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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한국의 가벌] #28. 국회의원 선수 합치면 20선 한국 최대 정치 가문

정일형-대철-호준 3대째 의원…재벌가와도 혼맥

소종섭│편집위원 ㅣ 승인 2015.05.26(Tue) 18: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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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문재인 대표라면 사퇴하겠다. 정치란 책임지는 것이다. (문 대표가 추진하는) 초계파 혁신 기구라는 것도 결과적으로는 나눠먹기다.” 4·29 재보선 패배 이후 내홍을 겪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의 향후 진로와 관련한 정대철 상임고문의 쓴소리다. 최근 정 고문은 언론과 자주 인터뷰를 하면서 문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한국의 혼맥을 말할 때 정치 분야에서 정대철가(家)를 빼놓을 수 없다. 3대째 이어지는 정치 가문인 그의 집안은 인척까지 포함해 국회의원 선수를 합하면 20선에 달한다. 부친인 정일형 전 외무부장관이 서울 종로·중구에서 내리 8선을, 아들 정대철이 중구에서 5선을 했다. 손자 정호준은 현재 새정치민주연합 초선 의원인데 역시 지역구가 중구다. 직계만 따져도 14선이다. 외가 쪽으로는 정호준의 외증조할머니(박현숙)가 2선, 이모부(조순승)가 3선(13~15대)을 했다.

   
3월6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고 정일형 박사, 정대철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정호준 국회의원 ‘삼대(3代) 문고’ 설치 기념식에서 이은철 국회 도서관장이 정대철 상임고문, 정호준 의원(왼쪽부터)에게 감사패를 수여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뉴스1
1948년 5월10일 서울 종로 갑구에서 당선한 제헌국회의원 이윤영의 부인 이마대는 정일형 어머니의 6촌 여동생이다. 이윤영은 조선민주당 부당수로 활동했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최초로 국무총리 서리에 임명되었으나 부결된 인물이다. 이윤영은 이후로도 세 번이나 더 국무총리 서리에 임명됐으나 부결당한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정일형가는 가히 한국 정치사에 유례를 찾기 힘든 정치 가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정일형, 이승만의 외무부장관 제의 거절 

정일형은 1904년 4월8일 황해도 안악군에서 태어났다. 호는 금연(錦淵)이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할아버지 정원모가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상업을 했던 정원모는 사재를 털어 항일독립군 수백 명을 도운 인물이다. 그러나 1905년 배 세 척에 솜을 싣고 상하이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배 위에서 전염병을 얻어 사망했다. 당시 정일형의 아버지 정기찬은 24세, 정일형은 2세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년 후 정기찬마저 갑자기 장티푸스로 사망했다. 정일형의 어머니 한은총은 몇 년 후 정일형의 동생 정신형을 데리고 김용겸(비구니 선승(禪僧)으로 유명한 김일엽의 아버지)과 재혼했다. 지난해 김일엽의 출가 전 아들인 김태신 스님이 열반했을 때 정대철이 고려대병원 빈소에 들렀던 것은 이런 인척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정일형은 자서전에서 ‘친척집 건넌방에서 고아 아닌 고아가 되어 눈물만 흘리는 나날을 보냈다’고 당시를 기록했다.

   
정일형은 1910년 소학교인 삼존학교에 입학해 처음으로 찬송가와 성경을 배웠다. 이것이 그의 집안에 기독교적 전통이 내려오게 된 계기가 됐다. 정호준 의원은 2013년 펴낸 책 <길 위에 서다>에서 “성장 과정에서 기독교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았다. 늘 부모님이 기도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고 내가 처음 정치에 몸을 담겠다는 결심을 한 것도 기도를 통해서였다. 기독교와 우리 집안은 결코 뗄 수 없는 관계다”라고 썼다.

