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원짜리 배추 1500원으로 내릴 수 있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5.06.16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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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자재 유통 단계 줄이면 가격도 식품도 안전

한 사람이 식당을 개업한다고 가정하자. 생선·육류·채소·과일 등 식재료를 납품할 업체를 찾는다. 이때 최우선 조건은 저렴한 가격과 신선한 재료의 안정적인 공급이다. 식당 주인은 생선을 공급하는 여러 유통업체로부터 견적을 받아 적합한 업체를 선정해 거래 계약을 맺는다. 육류·채소·과일 등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공급처를 확보한다.

그런데 여름철 장마가 길어 과일 가격이 폭등한다. 품질이 나쁘더라도 가격이 싼 과일을 살 수밖에 없다. 겨울철 폭설이 연일 계속되면서 매일 오던 생선 트럭이 3일이 지나도 깜깜 무소식이다.

이런 생활을 1~2년 하는 과정에서 다른 공급처가 생긴다. 한 달에 100만원어치를 주문하면 10만원을 돌려주겠다는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은근슬쩍 탈세도 한다. 그사이에 식재료 품질은 떨어지고 손님의 발길은 뜸해진다. 게다가 식자재 가격마저 매년 널뛰기하듯이 불안정해 식당 운영이 쉽지 않다. 결국 3년 만에 문을 닫는다.

경기도의 한 물류센터에서 직원이 식자재를 창고에 적재하고 있다(사진은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 시사저널 포토

전국에 약 58만개의 식당이 있는데 한 곳의 월평균 수익은 149만원으로 4인 가족 기준 최저생계비인 163만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2011년 한 해 식당 개업자가 18만9000명이고 폐업자는 17만8000명에 달했다. 지난해 8월 한국외식업중앙회에 따르면 음식점 휴·폐업률은 2011년 54%에서 2013년 67.5%로 높아졌다. 외식업 경영주 1000명을 대상으로 그 원인을 물어보니 77.3%가 식자재 가격 상승을 꼽았다. 소비심리 위축, 높은 임대료보다 식자재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전국 음식점의 90%를 차지하는 영세 사업장의 식자재 값 비중은 많게는 매출액의 70%에 이른다.

미국, 농장에서 식탁까지 신선도 유지

결국 식자재 가격 안정과 식품 안전이 외식업계의 핫 이슈다. 해법을 미국의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미국은 식자재 유통업계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시스코(Sysco)의 탄생이다. 1969년 미국 9개 식품 유통사가 통합해 설립한 이 기업은 외식업체에 식자재를 공급하는 미국 최대 식자재 유통업체로 시장 점유율이 17%에 달한다. 설립한 지 9년 만인 1977년 미국 식품 유통업계 1위 기업으로 부상한 원동력은 가격 안정과 식품 안전이다.

이 기업은 농산물이든 해산물이든 식자재의 품질을 산지에서부터 관리한다. 생산자와 재배 계약을 맺어 수시로 생산지를 방문해 신선도를 점검한다. 수확한 식재료는 산지에서부터 물류창고까지 옮길 때, 이를 다시 외식업체에 납품할 때 모두 냉장·냉동차량을 이용해 신선도를 유지한다. 국내 한 식자재 유통업체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산지에서 물류창고까지 일반 트럭을 이용하고 물류창고에서 식당까지 냉장·냉동차를 이용하는데, 사실 산지에서 물류창고까지 오는 동안 신선도가 이미 떨어진 상태”라고 지적했다.

