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문재인 잡고 대권 가도 ‘성큼성큼’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5.05.05 13:4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권 내 차기 1순위 굳히기…김문수·오세훈 등 잠룡도 수혜

여야 차기 대선 주자 지지도 순위에서 16주 연속 1위.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얘기다. 지난 2·8 전당대회에서 제1야당 수장이 된 후 한 번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여론조사 전문 기관 리얼미터의 4월 넷째 주(4월20~24일) 조사에서는 대구·경북 지역에서조차 맨 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선전이다. 그러나 문 대표를 주목하는 이는 지금 별로 없다.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문 대표를 턱밑까지 추격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에게 쏠려 있다.

4·29 재보선은 광주를 제외하고는 ‘문재인 대 김무성’의 대결구도로 압축됐다. 이번 재보선이 내년 4월에 치러질 20대 총선의 풍향계가 될 것이기 때문에 두 여야 대표 모두에게 리더십을 시험받는 첫 번째 무대가 됐다. 또한 둘은 2017년 19대 대선의 여야 대표 주자이기도 하다. 이번 선거에 향후 정국 주도권은 물론 대선 레이스의 기선 잡기까지 걸려 있었던 셈이다.

4월30일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김태호 최고위원이 4·29 재보선에서 수고했다며 김무성 대표를 업어주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0 대 4 완패. 4·29 재보선이 끝난 후 문 대표가 받아든 성적표다. 반면 김 대표는 3 대 1 완승. 1패라고 해봐야 야당의 심장인 광주(서구 을)였기 때문에 사실상 전승이라고 볼 수 있다. 더구나 무소속 후보였던 천정배 전 법무부장관이 광주를 가져가면서, 새누리당에는 오히려 ‘잘된 일’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천 당선자가 광주 지역을 중심으로 한 호남 신당의 출현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야권이 재편될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세론’ 꺾은 김무성

4·29 재보선의 여파는 대선 지지도 조사에 그대로 반영됐다. 리얼미터가 선거 다음 날 실시한 차기 대선 주자 지지도 조사에서 김 대표는 23.4%로 하루 만에 7.1%포인트 급등했다. 문 대표는 3.3%포인트 하락한 23.6%를 기록하며 1위를 수성했지만, 둘 간의 지지율 격차는 0.2%포인트로 좁혀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재보선은 지역구가 거의 다 야당 텃밭인 데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덮치면서 새누리당의 전패까지 예상됐다.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인천 서구·강화 을을 지켜낸 데다 27년 만에 서울 관악 을을 탈환하는 등 김 대표의 성과는 눈부셨다. 박근혜 대통령의 별명인 ‘선거의 여왕’에 빗대어 김 대표를 ‘선거의 남왕’이라고 치켜세우는 말까지 나왔다. 김 대표는 지난해 열린 7·30 재보선 당시에도 11 대 4 압승을 일궈내면서 야당을 압도했다. 선거불패의 신화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4·29 재보선 압승으로 김 대표가 차지한 전리품은 대선 레이스에서 대세론을 굳혀가던 문 대표의 기세를 단번에 꺾었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당 내부에서 얻은 것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친박(親박근혜) 세력을 초토화시키고 당을 완벽히 장악했기 때문이다.

선거 전 ‘성완종 리스트’에 친박 실세들의 이름이 줄줄이 거론되면서 친박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재보선에서 참패한다면 모든 책임은 이들에게 돌아갈 것이 자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선거 때마다 위력을 발휘한 ‘박근혜 마케팅’에 기댈 수도 없었다. 때문에 이번 재보선의 승리는 오롯이 김 대표의 승리일 수밖에 없다. 한 친박계 의원은 이렇게 설명한다. “이번 재보선은 김무성의 승리다. 누구 하나 토를 달지 못할 것이다. 성완종 리스트로 인해 수세에 몰렸던 박근혜 정부에 일종의 ‘면죄부’를 준 것도 김 대표라고 할 수 있다. 김 대표를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이라고는 이완구 전 총리 정도였는데 이미 낙마해버렸다. 그렇다고 탈박(脫朴)인 유승민 원내대표가 김 대표를 견제하겠는가. 더구나 다음 총선까지는 선거가 없다. 김 대표에게 책임을 물을 이벤트 자체가 없다는 말이다. 다음 총선까지 김 대표 독주 체제는 계속될 것이다.”

