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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세·박봉성·허영만…하위 장르를 문화 중심에 올려놓다

한국 만화 부흥기 1980년대…일본 만화와 경쟁하며 작가주의 탄생

김진령 기자·정영훈│서울문화사 콘텐츠기획팀 팀장 ㅣ | 승인 2015.05.05(Tue) 13:5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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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허영만의 대규모 전시회 <허영만, 창작의 비밀>이 열린다. 한국 만화가에게 이 정도의 대규모 전시회가 바쳐진 것은 처음이다. 허영만은 세대를 구분할 수 없는 만화가이기도 하다. ‘허영만’이란 이름을 기억하는 50대 이상 독자의 매개체는 <각시탈>(1974년)일 것이고 40대에게는 대학생 시절에 섭렵한 <무당거미>(1981년), <카멜레온의 시>(1986년), <오! 한강>(1988년)이다. 30대에게는 유아기를 함께한 <날아라 슈퍼보드>(1990년)나 <망치>(1990년)가 기억에 남을 것이다. 요즘 웹툰 세대에겐 <식객1, 2>나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2012년)로 기억될 것이다. 각기 다른 세대에게 각기 다른 이미지로 기억되는 허영만은 1980년대 한국 만화 폭발기의 주요 구성원 중 한 명이다. 허영만이라는 이름은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우리 만화를 이해하기 위한 주요 키워드이기도 하다.

1980년대에 대본소 만화 폭발

1960년대 말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대본소 만화 체제는 1980년대까지 우리 사회에서 하위 문화로 대접받았다. 이런 인식을 바꿔놓은 게 1980년대 대본소 만화의 폭발이다. <공포의 외인구단>(1982년)의 이현세, <신의 아들>(1983년)의 박봉성, <북해의 별>(1983년)의 김혜린, <요절복통 불청객>(1984년)의 고행석, <카멜레온의 시>(1986년)의 허영만 등이 내놓은 작품은 대학생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만화와 만화방을 더 이상 하위 장르가 아닌 문화의 중심으로 밀어올렸다. 만화방을 평정한 이들의 작품은 대부분 영화화되거나 드라마로 옮겨져 1990년대 이후 대중문화 장르의 공식인 ‘원 소스 멀티 유즈’의 전형이 되었다.

   
1980년대에 대본소 만화가 폭발한 이유에 대해 만화평론가인 박기수 한양대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1960년대 말에도 한국 만화가 부흥했었다. 그때는 주로 일본 만화를 베낀 게 많았다. 그런 베끼기 과정을 통해 한국형 화실 시스템이 갖춰지고 만화계로 신진 세대가 많이 유입됐다. 그렇게 유입된 신인들이 경험을 쌓고 독립해 작품을 내놓으면서 1980년대의 만화 전성시대를 열었다. 이들 1980년대의 작가들은 1960년대의 작가보다 자의식이 강했다. 특히 이들은 일본 만화라는 성공한 롤 모델을 굉장히 의식하고 경쟁심을 갖고 작업에 임했다. 박봉성·이현세·허영만 같은 작가도 알게 모르게 초기에 일본 만화에서 영향을 받았지만 그걸 극복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고 이 부분은 우리 만화사에서 나중에 긍정적으로 평가할 부분이다.”

이들의 작품엔 그 이전과는 달리 정치·사회적인 코드가 들어 있었다. 1970년대를 주름잡던 이상무 작가의 스포츠만화와 달리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은 학원물이라기보다는 당시 막 출범한 프로야구를 소재로 판타지를 가미한 성인물이었다. 순정만화에 역사를 도입해 운동권의 필독서로도 꼽혔던 <북해의 별>은 한국 만화계에 ‘대하 순정만화’라는 장르를 연 작품이다. 1980년대 당시 순정만화 팬들은 어릴 때는 <캔디>, 10대 후반부터는 <베르사이유의 장미>나 <올훼스의 창> 같은 일본산 번역 순정만화를 보는 게 공식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북해의 별>은 초반에는 일본산 에픽 스타일 순정만화의 영향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이내 자신의 스타일을 확립했다. <북해의 별>과 함께 1980년대 당시 운동권 학생의 필독서는 허영만의 <오! 한강>(1988년)이었다.

