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욕이 아웅산 수치의 눈 멀게 했나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5.06.24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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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대통령 욕심내는 수치…로힝야족 탄압 문제에 등 돌려

아웅산은 미얀마 독립의 영웅이었고, 그의 딸인 아웅산 수치는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이다. 15세 때 해외로 나간 수치가 고국 땅을 밟은 건 30년이 흐른 1988년 4월이었다. 어머니 병간호를 위해 미얀마를 찾은 수치는 1988년 8월8일 ‘8888 민주화 운동’을 직접 겪었다. 당시 미얀마에서는 학생들이 중심이 돼 반정부 운동을 펼쳤고 여기에 사망자가 나오면서 한층 사회 분위기가 격화됐다.

그해 8월26일 양곤에는 학생·승려·시민 등 50여 만명이 모였다. 수치는 단상에 올랐고 “아버지의 딸인 나는 이 현상에 더 이상 무관심할 수 없다”며 불꽃에 동참했다. 이렇게 시작된 민주화 운동의 끝은 군부의 계엄령이었고 민주화 운동의 아이콘이 된 그녀는 군부에 의해 21년간 가택연금을 당한다.

2010년 11월13일, 가택연금이 해제된 후 수치를 둘러싼 환경은 20여 년 전과 많이 달라졌다. 오랜 가택연금으로 인해 수치는 비극의 히로인처럼 여겨졌다. 해외에서는 풀려난 그녀의 용기를 칭찬하고 자기 나라에 한 번 방문해주길 기대했다. 미얀마 야권에서는 수치의 복귀에 대해 천군만마를 얻은 것처럼 기뻐했다. 재·보궐 선거에 직접 출마한 수치는 하원의원이 됐고, 지금은 야당인 전국민주연맹(NLD) 의장이다. 정적인 테인 세인 대통령도 기쁜 마음은 마찬가지다. 수치를 풀어준 대가로 경제 제재 해제라는 당근을 얻었기 때문이다.

보트피플로 표류하다 인도네시아 정부에 구조된 로힝야족(오른쪽). 아웅산 수치(왼쪽)는 로힝야족을 애써 외면해 인권운동가들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다. ⓒ AP 연합·EPA 연합

1991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였던 수치는 가택연금 때문에 직접 상을 받지 못했다. 2012년 6월에야 21년 만의 노벨상 수상 연설을 위해 노르웨이로 갈 수 있었다. 오슬로에 도착한 수치를 취재하던 기자 중 한 명이 물었다. “로힝야족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수치의 답은 이랬다. “모른다.” 그때 말했던 “모른다”는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녀의 공식 입장이다.

로힝야족 핍박 질문에 수치 “모른다”

미얀마에는 130여 소수민족이 존재하는데 그중 로힝야족은 국적조차 받지 못한 최하층이다. 국제사회는 로힝야족이라고 부르지만 미얀마 정부는 ‘벵골족’이란 단어를 고집한다. 이들은 사회적 차별뿐만 아니라 이주나 고용 역시 엄격히 제한당하고 있다. 국적은 없지만 법률은 적용받는다. 로힝야족 가구는 아이를 2명까지만 낳게끔 미얀마 정부가 강제한다.

이 모든 비극은 종교에서 시작됐다. 불교 국가인 미얀마에서 무슬림인 로힝야족은 적대의 대상이다. 수치가 노르웨이에서 노벨상을 받고 유럽을 순방하며 해외의 러브콜을 즐기던 2012년 6월만 해도 미얀마 서부 라카인 주에서는 로힝야족과 불교도인 라카인족이 충돌해 10만명 이상의 주민이 대피했고 수천여 가구가 불에 타는 일이 벌어졌다.

