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질주’, 온몸이 끓어오른다
  • 이은선│<매거진 M> 기자 ()
  • 승인 2015.05.21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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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만에 귀환한 조지 밀러의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22세기 재난 블록버스터 <매드 맥스>가 30년 만에 돌아왔다.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는 ‘제대로 미친 영화’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출연진을 교체하고 시리즈를 재정비한 리부트(Reboot)지만 수장만큼은 바뀌지 않았다. 1~3편을 연출했던 조지 밀러 감독이 다시 메가폰을 잡았다는 점에서 이 시리즈의 세계관은 일말의 훼손도 없이, 오히려 더욱 공고한 형태로 완성됐다. 더없이 반가운 귀환이다.

세계대전으로 지구의 모든 핵무기가 터져버린 22세기. 살아남은 인류는 물과 기름을 독차지한 독재자 임모탄(휴 키스 번)이 지배하는 도시 시타델에서 힘겹게 살아간다. 체제에 환멸을 느낀 사령관 퓨리오사(샤를리즈 테론)는 반란을 시도한다. 오직 임모탄의 아이를 낳기 위해 붙잡혀 있던 그의 다섯 부인을 데리고 시타델을 탈출한 것이다. 임모탄의 충성스러운 전사 부대 ‘워보이’들이 수십 대의 8기통 차량으로 퓨리오사를 추격하는 가운데, 워보이 중 한 명인 눅스(니콜라스 홀트)의 차에 매달려 피를 뽑히던 맥스(톰 하디)는 극적으로 탈출해 퓨리오사 일행에 합류한다. 맥스가 퓨리오사 일행이 가고자 하는 ‘녹색의 땅’을 함께 찾아나서는 와중에도 임모탄의 끈질긴 추격은 계속된다.

영화 가 ‘2대 맥스’인 톰 하디를 앞세워 30년 만에 개봉한다. ⓒ 워너브라더스 제공
모든 핵무기 터져버린 2100년대 척박한 미래 

이 영화는 8기통 차들이 무시무시한 굉음을 뿜으며 내달리는 추격전이다. 바퀴 달린 서부극에 질주와 추격, 그 외엔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다. 조지 밀러 감독은 처음부터 끝까지 숨 막히는 추격전으로만 이뤄진 영화를 꿈꿨다. 이는 “자막 없이도 세계 어디에서나 영화를 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던 알프레드 히치콕의 말을 명심했던 밀러 감독의 연출관 덕분이다.

영화는 감독의 그런 생각을 고스란히 증명한다. 화면은 황폐한 세계에 움트는 시각적 황홀경으로 빼곡하게 채워진다. 거대한 모래 폭풍부터 푸르스름한 새벽빛까지 시시각각 변하는 사막의 풍광, 온몸이 기형이 된 사람들, 흉측한 외모의 임모탄과 걸어다니는 해골 같은 워보이, 21세기 부품들을 조립해 만든 자동차까지. 기괴함을 뽐내는 그 모든 것이 하나로 합쳐진 풍경은 잘 직조된 한 편의 오페라를 보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실제로 조지 밀러 감독은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를 “거친 록 콘서트와 오페라의 중간 정도”라고 표현한다. 과연 이 영화는 자리에 진득하게 앉아서 보기 힘들 정도로 온몸이 끓어오르는 경험을 선사한다. 화염 방사기를 장착한 기타를 연주하는 워보이가 쉴 새 없이 쏟아내는 전자음, 수십 대의 자동차가 뿜는 굉음, 한계가 없는 속도가 뒤엉켜 이 영화만의 독특한 무드를 완성한다. 자동차 액션에서 만들 수 있는 최대치의 그림에 도전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이는 놀라운 볼거리이자 대재앙 이후 살아남은 이들의 광기를 대변하는 장치다.

액션이 전부는 아니다. <매드 맥스> 시리즈는 대재앙 이후 황폐화된 지구를 그린 포스트 아포칼립스(Post-apocalypse)의 고전이다. 이번 편은 그 세계관을 가장 제대로 반영한다. 몰락한 디스토피아. 사람들은 오로지 생존에만 관심이 있다. 독재자는 자신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신화를 꾸며낸다. 오직 자신만이 불멸의 존재이며, 사람들을 천국으로 데려갈 수 있다는 임모탄의 말에 세뇌당한 워보이들은 그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는 것을 최고의 명예로 여긴다. 이런 세상에서 인간답기를 꿈꾸는 것은 사치다. ‘희망은 실수’인 세상. 이 암울한 세계관이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를 완성하는 핵심이다.

그렇다면 이 시리즈가 2015년에 부활한 이유는 무엇일까. 조지 밀러 감독은 30년 전에 다뤘던 환경과 폭력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지금도 기름을 둘러싼 국제 분쟁과 물 부족, 금융위기는 여전하다. 현실은 영화 속 황무지와 다르지 않다. 감독은 2000년 무렵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불현듯 속편에 대한 이미지를 한꺼번에 떠올렸다. 2001년 기존 시리즈의 주연 배우였던 멜 깁슨을 캐스팅해 제작에 돌입했지만 스케줄과 예산 문제로 무산됐고, 2009년 ‘2대 맥스’ 톰 하디를 섭외했다. 하지만 호주 사막의 기상 이유 등의 문제로 스케줄이 미뤄져 다시 5년여를 기다려야 했다.

조지 밀러 감독은 내과 수련의라는 독특한 이력을 지닌 감독이다. 그가 데뷔작으로 <매드 맥스>를 만들었던 이유는, 극한의 폭력에 노출된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표현하고 싶어서였다. 당시 호주에서 자동차는 무기나 마찬가지였다. 밀러는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한 젊은이들이 사고를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것에 대해 의아해했다. 그가 이 영화를 찍게 된 결정적 계기다.

영화 ⓒ 워너브라더스 제공
미친 세계의 반영웅이 귀환한 이유

1979년 개봉한 1편은 호주의 무명 배우였던 멜 깁슨을 스타덤에 올렸을 뿐 아니라 35만 달러의 제작비로 전 세계에서 1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인 초특급 흥행작이 됐다. 황량한 도로가 배경이었던 이유는 단순히 예산이 부족했기 때문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이 시리즈의 상징이 됐다.

2편은 조지 밀러 감독이 좀 더 의식적으로 포스트 아포칼립스 스토리를 구상하고 만든 영화다. 맥스가 본격적으로 사막을 방랑하며 약탈자로부터 선한 사람을 지키는 내용이다. 석유 전쟁이 발단이 돼 갱단과 기름을 놓고 싸운다는 설정이 이번 영화와 가장 비슷하다. 자동차 앞에 인질을 매단 채 달리고, 악당의 수장이 가면을 쓰고 등장한다는 디테일도 닮았다. 이번 편에 이르러 맥스는 혼돈의 시대에 등장한 반(反)영웅, 즉 세상과 동떨어진 외로운 전사라는 이미지를 완성한다. 그리고 그의 캐릭터는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톰 하디가 연기한 ‘2대 맥스’에게도 그대로 이어진다.

기존 세계관은 이어오되, 착취당하던 여성들이 체제의 전복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이 시리즈는 한 발짝 더 나아갔다고 볼 수 있다. 메시지 또한 확장됐다. 이번 영화는 우리가 지금 발 딛고 살아가는 땅이 얼마나 미쳤든, 그래서 비록 “모두가 아픈 곳”일지라도, 희망은 바로 그곳에서부터 움튼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말한다. 그것이 30년 만에 돌아온 <매드 맥스>가 전하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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