생산자는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한 상태여서 재배에만 전념할 수 있다. 한 대형 업체와 양파를 계약 재배하고 있는 신도범씨는 “양파 가격 폭락에도 판로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어 농사에만 전념하고 있다”며 “예전에는 중간상인 아니면 수집상 마음에 들면 판매해주겠다는 계약이지 진정한 계약 재배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외식업체는 가격이 안정적인 신선한 식재료를 제때 납품받을 수 있다. 유통 단계가 줄어들면 가격도 안정된다. 국내 농·축·수산물 유통은 기능별로 생산-수집-분산-소매-소비로 구성된다. 그러나 현장에서의 농·수산물 유통 경로는 농·수산업인(생산)-산지 유통인(수집)-도매법인(분산)-중도매인(분산)-하매인(분산)-소매상(분산)-소비자로 연결되는 5~6단계다. 2011년 기준으로 전체 농·축산물 가격에서 유통비용 비중이 41.3%에 이른다. 한 대형유통업체 관계자는 “산지에서 650원짜리 배추가 농수산물 시장 등을 거쳐 식당 주인에게 가는 가격이 3000원이다. 유통 단계를 3~4단계로 줄이면 배추 가격을 1500원으로 낮출 수 있다”며 “그래서 대형 식자재 유통사가 산지부터 관리·구매·유통하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국내 식자재 유통은 대부분 영세 업체가 맡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국내에서도 시스코와 같은 대형 식자재 유통사가 1980년대 중반부터 생겼다. CJ프레시웨이, 대상 베스트코, 아워홈, 삼성 에버랜드, 신세계푸드 등이 대표적이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식자재 유통 시장은 2012년 105조원 규모의 거대 시장으로 성장했다. 여기에 2만여 개의 크고 작은 업체가 난립한 상태다. 상장 대기업을 비롯한 6개 대형 업체의 시장 점유율은 4%에 불과하다. CJ프레시웨이 관계자는 “소규모 영세 사업자들이 90% 이상 식자재 시장을 점유하고 있어 체계적인 식품 안전관리와 안정적인 가격 유지가 힘들다”며 “정부도 유통 단계 축소를 통한 물가 안정을 중점 과제로 내놓은 만큼 식자재 유통업계의 혁신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대세”라고 밝혔다.

유통 시장 90% 영세 업체 난립

대형 식자재 유통사들의 진출이 마냥 좋은 일만은 아니다. 영세 업체들이 받을 타격도 고려해야 한다. 미국 시스코의 시장 점유율이 높아질 무렵 중소업체의 반발이 없었던 게 아니다. 시스코는 거래처와의 상생이라는 문제를 풀기 위한 해법으로 경영 노하우 공유라는 카드를 꺼냈다. 최종 소비자의 선호도를 지속적으로 조사한 결과를 음식점주들과 공유하면서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을 모색했다. 예컨대 눈에 보이지 않는 마케팅, 세무 관리, 교육, 매장 음악까지 업체에 조언했다. 이후 가격 안정뿐만 아니라 식품 안전도 확보됐다. 그 결과 현재 미국 식자재 유통 시장에서 대형 식자재 전문 업체 비중이 50%까지 높아졌다.  


 

 

ⓒ 시사저널 박은숙

IFDA란 어떤 기관인가.

미국 식자재 유통협회다. 한국 지사는 3년 전에 설립됐다. 국내외 식자재 유통사 10곳이 회원사로 있다.

영세 업체와 대형 업체의 상생 문제가 있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

미국 시장에서도 볼 수 있듯이 대기업이 골목 식당까지 거래할 수 없다. 대기업은 대형 외식·급식 기관을, 영세 업체는 일반 식당을 담당하는 방법도 있다.

국내 식자재 유통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농산물의 경우 서울 가락시장에서 주로 유통되는데 관리가 허술하다. 냉장·냉동차량이 아닌 일반 트럭으로 운송하는 경우가 많아 식재료 신선도가 산지보다 확연하게 떨어진다. 유통 단계가 많아 가격도 들쭉날쭉하다.

미국 식자재 유통 상황은 어떤가.

식자재 전문 기업이 외식업계의 안정화를 받쳐준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농장에서 식탁까지 모든 식재료를 냉장·냉동차량으로 운송한다. 이런 규모를 갖추려면 식자재 전문 유통기업이 필요하다. 산지에서 관리도 위생적으로 한다. 유통 단계가 줄어들어 가격 경쟁력도 생기고 안전한 공급이 확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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