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선 관피아 척결, 뒤에선 퇴직자 챙기기 ‘꼼수’
  • 엄민우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5.05.26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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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국책 연구원에 ‘낙하산 내려보내기’ 시도

정부가 국책 연구원에 퇴직 공무원을 내려보내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관(官)피아’ 논란 속에 겉으론 공무원 재취업 제한 규정 등을 만들어놓고, 뒤에선 퇴직 공무원 일자리 만들기에 몰두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26일, 26개 국책 연구기관 부기관장 앞으로 한 장의 공문이 내려왔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로부터 내려온 것이었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는 국무총리실 직속 기관으로 대한민국 26개 국책 연구기관을 관리·감독하는 곳이다. ‘전문 경력 인사 활용 인원 수요 조사’라는 제목의 이 공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국책 연구기관의 정책 대안 개발 역량 향상과 연구 성과의 법제화 제고를 위해 정책 현장 경험을 보유한 전문 경력 인사 퇴직 공무원을 활용하고자 전문 경력 인사 전문성 활용 프로그램을 추진 중에 있음. 이와 관련해 활용 가능 인원 등에 대한 수요를 파악하고자 하오니 회신 바람.’

ⓒ 일러스트 정찬동
주 3일 근무에 최대 연봉 4800만원

쉽게 말해 퇴직 공무원들을 연구원으로 내려보내고자 하니 각 기관은 필요한 인원을 명시해 답신을 달라는 것이다. 연구기관들은 발칵 뒤집혔다. 그 전까지 해당 프로그램에 대해 전혀 들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공문과 함께 붙임 자료로 온 문서에는 구체적인 내용까지 담겨 있었다. ‘퇴직 공무원의 인건비는 월 300만원이고, 지원 기간은 최대 3년이며, 1명당 7평의 연구실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현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도 공무원 낙하산을 근절해야 한다고 외쳐왔다. 실제로 낙하산을 막기 위해 갖가지 정책을 펼쳐온 터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세월호 참사가 터지며 생긴 ‘관피아 방지법’이다. 퇴직 공무원의 사기업 등 재취업 제한 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늘린 것이 이 법의 주요 골자다. 그런데 이번에 정부가 추진했던 정책은 이를 무력화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가 내놓은 일명 ‘전문 경력 인사 전문성 활용 프로그램’에 따르면, 재취업 자격 조건에 해당되는 자는 ‘20년 이상 재직하고 퇴임 후 3년 이내인 행정·입법부 소속 모든 공무원’이다. 최대 근무 기간도 딱 3년이다. ‘3년’이라는 숫자는 공무원 재취업 제한 규정과 들어맞는다. 즉, 정부가 내놓은 프로그램은 제한 규정에 묶인 공무원이 3년 동안 연봉과 사무실까지 제공받으며 보낼 수 있게 설계돼 있다. 사실상 재취업 3년 제한 규정을 무력화시키는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가 이 같은 정책을 추진하고자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시사저널이 직접 확인한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의 사업계획서상에는 그 필요성 및 목적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전문 경력 인사를 활용한 교육 훈련 자문 프로그램을 운영함으로써 연구 결과의 법제화, 정부 부처 및 각종 위원회에서의 활용성 등이 제고될 것으로 기대.’

한마디로 실무 경험이 있는 공무원들을 연구 프로젝트에 활용해 성과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연구 현장에서는 이런 취지에 대해 ‘어불성설’이라는 입장을 나타낸다. 이미 정부출연금을 통해 실시하는 ‘기본 과제’ 연구를 통해 관련 부처 공무원과 협력하는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등 현행 제도로도 충분한데 굳이 퇴직한 인사에게 사무실까지 내주며 상주하게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공무원들에게 특혜를 주기 위한 ‘꼼수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다분하다는 것이다.

연구원에 가는 퇴직 공무원에 대한 지원 내용을 보면 특혜 의혹이 제기되는 게 무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연구원에서 월급 300만원에 개인 연구실 7평이라는 조건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 국립대학 교수이자 정부 R&D(연구·개발) 지원 기관에 근무하는 이 아무개씨에게 위와 같은 조건을 설명하자 “업무 성격 등을 고려할 때 그런 조건이라면 퇴직 공무원으로서는 물론, 나에게도 만족스러운 수준”이라고 답했다.

그런데 정부는 이것도 모자라 더 높은 수준의 지원을 검토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전문 경력 인사 전문성 활용 교육 훈련 자문 프로그램 추진 계획’이라는 제목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내부 문건에 따르면, 퇴직 공무원에 대한 지원 내용으로 ‘연구장려금 범위는 연구회(정부) 지원 월 300만원, 활용 기관 지원 월 100만원 이하’라고 명시돼 있다. 즉, 월급 300만원 이외에 연구기관에서 임의로 최대 월 100만원까지 추가 지급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여기엔 ‘주 3일 근무(풀타임)’라는 점도 명기돼 있다. 내용대로라면 퇴직 공무원은 주 3일 근무에 연봉 4800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

“퇴직 공무원 재계약 거부는 불가능”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에서는 이 프로젝트에는 경제인문사회연구회뿐 아니라 기획재정부도 동참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성수 전국공공연구노조 부위원장은 “국회 예결위에서 해당 사업과 관련해 예산 수십억 원이 소리 소문 없이 반영되게 한 것을 볼 때 기재부에서도 움직인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에서 추진하려던 해당 프로젝트에 따르면 연구기관은 매년 정부에서 내려온 해당 인사를 평가해 재계약 여부를 결정하도록 했다. 그러나 정부에 종속돼 있는 연구기관의 현실에 비춰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는 것이 연구원 종사자들의 주장이다. ‘낙하산’에게 점수를 낮게 줘 내쫓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연구기관 노조의 반발이 거세지자 경제인문사회연구회는 프로젝트에 대한 재검토에 나섰다. 연구 용역 결과가 나오는 것을 바탕으로 5월 말께 새로운 안을 내놓겠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연구 용역을 맡은 곳 역시 연구회의 관리·감독을 받는 행정연구원이다. 해당 문제를 지적해온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정부가 국민을 속이고 연구원의 독립성을 훼손시키며 공무원들의 노후 보장을 꾀했다. 편법적인 고위 공무원 챙기기를 막기 위해 철저히 감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논란에 대해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관계자는 “연구기관에서 우려하는 부분은 하나의 안으로 거론됐던 것일뿐 아직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관계부처 등과 협의해 신중히 결론을 도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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