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쫓아가서 혼내주고 말 거야”라는 보복운전
  • 정락인│객원기자 ()
  • 승인 2015.06.24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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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난폭해지는 보복운전…대형 사고 가능성 커

최근 고속도로 등에서 일어나는 ‘보복운전’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각종 사고는 물론 피해자가 사망하는 일까지 벌어지자 경찰이 강력 단속에 나섰다. 실제 최근 두 달간 서울에서 적발된 보복운전만 50건에 달했다. 보복운전은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살인 행위나 다름없다. 보복운전자가 ‘도로의 무법자’로 불리는 것도 그 정도로 난폭하고 위험하다는 뜻이다. 보복운전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것인가는 최근에 일어난 몇 가지 사례에서 알 수 있다.

지난 5월13일 오전 9시13분쯤 서울 서초구 우면삼거리 인근 도로에서부터 아슬아슬한 모습이 연출됐다. 강 아무개씨(67)는 박 아무개씨(37)가 운전하던 차량이 차선을 바꿔 자신의 차량 앞으로 들어오자 순간 화를 참지 못했다. 강씨는 박씨의 차량을 1㎞가량 추적해 앞으로 끼어든 후 급정거해 사고를 냈다. 결국 자신의 차량이 중앙선을 넘어서면서 건너 차선 차량과 부딪쳤다. 충돌은 연쇄적으로 일어나 두 번째 차량도 그 충격으로 한 바퀴 돌았고, 이후에도 차들은 계속 부딪쳐 6중 추돌로 이어졌다. 다행히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으나 대형 인명 피해가 날 뻔했던 아찔한 사고였다. 경찰은 강씨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 KBS 제공

10명 중 4명 보복운전 피해 경험

보복운전으로 인한 사망자도 나왔다. 지난해 12월 박 아무개씨(여)는 동창회에 참석하기 위해 남해고속도로를 이용해 부산으로 향하다가 보복운전을 당해 사망했다. 박씨가 화물차 앞에서 차선을 변경한 것이 화근이 됐다. 이를 참지 못한 화물차 운전자가 박씨의 승용차를 추월해 가로막은 다음 속도를 갑자기 줄여 뒤에 있는 승용차와 트럭을 멈추게 했고, 뒤따르던 트레일러가 이 차들을 들이받으며 사고가 났다.

당시 화물차 기사는 시속 100㎞ 넘게 달리다가 사고 직전 속도를 시속 14㎞로 갑자기 줄였다. 처음에는 트레일러의 운전 부주의인 줄 알았다가 유족들이 의문을 제기했고, 경찰이 다시 조사해 6개월 만에 보복운전 혐의가 드러났다. 고속도로에서는 일반 도로와는 달리 속도를 내다 보니 운전자들은 더 긴장할 수밖에 없다. 이런 때 다른 차량이 끼어들기를 하거나, 양보하지 않으면 쉽게 분노를 표출하는 경향이 있다. 사소한 시비가 상대 차량을 위협하는 보복운전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도로에서 보복운전은 상시적으로 일어난다. 경찰이 지난해 전문 여론조사 기관에 의뢰해 운전자 1000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36%가 보복운전 피해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10명 중 4명이 보복운전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셈이다. 또 10명 중 7명은 시비가 붙어 싸우는 차량을 본 적이 있다고 했다. 특히 여성 운전자들은 ‘운전을 잘하지 못할 것’이라는 편견 때문에 운전 시 위협이나 욕설에 더 많이 노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누가 보복운전을 하는 것일까. 경찰 조사 결과 보복운전자들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나타났다. 자신은 양보운전을 하지 않으면서 다른 차량이 양보하지 않을 경우 매우 신경질적이다. 자신은 끼어들기를 밥 먹듯이 하면서도 상대방이 끼어들기를 할 때는 무시한다고 생각해 보복운전자로 돌변한다. 한 번 화가 나면 어떤 식으로든 보복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습성 등이 있다. 경찰에 따르면 보복운전자 중에는 회사원이나 자영업자 그리고 운전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운전 경력 23년 차인 40대 자영업자인 신 아무개씨가 여기에 속한다. 그는 운전 습관이 좀 괴팍하다. 고속도로에서 차가 밀리면 서행하는 것을 참지 못하고 무조건 갓길로 달린다. 신씨는 “줄지어 서행하는 차량들을 따돌리고 속도를 내면서 쾌감을 얻는다”고 말했다. 조금만 밀리면 버스전용차선으로 갈아타는 게 일상이다. 문제는 자신이 차선을 위반했으면서도 버스가 자신의 승용차 시야를 가리는 것을 참지 못한다는 점이다. 또 다른 차량이 끼어들기라도 하면 곧바로 경적을 울리거나 욕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 이로 인해 신씨는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수차례 벌금을 냈지만 한 번 잘못 들인 운전 습관을 바꾸지 못하고 있다. 신씨는 “운전대를 잡으면 나도 모르게 성격이 급해진다. 정해진 규칙보다는 내 방식대로 안 되면 화가 치밀고, 어떻게든 풀어야 한다”고 밝혔다. 신씨가 도로의 무법자가 된 것은 지금까지 별다른 사고가 없었고, 강력한 처벌을 받지 않은 탓이 크다.