스토리 작가의 중요성 부각

<오! 한강>은 1945년부터 1987년 6월항쟁까지 한국 현대사를 다뤘다. 이전의 만화 소재가 유머나 스포츠, 성인 오락의 영역인 범죄나 도박에 국한됐다면 이 작품은 만화에 현대사와 이데올로기적 갈등을 끌어들여 한국 만화의 소재 영역을 크게 확장시켰다. 재미있는 점은 <오! 한강>이 중앙정보부의 기획 작품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대학생의 반정부 데모가 심했고 중앙정보부는 이를 줄이기 위한 방편으로 반공만화를 그려줄 것을 허영만 작가에게 제안했다. 허 작가는 “나를 믿고 연재가 끝날 때까지 간섭하지 말라. 다 읽고 난 뒤에 이데올로기란 이런 것이었구나란 생각이 들도록 그리겠다”는 조건을 달고 수락했다. 연재는 성공적이었고 대학생들 사이에서 ‘필독서’로 꼽힐 만큼 인기를 끌었다. ‘허영만이 운동권 출신’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허 작가는 “중앙정보부를 업고 그리고 싶은 만화를 그린 것이다. 어용 만화가라는 얘기를 듣지 않았고 내 만화의 질도 높아졌다. 내 만화의 전환점”이라고 말했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오! 한강>을 전후해 만화계에서도 ‘스토리 작가’(김세영)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화실이라는 공방을 통해 쏟아져 나오던 당시 한국 만화에서는 스토리 작가가 있었어도 책에는 오직 만화가의 이름만 실리는 게 관행이었다. 그러다 1980년대 한국 만화가 폭발하면서 스토리 작가의 존재감이 부각됐다. 김세영 작가가 허영만 작가와 함께한 첫 작품은 <카멜레온의 시>이고 영화로도 큰 인기를 얻은 <타짜>(2000년)에서도 호흡을 맞췄다. 1980년대의 상징인 <공포의 외인구단>에도 김민기라는 걸출한 스토리 작가가 있었다. 이현세 작가는 무협 작가 출신 스토리 작가 야설록과 호흡을 맞춰 <아마게돈> <카론의 새벽>   <사자여 새벽을 노래하라> 등 숱한 인기작을 만들어냈다.

허영만 작가는 자신의 성공 요인 중 하나로 좋은 스토리 작가를 꼽았다. 그는 “김세영과 노진수라는 작가와 호흡이 좋았다. 노진수는 <담배 한 개비>(1985년)와 <2시간10분>(1986년)의 스토리를 썼는데 <담배 한 개비>의 주인공처럼 폐결핵으로 죽었다. 개인적으로 <담배 한 개비>의 그림을 제일 좋아한다”고 회상했다.

1980년대 한국 만화의 절정기는 1990년대 만화잡지 전성시대로 이어지면서 붐을 이어나가다 1997년 외환위기를 전환점으로 쇠락하기 시작했다. 당시 많은 만화가가 생계를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거나 학습만화지 시장으로 이동했다. 이후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국내 만화잡지는 급격히 힘을 잃어갔고 2004년 강풀이 포털 사이트 다음에 <순정만화>라는 웹툰을 시작하면서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다. 강풀과 함께 웹툰의 양대 톱으로 불리는 <야후>(1998년), <이끼>(2008년), <미생>(2012년)의 작가 윤태호는 허영만 작가의 화실에서 2년 동안 문하생 생활을 했다. 그의 출세작 <야후>는 만화잡지에 연재한 것이었고 그를 되살린 <이끼>는 웹툰이다.

웹툰 시대에 1970년대부터 작업을 시작한 작가 중에는 허영만 작가가 거의 유일한 현역 작가다. 종이 작업을 고집했던 허 작가는 2년 전 <식객2>를 시작하면서부터 컴퓨터로 작업해 카카오스토리라는 새로운 플랫폼에 연재했다. 

