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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한국의 가벌] #26. 김종필·정일권·이효상 등 정계 거물과 사돈 맺어

창업주 이원만의 막내딸은 허영인 SPC 회장과 혼례

소종섭│편집위원 ㅣ | 승인 2015.05.14(Thu) 16: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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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 동포들에게 의복을 주자고 결심했습니다. 헐하고 질긴 의복을 우리 동포들에게 입히고, 부녀자들을 빨래의 고통에서 해방시키고, 부녀자들의 양말 뒤꿈치를 꿰매는 고역의 생애를, 그렇게 하지 않고 편하게 살 수 있는 생애로 전환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 한국에서 처음으로 나일론 원사를 생산했습니다.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말 그대로 인간 생활에서는 의복이 날개입니다. 우리 민족도 잘 입고 떳떳이 밖으로 나가 세계의 다른 민족과 경쟁해 이겨야 합니다.”

코오롱그룹 창업주인 이원만은 1963년 우리나라 최초의 나일론 원사공장 준공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원만은 나일론을 한국에 처음 들여온 사람이다. 그는 그룹 이름도 거기에 착안해 지었다. Korea의 ‘Ko’와 Nylon의 ‘lon’을 합쳐 Kolon이라고 한 것이다.

   
2014년 11월12일 경기도 용인시 코오롱인재개발센터에서 열린 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 영결식에서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이 분향을 하고 있다. ⓒ 뉴시스
이원만은 1904년 9월7일 경상북도 영일군 신광면(현 포항시 북구)에서 부친 이석정과 모친 이사봉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모친은 이원만을 낳을 때 오색구름이 바다를 건너가는 꿈을 꾸었다. 이원만의 호 오운(五雲)은 이 태몽에서 유래했다. 불행히도 이원만의 형 4명은 어릴 때 모두 병으로 죽었다. 이원만 또한 아버지 이석정이 오래된 감나무를 베어낸 후 갑자기 쓰러졌다. 의사는 살 가망이 없다고 했으나 떡시루 속에서 밤을 새우면 신령이 화를 풀어 목숨을 구할 수 있다는 무당의 말을 들은 이석정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무당의 말을 따랐다. 이원만은 그 후 기적같이 살아났다.

이석정은 이원만이 6세 때 독선생(한 집 아이만 가르치는 일종의 과외교사)을 붙여 <자치통감>과 경서 등 한학을 가르쳤다. 이석정은 “너는 퇴계 이황의 스승이었던 회재 이언적 선생의 16대 손이다. 많이 배워서 큰일을 하여라”고 말하곤 했다. 한 해에 500석 정도의 쌀을 수확하는 부농이었던 이석정은 신식 교육을 하는 학교가 들어서자 이원만을 입학시켰다. 아들을 위해 전심전력했던 이석정은 이원만이 16세 되던 1919년 세상을 떠났다.

   
국내 최초 나일론공장으로 큰 성공

이원만은 이듬해인 1920년 이위문과 혼인했다. 6년제 보통학교에 5학년으로 편입해 한문에 이어 수학을 공부했다. 부친 이석정이 세상을 떠난 뒤 이원만에게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6촌 형 이원기였다. 그는 대구에서 도지사가 임명한 도평의원을 지내고 있었다. 이원기의 도움으로 19세 때 경북산림조합 기수보(산림 자원을 관리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로 취직한 이원만은 편안한 삶을 살고 있었다. 키는 작아도 강단이 있어 씨름대회에 나가 우승해 상금으로 여러 차례 황소를 타기도 했다. 이 때문에 ‘노랑장군’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그러다가 일본에 다녀온 친구 정만수를 만나 자극을 받고 뜻한 바 있어 1933년 29세 때 일본으로 건너갔다.

오사카에서 신문도 배달하고 이곳저곳 일자리를 전전하던 이원만은 1935년 5월 ‘아사히공예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이원만은 훗날 경영권 분쟁을 겪기도 한 동생 이원천을 오사카로 불러 공동으로 사업을 펼친다. 이원만은 지금이야 보편화됐지만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방법인 모자에 회사 이름을 새겨넣는 이른바 ‘광고 모자’를 만들어 ‘대박’을 터뜨렸다. 직원 1000명을 두고 하루에 4만개의 모자를 만들어도 모자랐을 정도로 불티나게 팔렸다. 1937년 이원만은 아들 이동찬까지 오사카로 불렀다. 회사 이름도 ‘아사히피복회사’로 바꿨다. 불과 4년 만에 그는 일본에서 사업가로 성공했다.

