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식 서울시 의원은 정말 살인자인가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5.04.28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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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력가 청부 살인’ 사건 둘러싼 5대 의문

지난해 6월 말, 김형식 서울시의원이 살인 교사 혐의로 구속됐다. 수천억 원대 재력가이자 자신의 후원자인 송 아무개 회장을 친구인 팽 아무개씨를 시켜 살해했다는 것이다. 6·4 지방선거에서 승리해 재선에 성공한 지 한 달도 채 안 된 시점이었다. 대학에서 총학생회장을 지낸 젊은 야당 정치인이 청부 살인을 했다는 뉴스는 한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언론은 ‘경악’ ‘개탄’ 등 자극적인 단어를 써가며 연일 기사를 쏟아냈다.

헌법에 명시된 무죄 추정의 원칙은 허울 좋은 껍데기에 불과했다. 비난으로 들끓은 여론은 그의 범죄를 기정사실화했다. 평소 알고 지냈을 법한 유력 인사들은 자신이 연관될까 노심초사하며 고개를 돌렸다. 반론은 끼어들 틈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재판이 열렸고 지난해 10월27일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에서 김 의원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9명의 배심원이 만장일치로 유죄 의견을 내놓았다.

김형식 서울시의원이 지난해 7월3일 서울 강서경찰서를 나와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현역 시의원의 ‘재력가 청부 살인’ 사건은 이렇게 끝을 맺는 걸까. 오는 4월30일에 있을 2심 선고를 앞두고 시사저널은 관련 재판 자료들을 입수해 이번 사건을 처음부터 면밀히 되짚어봤다. 광풍이 덧씌운 선입견을 걷어내자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졌던 사안에서 의문점이 나타났다. 하나하나 따져나갈 때마다 물음표의 수는 늘어났다. 결국 질문은 처음으로 돌아갔다. 김형식은 정말 살인자인가.

■ 정치인이 후원자를 왜 죽였을까

살인은 지난해 3월3일 새벽에 일어났다. 그런데 살해 시점부터 의문이 제기된다. 지방선거를 목전에 둔 상황이었다. 현역 시의원인 김 의원은 재선 도전을 한창 준비하고 있었다. 이러한 시기에 경제적 후원자인 송 회장이 살해될 경우 무슨 일이 일어날지 김 의원은 몰랐을까. 살인 사건이 뇌물 수수 사건으로 옮아가면 결국 자신을 겨냥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청부 살인이라는 무모한 선택을 했다는 점은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팽씨의 주장에 따르면, 김 의원은 5억2000만원짜리 차용증을 송 회장으로부터 빼앗아오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차용증을 없앤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송 회장이 평소 금전이 오간 내용을 꼼꼼히 기록해둔 장부(매일기록부)가 남아 있다면 상황은 별반 달라질 게 없다. 송 회장의 사무실 금고와 책상 서랍에 관련 서류와 장부가 들어 있었다. 김 의원도 아는 사실이다. 결국 정치생명이 끝날 각오를 하지 않는 한 청부 살인을 결심하기는 쉽지 않은 셈이다.

물론 김 의원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정도로 송 회장으로부터 받은 압박이 강했을 수 있다. 하지만 팽씨의 증언을 제외하면 이와 관련한 증거는 거의 없다. 오히려 송 회장은 사망 직전까지 김 의원을 도운 것으로 드러났다. 송 회장의 아들 송 아무개씨는 경찰에서 “아버지는 김형식을 믿고 어머니에게 민주당 찍으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송 회장은 살해당하기 전날인 2014년 3월2일에도 김 의원의 산악회에 수건 300장을 후원했다.