평양의 광성고등보통학교에 다니던 정일형은 3·1운동 당시 ‘대한독립 만세’를 부르며 평양 거리를 뛰어다녔다. 그 때문에 수백 명의 학생과 함께 평양경찰서에 수감되었다. 집에 와서 지내는 동안에도 독립신문을 배달하다 발각돼 두 번째로 유치장 신세를 졌다. 이런 과정에서 정일형은 일제의 요시찰 인물이 되었다. 1927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한 정일형은 미국 오하이오 주 웨슬레안 대학의 장학생으로 뽑혀 유학길에 올랐다. 총독부에서 여권을 내주지 않아 고생했지만 연희전문학교 은사인 베커 박사의 도움으로 여권을 마련할 수 있었다. 정일형은 미국에서 타이피스트, 별장지기, 기숙사 도서관 조수, 사진사 등 온갖 잡일을 하며 생활했다. 뉴욕 대학 신학과로 옮겨 교육을 전공한 그는 1935년 뉴저지 주 드류 대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한 후 연희전문학교로부터 사회학 교수직을 제안받았으나 사양하고 평양의 신흥 공장 지대였던 신리에 개척교회를 세웠다.

1937년 감리교 본부의 요청으로 서울로 온 정일형은 감리교신학교 교수가 됐다. 그러나 1940년 봄 일제가 ‘창씨개명 반대 사건’을 조작하면서 서대문경찰서로 끌려갔다. 매일 물고문을 받은 정일형은 유언비어 날조, 치안유지법 위반, 형법 위반, 미국 스파이 행위 등으로 구속됐다. 1944년 무죄 판결을 받고 풀려난 정일형은 평북 운산에 은거했다. 광복 직후 춘원 이광수가 정일형을 찾아왔다. 나이는 춘원이 10세 위였으나 두 사람은 매우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일제 말 두 사람은 이런 문답을 주고받은 적이 있었다. “독립이 멀지 않다”(정일형), “우선 목숨을 아낍시다”(이광수). 광복 이후 돗자리를 들고 정일형을 찾아온 이광수는 “내 생각이 모자랐다”면서 큰절을 하고 돌아갔다.

미군정청 인사행정처장이 된 정일형은 1948년 5·10 총선거 이후 대한민국 외교관 여권 2호를 손에 들고 정부 수립 이래 첫 외교 순방에 나섰다.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사회에서 국가로 인정받는 현장을 함께했다. 정일형은 이승만 대통령이 제안한 외무부장관직을 거절하고 가족회의를 열어 입법부에 진출하기로 결정했다. 지역구를 서울 중구로 선택한 이유는 중구에 이북 5도민들이 많다는 점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1973년 정일형 박사와 이태영 여사 내외가 동교동으로 김대중씨를 찾아와 격려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국내 최초 여성 변호사 이태영과 결혼

정일형은 이흥국-김흥원의 딸인 이태영과 결혼했다. 귀국 직후 정일형은 서울 정동교회에 간 적이 있다. 합창대가 크리스마스 캐럴을 노래하는데 합창이 끝날 무렵 독창을 하는 한 여성이 정일형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 여성은 합창대원 중 가장 키가 컸고 얼굴도 시원스러웠다. 정일형이 옆 사람에게 물어보니 ‘이화여전 가사과를 졸업하고 평양에서 여학교 선생을 하고 있는 이태영’이라고 했다. 그녀의 꿈은 법률가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정일형은 사람을 넣어 그녀와 사귀고 싶다는 생각을 알렸다. 반응이 나쁘지 않아 교류를 이어가던 중 이태영이 느닷없이 장티푸스에 걸려 병원에 입원했다. 정일형은 병원을 찾아가 내내 곁을 지켰다. 이것이 결정적인 인연이 되어 두 사람은 결혼에 이르렀다.

