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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패거리 권력에 문학이 더럽혀졌다

거대 출판사와 스타 작가 ‘카르텔’…신경숙 표절 사태 일파만파

김성곤│이데일리 문화부 차장 ㅣ 승인 2015.07.01(Wed) 11:3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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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 다 실로 건강한 젊은 육체의 소유자였던 탓으로 그들의 밤은 격렬했다. 밤뿐만 아니라 훈련을 마치고 흙먼지투성이의 군복을 벗는 동안마저 안타까워하면서 집에 오자마자 아내를 그 자리에 쓰러뜨리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레이코도 잘 응했다. 첫날밤을 지낸 지 한 달이 넘었을까 말까 할 때 벌써 레이코는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고, 중위도 그런 레이코의 변화를 기뻐하였다.” (미시마 유키오, 김후란 옮김, <우국(憂國)> 중)

 

“두 사람 다 건강한 육체의 주인들이었다. 그들의 밤은 격렬하였다. 남자는 바깥에서 돌아와 흙먼지 묻은 얼굴을 씻다가도 뭔가를 안타까워하며 서둘러 여자를 쓰러뜨리는 일이 매번이었다. 첫날밤을 가진 뒤 두 달 남짓, 여자는 벌써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 여자의 청일한 아름다움 속으로 관능은 향기롭고 풍요롭게 배어들었다. 그 무르익음은 노래를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 속으로도 기름지게 스며들어 이젠 여자가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노래가 여자에게 빨려오는 듯했다. 여자의 변화를 가장 기뻐한 건 물론 남자였다.” (신경숙 <전설> 중)

 

   
신경숙 소설가 ⓒ 시사저널 박은숙

지난 6월16일 한 작가가 인터넷 매체에 기고한 장문의 글이 한국 문단을 뒤흔들었다. 모두가 쉬쉬해왔던 신경숙 작가의 표절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한 것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신경숙이 일본 극우 작가의 소설을 베껴서 글을 썼다는 데 대해 대중은 분노했다. 마침내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후폭풍은 엄청났고 논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특히 신경숙 표절 사태는 단순한 작가 개인의 표절 문제를 넘어 문단권력의 해체론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신경숙 표절 논란에 ‘만신창이’ 신세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응준은 6월16일 인터넷 매체 허핑턴포스트에 기고한 ‘우상의 어둠, 문학의 타락’에서 신경숙의 단편소설 <전설>이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단편 <우국>의 일부분을 그대로 따왔다며 표절 의혹을 제기했다.

문단과 독자는 충격에 휩싸였다. 과거에는 유명 작가의 표절 논란이 제기돼도 유야무야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달랐다. 인터넷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등을 통해 신경숙의 표절 관련 기사와 내용이 무한대로 전파됐다. 특히 <딸기밭> <기차는 7시에 떠나네> <작별인사> 등 신경숙의 과거 작품들에 대한 표절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논란은 전 방위로 확산됐다.

한국 문학의 가장 빛나는 별이었던 신경숙 작가는 이번 표절 사태로 만신창이가 됐다. 22세가 되던 1985년 ‘문예중앙’에 소설 <겨울우화>가 당선된 이후 그야말로 탄탄대로를 걸어왔다. 현대문학상·만해문학상·동인문학상·이상문학상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주요 문학상을 휩쓴 것은 물론 대중적으로도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깊은 슬픔> <외딴방> <오래전 집을 떠날 때> <기차는 7시에 떠나네> 등 쓰는 작품마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특히 2008년 출간된 <엄마를 부탁해>는 최단 기간에 200만부나 팔렸고 해외 36개국 언어로 번역·출간되었을 정도다. 그해 신경숙은 동인문학상 종신 심사위원으로 위촉되며 문단권력의 정점에 올랐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평단의 호평과 대중의 사랑은 6월16일 이전의 기억으로 남게 됐다.

문제는 신경숙 작가와 출판사 ‘창작과비평’(창비)의 어처구니없는 대응이었다. 한글만 읽을 수 있다면 누가 봐도 표절인데 해당 작가와 출판사가 부인을 한 것이다. 결국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을 연출하고 말았다.

신경숙은 6월17일 창비에 보낸 이메일에서 “표절 의혹이 제기된 대상 작품인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憂國)을 알지 못한다”고 표절을 부인하면서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이런 일은 작가에겐 상처만 남는 일이라 대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창비도 같은 날 문학출판부 명의의 보도자료에서 “인용 장면들은 두 작품 공히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고 작가를 두둔하며 “몇몇 문장에서 유사성을 근거로 표절 운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반박했다.

후폭풍은 엄청났다. 독자들은 격한 비난을 쏟아냈다. 작가를 향해서는 복사기를 뜻하는 “신도리코냐”며 비아냥거렸다. 창비와 관련해서도 “‘창작과 비평’이 아니라 ‘표절과 두둔’”이라며 창비의 실질적 오너인 백낙청 편집위원의 입장 표명을 촉구했다.

결국 출판사와 작가는 어색하게 고개를 숙였다. 창비는 6월18일 강일우 대표 명의의 사과문에서 “지적된 일부 문장들에 대해 표절의 혐의를 충분히 제기할 법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했다. 어떤 사과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경숙은 표절 논란이 인 지 일주일 만인 6월23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문제가 된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우국>의 문장과 <전설>의 문장을 여러 차례 대조해본 결과, 표절이란 문제제기를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모든 게 제대로 살피지 못한 내 탓이다. 무엇보다 내 소설을 읽었던 많은 독자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신 작가의 사과 이후 창비는 단편 <전설>이 수록된 단행본 <감자 먹는 사람들>의 출고 정지를 결정했다.

