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리스트 수사, ‘친박’은 어디 갔나
  • 조해수·이승욱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5.05.11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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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이완구 기소 선에서 마무리 전망 검찰에서도 “차라리 특검 가자”

5월8일 홍준표 경남도지사 소환조사. 수사 착수 한 달째를 맞은 ‘성완종 리스트’ 검찰 특별수사팀(팀장 문무일 대전지검장)의 성적표다. 그동안 특별수사팀은 홍 지사의 수뢰 혐의에 집중했다. 홍 지사 외에는 증거 인멸을 이유로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측근을 구속하고 회사를 압수수색한 것이 전부다. 이 와중에 당초 성완종 리스트의 핵심으로 지목됐던 2012년 대선 자금 수사는 증발해버렸다. ‘친박(親朴)’이 아닌 홍 지사와 이미 버린 카드인 이완구 전 총리의 기소 정도로 검찰 수사가 마무리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야당에서는 특검 도입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4·29 재보선 참패로 동력을 잃어가는 모양새다.

홍 지사는 2011년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당 대표 경선 때 성 전 회장으로부터 1억원을 받은 의혹을 받고 있다. 이를 뒷받침할 증거로 “2011년 6월 부인이 운전하는 차량을 타고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 도착했고, 707호 홍준표 의원실을 방문해 홍 지사에게 직접 돈이 담긴 쇼핑백을 건넸다”는 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의 진술이 나왔다. 쇼핑백을 챙긴 이가 나경범 경남도청 서울본부장이고 만남을 주선한 이는 강 아무개 전 비서관이라는 진술도 첨부됐다. 검찰 관계자는 “성 전 회장이 유명을 달리했고, 리스트를 입증할 만한 명확한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면서 “지금 상황에선 돈 전달자의 구체적 진술이 나온 홍 지사 건의 수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 다른 정치적 고려는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5월8일 ‘성완종 리스트’와 관련해 검찰 소환조사를 받기 위해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고등검찰청으로 출석하던 중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홍문종 2억 수수 의혹은 왜 수사 안 하나”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친박 무죄, 비박 유죄’라는 말이 나온다. 최근 한 아무개 전 경남기업 재무담당 부사장은 “성 (전) 회장의 지시로 2012년 대선 때 (새누리당) 캠프 부대변인 김 아무개씨에게 2억원을 전달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검찰은 이 돈이 홍문종 의원에게 전달됐다는 2억원인지 살펴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전병헌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은 “홍 의원은 홍 지사와 비슷한 혐의로 전달자가 특정됐고, 금액은 두 배, 시기도 (홍 지사에 비해 더) 가깝다”며 “홍 의원과 서병수 부산시장, 유정복 인천시장은 어디로 증발했나. 전·현직 (청와대) 비서실장들은 어디로 실종됐나. 몸통인 친박은 사라지고 꼬리인 비박만 남은 것은 스스로 ‘친박 게이트’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홍 지사의 대응 모습도 흥미롭다. 홍 지사는 성완종 리스트가 공개된 4월 중순에는 “성 전 회장의 일방적인 주장” 내지는 “마녀사냥”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돈 전달자로 알려진 윤 전 부사장의 진술이 나오고, 검찰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20년 전에는 내가 팻감으로 사용되었지만, 이번에는 팻감으로 사용되지 않을 것이다”는 말을 지난 5월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친박의 방패막이를 위한 희생양이 되지 않겠다는 말이다. 검찰을 넘어 청와대에 보내는 경고 메시지인 셈이다.

검찰도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좁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문을 통해 친박 실세들의 이름이 거론된 것에 대해 단 한 번 ‘유감’이라고 표현했을 뿐, 오히려 “(노무현 정부 시절) 성완종 전 회장에 대한 연이은 사면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야당 쪽 정치자금 수사도 같이 진행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을 가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밖으로는 지켜보는 눈이 많고, 안으로는 훈수 두는 손이 많다. 검찰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홍 지사 기소는 문제없을 것이다. 이 전 총리는 무리를 해서라도 기소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이 정도까지 해놓으면 검찰로서는 할 만큼 한 것이다. 그다음부터는 정치논리 아니겠는가. 어차피 특검으로 갈 것이면 하루빨리 그렇게 되는 것이 좋다”고 토로했다.

 


‘모래시계 검사’ vs ‘교본 검사’ 대결 


이른바 ‘검(檢)의 전쟁’이다. ‘모래시계 검사’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5월8일 결국 소환됐다. 검찰을 떠난 지 20여 년 만에 피의자 신분으로 ‘친정’을 찾은 것이다. 홍 지사는 2011년 6월께 한나라당 대표 경선을 앞두고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1억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홍 지사에 대한 소환조사가 이뤄지면서, 선후배 검사 사이에 치열한 법리 공방이 시작됐다.

검찰은 홍 지사의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사건 초기만 하더라도 성 전 회장의 망자(亡者) 증언을 두고 범죄 요건을 구성하는 데 무리라는 분석도 나왔다. 법리에 밝은 홍 지사도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둔 듯 “망자 증언이나 메모로 혐의를 입증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성 전 회장의 측근이자, 홍 지사 캠프에서 일했던 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의 증언이 나오면서 달라졌다. 검찰은 윤 전 부사장을 4차례 조사하면서 성 전 회장으로부터 윤 전 부사장을 통해 홍 지사 측으로 돈이 흘러들어간 구체적 정황을 확보했다. 또 홍 지사 주변 계좌를 추적하고 중앙선관위로부터 입수한 대표 경선 자금 회계 처리 서류 등을 분석하면서 자금의 흐름을 짚고 있다.

그러나 윤 전 부사장 진술의 진위를 가려야 하는 것은 여전히 검찰의 몫이다. 검찰은 윤 전 부사장의 진술을 뒷받침할 정황을 찾기 위해 국회사무처 등을 압수수색했지만 시간이 많이 흘러 관련 자료를 찾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홍 지사 측은 향후 윤 전 부사장의 진술을 반박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홍 지사의 혐의가 비단 정치자금법 위반만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홍 지사의 측근들이 조직적으로 윤 전 부사장에게 회유를 시도하고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자금법은 뇌물죄와 달리 불구속 수사를 하는 등 양형 기준이 높지 않기 때문에 영장 청구 가능성이 크지 않을 것으로 봤다. 금액도 1억원이면 영장 청구 제시 기준인 2억원에 다소 못 미친다. 그러나 홍 지사가 윤 전 부사장에 대한 회유를 시도하는 데 연루되었거나 증거를 인멸한 정황을 검찰이 별도로 포착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홍 지사도 5월8일 검찰에 출두하면서 1억원 수수에 대해서는 “국민에게 염려를 끼쳐 송구하다”고 밝혔지만, 회유 의혹에 대해서는 강하게 부인하는 등 적극 해명했다. 검찰로서는 홍 지사 측을 압박할 수 있는 히든카드를 쥐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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