이태영은 전쟁 중 제2회 고등고시 시험에 합격했다. 최초의 여성 합격자였다. 그러나 판사로 임용되지 않았다. 이승만은 “야당 하는 정일형의 마누라를 판사 시킬 수는 없어”라고 했다. 대통령의 뜻이 완강하니 대법원장도 어쩔 수 없었다. 3대 국회의원 선거 때 이태영은 최초로 정일형 후보 지원 유세에 나섰다. 지금이야 일반화됐지만 그때만 해도 여성이 후보 지원 유세를 하는 경우는 없었다. 이태영은 유세 현장에서 누군가 “암탉이 운다”고 비판하자 “수탉이 목이 쉬어서 목소리를 못 내고 있다. 내 목소리로 울어서 아침을 밝게 하겠다”고 응수했다. 이태영은 여의도에 여성백인회관을 만들고 한국가정법률상담소를 개소했다. 이태영은 한국 최초의 여성 서울대 법대생이자 여성 첫 사법시험 합격자, 최초의 여성 변호사였다. 1955년 9월19일 창당한 제1야당 민주당은 1960년 7월29일 실시된 총선거에서 압승했다. 제2공화국이 출범한 것이다. 윤보선 대통령, 장면 총리, 정일형 외무부장관 체제가 탄생했다.

정일형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남다른 인연을 갖고 있다.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로 선출된 김대중은 정일형에게 선거사무장(오늘의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달라고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이희호 여사를 소개시켜준 사람이 이태영이다. 국립묘지에 부부가 각자의 묘비로 합장된 경우는 정일형-이태영 부부가 처음이다. 정일형은 1976년 3월1일에 있었던 이른바 ‘3·1 민주구국선언’에 참가해 긴급조치 9호를 위반한 혐의로 1977년 3월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아 의원직을 상실했다. 한참 시간이 흐른 2013년에야 서울고등법원은 1977년 명동구국선언 사건의 피고인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정일형은 1982년 4월23일, 이태영은 1998년 12월17일 타계했다.

동국제강·일진그룹 등 재계와도 연결

정일형-이태영은 1남 3녀를 뒀다. 맏딸 정진숙은 김흥한 변호사와 결혼했다. 서울 광화문에 미국식 법률사무소 이름에서 따온 ‘이&김’이란 영어 간판이 1958년 9월 등장했다. 이 국내 1호 로펌을 세운 사람이 이태영·김흥한 변호사였다. 정진숙-김흥한은 2남 1녀를 뒀다. 장남 김유동은 동국제강 창업주 장경호의 5남인 장상건 동국산업 회장의 차녀 장혜경과 결혼했다. 차남 김윤동은 일진그룹 허진규 회장의 2남 2녀 중 막내 허승은의 남편이다. 사위는 현재 법무법인 양헌의 대표로 있는 최경준 변호사다. 최경준은 서울대 법대를 차석으로 졸업하고, 사법연수원 14기를 수석으로 수료한 후 1986년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로 재직하던 중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6년 4개월간 뉴욕 대학, 보스턴 대학, 하버드 대학과 미국 로펌에서 법률 분야를 두루 섭렵한 후 1993년부터 ‘김장리 법률사무소’에 합류했다. 그는 수십여 건의 M&A를 처리한 M&A 전문가로 꼽힌다.

정일형의 둘째 딸 정선숙은 김의재 변호사와 결혼했다. 현재 법무법인 양헌의 대표로 있는 김 변호사는 1968년 서울지법 재직 시절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미국 유학을 간 첫 번째 판사다. 정대철은 독립운동가 집안의 김덕신과 결혼했고, 이화여대 미대를 나온 막내 딸 정미숙은 한국 원양어업을 개척했던 심상준 전 제남기업 회장의 아들 심철과 혼인했다. 심철은 2014년 7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방문해 화제가 됐던 성북동 한국가구박물관의 소유주이기도 하다. 한·우크라이나 친선협회장을 맡고 있는 심실 유니원커뮤니케이션즈 회장은 심철의 동생이다.

