찰도 2012년 대검찰청 산하에 저축은행비리합동수사단을 만들어 운영했던 것처럼 서울중앙지검에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을 새로 만들어 운영키로 했다. 4월19일에는 주가 조작 의혹이 제기됐던 알엔엘바이오를 압수수색했다.

2013년 7월1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코넥스 개장식. ⓒ 뉴스뱅크 이미지
시가총액 늘었으나 거래 종목 적어

박근혜 정부는 ‘주가 조작 근절’을 외치면서 한편으로는 ‘코넥스’(KONEX·Korea New Exchange) 시장을 2013년 7월1일 출범시켰다. 박근혜 정부가 강조했던 창조경제와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신설된 코넥스는 코스피와 코스닥에 이은 제3의 자본 조달 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자본 5억원과 매출 10억원, 순이익 3억원 중 한 가지 조건만 충족하면 상장이 가능하도록 진입 문턱을 낮췄다. 의무공시 사항은 29항목으로 코스닥 64항목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대폭 줄여 기업들의 부담을 줄여줬다. 하지만 시장 한편에서는 진입 문턱이 낮은 데다 감시 장치마저 허술하기 때문에 오히려 주가 조작 세력들이 더 수월하게 활동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준 것 아니냐는 비판이 동시에 제기됐다.

그렇다면 출범 2년이 가까워오는 코넥스 시장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을까. 외형적으로는 성장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4월3일 코넥스 시장 전체 시가총액은 2조974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개장 당시 시가총액(4689억원)보다는 347%, 올해 1월 평균(1조5990억원)보다 31% 늘어난 것이다. 현재 코넥스 시장 상장사는 총 73개다. 8개사가 코스닥 이전 상장 등의 이유로 상장 폐지됐음에도 2년 전 처음 개장했을 때(45개)와 비교해 62%나 늘어났다. 일평균 거래대금 역시 크게 증가했다. 지난 3월 코넥스 시장 상장사들의 일평균 거래대금은 15억원이었다. 1월 일평균 거래대금(7억5000만원)의 2배다.

코넥스 시장이 활성화되고 있는 데는 코스닥 시장의 영향이 크다. 증시 전문가들은 의료·바이오 업종을 중심으로 한 코스닥 시장 활황에 영향을 받아 코넥스 시장 내 거래 역시 활성화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하지만 중소기업이나 개인사업자의 자금 조달을 돕겠다는 의도대로 시장이 운영되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거래소가 얘기한 것처럼 코넥스의 외형은 불어났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빛 좋은 개살구’란 지적이 나온다.

4월16일 코넥스 시장의 거래 현황을 보면 이런 지적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날 현재 코넥스 시장에 상장된 72개 업체 중 단 1주라도 거래가 된 업체는 39개에 불과하다. 거래 형성률이 절반을 약간 웃도는 수준이다. 하루 전인 4월15일에도 거래가 형성된 종목은 39개였다. 이날 개인이 순매수한 금액은 4000만원에 그쳤고, 순매도 금액은 1억8000원이었다. 거래소가 코넥스 시장의 시가총액이 2조원을 넘어섰다고 떠들썩하게 발표하고 정부도 코넥스 시장이 안착했다고 하지만, 하루 거래량은 1억원 안팎인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코넥스 시장이 활성화됐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가장 큰 이유는 소규모 기업과 개인 창업자가 이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조건 중 하나인 3억원 예탁금 제도 때문이다. 개인이 최소 3억원을 예탁해야 코넥스 기업 주식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정부는 위험·손실 감내 능력이 미흡한 소액 투자자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투자 금액에 제한을 두고 있다.

3억 예탁금이 거래 활성화 장애물

하지만 거래소 입장에서는 이런 규제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3억 예탁금 제도가 작전 세력을 막고, 소액 투자자를 보호한다는 점에서 안전장치 역할을 하지만, 3억을 예탁할 수 있는 개인투자자가 굳이 코넥스 시장 주식을 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제도를 없애면 개인투자자의 리스크가 커지거나 작전 세력들이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3월16일 취임과 동시에 코넥스 시장 문턱 낮추기에 대해 잇따라 언급한 것도 이런 지적 때문이다. 그는 취임 3일 후 한국거래소를 방문해 코넥스 시장 활성화 방안을 내놓겠다고 밝힌 데 이어, 4월6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도 “상반기 중 코넥스 시장 활성화를 추진하는 등 회수 시장 기반을 강화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개인투자자에게 진입 장벽이 되는 예탁금 기준을 현행 3억원에서 대폭 낮추고 랩어카운트(종합자산관리)를 통한 기관투자가의 코넥스 투자 한도(기본 예탁금 1억원)도 조정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코넥스 시장에 대한 개인투자자들의 불신을 해소하지 못하면, 시장 활성화는 요원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코넥스는 투자 위험이 높은데 고객에게 이러한 내용을 설명하고 불안감을 해소시킬 근거가 부족하다”며 “기준이 될 만한 코넥스지수가 나오면 기관들도 크게 관심을 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근본적인 제도 개선 없이는 코넥스가 제2의 프리보드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많다. 프리보드는 비상장 주식을 거래하도록 금융투자협회가 2005년 출범시킨 시장이다. 벤처기업 소액주주에 대해 양도소득세 비과세 혜택까지 주고 있지만 코스닥 부실 기업 진입 등의 문제로 거래가 부진하고 우량 기업도 상장을 기피하고 있다. 프리보드의 현재 일평균 거래금액은 9000만원으로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태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 활성화 ‘히든카드’라고 할 수 있는 코넥스 시장이 기로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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