■ 용도변경 청탁 때문에 살인 청부했나

유죄 판결을 내린 1심 재판부는 김 의원의 살인 교사 동기가 ‘5억2000만원 차용증’과 ‘S빌딩 용도변경 청탁’과 관련돼 있다고 봤다. 해당 판결문 내용을 요약하면, 김 의원은 S빌딩을 호텔로 증축하려는 송 회장에게 상업지역으로 용도변경을 해주겠다며 2010년 11월9일께부터 2011년 12월20일께까지 네 차례에 걸쳐 총 5억2000만원을 받고 이에 대한 차용증을 작성해줬다. 이는 용도변경이 이뤄지지 않자 송 회장이 김 의원을 압박하기 시작했고 견디지 못한 김 의원이 살인 교사에 나섰다는 범죄 구성의 근거가 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김 의원이 차용증을 작성해준 시점과 송 회장이 용도변경을 추진한 시점이다. 검찰은 2010년 10월께부터 송 회장이 S빌딩을 상업지역으로 용도변경할 생각에서 김 의원에게 5억2000만원을 뇌물로 교부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해당 빌딩의 증축 도면을 작성한 적이 있는 관련 업자는 경찰에서 “증축 이야기는 2012년 6월께 처음 들었고, 증축한 건물을 관광호텔로 운영하려는 계획은 2012년 8월께 처음 들었다”고 밝혔다. 이 업자는 2012년 6월 무렵 기존 4층 건물을 6층으로 증축하는 데 필요한 도면 작성을 의뢰받아 그해 8월 완료했다.

그런데 이 업자가 얘기한 증축은 용도변경에 의한 증축이 아니다. 기존 상태에서 증축을 하려고 도면 작성까지 했지만 강서구청으로부터 증축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그의 진술에 따르면 용도변경에 관한 논의는 2013년 3월 이후에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강서구청이 2013년 1월24일께 상업지역 용도변경을 위해 실시한 주민 의견 청취 때 송 회장은 별다른 의견을 개진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2011년 12월에 작성했다는 ‘5억2000만원 차용증’과 2013년 3월 이후에나 가능한 ‘S빌딩 용도변경 청탁’을 연결 짓는 것은 무리라고 할 수 있다. 청탁도 하기 전에 뇌물을 줬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김 의원이 팽씨에게 살인을 지시했다는 시점과 송 회장이 용도변경이 안 된다는 사실을 인지한 시점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팽씨는 2012년 4월께부터 김 의원이 살해 교사를 시작했다고 진술했다. 그런데 송 회장이 용도변경을 추진한 시기가 2013년 3월 이후라면 이 또한 인과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 송 회장이 용도변경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이보다도 뒤의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김 의원의 살인 교사’와 ‘S빌딩 용도변경 청탁’도 관련성을 찾기가 힘들다.

■ 카톡 대화 내용 왜 일부만 공개됐나

김 의원이 살인 교사를 했다는 결정적인 증거로 제시된 것은 카카오톡(카톡) 대화 내용이다. 팽씨와 나눈 대화에서 청부 살인을 암시하는 듯한 표현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1심 배심원의 유죄 판단에도 이 부분이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 의원의 변호인 측은 “명백한 증거 왜곡”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수사 당국이 배경 설명 없이 카톡 대화 중 일부만 발췌해 마치 살해 교사 내용인 것처럼 둔갑시켰다는 것이다.

예컨대 2013년 9월17일 팽씨가 ‘잘되겠지. 긴장은 되는데 마음은 편하네’라고 하자 김 의원이 ‘잘될 거야’라고 답한 게 있다. 전문을 보면 김 의원은 ‘잘될 거야’ 뒤에 ‘추석 잘 보내라’는 메시지도 함께 보냈다. 이에 팽씨도 ‘그래’라고 답변했다. 팽씨는 첫 대화 뒤에 ‘^^’이라는 이모티콘을 사용하기도 했다. 검찰은 이 카톡 내용이 살인을 지시받은 팽씨와 그를 격려하는 김 의원의 대화라고 주장했다. 추석 때 범행을 강행하라는 지시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 의원의 설명은 다르다. 당시 중국으로부터 짝퉁 수입을 하던 팽씨가 짝퉁 수입이 걸리지 않고 잘될지 긴장은 되나 마음은 편하다는 취지였다는 것이다. 출입국관리기록에 따르면 팽씨는 추석 연휴 둘째 날 중국으로 출국했다.

