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주인 행세, 천안함재단 해체해달라”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5.07.01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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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 박근혜 대통령과 국가보훈처장에 탄원서

최근 천안함 유족들이 탄원서를 제출했다. 수신인은 박근혜 대통령과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그리고 정호섭 해군참모총장이다. 탄원서에 올라온 이들의 요구는 간단하다. 2010년 3월26일 백령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천안함에서 희생된 46명의 장병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천안함재단을 해체해달라는 것이다.

천안함재단은 2010년 12월3일 국민 성금을 바탕으로 공식 출범했다. 당시 모금 총액이 395억5000만원에 이르렀다. 이 돈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있었다. 국민 성금 배분을 논의하는 특별위원회가 구성됐고, 255억원을 유족에게 지급하고 나머지 돈으로 재단이 설립됐다.

이런저런 말이 많았다. 국민 성금이 허투루 쓰일까 하는 우려와 함께 이사장 및 임원 구성을 두고도 뒷말이 나돌았다. 이사진 구성도 논란이 됐다. 어찌 됐든 천안함 침몰 5주기가 지났고, 천안함재단이 결성된 지도 4년 반이 흘렀다. 그동안 ‘천안함46용사의 공훈을 기리고 그 원혼과 넋을 추모하며 호국정신과 희생정신의 선양을 목적’으로 여러 사업이 진행됐다.

천안함 유족들이 천안함 46용사 위령탑에서 희생 장병 동상을 어루만지며 오열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사장 등 천안함 소속 부대에서 골프”

그런데 왜 유족들이 지금에 와서 탄원서까지 내게 된 걸까. 시사저널이 입수한 탄원서에 따르면 ‘천안함46용사유족회’는 천안함재단이 피폐해지고 그 의미가 변질됐다고 봤다. 다섯 가지 이유를 들었다. 먼저 천안함재단 운영이 비현실적이며 유가족 지원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재단이 있어 유가족 간의 친목과 화합이 저해되고 있다고 밝혔다.

또 46용사 추모 사업과 46용사 유가족 지원 사업이 있지만 매년 다른 사업에 비해 지출 예산이 적게 책정돼 있고 그나마도 생색내기식 집행이라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설과 추석에 지출된 금액이 1110만원, 어버이날과 어린이날 한 가족당 10만원씩 총 540만원, 연간 유족 행사비 3회 지원 1009만5300원 등 합계 3108만여 원으로 1인당 48만원 정도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유가족을 위한 치유·상담과 유족회 수련회, 부모님과 미망인 건강검진, 유자녀 학비 지원 등이 미미했고 천안함 46용사 기념비 및 흉상 제작비 지원도 100만원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민감한 사안은 따로 있었다. 천안함재단 이사장과 이사진 그리고 사무총장이 경기도 평택에 위치한 해군2함대 골프장에서 준회원 자격으로 골프를 친 부분이다. 해군2함대는 천안함의 소속 부대로 침몰 당시 유족들이 모여 눈물바다를 이룬 곳이다. 부적절한 처신이라는 것이다.

조용근 천안함재단 이사장이 ‘망언’을 했다는 주장도 뒤따랐다. 유족회장 앞에서 천안함 유족들이 재단의 돈을 유족 돈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유족들이 5주기가 지나는 동안 천안함재단에 무엇을 어떻게 해달라고 요구한 바가 없는데 이런 말을 한 것은 조 이사장이 기본적으로 유족들을 우습게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비난했다.

이에 유족들은 남아 있는 돈의 가치가 더 떨어지기 전에 국가에 헌납해 국가가 알아서 쓰도록 하는 것이 더 옳은 일이라고 판단했으며 전체 유족 회의를 거쳐 의견이 일치했다고 밝혔다.

박병규 유족회 회장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처음부터 재단 설립을 원하지 않았다. 당시 유족들은 기념관을 짓고 나머지 돈으로 어려운 사람을 돕자고 했다”고 밝혔다. 실제 국민 성금을 어떻게 활용할지를 두고 여러 방안이 나왔다. “장학재단을 만들자” “방위성금으로 내자” “복지단체에 기부하자” 등 다양했다. 하지만 유족들의 이러한 논의 자체가 사실상 무의미했다. 성금의 사용처는 기탁자의 뜻에 따르도록 돼 있었던 것이다. 모금은 KBS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주도했다.

대전국세청장 출신으로 한국세무사회 회장을 맡고 있던 조용근 세무법인 ‘석성’ 회장이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조 이사장은 평소 기부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 ‘기부 달인’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2008년 4월9일 치러진 총선을 앞두고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에 비례대표 공천을 신청한 점, 이듬해인 2009년 초 한상률 국세청장이 불미스러운 일로 물러날 때 유력한 후임 국세청장으로 거론됐던 점 등을 볼 때 재단의 성격과 취지에 잘 맞지 않는 인물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사진 구성도 마찬가지였다. 보수 성향 시민단체인 바른사회시민회의 신종익 사무처장, 기업 모금을 주도한 전경련 엄치성 국제본부장, 해군본부 인사근무처장을 맡고 있던 오계록 해군 제3함대 부사령관, KBS 최초 여성 임원인 지연옥 KBS비즈니스 이사 등이다. 이들 중에서 오 부사령관이 2011년 후반기 인사에서 별을 단 후 물러났고, 그 자리에 변남석 해군본부 인사1차장에 이어 이상훈 해군본부 인사2차장이 앉았다.

KBS청주방송총국 국장을 지낸 유중근씨가 사무총장을 맡은 것을 두고도 뒷말이 나왔다. 유 총장이 당시 KBS 사장과 가까워 천안함재단에 자리를 마련해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유 총장은 2013년 11월 예비역 준장인 박래범 총장으로 교체됐다.

재단 측 “임원 환송 행사 개인 돈으로 계산”

유족 측은 ‘종이 주인 행세를 한다’고 비난했다. 정관에 나와 있는 천안함재단의 목적은 ‘천안함46용사의 공훈을 기리고 그 원혼과 넋을 추모하며 호국정신과 희생정신의 선양’에 있다. 구체적으로 천안함 46용사 추모 사업, 천안함 46용사 유가족 지원 사업, 천안함 승조원의 사회 복귀 지원 및 재활 사업, 호국정신 선양의 홍보·계승·보전 및 육성에 관한 사업 등을 하도록 돼 있다.

이와 관련해 박 회장은 “유족회장이 재단 이사로 참여하게 돼 있는데, 지난해 12월 예결산위원회에 참석해 유족 수련회와 건강검진, 상담·치유 등을 하자고 했더니 거절했다. 골프도 돈이 문제가 아니라 왜 그 장소에서 쳐야 했는지를 문제 삼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래범 천안함재단 사무총장은 이에 대해 “임원 8명은 모두 무보수로 봉사를 하는 것이다. 상근이 아니다. 재단에서 골프를 친 것은 단 한 차례다. 임원 중 한 명이 재단을 떠나게 돼서 환송 행사를 한 것이다. 다 개인 돈으로 계산을 했다”고 밝혔다. 박 총장은 “1년 전체 예산 3억8000만원 중 사무실 운영과 인건비 등 경비를 빼면 2억3000만원이다. 이 중 추모 사업 및 유족 지원 사업이 33%를 차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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