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이 물러나야 전쟁이 끝난다”
  • 이승욱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5.06.30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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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박의 ‘찍어내기’ 공세···청와대 등에 업고 헤게모니 재장악 노려

결국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청와대를 향해 무릎을 꿇는 모양새가 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6월25일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며 “배신의 정치”를 언급한 지 만 하루 만에 집권 여당의 원내대표가 대통령에게 공식 사과한 것이다. 유 원내대표는 6월26일 “박 대통령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대통령께서 국정을 헌신적으로 이끌어나가려고 노력하고 계시는데 여당으로서 충분히 뒷받침해주지 못한 점에 대해 송구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진심’ ‘송구’ 등 그로서는 동원 가능한 모든 단어를 써가며 박 대통령을 향해 최대한 머리를 조아린 것이다.

“박 대통령이 유승민을 어찌 도왔는데…”

국회법 개정안을 두고 박근혜 대통령과 갈등을 빚어온 유승민 원내대표가 공식 사과하고, 새누리당이 국회법 개정안을 재의결하지 않기로 당론을 결정하면서 ‘치킨 게임’ 양상으로 치닫던 당·청 갈등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일단 논란이 예상됐던 국회법 개정안 재의결 문제는 가닥을 잡았다. 당장 ‘유승민 퇴진론’도 다소 수그러드는 형국이다. 박 대통령의 6월25일 발언 직후 긴급 소집된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발언에 나선 40명의 의원 중 유 원내대표의 퇴진을 요구한 의원은 4명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의원총회 후 자신의 거취를 표명하겠다던 유 원내대표도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해 “(박 대통령의 질책을) 더 잘하라는 채찍으로 받아들이겠다”면서 “청와대 식구들과 함께 (당·청) 관계를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6월26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공개 사과한 후 고개를 숙이고 있다. ⓒ 연합뉴스

하지만 여당의 국회법 개정안 철회로 이번 논란이 일단락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지난 6월18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대로, 정상적인 절차에 의해 국회 본회의에서 재의에 부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다시 한 번 국회가 격랑에 휩싸일 수 있는 셈이다. 게다가 친박계에서는 박 대통령의 ‘배신의 정치’ 발언이 단순한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원내사령탑인 유 원내대표에 대한 박 대통령의 인식이 정치적 비판 수준을 넘어 인간적 배신감에 이를 정도로 심각하다고 본다. 반드시 사퇴시켜야 한다는 메시지라는 것이다. 친박계 핵심 인사 A씨는 박 대통령의 25일 발언이 있은 직후, 지난 2005년 10·26 재보선 당시를 회상하면서 기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유 원내대표가 2005년 비례대표직을 그만두고 대구 동구 을 국회의원 재보선에 출마했을 때를 잘 기억해봐라. 그 당시가 어땠나. 상대는 노무현 정부의 핵심 실세로 불리던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었다. 정치 신인인 유 원내대표가 텃밭에서도 고전하는 양상이었다. 그때 박 대통령이 연일 대구를 내려가 선거를 도왔다. 결국 유 원내대표가 선거에서 승리해 3선까지 왔다. 당연히 박 대통령으로서는 (유 원내대표에 대해) 인간적으로 깊은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유 원내대표가 원내대표에 취임할 때만 하더라도 ‘설마 박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겠느냐’는 게 친박 내부의 기류였다. 그런데 박 대통령에 맞서니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겠나. 이번에 유 원내대표가 사과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원내대표) 사퇴를 해야만 끝날 싸움이다.”

국회법 개정안 폐기와 유 원내대표의 사과만으로 이번 논란이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는 이유는 A씨의 반응처럼 박 대통령과 친박계 저변에 깔린 유 원내대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당 주류에서 배제된 채 수세로 있던 친박계가 유 원내대표의 퇴진론을 필두로 당 지도부와 헤게모니 싸움을 벌일 공산이 크다. 국회법 개정안 논란의 1라운드가 박 대통령과 유 원내대표의 힘겨루기였다면, 2라운드에서는 원내 친박계가 전면에 나서 유 원내대표에 대한 압박과 함께 김무성 당 대표 등 당 지도부를 공격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정무특보인 윤상현 의원은 6월26일 “(국회법 개정안 재의결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 의원총회는 특정인의 거취를 논의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었다”며 “진퇴를 논의한다면 당사자가 없는 상태에서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의원들이 당·청 관계의 심각성에 대해 아직 잘 모르는 것 같다”고도 했다. 유 원내대표를 반드시 찍어내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힘으로 누르려 하면 당내 반발 더 커질 수도”

여권 내 전략가로 통하는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당에 대한 불만을 계속적으로 제기하는 청와대와 친박계의 움직임에 대해 “청와대로서는 지금처럼 ‘비박’이 지도부를 이루는 구도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며 “끊임없이 계파 갈등 요소를 던지는 것은 친박계가 자기 목소리를 내고 힘을 기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겠다는 차원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지난 이명박 정부 시절 당시 ‘친박 공천 대학살’ 때 ‘반드시 살아서 돌아오라’는 메시지를 친박 인사들에게 보냈던 것과 흡사하다”고 말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내년 4월 20대 총선을 앞두고 벌어질 친박계와 비박계 간 전면전이 다소 앞당겨질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19대 총선을 한 해 앞둔 2011년 홍준표 대표 체제의 한나라당 시절, 서울시장 재보선 패배와 선관위 디도스 공격 등 대형 악재가 이어지고 당 쇄신 요구가 높아졌지만 홍 대표가 사퇴를 거부하자, 당 최고위원 일부가 자진 사퇴를 했다. 결국 홍 대표가 사퇴를 하고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비대위원장을 맡으면서 권력의 물꼬가 ‘친이(비박)’에서 ‘친박’으로 확 틀어졌다. 당시 자진 사퇴의 물꼬를 튼 최고위원이 바로 유승민 원내대표였다. 2011년 때처럼 이번에도 역시 갈등의 요인을 키우다가 여차하면 서청원·이정현 등 친박계 최고위원들이 승부수를 띄울 수도 있다.

하지만 유승민 퇴진 여부를 두고 계파 간 전면전이 벌어질 가능성은 작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지도부를 향한 전면적 공세가 자칫 부메랑이 돼 친박계에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박 대통령이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까지 싸잡아 비난하면서 당 내부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지나친 공세는 유 원내대표에 대한 동정론을 확산시킬 여지가 있다. 중도계로 분류되는 한 초선 의원은 “친박 쪽에서는 당헌 8조(당과 대통령의 관계)를 언급하면서 ‘당은 대통령의 국정을 뒷받침하며 모든 책임을 공유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문구 앞에는 ‘대통령에 당선된 당원은 당의 정강 정책을 충실히 국정에 반영하고’라는 문구도 있다”면서 “(박 대통령이) 당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힘으로 누르려고만 하는 상황이 계속되면 당내 반감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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