이원만은 1945년 해방이 되자 동생 이원천에게 일본 공장을 맡기고 귀국했다. 그의 나이 42세, 고향을 떠난 지 13년 만의 금의환향이었다. 살 집을 마련하고 일본 사람이 운영하던 대구의 한 직물공장을 인수해 ‘경북기업주식회사’를 차렸다. 6촌형 이원기는 이원만에게 정치를 해보라고 권유했다. 이원만은 한민당에 입당해 경북도당 청년부장을 맡았다. 이원만은 1948년 5·10 선거 때 경북 영일 갑구에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다시 일본으로 간 이원만은 아사히방적공업주식회사와 삼경물산을 설립했다. 삼경물산은 나일론 수출로 큰 성공을 거뒀다. 아들 이동찬은 서울 청진동에 삼경물산 국내 총판인 개명상사를 설립했다.

   
2002년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의 칠순 즈음에 온 가족이 모였다. ⓒ 시사저널 포토
창업주 이원만, 공화당 국회의원 지내

이원만이 코오롱의 전신인 ‘한국나이롱주식회사’를 세운 것은 1957년 4월이다. 국내 최초의 나일론 제조공장이었다. 이원만이 회장, 동생 이원천이 사장, 장남 이동찬이 전무였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경영과 재일경제동우회 활동을 하던 이원만은 한민당의 전통을 잇는 민주당을 지지했다. 4·19 혁명의 열기로 들끓던 1960년, 55세였던 그는 8월12일 실시된 선거에서 경상북도 참의원 후보로 출마해 당선했다. 임기는 3년, 당선자 중 사업가는 이원만뿐이었다. 그러나 이듬해 5·16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참의원 생활은 9개월로 끝났다.

이원만과 관련해 재미있는 일화는 1963년 9월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주재한 경제간담회에서 장난감 뱀을 흔든 일이다. 당시 이원만은 가방에서 장난감 뱀을 꺼내 흔들며 “이 뱀은 돈이 되는 뱀이다. 헌 고무 타이어 조각으로 만들어 일본이 외국에 수출해 돈을 벌어들이는 효자 상품이다”고 말하고, 대한민국이 살기 위해서는 공업화로 가야 한다고 역설해 분위기를 주도하며 박정희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박정희의 요청으로 다음 날 다시 그를 만난 이원만은 수출공업단지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래서 탄생한 것이 ‘구로공단’이다. 1963년 10월12일 한국 수출산업공업단지가 발족되자 이원만은 창립위원장을 맡았다. 1965년 첫 삽을 뜬 구로공단은 1967년 4월 완성됐다. 이원만이 세운 한국나이롱주식회사는 1964년 1월1일 가동을 시작하며 구로공단 첫 입주 회사가 되었다. 이원만은 구로공단 건설과 함께 산림을 보호할 수 있는 아이디어로 전국에 흩어져 있는 전봇대를 나무에서 시멘트로 바꾼 장본인이기도 하다. ‘산림녹화’라는 말을 일본에서 듣고 국내에 맨 먼저 유행시키기도 했다.

이원만은 자유당 시절부터 유석 조병옥 박사와 절친했던 이유도 있어 6·25 피난 시절 자신의 집을 내무부장관 관저로 내줬다. 이승만 대통령과 모든 각료들이 신세를 졌다. 1963년 대구 동구에서 공화당 소속으로 6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원만은 7대 국회의원까지 지냈다. 당시 공화당을 상징하는 마크가 황소여서 ‘쇠꼬리 잡고 서울로 간다’고 말해 기자들을 웃기기도 했다.

1972년 이원만은 동생 이원천에게 한국나이롱주식회사 회장직을 물려주었다. 아들 이동찬은 사장이 됐다. 몇 년 후 한국나이롱과 한국폴리에스텔을 통합해 코오롱이라고 이름을 짓고 1977년 이동찬에게 회장직을 맡겼다. 그는 오래전부터 아들 이동찬을 후계자라기보다는 경영 동료로 인정했다. 이동찬도 “일본에서 초기부터 회사를 맡아서 경리를 했다. 아버지하고 같이 공장을 했으니 나는 1.5세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동찬은 아버지 이원만에 대해 이렇게 평한 적이 있다. “아버지는 누구보다도 인생을 참 재미있게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남의 눈치 보는 것 없이 살아오신 분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상황이 닥치면 판단하는 게 다르다. 통도 크고 의리도 있지만 뭔가 강력한 원칙이 있다.” 이동찬은 1996년 아들 이웅열에게 경영권을 넘겼고, 이원만은 1994년 2월14일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동찬은 2014년 세상을 떴다.

코오롱그룹 딸과 며느리들 이대 출신 다수

이원만은 이위문 여사와의 사이에 2남 4녀를 뒀다. 장남은 이동찬 전 코오롱그룹 회장이다. 경북 월성의 기계공립소학교를 전교 1등으로 졸업하고 포항에서 제일 큰 잡화점인 오오시다 상점에서 점원 생활을 하던 이동찬이 아버지 이원만의 편지를 받고 일본으로 간 것은 15세 때였다. 이동찬은 “1년 이내에 어떻게든 아버지를 설득해서 어머니를 일본으로 모시고 갈 테니까 보내달라. 만약 아버지가 허락을 안 하면 내가 돌아오겠다”고 어머니에게 말하고 일본으로 갔다. 이동찬의 아호는 ‘우정(牛汀)’이다. 아호를 지어준 사람은 언론인 최석채였다. 그는 ‘급한 성격 죽이고 알아도 모른 척 소처럼 살아가라’는 뜻을 아호에 담았다.

