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 주머니 차고, 감옥 가면 기업 망하지
  • 박혁진 기자 (phj@sisapress.com)
  • 승인 2015.05.21 16:0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Compliance’의 관건은 오너…스스로 준법경영 모범 보여야

동국제강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회사 경영이 꾸준히 악화됐다. 매출이 2011년 8조8419억원에서 지난해 6조685억원으로 31.4%나 감소했다.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2791억원과 -65억원을 기록해 적자로 전환됐다. 지주회사인 동국제강은 산업은행과 재무구조 개선 약정까지 체결했다. 주요 신용평가사는 2014년 11월 동국제강의 회사채 신용등급을 A에서 A-로 한 단계 하향 조정했다. 2013년 5월 A+에서 A로 강등된 지 1년 5개월 만이다. 회사는 올 1월 동국제강과 유니온스틸의 합병을 단행했다. 서울 을지로에 위치한 ‘페럼타워’도 삼성생명에 매각하는 등 위기를 벗어나려 안간힘을 썼다.

이런 상황에서 악재가 터졌다. ‘오너(Owner)’인 장세주 회장이 지난 5월8일 검찰에 구속된 것. 장 회장에게는 200억원대의 회사 자금을 횡령하고, 횡령 자금 일부를 해외 원정 도박에 쓴 혐의가 적용됐다. 장 회장의 구속은 어떻게 해서든 회사를 살리려는 구성원들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었다. 회사의 자구책에 기대를 걸고 있던 주주들이 실망한 것은 당연한 일. 회사 구성원과 주주들에게 회사에 대한 비전과 포부를 제시하는 역할을 해야 할 ‘오너’가 오히려 회사의 ‘걸림돌’이 되어버렸다. 당장 재계에서는 장 회장의 부재로 인한 회사 경영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오너 리스크’가 회사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가장 큰 적으로 떠올랐다. 오너가 불법을 저질러 기자들 앞에 서면 그 회사의 이미지는 치명상을 입게 된다. ⓒ 시사저널 이종현
최근 재계에서는 이런 상황을 빗대 ‘오너 리스크(Owner Risk)’라고 표현한다. 박문각에서 발행한 시사상식사전에는 ‘오너 리스크’를 ‘대주주(지배주주)와 관련된 사건이나 대주주의 독단적 경영이 회사에 큰 손해를 끼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동국제강이 장 회장 개인 횡령 사건으로 인해 회사 이미지가 나빠지는 것이 전자의 경우라면, 과거 삼성그룹이 이건희 회장 개인의 의지로 자동차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이것이 나중에 그룹 전체에 악영향을 미쳤던 것이 후자의 경우다.

‘오너 리스크’는 시사저널이 제3회 굿 컴퍼니 컨퍼런스의 첫 주제로 선정한 ‘Compliance’(준법경영)를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오너 리스크는 한국에서 유독 두드러진 현상이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2012년 2월11일 기사에서 “한국 증시가 저평가된 가장 큰 원인은 재벌의 후진적 지배구조 때문”이라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이코노미스트는 코스피의 주가수익비율(PER) 전망치가 10배를 밑도는 등 아시아 주요 국가 중 가장 낮은 이유로 오너 일가 중심의 경영을 꼽았다. 한국 재벌은 불법적인 경영권 승계와 세금 탈루, 사업 기회 유용 등으로 주주들의 이익을 훼손할 가능성이 크다고 이 잡지는 분석했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법무법인 웅빈의 데이비드 김 미국 변호사는 “미국의 경우 오너가 경영에 직접 관여하기보다는 전문경영인을 고용하기 때문에 오너 리스크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며 “다만 오너나 전문경영인이 의도적으로 범법 행위를 할 경우 엔론이나 월드컴처럼 기업 자체가 공중분해되기 때문에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개념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오너 리스크가 최근 들어 갑작스럽게 생겨난 현상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한국의 보수적 문화와 권위주의 시대 잔재로 인해 어느 정도는 이를 묵인하는 분위기가 강했을 뿐이다. 특히 재벌기업이 경제 성장을 주도한 한국에서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오너의 존재가 빠른 의사결정과 공격적 투자를 가능케 했지만, 오너에게 권한이 지나치게 쏠린 탓에 대다수 기업이 잠재적 리스크를 안고 있는 게 사실이다. 게다가 사회의 투명성이 커지면서 준법경영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고, 이에 따라 오너 리스크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전과 같지 않다. 실제로 최근에는 오너가 불미스러운 문제로 주목을 받게 되면 당장 ‘오너 리스크 기업’이라는 꼬리표를 붙여버린다. 최근 몇 년간 오너들이 검찰 수사를 받았던 SK와 한진, 한화, CJ 등이 대표적이다. 한 경제지는 지난해부터 오너 리스크를 수치화해 랭킹을 발표하고 있다.

오너 리스크는 기업과 국가 모두에게 큰 위협 요인이다. 기업은 신사업이나 투자를 머뭇거리게 된다. 당연히 직원들의 사기가 꺾인다. 기업 활동 위축은 고용 창출과 가계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 오너 일가의 영향력이 커 경영권을 전횡할 경우 다른 주주들이 상대적으로 피해를 입게 된다. 이는 시장 질서가 왜곡되고 있다는 의미다. 가계 경제가 나빠지고, 자본주의 질서가 무너지면 국가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오너 리스크의 ‘나비효과’인 셈이다.

오너 리스크가 커진 또 다른 이유로는 오너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꼽힌다. 대기업 총수들은 법원에서 검찰의 구형보다 대폭 낮아진 판결을 대체로 받는다. 형량이 확정되지만 집행유예에 그치고 머지않아 사면되는 과정이 되풀이된다. 매번 ‘봐주기 판결’이라는 비판을 받지만 ‘경제 살리기’라는 명분으로 관대한 처벌이 이어졌다.

시사저널이 이러한 오너 리스크의 해결책으로 준법경영을 꼽은 이유는 더 이상 사후 약방문 식의 대책으로는 오너 리스크를 넘어서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기업 내부에서 오너의 독단적 행태에 제동을 걸기란 불가능하다. 준법경영이란 틀을 만들어놓고, 그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때 비로소 제어가 가능하다. 데이비드 김 변호사는 “미국 기업에는 준법경영을 하지 않을 경우 기업이 해체될 수 있다는 확고한 의식이 있기 때문에 오너가 독단적으로 경영하지 않고, 전문경영인의 도움을 받는다”며 “따라서 한국도 준법경영이란 원칙을 세워놓고, 이것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어떠한 불이익이 있다는 것을 오너들이 깨달을 때 리스크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