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잡은 검찰, ‘홍문종 2억’에서 급제동
  • 이승욱 기자 (gun@sisapresss.com)
  • 승인 2015.05.21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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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종 리스트’ 의혹 수사, 2012년 대선 자금까지 갈지 불투명

살아 있는 ‘현재 권력’ 앞에 이르자 주춤거리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성완종 리스트’ 의혹을 철저히 규명하겠다고 공언했던 검찰이 박근혜 대통령의 2012년 대선 자금 수사로 확대될 수 있는 ‘친박(親朴)’ 핵심 실세들 수사를 앞두고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팀장 문무일 검사장)은 홍준표 경남도지사(5월8일)와 이완구 전 국무총리(5월14일)에 대한 소환조사를 마무리했다. 아직 기소 절차가 남아 있지만 4월13일 발족한 후 지난 한 달 동안, 두 거물 정치인의 의혹 규명에 진력해온 검찰 수사가 일단락되는 셈이다.

검찰 “비밀 장부 존재 가능성 떨어져”

하지만 수사가 전환점을 맞으면서 회의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홍 지사와 이 전 총리의 소환조사가 이뤄지자마자 검찰 안팎에서 ‘검찰 수사 한계론’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4월10일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이 국회에서 ‘성완종 리스트’ 와 관련해 질문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
5월14일 이완구 전 총리에 대한 소환조사가 이뤄지기 무섭게 검찰 내부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는 수사에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특별수사팀 관계자는 “(이 전 총리 소환조사 이후 검찰 수사의) 일정이나 계획은 세우고 있고 차분하게 가고 있다”면서도 “혹시나 쉼 없이 달려오다 보면 (자료와 진술 등을) 확보했는데도 그 중요도나 가치에 대해 놓쳤을 수 있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측이 정치권에 건넨 비자금의 리스트를 정리한 ‘비밀 장부’의 존재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비밀 장부 존재 확인 여부에 대해 “아직 하고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존재) 가능성은 좀 떨어지지 않느냐고 판단하고 있다”며 “이렇게 뒤졌으면, 있으면 지금은 나와야 하는데 서류의 형식이나 자료 뭉치의 형식으로 있는 건 아니지 않겠느냐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검찰 내부 분위기는 홍 지사와 이 전 총리 수사 이후, 검찰 수사가 한 발짝 더 나아가기는 어렵다는 점을 에둘러 설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검찰의 속도 조절론이나 수사에 회의적인 시각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대선 자금 수사로 비화할 수 있는 친박 인사들에 대한 수사를 피하기 위해 출구 전략을 짜야 하는 검찰이 여론 정지 작업을 하는 것 아니냐’며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애초 검찰의 성완종 리스트 수사가 시작된 초기부터 검찰 수사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성 전 회장의 유품으로 발견된 여권 유력 인사 8인의 메모에는 등장하지만, 성 전 회장의 마지막 육성 인터뷰에서 구체적인 금품 전달 시기나 정황이 나오지 않은 인사는 유정복 인천시장, 서병수 부산시장,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 등이다. 그나마 구체적인 시기나 금품 액수가 드러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나 허태열 전 비서실장의 경우, 정치자금법의 공소시효(7년)가 지났다는 점에서 기소를 전제로 수사를 하는 검찰이 쉽게 손을 대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검찰 수사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여지가 없지는 않다는 게 법조계와 정치권의 분석이다. 검찰 소환 1호가 된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1억 수수설을 뒷받침하는 정황과 유사한 정황이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의 조직총괄본부장을 맡았던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의 2억 수수 의혹에서도 포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성 전 회장은 경향신문과의 생전 마지막 인터뷰에서 “(2012년) 대선 때 우리 홍문종 같은 경우도 본부장 맡았잖아요…제가 한 2억 정도 이렇게 줘서…조직을 관리하니까…현금으로 줬죠”라고 밝혔다. 성 전 회장은 자살 직전 자신이 직접 작성한 8인의 리스트에 홍 의원의 이름과 함께 2억원을 기록했다.

특히 홍 지사의 경우처럼 중간 전달자의 증언이 등장한다는 점에서도 유사하다. 홍 지사는 성 전 회장의 폭로가 있은 직후 관련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금품 전달 과정에 관여했다는 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으로부터 일관된 진술이 나오면서 검찰의 수사가 탄력을 받았다. 홍 의원의 2억원 수수 의혹과 관련해서도 중간 전달자가 등장하고 있다. 한 아무개 전 경남기업 재무담당 부사장은 “성 전 회장의 지시로 2012년 대선을 즈음해 캠프 관계자인 김 아무개씨에게 2억원을 전달했다. 경남기업 회장실을 방문한 김씨에게 돈을 줬다”고 검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김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경남기업 측에서) 돈을 받은 적도 없을 뿐만 아니라 (성 전 회장의) 사무실에 간 적도 없고, 한 전 부사장은 알지도 못한다. 충청포럼을 통해 성 전 회장 등과 친분을 쌓아온 것은 맞지만 돈을 받은 적이 없다. 2012년 대선 때도 홍 의원과는 함께 일한 적도 없고 돈을 전달할 위치에도 있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아직까지 한 전 부사장이 전달한 2억원의 최종 도착지가 홍 의원이라는 점은 확인되지 않았다. 그 돈이 홍 의원과 관계가 없을 수도 있다. 한 전 부사장은 “(2억원이) 최종적으로 누구에게 전달되는 것인지는 모른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박근혜 후보 캠프 관계자를 정확히 전달자로 지목했고, 그 상황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진술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특히 성 전 회장의 생전 인터뷰를 감안하면 그가 홍 의원에게 건넸다고 주장하는 2억원과의 연관성이 의심되기도 한다. 하지만 검찰은 한 전 부사장의 진술이 나온 것으로 알려진 5월 초 이후, 지금까지 김씨를 소환하거나 압수수색 등을 별도로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홍준표 1억’과 ‘홍문종 2억’ 큰 차이 없어

