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엔 10만원뿐, 쪽방촌 전전하며 살아”
  • 손재권│매일경제 기자 ()
  • 승인 2015.06.16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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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사’ 창업한 박종환 대표 인터뷰

 

다음카카오가 626억원에 인수함으로써 단박에 스타 CEO가 된 박종환 김기사 대표(회사명 록앤올)는 아직 이 같은 상황이 얼떨떨하다. ‘하루아침에 스타가 됐다’는 말을 실감할 만하다. 주변에서는 ‘스타’ 대접을 하지만 본인은 아직 신생 기업(스타트업)의 CEO일 뿐이다. 서비스의 핵심 인프라 중 하나인 ‘지도’를 기존 T맵 지도에서 다음 지도로 바꾸는 일을 진두지휘하고 있고 중국·일본 등 해외 사업도 직접 챙기고 있다. 하지만 예전 같지는 않을 터. 언론사·대학 등에서 강연 요청이 쇄도하고 있는 상태다. 그래도 박종환 대표의 ‘본심’은 변하지 않는다. 20대에 처음 서울에 올라와 밑바닥부터 생활하면서도 좌절하지 않았던 자신의 스토리 때문이다. 김기사 박종환 대표를 만났다.

 

박종환 김기사 대표는 지난 해 말 다음 카카오에 ‘김기사’로 유명한 록앤올을 매각해 600억원대의 대박을 터뜨리면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 ⓒ 뉴스뱅크 이미지

김기사가 다음카카오에 인수됐다는 소식이 알려진 후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

크게 변한 것은 없다. 아직 주변에서 알아보는 사람도 없다.

대박 났다고 질투하는 사람은 없나.

이번 인수·합병 대금의 절반은 주식으로 받기로 했다. 앞으로 김기사의 가치를 더 끌어올리도록 동기부여를 한다는 차원이다. 오랫동안 고생한 직원들에게도 조금이나마 보상할 수 있어서 뿌듯하다. 오히려 초기 투자자들에게 감사한다. 초기에 투자했던 금액을 회수할 수 있게 돼 개인적으로 매우 기쁘다.

그래도 많은 분이 연락해올 텐데.

지방에 있는 대학생들로부터 큰 힘을 얻었다는 메시지를 받은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스카이(SKY, 서울대·고려대·연세대)나 카이스트 출신만이 영광을 누리는 줄 알았는데 지방 출신에 외국 경험이 전혀 없는 내가 이처럼 좋은 성과를 거둔 것이 자랑스럽다는 내용이었다.

외국에서 공부한 경험이 전혀 없나. 

대학원을 마치고 처음 서울에 올라왔다(박 대표는 동아대와 부산대 석사를 마치고 직장을 얻기 위해 29세 때인 1999년 처음 서울에 올라왔다). 보통 서울에서 일하는 분들을 보면 대부분 대학 입학 때 올라온다. 지방에 있는 대학생들에게는 아직 서울조차 외국과 같은 존재이긴 하다. ‘서울 가면 코 베어 간다’는 말을 아직도 한다. 주변 스타트업이나 벤처업계를 보면 나처럼 지방에서 대학원까지 마치고 상경해서 사업하는 분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서울에 올라오자마자 쪽방촌에서 살았다는 기사가 화제가 됐다.

그 기사가 나간 후 아버지에게 연락이 왔다. ‘그렇게 힘든 줄 몰랐다.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것이었다. 아이들도 ‘아빠 그렇게 가난했어?’라고 하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다(웃음).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란 박 대표는 지난 1999년 상경했을 때 서울에 아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대학 동기이자 공동 창업자인 김원태 현 록앤올 공동대표가 살던 창신동 쪽방촌에서 같이 살았다. 박 대표는 당시 “주머니에는 부모님에게 받은 10만원뿐이었다”고 회상했다. 빛도 안 들어오고 공동 화장실을 쓰며 따뜻한 물도 안 나오는 쪽방촌에서 1년 넘게 산 것이다. 당시 갓 입사한 회사(KT 자회사인 KTIT)의 부장이 “어떻게 이런 집에서 살고 있느냐?”며 눈시울을 붉힐 정도로 허름했다.

당시에는 쪽방촌에 사는 것이 부끄럽지 않았지만 ‘좀 심했나? 인간답게 살아보자’며 옮겨간 곳이 화곡동의 조그만 오피스텔이었다. 이 지역도 화곡동 환락가였다. “낮에 가서 계약했는데 밤에 다시 가보니 오피스텔을 찾을 수 없었다. 화곡동 유명한 환락가여서 네온사인에 가렸기 때문이다. 부산에서 올라온 촌놈이라서 전혀 몰랐다. 계약 후 첫날 오피스텔에서 잠을 못 자고 인근 여관에서 잠을 잤다.”

창업 이후에도 어려움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다음카카오에 인수된 이후 상황은 어떤가.

회사의 본질이 변한 것은 없다. 최고의 내비게이션회사가 돼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앞으로가 중요하다. 창업은 고난의 연속이다. 예전에도 창업 7개월 후 돈이 떨어져 투자자를 찾아갔으나 ‘통신사가 서비스하고 구글이나 애플이 지도 서비스를 하는데 조그만 회사가 되겠느냐’는 이유로 모두 거절당했다. 투자 유치를 아예 포기했다. 기술보증보험 등에서 돈을 빌렸는데 그 돈도 떨어져갈 즈음에 처음으로 한국투자파트너스에서 투자를 받게 됐다. 이번 인수·합병도 그냥 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인수·합병 신화를 넘어서 글로벌 사업으로 성공할 때까지 회사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다들 다음카카오가 김기사를 인수했다고 하지만, 거꾸로 보면 김기사가 다음카카오를 선택한 것이다. 굳이 다음카카오에 팔지 않을 수도 있었고 아예 매각을 안 해도 됐을 텐데.

맞는 말이다. 사실 다음카카오에 인수되는 것은 가장 마지막 선택지였다. 김기사가 ‘정확하고 빠르다’는 입소문을 타고 1000만 다운로드를 넘었고 월 이용자도 200만을 넘어서니 SK플래닛·네이버 등에서 인수를 타진했다. 김기사는 현재의 교통 흐름을 분석해 1분 단위의 빠르고 정확한 길 안내를 제공한다. 다음카카오와는 가장 마지막에 협상했는데, 인수·합병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한 것도 지난 3월 이후였다. 무엇보다 비전이 중요했다. 다음카카오가 설계하는 비전이 김기사와 같았다. 같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각 협상 파트너는 이석우 대표가 아니었다. 실무진과 대화했다. 골프로 말하자면 방향성이 같았던 것이다. 다음카카오가 가진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하는 비전과 함께해서 대한민국의 교통·물류 등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았다. 국민이 모바일을 통해 더 편리한 삶을 누릴 기회를 같이 만들어보고 싶었다.

김기사는 앞으로 어떻게 되나.

독립 경영을 하고 독립적인 플랫폼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내비게이션의 특성상 맛집·여행지 등의 정보가 많다. 김기사를 통해 맛집이나 관광지 안내 서비스를 하고 추후 김기사 앱을 통해 예약 및 결제까지 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일본·중국 등 아시아 시장 위주로 해외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미 시범 서비스가 시작됐다. 중국도 가능성이 크다. 다음카카오가 카카오택시에 이어 대리운전, 퀵서비스 등 교통정보와 지도를 중심으로 하는 사업을 확장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여기에 김기사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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