실제 검찰이 복구했다는 카톡 내용은 대부분 짝퉁 수입이나 채무 변제에 관한 것이었다. 의혹을 불러온 김 의원의 ‘???’ ‘ㅇㅇ’ ‘!’ 등 메시지는 팽씨와 전화 통화가 안 되거나 간단한 답변을 대신할 때 사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범행 후인 3월8일 팽씨가 ‘만약 뽀록나면 넌 빠지는 거다’고 하자 김 의원이 ‘내일 통화하자’고 답한 카톡 대화도 공개됐다. 전문을 보면 팽씨에 앞서 김 의원이 먼저 ‘이게 뭔 소리냐? 아닌 밤중에 뭔 얘기냐?’라고 묻는다. 팽씨는 자신이 자수하겠다는 얘기를 하자 나온 대화라고 주장한 반면 김 의원은 범행 사실을 알고서 너무 놀라 주고받은 대화라고 반박했다.

수천억 원대 자산을 지닌 재력가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팽 아무개씨가 지난해 7월3일 서울 강서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 구속 중에 ‘미안하다’ 쪽지 왜 보냈나

김 의원이 구속 수감된 상태에서 팽씨에게 전달한 3장의 쪽지도 살인 교사의 근거로 제시됐다. 해당 쪽지에 ‘정말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과 ‘묵비권 행사’라는 부탁의 말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만약 자신이 누명을 쓴 것이라면 그렇게 만든 친구에게 미안하다거나 묵비권을 행사하라는 말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해당 쪽지에 그런 표현이 담긴 것은 사실로 확인됐다.

그런데 쪽지 전문을 읽어보면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 김 의원은 첫 번째 쪽지에서 ‘정말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사과를 받아줄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라도 고백해야 내 마음이 편하겠다’고 밝힌 후 ‘네 와이프 운운하며 욕한 건 내가 정말 잘못했다. 결코 진심이 아니었다. 날 용서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 의원의 변호인 측은 여기서 ‘미안하다’는 건 살인 교사에 대한 게 아니라 팽씨의 부인 조 아무개씨를 욕한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한 것이라고 밝혔다.

두 번째 쪽지와 세 번째 쪽지에는 ‘함정 수사 얘기 들었다. 전문가의 충고는 반드시 묵비권 행사하래’ ‘절대로 쫄지 마라. 그리고 지금은 무조건 묵비권’ 등 묵비권 행사를 강조하고 있다. 김 의원의 변호인 측은 단순히 팽씨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고 해서 살인 교사가 입증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김 의원 입장에서는 자신이 살인 교사를 했다는 팽씨를 우선 달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또 팽씨가 함정 수사에 빠진 것으로 봤기 때문에 묵비권 행사를 하라고 조언했다는 설명이다.

■ 팽씨의 진술은 일관되게 이뤄졌나

‘재력가 청부 살인’ 사건은 송 회장을 살해한 팽씨의 입으로부터 출발했다. 객관적 증거보다 팽씨의 진술에 무게가 실린 사건이다. ‘김형식이 죽이라고 시켰다’는 증언과 함께 ‘강도 살인’이 아닌 ‘청부 살인’으로 사건이 급선회했다. 그렇다면 팽씨의 진술은 신뢰할 수 있는 걸까. 수사 당국의 말처럼 일관된 진술을 하고 있는 걸까.

수사가 장기화하면 진술 가운데 일부가 바뀌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런데 팽씨의 진술은 그 내용이 수사 방향에 맞춰 달라지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우선 살인 교사의 동기와 관련해 팽씨는 경찰에 행한 첫 진술에서 김 의원이 송 회장에게 진 5억2000만원의 채무 때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송 회장 주변에서 상업지역 용도변경에 관한 증언이 나온 후 용도변경 문제를 풀 수 없었다는 점을 살인 교사의 동기로 추가했다.

