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 당한 풍자, 풍자의 주인공 되다
  • 최정민│프랑스 통신원 ()
  • 승인 2015.06.09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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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샤를리 에브도’, 내부 갈등과 표현의 자유 공방

“이 사건은 우리들의 9·11이었다.” 프랑스의 좌파 지식인 미셸 옹프레는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을 이렇게 정의했다. 평균 발행부수가 5만부도 되지 않던 작은 규모의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는 ‘표현의 자유’의 상징이 됐다. 파리 11구의 사고 현장 역시 성지가 됐다.

지난 1월7일 오전에 발생한 총격 테러는 1월9일까지 인질극으로 이어지며 총 17명의 사망자와 10명의 부상자를 냈다. 전 세계의 추모 물결은 1월10일 ‘공화국 행진’으로 이어졌고 경찰 추산 100만명이 운집했다. 2차 세계대전 파리 수복 이후 최대 인파가 몰렸다는 ‘공화국 행진’은 관용, 단합,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보여주는 듯했다. 그러나 정작 사건 당사자인 샤를리 에브도는 여전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처럼 충격적인 사건을 겪었는데 어떻게 아무 일 없다는 듯 나아갈 수 있겠느냐?” 샤를리 에브도의 지네브 엘 라하주이 기자는 반문한다. 사건이 발생하고 한 달이 흐른 지난 2월, 샤를리 에브도의 내부 사정에 밝았던 르몽드의 라파엘 보케 기자는 “난관은 이제 시작”이라며 의미심장한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1월10일 ‘공화국 행진’에 등장한 샤를리를 지지하는 팻말. 대중의 지지와는 별개로 테러 이후 샤를리는 내부 갈등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 AP 연합
강한 풍자 유지론 vs 강경 모드 회의론

프랑스를 넘어 전 세계적인 구호의 물결이 일어났고, 리베라시옹과 같은 주변 언론의 도움이 있었고, 문화장관까지 적극 협조하고 나서면서 샤를리 에브도의 상황은 호전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테러 이후 새로 구성된 경영진과 살아남은 기자들 간의 불협화음이 외부로 노출되기 시작했다. 사건 발생 두 달 후인 3월31일, 살아남은 기자들은 공동 명의로 ‘샤를리 에브도의 재건을 위하여’라는 기고문을 르몽드에 싣는다.

‘동료이자 희생자들이 남기고 간 샤를리의 DNA를 유지하고 정치·경제적으로 독립된 자유를 잃지 말 것’을 요구한 이 기고문은 예상치 못한 폭발적인 구독과 성금으로 이뤄진 수백만 유로의 숫자를 ‘독약’으로 규정하고, 외부 투자 세력의 유입을 차단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내부 편집진의 입장을 모은 기고문은 봉합을 마무리하는 게 아닌, 내분의 단초가 되고 말았다.

지난 5월 내부 분란은 정점으로 치달았다. 모로코계 활동가로 사회학자이자 언론인이었던 지네브 엘 라하주이 기자에 대한 사전 해고 통보가 문제였다. 라하주이 기자는 5월13일 샤를리 에브도 경영진으로부터 해고 통지서를 받았다. 이에 격분한 그는 프랑스 최대 민영 케이블인 카날 플뤼스의 ‘르 프티 주르날’에 출연해 해고 통보와 일련의 내분 사태를 모두 공개했다. 흥미로운 것은 라하주이 기자가 다른 매체가 아닌 ‘르 프티 주르날’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르 프티 주르날’은 민영 케이블방송이지만 정치권이나 권력층에 대한 풍자를 주로 다루는 매체다. 속성상 샤를리 에브도와 같은 풍자 언론인 셈이다. 정치권에 ‘악명’이 높은, 1일 평균 시청자 수 175만명을 자랑하는 프로그램이다.

사전 해고 통지서를 직접 들고 나온 라하주이 기자는 5월13일의 해고 통지와 15일의 번복 결정을 모두 공개했다. 표면적으로 해고 통지서가 날아온 배경을 묻자 기자들과 함께 르몽드에 게재했던 기고문을 꼽았다. 샤를리 에브도의 경영 방향 및 편집권, 그리고 전 세계로부터 들어온 기금 및 성금 사용의 투명성과 샤를리 정신을 강조한 기고문이 자신을 파면시키려는 주된 이유라는 것이다. 라하주이 기자는 “성금은 희생자들의 피의 대가”라고 일갈하며 “이 성금은 희생자 가족들과 생존자들을 위한 것이지 투자자들의 주머니를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사태 직후 추모 물결에 가려져 뉴스가 되지 않았지만 그는 트위터를 통해 살해 위협을 받고 있었다. 그렇게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기자를 경영진은 내치려고 했다. 지금도 라하주이 기자는 경찰의 보호 속에 매주 숙소를 옮기고 있다.

샤를리 에브도 경영진 역시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라하주이 기자의 방송이 나간 지 이틀 후, 똑같은 ‘르 프티 주르날’에 출연한 경영 담당 책임자인 에릭 폭도는 “정확히 430만 유로인 모든 성금은 희생자들과 생존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새로 가입한 신규 구독자로 생겨난 수입은 신문사를 재정비하고 재건하는 데 쓰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정적인 분란 외에도 문제는 있다. 생존한 기자들은 지금까지도 사건의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문 닫는 소리를 총격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재발행 첫 호의 삽화를 그렸던 뤼즈는 동료들의 부재를 견딜 수 없다며 펜을 놓겠다고 선언했다. 편집 방향을 두고도 내부 이견이 있다. 강한 풍자 유지론과 강경 모드에 대한 회의론이 맞서고 있다. 이런 갈등 속에 새로운 선장으로 낙점된 인사가 바로 해고 소동의 주인공이었던 라하주이 기자라는 점은 사뭇 흥미롭다. 샤를리 에브도의 경영진은 오는 9월에 있을 총체적인 개편의 전권을 라하주이 편집장에게 넘겼다고 밝혔다. 프랑스의 좌파 일간지인 리베라시옹은 ‘라하주이, 샤를리를 짊어지다’라는 제목으로 신임 편집장에 대한 특별 보도를 내기도 했다.

“‘표현의 자유’ 아닌 ‘표현에 대한 책임’ 문제”

사건이 일어났을 때 미처 다루지 못했던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란이 현재 본격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도 새로운 샤를리에는 부담이다. 정치평론가 장 미셸 아파티가 대표적인 비판론자다. 그는 라디오에 출연해 샤를리 에브도 사태의 핵심을 ‘표현의 자유’가 아닌 ‘표현에 대한 책임’ 문제라고 지적했다. 아파티는 샤브 샤를리 에브도 전 편집장이 “우리의 만평이 초래한 반응에 대한 책임에 대해서는 모른다”라고 주장했던 것을 지적하며 “그렇게 말하는 것은 너무 쉬운 결론”이라고 말했다. “표현의 자유는 재론의 여지가 없지만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분명히 져야 하는 것”이라는 아파티의 주장에 동조하는 이가 적지 않다. 테러 사건 바로 직전 호에서 자극적인 문구로 극단주의자들을 부추긴 것은 샤를리 에브도의 판단 착오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렇다 보니 이슬람 풍자에 관한 합의가 중요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샤를리 에브도 내에서도 이 부분에 대해 의견 일치를 보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시위와 파업이 수없이 벌어지는 프랑스에서 여전히 ‘나는 샤를리다’라는 문구를 담은 플래카드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이런 대중의 지지와 별개로 샤를리는 테러 이후가 더욱 힘든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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