불법 정치자금 사건의 경우, 금품 전달자가 검찰 수사의 결정적인 단서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여러 거물급 정치인의 불법 정치자금 수사에서 전달자의 진술이 주효하게 작용했다는 과거 사례도 있다. 검찰은 2009년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정무특보를 지낸 이강철 전 특보를 불법 정치자금 3억여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했다. 당시 수사는 이 전 특보의 측근인 노 아무개씨가 조 아무개씨에게 1억5000만원을 받아 이 전 특보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한 데서 비롯됐다. 노씨는 이보다 앞선 2008년 KTF 대표이사로부터 5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바 있다. 검찰 수사로 압박을 받은 노씨가 검찰에서 불법 정치자금을 털어놓은 것이다. 또 2012년 당시 박희태 국회의장과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이 기소된 ‘한나라당 돈 봉투’ 사건도 마찬가지다. 검찰이 돈 봉투 전달 과정에서 창구 역할을 한 박 의장의 전 비서에 대한 체포영장을 청구하면서 관련 진술이 나왔고, 검찰 수사도 물꼬가 트였다.

유정복 인천시장, 서병수 부산시장 ⓒ 연합뉴스시사저널·이종현
불법 정치자금 거래는 극소수 인사들에 의해 비밀리에 이뤄진다. 이는 전달자 등 거래에 관여한 관련자에 대한 적극적인 수사가 중요하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은 2007년 대선 당시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3억여 원을 받은 혐의로 2012년 구속 기소됐다. 당시 검찰은 이 전 의원이 임 회장으로부터 받은 3억여 원을 이명박 후보 캠프 유세단장을 맡았던 권오을 전 의원에게 건넸다는 증언을 확보했다. 이러한 증언이 맞다면, 단순 불법 정치자금 사건이 아니라 대선 자금 수사로 확대될 여지가 컸다. 하지만 권 전 의원은 “이상득 의원 등에게 선거비용을 지원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검찰 수사는 답보 상태에 빠졌다. 결국 임 회장이 이 전 의원에게 건넸다는 3억여 원의 행방은 용처가 불명확한 채로 이 사건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당시 검찰 수사에 대해 “대선 자금 수사로 비화할 것을 우려한 검찰이 관련자의 증언에만 의존한 채 적극적인 수사를 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홍문종 의원 외에도 2012년 대선 당시 선대위 당무조정본부장을 맡았던 서병수 시장과 직능총괄본부장을 맡았던 유정복 시장 등도 성완종 리스트 의혹의 대상이 된 만큼 검찰의 대선 자금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박 후보 대선 캠프의 핵심 3인방이 모두 연루돼 있다는 점에서 검찰이 수사의 어려움을 이유로 피해갈 수 있는 성격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특별수사팀을 이끌고 있는 문무일 팀장은 4월13일 수사팀 발족 당시 “공소시효 만료 여부와 상관없이 제기된 의혹의 사실관계를 전부 확인할 것이고, 좌고우면하지 않고 리스트 외의 의혹도 나오면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약속이 지켜지는지는 검찰이 수사 결과로 말할 수밖에 없다.


‘성완종 특사’ 수사는 어찌 되나  


‘성완종 리스트’에 등장하는 8인 가운데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이완구 전 국무총리에 대한 소환조사가 이뤄지면서 검찰의 수사가 2라운드로 접어들었다. 이런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이 언급했던 ‘성완종 특별사면’과 관련한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될지도 관심을 끌고 있다. 자유청년연합, 국민행동본부 청년위원회 등 보수단체들은 4월24일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특별사면 과정에서 불법 및 특별사면에 관여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외 6명에 대한 로비 의혹을 검찰이 밝혀야 한다”며 수사를 의뢰했다. 외부에서 수사 의뢰를 한 만큼 검찰이 정식 수사로 전환할 명분은 얻었다. 

하지만 검찰이 노무현 정부 당시 이뤄진 성완종 특사 의혹을 조사하는 순간, 야당의 반발과 비난 여론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은 곤혹스러운 대목이다. 대통령의 사면 행위는 고도의 정치적인 행위로 사법적 판단이 어려운 데다, 비리 정황이 아직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수사에 나설 경우 반발이 불 보듯 빤하다. 특히 박 대통령이 성 전 회장의 사면 과정에 대한 의혹을 직접 거론한 만큼, 검찰의 수사가 현실화하면 수사의 중립성도 의심받게 된다.

일각에서는 수사 의뢰가 있었던 만큼 검찰이 나머지 6인의 수사와 동시에 사면 의혹을 함께 다루는 투 트랙 전략으로 수사를 진행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를 통해 여야 간 수사의 균형을 맞추면서, 본격적인 대선 자금 수사는 최대한 늦출 것이라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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