이동찬은 부친 이원만과 작은아버지 이원천이 경영권 다툼을 벌이는 것을 본 이후 그룹 경영에 집안사람을 쓰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이동찬은 이렇게 회고한 적이 있다. “회사 내에 집안사람, 가까운 사람, 형제끼리는 절대 사업을 같이 안 한다고 결심했다. 사위가 다섯이나 있지만 회사 주주가 된 사람이 하나도 없다. 사위만이 아니라 친척이나 형제라도 사업을 같이 하면 안 된다는 게 내 확고한 생각이다.”

이동찬의 결혼은 지금 돌아봐도 초스피드였다. 일주일 만에 평산 신씨가(家) 신병옥의 무남독녀 신덕진과 맞선을 보고 혼인했다. 일본에서 군 입대를 앞두고 있던 상황이어서 군에 가면 죽을지도 모르니 후손이라도 남겨야 한다고 이원만이 재촉해 급하게 결혼했다. 이동찬은 첫날밤만 보내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야 했다. 이동찬과 신덕진은 슬하에 1남 5녀를 뒀다.

외아들인 이웅열 코오롱 회장은 서병식 동남갈포 회장의 외동딸 서창희와 결혼했다. 두 사람은 이웅열의 큰누나인 이경숙의 소개로 만났다. 이경숙과 서창희는 이화여대 사회학과 선후배 사이다. 코오롱그룹 여자들과 며느리들은 모두 이화여대를 나왔다. 이웅열의 장남 이규호는 미국 코넬 대학에서 호텔경영학을 공부한 후 현재 코오롱인더스트리 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두 딸인 이소윤·소민은 미술을 공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육영수 적극 주선으로 JP와 사돈 맺어

이동찬의 장녀 이경숙은 1969년 이효상 전 국회의장의 셋째 아들 이문조와 혼례를 올렸다. 이효상은 국회의장, 공화당 총재, 영남학원 이사장 등을 역임한 TK(대구·경북) 인맥의 대부 격이다. 이문조는 영남대 정치학과 교수를 지냈다. 천주교 대구교구장 등을 지낸 이문희 대주교는 이효상의 둘째 아들이다. 차녀 이상희는 고홍명 한국빠이롯드만년필 회장의 장남 고석진 전 빠이롯드전자 회장과 결혼했다. 3녀 이혜숙은 이학철 고려해운 창업주의 장남 이동혁 고려해운 회장과 혼인했다. 이동혁 회장의 여동생은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의 부인 이운경이다. 4녀 이은주는 신병현 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의 장남 신영철과 결혼했다. 신병현은 한국은행 총재와 상공부장관, 무역협회장, 은행연합회장 등을 역임했다. 신영철은 의사다. 신병현의 딸 신수연은 봉명그룹 창업자인 이동녕의 아들로 신한국당 국회의원을 지낸 이승무와 결혼했다. 5녀 이경주는 개인사업을 하는 최윤석과 결혼했다.

이원만의 장녀 이봉필은 고향 근처 임병진의 아들 임승엽과 결혼했다. 조달청 내자국장을 지낸 임승엽은 코오롱그룹 부회장을 역임했다. 차녀 이애란은 개인사업을 하는 노영태와 혼인했고, 3녀 이미자는 당시 포항의 대지주였던 박문학의 장남 박성기 전 한국바이린 사장과 결혼했다. 경영학 박사인 박성기는 삼경개발 사장과 코오롱호텔 사장을 거친 뒤 다국적 기업인 한국바이린 사장을 지냈다.

이원만의 차남인 이동보 전 코오롱TNS 회장은 1974년 제3공화국의 실세였던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장녀 김예리와 결혼했다. 당시 영부인이었던 육영수 여사가 적극 주선했다. 하지만 이들 부부는 성격 차이로 이혼했다. 이동찬은 “JP하고 사돈이 되기 전에는 골프도 한두 번 쳤다. 그러나 사돈이 된 뒤에는 그와 골프 한 번 쳐본 적이 없다. 찾아간 일도 없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막내딸 이미향은 허창성 삼립식품 창업주의 둘째 아들 허영인 SPC 회장과 혼례를 올렸다. 이미향의 아들 허진수 파리크라상 전무는 이생그룹 박용욱 회장의 딸 박효원과 결혼했다. 박용욱은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의 동생이다. 이원만의 동생인 이원천 코오롱TNS 전 회장의 아들은 정일권 전 국무총리의 딸 정희경과 혼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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