김 의원이 살인 교사를 시작한 시점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2012년 12월께를 지목하며 그 이유로 자신이 돈을 빌리기 시작한 이후에 범행을 계획했기 때문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차용증 등의 증거가 나오자 2012년 4월께로 말을 바꿨다. 범행의 대가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생활비와 아들 대학, 부채 탕감 등을 들었다가 나중에는 이권을 줘서 먹고사는 데 지장 없도록 해주겠다는 약속으로 바뀌었다. 김 의원의 변호인 측은 2012년 4월께 팽씨가 김 의원에게 빌린 돈이 1300만원밖에 되지 않아 살인의 대가로 부족하다고 여겼기 때문으로 추정했다.

한편 팽씨가 처음부터 송 회장을 살해할 목적으로 사무실을 찾았다고 보기에는 이상한 정황들도 여럿 발견된다. 살해 도구로 손도끼를 선택한 점부터가 상식적이지 않다. 보통 살해가 목적일 경우 끝이 뾰족하고 날이 예리한 칼을 사용한다. 팽씨는 또 도끼날이 아닌 손도끼의 뒷면으로 송 회장을 가격했다. 차용증을 가지러 갔다는 팽씨가 지갑부터 뒤진 것도 잘 납득이 되지 않는 행동이다. 서류를 찾으려 했다면 책상 서랍이나 금고 등을 먼저 뒤지는 게 상식적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팽씨는 차용증을 가지고 나오지 못했다.


 


팽 아무개씨가 무슨 이득이 있어 살인을 했다는 건가.

“김형식 의원으로부터 7000만원을 빌렸다는데 한꺼번에 빌린 게 아니라 여러 차례 빌린 것을 합한 금액이다. 이 돈 때문이라는 주장은 시기적으로 맞지 않다. 안 맞으니까 나중에는 ‘정신적 종속 관계’라는 개념을 들고나왔다. 팽씨가 친구 김 의원을 너무 존경했다는 거다. 그런데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을 보면 피해자 송 아무개 회장과 팽씨 그리고 김 의원 모두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 어울렸던 인물들이다.”

김 의원에게는 살인으로 어떤 이득이 생기나.

“이 부분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 있다. 송 회장이 사망하면 김 의원도 당연히 수사를 받게 될 텐데. 그랬더라도 부패 정치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겠나. 정치생명이 끝나는 것이다.”

돈을 많이 빌리지 않았나.

“5억2000만원이라고 하는데 계좌 등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은 없다. 실제로 돈이 얼마가 건너간 건지 알 수 없다. 용돈 주고 술 마시고 이런 것까지 다해서 5억2000만원이라면 이게 청부 살인의 동기가 될까.”

검찰에서는 어떤 근거를 들고 있나.

“팽씨의 진술이 진실에 가깝다는 거다. 하지만 팽씨의 진술 이외에 이렇다 할 증거가 없다. 팽씨 진술만 가지고 사건이 진행된 것은 좀 의아하다.”

검찰의 수사 방식에 문제가 있는 건가.

“놀랐다. 이번 사건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었는데 그 부분을 검찰이 보완해 재판에 나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 검찰 측 주장이 여전히 허술하다.”

직접 증인으로 출석했는데.

“처음에는 안 나가려고 했다. 김 의원을 개인적으로 아는 것도 아니고 별로 좋아하는 정치인도 아니다. 그렇지만 사실 규명은 필요하다고 봤다. 핵심은 범행 동기다. 우발적인 청부 살인은 있을 수 없다.”

향후 재판이 어떻게 마무리될 것으로 보나.

“참 이해하기 힘든 사건이다. 2년 동안 치밀하게 준비했다는 청부 살인치고 너무 허술하다. 잘 준비했다는 말과 실제 드러난 행동이 다르다. 그런데 사실적 근거 없이 검사와 변호사가 공중에 붕 뜬 상태에서 공방을 펼치는 듯한 모습이다. 김 의원도 켕기는 게 많은지 다 털어놓지는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사건은 정치인 김형식의 평판을 따지자는 게 아니다. 살인 교사 여부를 판가름하는 재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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