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치를 묻는다
  • 김재태 편집위원 ()
  • 승인 2015.04.23 17:4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벚꽃이 희붉게 꽃망울을 터뜨린 날, 안산 단원구의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를 찾았습니다. 큼지막한 가건물 안에 들어서자마자 끝없이 늘어선 영정 사진에 그만 숨이 턱 막히고 맙니다. 눈앞의 현실을 마주하고도 저토록 많은 목숨이 희생되었다는 사실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년 전 비극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4월16일 바로 그날, 이 글을 쓰고 있는 마음 역시 여전히 무겁기 그지없습니다. 창밖에 내리는 비가 울고 싶은 마음을 대신해주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귓가에는 가라앉는 세월호 안에서 한 단원고 학생이 휴대전화 동영상으로 남겼다는 마지막 말이 반복 재생되며 끊임없이 울립니다. “진짜 무섭고,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는데, 난 살고 싶습니다. 나는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이 빗속에서 오늘도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은 다시 빗물보다 격한 눈물을 흘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보낸 세월이 자그마치 1년입니다. 지난 1년간 그들이 흘렸을 눈물의 무거움을 우리는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습니다. 그 깊은 슬픔의 부피를 차마 가늠하기도 어렵습니다. 다만 그들의 분노와 슬픔이 1년이 지나도록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는 사실만을 알 뿐입니다. 그들은 지금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지난 1년간 달라진 것이 무엇이냐고, 뭐 하나 속 시원히 해결된 것이 있느냐고. 그들의 말처럼, 참사 직후 들불처럼 퍼졌던 ‘세월호 이전과 이후는 분명히 달라져야 한다’는 구호는 벌써 온데간데없습니다. 바닷속에는 여전히 아홉 명의 실종자가 남아 있고, 국민들이 알고자 하는 진실 또한 물 밖으로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특별법이 제정되고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가 꾸려졌지만 그조차 여태 이렇다 할 진전을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부가 내놓은 이상한 특별법 시행령안으로 인해 갈등만 더 증폭된 상황입니다. 이석태 특별조사위원장이 “조사를 시작하기는커녕 제대로 된 조직도 예산도 없는 상태”라며 “정부는 어떠한 의미 있는 말이나 행동을 보이지 않으면서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는 것”이라고 뼈 있는 한마디를 내놓았을 정도입니다.

1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월호 안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채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정부에 대해 진심으로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할 의지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녕 숨길 것이 없고, 그래서 더 두려워할 것도 없다면 특별조사위원회가 제대로 활동할 수 있도록 자리를 펴주어야 마땅합니다. 벌써 1년이 지났는데 또 얼마나 더 시간을 낭비해야 하겠습니까.

세월호 참사는 인간과 자본의 파렴치가 결합해 빚어낸 수치스러운 재난입니다. 그에 대한 부끄러움이 있다면 이제는 모든 것이 염치 있는 상태로 되돌려져야 합니다. 지금 이 나라가 염치 있는 나라가 되어 있는지를 묻고 또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참사 당시 초기 대응에 무능했던 정부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 정부가 진상 규명에서조차 무능함을 보인다면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습니까. 세월호 안에 세월을 마냥 가둬놓아서는 안 됩니다. 속 보이는 꼼수 따위는 치우고 진정성 있는 자세로 참사의 진상을 대면하는 것, 그것이 국민 앞에 염치를 되찾는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