이웃 나라 방글라데시에 유출된 난민만 20만명에 달한다. 국제사회는 인종 청소라고 규정하고 있다. 최근에 로힝야족은 보트피플이 됐다. 미얀마 내에서 얼마나 극단적으로 내몰렸는지를 증명하듯 난민 수천 명은 무작정 배에 몸을 실은 채 굶주림과 선상 폭력 등을 견디며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 등에 도착했다. 하지만 동남아시아는 이들에 대한 처리 문제를 두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보트피플이 국제 문제로 번지자 최근 미얀마 양곤에서는 불교도들이 모여 “로힝야족은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민족”이라며 보트피플을 추방하라는 집회까지 열었다. 처참한 난민들의 탈출 행렬조차 용납하지 않는 게 지금 미얀마의 현실이다.

“그녀에게 가진 물음표가 실망으로 변화하고 있다.” 수치가 보여준 행동들은 미얀마의 민주화를 지원해온 인권운동가들에게 배신처럼 느껴진다. 그녀가 처한 정치적 상황이 녹록하지 않더라도 소수민족의 박해에 비하면 그런 것은 사소한 문제라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페니 그린 런던정경대 교수는 인디펜던트 신문 기고문에서 “학살에 대해서 침묵하는 것은 공범이나 마찬가지다. 수치도 그렇다”고 주장했다. 변혁기의 사회에 대해 연구해 온 티모시 가튼 애쉬 옥스퍼드 대학 교수는 “총선이 없는 2015년까지는 국가는커녕 찻집조차 경영해본 적이 없는 NLD가 정권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변혁을 망각하는 시간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그리고 그의 예언대로 흘러가는 모양새다.

“IS, 로힝야족을 전투원으로 모집하고 있다”

미얀마는 올해 11월 총선이 예정돼 있다. 국민의 인기가 높은 수치가 이끄는 NLD의 우세가 점쳐지고 있다. 만약 NLD가 국회의 과반 의석을 확보하면 내년 초 새로운 국회의원들의 투표로 뽑게 되는 대통령도 배출할 수 있다. 수치는 이미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미얀마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뉘앙스를 여러 차례 풍겼다. 그런 가능성이 눈에 보이는 이때 가장 실리적인 쪽에 수치의 관심은 집중돼 있다. 정치공학적으로 봤을 때 로힝야족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는 게 정권 획득에 더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중이다. 로힝야족은 투표권이 없으니 선거에서 의미 없는 존재다. 그보다 더 신경 써야 할 곳은 미얀마 대다수를 차지하는 불교도, 그중 인구의 70%를 차지하는 버마족의 표심이다. ‘외국인 배우자와 자녀가 있는 사람은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조항을 없애기 위해 정부·여당인 통합연대개발당(USDP)과의 협상에 골몰하고 있다. 수치는 옥스퍼드 대학 후배이자 티베트 연구자인 영국인 마이클 앨리스와 결혼했고, 두 명의 아들을 두고 있다. 물론 USDP는 이 조항을 없애지 않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해 수치의 앞길을 막아섰다.

수치의 행보가 둔할수록 로힝야족에 대한 국제사회의 염려는 커져간다. 대량 학살 우려가 팽배한 이때 일부 로힝야족이 IS로 향한다는 보도도 나왔다. 뉴스위크는 “아시아에서 세력 확대를 노리는 수니파 테러 조직 IS가 로힝야족을 전투원으로 영입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착할 곳 없는 그들이 IS를 매력적인 대안으로 여길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제로 IS 지지자들이 로힝야족을 대상으로 시리아 전투에 참가하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로힝야족은 이미 테러 조직과 연계된 적이 있다. 미얀마를 탈출한 로힝야족이 가장 많이 머무르는 방글라데시 남동부는 수니파 원리주의로 알려진 와하비즘이 침투한 곳이다. 1990년대에는 로힝야족 무장단체인 ‘로힝연대기구(RSO)’를 중개자로 삼아 알카에다가 로힝야족 청소년을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보내기 위해 모집했다고 한다. 수치조차 외면하고 보듬지 않는 로힝야족. 그들이 미얀마에 가져올 결말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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