정대철 처가엔 박현숙·조순승 전 의원

정대철은 1944년 1월4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당시 아버지 정일형은 평양 감옥에 있었고, 어머니 이태영은 이불 가게를 하며 누비이불을 만들어 팔던 때였다. 정대철이 태어날 때 급하게 탯줄을 끊어야 하는데 도구가 없어서 외숙모가 이빨로 탯줄을 끊었다. 어린 시절 정대철의 배꼽이 유난히 컸던 이유다. 정대철은 서울대 법대 재학 시절 정학을 네 번 당할 정도로 학생운동에 열심히 참여했다. 그러나 도중에 폐결핵에 걸려 더 이상 시위에 나가지 못할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부인 김덕신은 이대 사회학과를 졸업했는데 어느 날 친구가 영화를 보자고 해서 나가 보니 정대철이 있었다. 정대철이 옆집에 살던 친구를 졸라 김덕신을 소개해달라고 했던 것이다. 김덕신은 친구 얼굴을 봐서 한두 번 더 만나주었을 뿐 계속 사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정대철이 폐결핵에 걸려 피까지 흘리는 모습을 보고 모성애를 느껴 간호를 하면서부터 연애 감정이 싹텄다. 마치 어머니 이태영이 장티푸스에 걸렸을 때 아버지 정일형과 사랑이 싹텄던 것처럼.

김덕신의 할아버지 김성업은 도산 안창호 선생의 수제자로 1924년부터 17년간 동아일보 평양지국장을 지내며 독립운동을 했다.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과 관련해 4년 1개월 투옥됐다. 김덕신의 할머니 박현숙은 1915년 송죽결사대 사건, 1921년 상해 임시정부 군자금 송부 사건, 1941년 대동아전쟁 반전 사건 등으로 3차례에 걸쳐 6년 넘게 투옥됐다. 광복 이후 1946년 과도정부 입법위원, 1952년 제2대 무임소장관, 4대(철원 김화), 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두 사람은 국립묘지에 안장돼 있다. 김덕신의 동생 김덕애의 남편이 조순승 전 의원이다.

정대철은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로부터 “국무총리를 시켜주겠다. 전국구 의원 5명의 추천권을 주겠다. 함께하자”는 제안을 받았으나 거절하고 끝까지 ‘김대중 사람’을 고집했다. 정대철은 “친노(무현) 세력의 원조가 나다”라고 말한다. 2002년 대선 후보가 된 노무현은 정대철의 집으로 찾아와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집을 나와 타워호텔에서 김원기와 함께 노무현을 만난 정대철은 이후 노무현 당선을 위해 뛰었다.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다음 날 노무현은 정대철과 김원기를 불렀다. 노무현은 두 사람에게 큰절을 하며 “두 형님 덕분에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1년만 자유를 주세요”라고 말했다. 정대철은 이후 대선 자금 사건에 연루돼 구속됐다.

정대철-김덕신은 2남 1녀를 뒀다. 장남 정호준은 현재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이다. 1996년 미국 유학을 떠나 뉴욕 대학 대학원을 졸업했다. 영앤루비컴이라는 세계적인 광고회사에 취직해 AT&T의 웹사이트 구축 및 온라인 마케팅 기획책임자로 근무하다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2004년 구치소에 있는 정대철을 면회 가 출마하겠다고 하자 정대철은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크게 화를 냈다. “도움은 기대하지 말라”고 큰소리를 쳤다. 하지만 막상 정호준이 출마를 결행하자 구치소에서 2000통 넘는 편지를 써서 지지를 호소했다. 정호준은 2006년 전영지와 결혼했다. 대한체육회장을 지낸 김운용 대한태권도협회 명예회장이 먼 친척뻘 되는 여성을 소개해줄 테니 한번 만나보라 해서 만났다가 결혼에 이르렀다. 정호준은 만난 지 한 달 반 지났을 때 9세 어린 예비 신부에게 프러포즈를 했다. 딸 정혜준은 노무현 정권 시절 농수산물유통공사 사장을 지낸 인사의 아들인 미국 변호사와 결혼해 미국에서 살고 있다. 막내 정세준은 미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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