경찰은 자동차를 이용해 상대방에게 위협을 가하거나 공포심을 느끼게 하는 행위 모두를 ‘보복운전’으로 간주하고 있다. 유형은 크게 여섯 가지다. △100㎞ 이상으로 달리던 차량이 상대편 차량 앞에서 여러 번 급제동하거나 끼어들기를 반복하며 위협하는 행위 △다른 차량에 대해 수차례 가로막기를 하는 행위 △창밖으로 손을 내밀어 상대편 차량 운전자를 위협하거나 욕설하는 행위 △상대편 차량을 중앙선으로 밀어붙이는 행위 △차선을 넘나들며 운행을 방해하는 행위 △상대편 차량에 물병과 음료수병 등을 던지는 행위 등이다.

사고 없어도 징역형 가능

보복운전에 대한 처벌도 강해지고 있다. 경찰은 피해자 신고가 없어도, 사고가 나지 않았어도 예외 없이 보복운전은 처벌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최근 판례를 봐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제3조에 따라 자동차를 ‘흉기나 그 밖의 위험한 물건’으로 본다. 교통사고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보복운전을 한 사람은 1년 이상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고, 교통사고가 발생하거나 피해 차량 운전자에게 상해를 입힌 경우에는 3년 이상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보복운전을 할 경우 ‘자동차를 이용한 협박죄’가 성립되는 것이다.

운전 중에 보복운전을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도로 교통 전문가들은 몇 가지 의사소통만 잘해도 화를 면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크게 세 가지만 잘 지키면 보복운전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해’와 ‘양보’ 그리고 ‘배려’다. 도로에서는 내가 신호만 잘 지킨다고 100% 안전하진 않다. 도로 사정이나 다른 차량에 따라 여러 가지 변수가 생긴다.

이런 때는 감정 조절을 잘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 사소한 시비로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을 낳을 수 있다. 보복운전을 하는 운전자도, 보복운전을 당하는 피해자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도로 교통 전문가들은 ‘손과 등’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법을 강조한다. 가끔 도로에서 보면 돌발 상황이 아닌데도 비상 깜빡이를 켜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해당 운전자가 다른 차량 운전자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달할 때 쓰는 방법이다.

전조등을 켤 때도 맞은편 차량을 배려해야 한다. 전조등은 상대방의 시야를 일시적으로 차단해 사고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보복운전을 불러올 수 있다. 전조등을 켤 때는 맞은편 차량을 배려해 각도를 조절하거나 미등을 켜야 한다. 당연한 운전 수칙이지만 차선을 변경할 때 방향지시등을 켜서 자신의 이동방향을 알리는 것도 뒤차에 대한 예의다.

차량 안에서 운전자에게 가장 유용한 것은 ‘손’이다. 양보를 받거나 고마운 상황이 생기면 손을 가볍게 흔들어서 감사의 표시를 하는 것이 좋다. 반대로 차선을 이동하거나 부득이하게 끼어들기를 할 때도 손을 들어서 양해를 구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손으로 의사를 전달하면 대다수 운전자는 양보하고 배려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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