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면 스님 문화재 절도 의혹 직접 해명해야”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5.06.16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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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사 탱화 유출’ 사건 조사했던 혜문 스님 진실 규명 요구

동국대는 6월11일 이사장 일면 스님과 총장 보광 스님의 취임식을 열었다. 그런데 이 행사를 반기지 않는 이들이 있었다. 학생 100여 명이 ‘종단 개입 주범 문화재 절도 일면 스님, 논문 표절 보광 스님 인정 못 합니다’라는 글이 쓰인 현수막을 들고 구호를 외친 것이다. 보광 스님의 논문 표절은 그렇다 치고, 일면 스님의 문화재 절도는 뭘 얘기하는 걸까.

시사저널은 해답을 얻기 위해 이른바 ‘흥국사 탱화 유출’ 사건을 직접 조사해 문제제기를 했던 혜문 스님을 만났다. 취임식이 있던 그날 오후 문화재제자리찾기 광화문 사무실에서다. 혜문 스님은 ‘절도 혐의’가 있는 일면 스님이 동국대 이사장을 맡은 데 대해 유감을 표시했다. 그러면서 들려준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혜문 스님 ⓒ 시사저널 박은숙

“유출 당사자로 원로 스님 지목되자 쉬쉬”

1998년 어느 날, 은사 스님을 모시고 경기 가평군에 있는 한 비구니 스님의 처소를 찾았다. 여기서 건륭 57년(1792년)에 그려진 저승사자 탱화가 벽에 걸려 있는 것을 봤다. 소장 경위를 묻자 비구니 스님은 “누가 줬다. 한 10년 지나면 보물이 될 거라며 잘 보관하라고 하더라”고 밝혔다. 그런 후 6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은사 스님이 봉선사 주지로 부임한 2004년 초 혜문 스님은 본말사의 재산과 문화재 관련 사항을 조사·정리하는 일을 맡았다. 그런데 남양주 흥국사 소장 주요 문화재를 살펴보다 이상한 장면을 보게 됐다. 가평군 비구니 스님 처소에서 본 저승사자 탱화와 똑같은 탱화가 흥국사 지장전에 걸려 있는 게 아닌가. 그 순간 비구니 스님의 탱화가 부당한 방법으로 유출됐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유출 당사자로 전직 흥국사 주지 스님이 의심됐다. 봉선사 주지를 지낸 문중의 원로였다. 쉬쉬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사건을 확대하지 말고 모른 척하는 게 좋겠다는 압박이 느껴졌다. 혜문 스님은 직접 비구니 스님을 찾아가 탱화 2점을 압수해 봉선사로 가져왔다. 하지만 사건은 복잡하게 꼬였다. 문중 어른의 약점을 캐낸 하극상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도둑맞은 탱화를 찾아온 게 어떻게 하극상이냐고 반박했지만 소용없었다. 방을 걸어 잠그고 문에 못질까지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혜문 스님은 망명객의 심정으로 일본 교토로 떠났다. 이후 해외로 유출된 우리 문화재를 환수하는 데 전력을 쏟았다. 혜문 스님이 추진한 문화재제자리찾기 운동은 지난 10여 년 동안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도쿄 대학에서 소장하고 있던 <조선왕조실록> 47책, 일본 궁내청에 있던 <조선왕실의궤> 1205책, 미국 LA 카운티 박물관이 소장 중이던 ‘문정왕후 어보’ 등을 차례로 환수했다. 특히 대한제국 국새와 조선 왕실 인장 9점의 경우 지난해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 때 가져와 반환해 화제가 됐다.

흥국사 저승사자 탱화 ⓒ 혜문스님 제공

“일면 스님, 공직 안 나서겠다던 약속 어겨”

흥국사 탱화 사건이 다시 도마에 오른 건 혜문 스님의 의도가 아니었다. 일면 스님이 동국대 이사장으로 선출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잡음이 있었는데 흥국사 탱화 사건도 그중 하나였다. 혜문 스님은 그동안 말을 아꼈다. 주변에서 사실관계에 대한 해명을 요구해오면 난처한 심경을 들어 거절했다. 하지만 자신마저 침묵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말하지 않으면 조계종이 우스운 집단이 될 거라고 여긴 것이다.

“비구니 스님은 잘못을 시인하고 탱화를 돌려줬다. 하지만 일면 스님은 ‘분실했는데 신고를 안 했다’고 해명했다. 조선 후기 탱화로 억대에 이르는 문화재가 없어졌는데 신고를 하지 않은 채 모조품을 걸어놓았다는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좀 더 분명한 답변이 필요하다. 그리고 일면 스님이 약속한 게 있다. 다시는 공직에 나서지 않겠다는 것이었는데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당시 광동학원 이사장을 맡았던 일면 스님은 이후 군종특별교구 초대 교구장, 생명나눔실천본부 이사장, 동국대 이사, 호계원 호계원장 그리고 동국대 이사장에 올랐다. 일면 스님은 취임식에서 “모든 구성원이 권리·의무·책임을 똑같이 균등하게 갖도록 하겠다. 신상필벌 원칙을 확고히 해 학원 내 엄한 기강을 확립하겠다”고 밝혔다.

혜문 스님은 “절도 이사장이라는 놀림거리가 된다는 게 안타깝다. 본인이 제대로 해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속인들도 장관과 같은 책임 있는 자리에 오르려면 여러 측면으로 검증을 받는다. 하물며 종립학교의 수장이 제기되는 의혹에 아무런 해명도 없이 학생들을 대하는 게 바람직한 일이냐. 그렇게 해서 어디 체면이 서겠나.”

흥국사 탱화는 저승사자의 모습을 담고 있다. 염라대왕이 나쁜 놈을 잡아오라고 저승사자를 보낸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저승사자가 현재 구속 중에 있다. “10년 전에 흥국사 탱화를 찾아서 봉선사에 뒀는데 아직도 흥국사에 돌려주지 않은 채 캐비닛 안에 숨겨져 있다. 도난 사실이 외부로 공개될까 봐 흥국사로 옮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200년 넘게 법당에서 예경을 받던 문화재가 이렇게 팽개쳐져서야 되겠나. 그래서 온라인으로 ‘흥국사 탱화 제자리 찾기’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혜문 스님은 올해 초 조계종에서 탈종했다. 스님 표현대로 프리랜서 선언을 한 것이다. “중 노릇을 시작할 때부터 50가지 과제를 다 해결하면 ‘비승비속’(非僧非俗)으로 살겠다고 결심했다. 지난해 이 50가지 과제를 모두 마쳤다. 이제는 규율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인으로서 주어진 일에 충실할 생각이다.” 흥국사 탱화 사건이 다시 도마에 오른 게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닐까. 혜문 스님은 “흥국사 탱화와 인연이 질긴 것만은 사실”이라며 웃음을 보였다.

시사저널은 일면 스님의 입장을 듣고자 동국대와 학교법인 측에 여러 차례 연락을 했다. 동국대 홍보실 관계자는 일면 스님과 관련한 일은 학교법인에서 담당한다며 전화를 법인 총무부로 돌려줬다. 하지만 총무부에서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어렵게 통화가 된 법인 관계자는 “어제 취임식이 있었다. 오늘은 안 나오신다. (탱화 유출과 관련해) 아는 분이 아무도 안 나오셨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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