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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우리를 보고 있다

모란미술관 개관 25주년 기념 ‘마나오 투파파우’전

조은정│미술평론가 ㅣ 승인 2015.05.07(Thu) 17:2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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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위에 나신으로 길게 엎드려 있는 소녀 뒤로 검은 옷을 입은 인물이 서늘한 시선을 드러내는 그림을 고갱은 ‘마나오 투파파우(Manao Tupapau)’로 명명했다. 최고의 풍광 아래 가장 멋진 미술관이란 찬사를 들어온 모란미술관 전면에는 개관 25주년을 알리는 현수막 위에 ‘마나오 투파파우’란 글씨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마나우 투파파우란 말이 전시명으로 차용되었다는 사실은 의외지만 금세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것이기도 했다.

‘죽은 영혼이 보고 있다’고 해석했을 때, 모란공원묘지를 배경으로 한 장소에서의 전시에 기막히게 들어맞는 선택이다. ‘죽음이 우리를 보고 있다’고 해석했을 때, 더 이상 갑작스러운 죽음에 놀라지 않는, 심지어 고갱의 그림 속 테후아처럼 16세 소녀조차 피해가지 못하는 그것에 대해 성찰하게 되는 것이다. 이 놀라운 언어의 마술은 전시실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모든 작품에 대해 죽음을 생각하게 하는 동시에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① 모란미술관 ‘마나오 투파파우’전 전시장.
② 정현, <무제>, 38.5x26x32cm, 석고, 1988
죽음 앞에서 더 크게 울려 퍼지는 생의 찬미

전시실은 크게 두 개의 선으로 직조되어 있는데 전통과 현대, 삶과 죽음이 그것이다. 전시실 안은 작품의 연대도, 장르도 뒤죽박죽이며 작품 간 거리가 균일하지도, 전시실마다 정제된 느낌도 존재하지 않는 혼성(混成) 그 자체의 복잡성을 보여준다. 여기서는 우월한 전통도, 세련된 현대성도 인정되지 않는다. 오직 강한 존재성, 그 힘만이 작품에 아우라를 부여하고 인상 짓게 한다. 작품 자체의 의미와 형식에만 집중하게 하는 원리, 그것은 ‘조화’를 염두에 두지 않은 데서 출발한다. 작품 개개에 힘 부여하기라는, 그야말로 동네 애들 힘겨루기의 원리가 외부적 요소를 배제한 채 작품에 집중하게 한다. 그래서 전시실을 돌아보는 것은 부조리한 곳에 발을 들여놓은 이상한 세계의 모험과도 같다.

죽은 자를 위한 공간인 사당과 위패를 그린 <감모여재도>는 사당을 갖지 못한 영혼의 안식처다. 소박한 민화의 필치는 조상을 위한 후손의 강한 기원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손에게 복을 내릴 수 있는 죽은 자의 산 자에 대한 영향력을 확인시켜준다. 죽은 자의 세계와 산 자의 세계를 연결시켜주는 매개체인 무당과 그의 신들이 등장하는 <무신도>는 죽음과의 소통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죽은 자의 시신을 묻으러 가는 길에 사용하는 칠성판이나 상여 장식은 물질적 죽음 자체에 대해 인식을 변화시키는 장치다. 이승의 다른 길로 떠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또 다른 세계로의 진입이라는 선인들의 생각이 이들 장치에 배어 있다.

동양이나 서양에서 다를 바 없는 인간의 일이 죽음임을 여러 전시실에 흩어져 있는 조각이 친절히 일러준다. 더 이상 덜어낼 것 없는 단순한 형태와 커다랗고 과장된 얼굴의 가면은 모두 죽음의 실체다. 죽음의 신, 저승사자의 모습은 너무도 강한 힘을 가진 존재여서 누구나 그 앞에 복종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심각한 질문 앞에서 근대기 어느 즈음의 청나라 사신 모습의 저승사자를 통해 현실적인 외교 문제가 죽음의 이미지로 변환된 것을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죽음은 삶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① 이중섭, <아이들>, 11.4x15.1cm, 은지에 새김, 유채, 미상
② 파푸아뉴기니 원주민의 가면.
③ 권여현, <011-100-루 살로메Lou Salome in magic forest>, 130x163cm, Oil on canvas, 2011
강력한 삶을 위해서는 그보다 더 강력한 힘인 죽음을 잊지 않게 하는 것이다. 로마에서는 개선장군의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고 외치는 노예를 따르게 했다. 지상 최고의 순간, 온갖 어려움을 헤치고 죽을 고비를 넘어서 고향으로 돌아온 장군에게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을 수없이 되새기게 만드는 장치인 것이다. 물론 죽음의 예화를 통해 겸허함을 일깨우는 신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그 힘의 현실적 사용이 부질없음을 말하는 황제의 경고이기도 하다. 삶과 죽음, 욕망과 절제는 그렇게 하나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메멘토 모리의 다양한 변주는 자신의 피로 동결한 자기 얼굴을 보여주는 마크 퀸에서부터 데미안 허스트의 다이아몬드 해골에 이르기까지 현재도 미술사의 주요한 테제로 위치한다.

삶을 위한 장치, 죽음의 진면목과 조우

권여현의 현란한 우의들 속에서는 문학의 상징을 통한 죽음의 이미지를 접할 수 있다. 김원숙의 몇몇 작품은 삶의 덧없음을 보여주며 김아타의 불확실한 이미지들 또한 그 허상의 세계를 시각화한다. 죽음의 모습은 삶에의 집중을 동반해 문화적 상징의 모습을 띠기도 한다. 송담의 달마, 박희선의 외침, 신상호의 동물의 머리 등은 희생과 삶의 순환성을 인정하게 한다. 엄태정의 조각이 묵시록과 닮아 있고, 오수환의 치열한 화면이 생과 사의 분투이며 이두식의 표면이 인생을 닮은 허무한 것이었음을 맛볼 수 있음도 전시명 ‘마나오 투파파우’의 교훈 덕이다. 천경자의 싱그런 아프리카의 어느 장소, 죽음을 상기시키는 허윤희의 드로잉과 사후 세계를 보여주는 혜담의 불화가 모두 문화적인 죽음의 이해 코드임을, 그래서 더 삶에 치열할 것을 주문하는 것임을 느끼게 된다.

이 삶과 죽음이 불분명함을 강조하기 위해 혼성의 아우성을 택한 공간에서 이중섭의 아이들을 복도에 배치한 것은 참으로 묘미다. 새로운 삶을 사는 아이를 보며 한낱 실 같은 희망, 이 생이 끝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의 작동을 보게 하는 것이다. 혼돈은 생명의 상징일 터, 그 생의 찬미가 울려 퍼지는 한가운데서 ‘죽음이 우리를 보고 있다’를 인지한다. 삶을 위한 장치, 죽음의 진면목과 조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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