허영만 빼곤 대부분 현역에서 사라져

허 작가가 1970년대에는 이상무 작가의 ‘독고탁’에게 밀려서, 1980년대에는 이현세 작가의 ‘까치’에 밀려서 만년 2인자였다는 일화는 만화계에서 유명하다. “과거에 함께 어깨를 견줬던 동료 작가가 안 보이는 게 서글프다. 나는 항상 2등이었다. 지금 나 혼자 있으니까 할 수 없이 1등인 것이다. 내가 그림을 잘 그린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나보다 잘 그리는 동료가 남아 있지 않을 뿐이다. 나는 나 스스로를 못살게 군다. 그래서 조금씩 발전했다. 내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한마디로 부지런을 떨었기에 가능했다.”

다윈의 <종의 기원>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변화에 살아남은 자가 강하다’는 것이다. 많은 인기 작가가 자신의 성공작에 안주하고 있을 때 허영만 작가는 시대의 변화에 맞춰 소재를 찾고 매체를 갈아탔다. 그의 이름을 알린 1970년대의 <무당거미> 시리즈는 복싱을, 1980년대 프로야구를 다룬 <제7구단>과 민주화를 다룬 <오! 한강>, 샐러리맨의 애환을 다룬 <미스터Q>에서 음식 만화 <식객>, 그리고 현재 커피 만화 <커피 한잔 할까요?>까지 대중의 트렌드와 급변하는 창작 환경을 따라잡으며 갈라파고스의 핀치새보다 더 빠르게 진화했다. <비트>를 준비하면서 그가 수많은 스케치를 통해 그림체를 젊은 스타일로 크게 바꾼 것은 유명한 일화다.    

1980년대 만화 폭발 시대의 주역은 허영만 작가 정도를 제외하고는 현역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윤태호 작가의 예에서 보듯 이들의 유산은 웹툰 시대의 자양분으로 작용하고 있다.

 


“돈 벌고 잃는 사람 얘기 취재하고 싶다” 
허영만 작가 인터뷰


   
ⓒ 시사저널 이종현
<허영만, 창작의 비밀>은 현역 만화가에게 바쳐진 첫 번째 대규모 개인전이기도 하다. 허영만 작가(68)는 “이 전시는 작업 40년을 끝내는 게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해나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전시”라고 계속 전진할 것임을 강조했다.

그는 40여 년의 현역 생활을 통해 215개의 작품을 발표했다. 한 가지 제목에 적어도 세 권 이상, 많게는 10권 이상 발매됐기에 권수로 따지면 수천 권의 만화를 그린 셈이다. 그는 “내가 215개 타이틀이나 그렸다는 것을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처음 알았다. 부끄럽다”고 했다. 대본소가 만화의 주 유통 경로였던 1970~80년대에는 생계를 위해서라도 무지막지하게 쏟아내야 했던 것.

그는 자신이 여성 캐릭터에 약한 점을 인정했다. “처음에 등장했던 여성 캐릭터가 나중에 가면 없어진다(웃음). 그게 내 단점이다. 신경을 쓰는데도, 여성을 싫어하는 것도 아닌데…. 여성을 예쁘게 못 그려서 없어지는 것 같다.”

그는 당분간 연재 중인 <커피 한잔 할까요?> 작업에 집중할 예정이다. <망치> <날아라 슈퍼보드> 같은 아동용 만화 작업 요청도 계속 들어오지만 “그때는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라 그렸고 지금은 다 커서 나갔기에 그릴 수 없다. 다 때가 있는 것이다. 지금은 실버만화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그 세대니까”라고 답했다.

최근 관심을 갖고 있는 소재는 돈에 관한 이야기다. 외국계 은행에 다니는 사위가 돈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줬는데 “<타짜> 취재를 할 때의 그 느낌을 받았다”며 강한 호기심을 보였다. “돈을 벌고 돈을 잃는 과정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취재하고 싶다. 그 부분을 더 해볼 것이다.”

호기심 강한 그가 만화를 그리지 않았다면 어떤 일을 했을까. “내게 맞는 직업은 등대지기다. 매일 바다를 볼 수 있고, 월급 많이 주고, 오가는 사람도 많지 않고…. 그런데 그걸 알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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