재보선 선거 결과에 상관없이 한동안 정국의 시한폭탄으로 작동할 성완종 리스트 파문에서도 김 대표가 주도권을 차지한 모양새다. 김 대표는 선거 직전인 4월26일,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가 있을 것임을 시사했다. 이보다 앞서 4월16일, 박 대통령이 중남미 방문을 위해 출국하기 불과 두 시간 전 마지막으로 독대한 사람이 김 대표였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김 대표의 몸값은 더욱 올라갔다. 통상 대통령이 장기 순방을 나갈 경우 권한대행이 되는 총리와 면담하거나, 총리와 함께 집권당 대표단을 초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더구나 박 대통령이 자신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왔던 김 대표를 마지막으로 독대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이 자리에서 김 대표가 이완구 전 총리 경질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전했고 박 대통령도 이를 수긍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수직·종속적이라고 평가받았던 당·청 관계가 급변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실제로 청와대에는 김 대표를 견제할 만한 인물이 없다.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은 성완종 리스트에 이름을 올려 운신의 폭이 좁아졌고, 총리는 다시 공석이다. 박 대통령으로선 원활한 국정 운영을 위해 김 대표에게 손을 벌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미 재보선 과정에서 김 대표는 ‘호남 총리론’을 언급했다.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총리 인선에 개입하는 듯한 언행이었지만, 어느 누구도 김 대표의 발언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정도로 김 대표의 위상은 높아졌다.

김문수 보수혁신위원장(왼쪽 사진 오른쪽)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오른쪽 사진 왼쪽)은 이번 재보선을 통해 존재감을 보여줬다. ⓒ 연합뉴스, ⓒ 연합뉴스
당내 김무성 독주 체제 완성

4·29 재보선으로 경쟁자들을 훌쩍 앞지른 김 대표로서는 이제 국민들에게 자신의 정치를 보여주는 일이 남았다. 김 대표도 이를 잘 알고 있는 듯 지난 5월1일 새누리당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이번 선거 결과에 절대 안주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국민 눈 밖에 나는 행동도 하지 말고 겸손한 자세로 차근차근 내년 총선을 준비해야 한다”며 “강력한 혁신 드라이브를 걸어 정치 혁신과 개혁 어젠다를 선점해 폭풍 혁신으로 우리가 정국을 주도해나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대표가 말한 ‘우리’는 청와대가 아닌 자신이 장악하고 있는 새누리당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공무원연금 개혁과 경제 활성화 법안 처리는 김 대표의 힘을 보여줄 수 있는 첫 번째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는 공무원연금특위의 합의안 도출 시한인 5월2일을 앞두고 “정치지도자로서 국민 앞에 한 이 약속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문재인 대표를 압박했다. 경제 활성화 법안과 관련해서도 “이번 임시회 회기 내에 청년 일자리 창출과 관련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관광진흥법 등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법안을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며 경제 이슈 선점에 나섰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김 대표는 평소 대권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행동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여권의 가장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임을 본인도 더 이상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한동안 김무성 독주 체제가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데, 당 안팎의 견제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선거는 없지만 새누리당이 조금이라도 실축한다면, 모든 정적들이 김 대표를 노릴 것이다. 반대로 무난히 당을 운영해 총선에서 승리한다면 청와대 입성이 결코 꿈만은 아닐 것이다. 물론 이 같은 시나리오의 전제 조건은 박근혜 정부의 성공적 마무리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문수·오세훈 “살아 있네~” 


4·29 재보선의 최대 수혜자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라는 점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각 지역구에서 대중적 인지도를 앞세워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킨 여권의 대권 잠룡들도 수혜를 입기는 마찬가지다. 김문수 보수혁신위원장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바로 그들이다. 둘 다 그동안 원외에 머무르면서 정치 주변부를 맴돌던 신세지만, 재보선 승리에 일조하면서 대권 잠룡으로서 기지개를 켤 틈새를 만들어냈다.

경기도지사를 두 번 연임한 김 위원장은 차기 대권 주자로 거론되지만 원외 인사인 데다 당내 입지가 좁을 수밖에 없고, 대중과 만날 기회도 많지 않다. 4·29 재보선은 김 위원장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보여줄 절호의 기회였다. 김 위원장은 재선 경기도지사의 인지도를 앞세워 경기 성남 중원에서 새누리당 신상진 후보를 적극 도왔다. 서민층이 많은 지역구의 특성상 노동운동가 출신인 김 위원장의 이력이 먹혀들었다. 김 위원장은 지난 7·30 재보선에 이어 이번 재보선에서도 수도권 승리의 한 축을 담당하면서 대권 주자로서의 위상을 재확인시켰다. 김 위원장은 내년 4월 총선에서 이한구 의원의 불출마 선언으로 무주공산이 된 대구 수성 갑 지역구에 출마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김부겸 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의 ‘빅매치’가 성사된다. 이곳의 승자는 단박에 대권 주자로 올라설 수 있다.

또 다른 대권 잠룡으로 분류되는 오세훈 전 시장은 2011년 8월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실패하고 서울시장에서 물러난 후 정치권과 일정 거리를 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재보선에서 서울시당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아 서울 관악 을의 오신환 후보를 도우면서 정치 전면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오 후보가 새누리당 후보로는 27년 만에 관악 을을 탈환하는 데 성공하면서, 오 전 시장 역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 기관에서 오 전 시장을 차기 대선 주자에 포함시키는 등 만만찮은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오 전 시장은 20대 총선 출마를 기정사실화하며 “어려운 곳, 상징적인 곳에서 승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오 전 시장은 최근 대권 잠룡군에 여전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정몽준 전 의원과도 만나는 등 정치 복귀 수순을 밟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