   
김지하 시인 ⓒ 시사저널 이종현

유명 문인 표절 시비 고질적 관행

신경숙뿐만이 아니다. 표절 논란은 한국 문단에서 오래된 고질적 관행이었다. 과거에도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 작가들이 표절 시비에 휘말렸다. 문제는 ‘소나기만 피하고 보자’는 식의 대응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여론이 시들해지면 표절 여부에 대한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유야무야되기 일쑤였다. 생산적 담론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교훈도 없었다.

한국 문단의 표절 사례는 적지 않다. 문학평론가 황현산씨는 최근 박정희 정권 시절 대표적인 저항 시인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가 프랑스를 대표하는 초현실주의 시인 엘뤼아르의 시 <자유>를 표절했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황석영 작가는 2010년 발간한 소설 <강남몽>이 월간지 신동아의 인터뷰 기사를 무단 도용했다는 의혹이 일면서 홍역을 치렀다. 이문열 작가의 대표작인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도 황석영의 단편소설 <아우를 위하여>를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2008년 발간된 조경란 작가의 장편소설 <혀>는 신인 소설가 주이란 작가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했던 작품을 표절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주 작가는 당시 “저는 ‘영혼’을 도둑맞았다”고 강력 반발했다. 1992년 작가세계문학상 1회 수상작인 이인화 작가의 소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는 수상과 동시에 표절 논란을 불러왔다.

표절 논란은 최근 더 심각해지는 양상이다. 왜일까? 문학평론가인 정은경 원광대 교수는 “신경숙의 표절 의혹은 1990년대 이후 한국 문학의 창작 방법이 실생활을 도외시하고 책상 위에서 이뤄지는 필사와 같은 기능 훈련으로 흘러버린 데도 원인이 있다”며 “모니터 앞에서 세련된 문장 만들기 차원의 글쓰기 경향은 2000년대 이후 우리 문학계 빈곤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의 지적대로 우리 문학은 위기론을 넘어 멸망론이 나올 정도다. 국내를 대표하는 주요 작가들은 신작을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 베스트셀러 상단은 자기계발서나 힐링류의 에세이가 차지한 지 오래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지난해 베스트셀러 상단 종합 20위권에 국내 소설은 전무했다. 국내 작가의 소설이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것은 2013년 8?10월 조정래의 <정글만리>가 마지막이다.

신경숙 표절 논란은 급기야 문단권력의 해체론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대형 출판사들이 스타 작가에 의존하고 자본의 논리를 충실히 따를 경우 비슷한 사태는 재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인 노혜경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신경숙 팬들에겐 정말 미안한 이야기지만 신경숙의 소설들은 한국 문학이 고된 시간을 견디며 조금씩이나마 전진해왔던 문학으로서의 본령을 무너뜨린 폐허 위에 우뚝 솟은 돈벌이 상품”이라며 “이 모든 사건의 책임은 결국 돈벌이에 눈이 어두워 문학의 본령을 더럽힌 저 세(문학과지성·문학동네·창비) 메이저 문학출판사의 편집위원들이 제일 먼저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석영 소설가, 조경란 소설가 ⓒ 연합뉴스

창비·문동·문지 등 문단권력 해체 시급

지난 6월23일 오후 한국작가회의와 문화연대는 서울 서교동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최근의 표절 사태와 한국 문학권력의 현재’라는 주제로 긴급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번 표절 논란이 불거지고 처음 열린 공개 토론회였다. 아쉬운 것은 대형 출판사와의 관계에서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대학교수들만이 자리를 메웠다는 점이다. 메이저 출판사와의 관계를 고려해 유명 문인들과 평론가들이 철저히 침묵한 것과 확연히 대조되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이 지적한 핵심은 문단권력의 카르텔 구조였다. 메이저 출판사, 스타 작가, 주례사 평론으로 이어지는 연결 고리가 표절 문제를 방치했다는 것이다. 실제 문학평론가 정문순은 2000년 문예중앙 가을호 기고문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1995 현대문학상 수상 소설집에 실린 단편 <전설>은 명백히 일본 극우 작가 미시마 유키오 <우국>의 표절작”이라고 주장했다. 지금과 거의 유사한 문제제기였지만 그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신경숙의 주요 작품을 낸 창비·문학동네·문학과지성사 등 대형 출판사들과 소속 평론가들이 침묵했기 때문이다. 신경숙의 작품 중 <풍금이 있던 자리> <딸기밭> <기차는 7시에 떠나네>는 문학과지성사에서, <외딴방> <리진> <깊은 슬픔> <바이올렛> <종소리>는 문학동네에서, <감자 먹는 사람들> <엄마를 부탁해>는 창비에서 각각 출간됐다.

이 때문에 신경숙 표절 논란의 배후에 있는, 이른바 ‘돈 되는 스타 작가’를 보호해온 문단권력의 출판상업주의를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명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신경숙 표절 사태는 한국 문학이 돈과 패거리 권력으로 무장되어 경과했던 십수년의 실험이 어떤 희망 없는 변곡점에 도달한 사건”이라며 “치매 상태에서 집을 나가 행적을 알 수 없는 것은 신경숙 소설 속의 ‘엄마’가 아니라 오늘의 ‘한국 문학’”이라고 지적했다.

오창은 중앙대 교수는 “한국 문학에서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와야 한다는 욕망과 대형 출판사들이 연합해 ‘한국 대표 작가’를 키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신경숙 신화’의 실체”라며 “예전에는 문학적 색채를 가지려고 노력해왔던 창비·문학동네·문학과지성사가 지금은 출판상업주의의 아성이 됐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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