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불꾸불 골목 안 허름한 여행 책방
  • 윤영무│MBC아카데미 이사 ()
  • 승인 2015.07.01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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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 찾아 올해 초 개점…보증금 500만원, 월세 40만원

“후생가외(後生可畏)가 무슨 뜻이오니까”라는 제자의 질문을 받고 송(宋)나라 주희(朱熹·1130~1200년)가 설명했다.

“후생(後生)은 연부역강(年富力强)하여, 충분히 배움을 쌓고 기대할 게 있으니, 그 기세가 가히 두려워할 만하다는 공자님의 말씀이니라(孔子言 後生年富力强,足以積學而有待,其勢可畏).”

흔히 연부역강이란 사자성어는 공자의 후생가외를 설명하는 주희의 해석에서 나온 말로 장차 살아갈 날이 창창하고 힘이 좋은 젊은이들을 일컫는다. 실제로 필자의 후배들이나, 각종 매스컴에 등장하는 전도 유망한 젊은이들의 활약상을 보면, 주희가 살던 80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젊은이들의 가능성은 다를 게 없다. 잘나가는 젊은이들은 여러 매스컴에서 소개하고 있으니, 필자는 오늘 그렇지 않은 한 여성을 소개하고자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5개월 전에 아날로그 업종인 여행 전문 서점을 열어 모험을 시작한 이다.

여행을 주제로 한 출판물을 판매하는 소규모 동네 서점 ‘일단멈춤’ 송은정 대표. ⓒ 시사저널 임준선

북아일랜드에서 1년간 봉사 활동

그녀의 이름은 송은정(30)이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학보사 기자를 했던 경력을 살려 출판사와 잡지사에서 일했다. 빡빡한 직장생활이 싫어 그만두고 외국으로 여행을 떠났다. 왜냐고? 여행을 좋아하니까. 앞뒤 재지 않았다. 여행에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용기라는 자기암시를 하면서. 북아일랜드에 갔을 때 그녀는 지체장애인 공동 마을의 하나인 캠프힐 커뮤니티에서 봉사 활동을 했다. 여러 커뮤니티에 지원했지만 동양인이라서 거절당했다. 20번째 도전에서 드디어 기회를 잡았다. 망설이지 않고 거기서 1년을 보냈다. 일주일에 한 번 주말에 바깥으로 외출을 나올 수 있었다. 커뮤니티에서 교통비를 줘서 이곳저곳 다양하게 돌아다녔다. 중동 지역을 제외하고 유럽은 거의 다 다녔다.

“요즘 책장사가 안 된다고 난리인데 꼬불꼬불 들어오는 골목 안에다 여행 책방을 낸 이유가 뭐죠?”

“집 떠나면 여행이니까, 대로에 있든 골목에 있든 관계없어요. 자기가 사는 동네도 처음 보는 골목길을 걷다 보면 전혀 딴 세상처럼 느껴져요. 대로변에서 장사를 잘하는 분들이 있으니, 저는 돈이 부족하기도 하고 그런 분들과 떨어진 새로운 곳을 찾고 싶었어요. 마침 서울 마포구 염리동의 이 골목은 대학교가 가까워서 하숙집도 많고 자취생이 많아서 우범 지역으로 통했는데, 서울시가 범죄 예방 차원에서 소금길로 만들었어요. 여러 번 답사를 다니면서 이곳을 찾았어요. 인테리어 가게 자리였지요.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40만원입니다.”

그녀의 서점은 큰 도로에서 들어와 좌우 회전을 한 번씩 해야 하는 곳에 있다. 흰색 벽돌을 올린 3층 건물의 1층이다. 5~6평이나 될까. 처음 오는 사람들은 ‘여기까지 어떻게 찾아오지?’ 하고 의아해할 것이다. 간판도 없었다. 그냥 정면 유리에 ‘travel book store’, 그리고 그녀의 서점 이름 ‘일단멈춤, stop for now’가 스티커처럼 붙어 있다. 선반에는 여행 서적들만 골라 100여 권쯤 전시해놓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행 서적도 보인다. 이렇게 작은 규모에서 그것도 골목 안으로 한참 들어와서 어떻게 장사가 될까 싶었다.

“책만 팔아선 안 되지요. 저녁에 여행자 워크숍을 해요. 1인 출판이나 북 바인딩(제본) 등 출판과 관련된 각종 노하우를 가르치는 수업이죠. 수강생들이 찍은 여행 사진이나 메모만 있으면 되지요. 나만의 여행 책을 만드는 겁니다. 지난 5개월 동안 200여 명이 수강했어요. 수요일과 토요일은 쉬고, 매일 저녁 7시부터 한 달간 해요. 수강료는 15만원.”

워크숍에서는 유명한 여행가를 초빙해 경험을 듣기도 한다. 그녀의 블로그인 ‘여행책방 일단멈춤’에 들어가보니 그동안 진행했던 워크숍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인생여행자를 위한 가이드’ ‘Travel ZINE’ ‘7시간 동안의 전주’ ‘어깨동무하는 사람들’ ‘서울의 언덕’ ‘이화마을과 낙산공원’ ‘버스 타고 오키나와-가능할까?’ ‘그래야 될 것 같아서’ 등 눈에 띄는 제목이 많다.  워크숍 수강생 정원은 6~15명. 이 인원이 차지 않으면 폐강이다.

책 편집 디자인은 10년 전까지 매킨토시 컴퓨터의 퀵 익스프레스라는 프로그램으로 처리했다. 하지만 5년 전부터 일반 PC에 쉽게 설치되는 인디자인이라는 프로그램이 생겨서 출판 프로세서가 대중들 속에 훅 들어오게 됐다. 이제 누구나 자신만의 책을 만들어내는 시대가 된 것이다. 프로 디자이너들에겐 슬픈 일이지만 그녀는 이 일에 인생을 건 듯했다. 남들은 정보화 시대를 역행한다고 비웃을지 모르지만, 자신이 가장 잘하고 좋아하는 일이니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

필자는 그녀의 교육으로 만든 여행 책 가운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나오는 상상을 했다. 싸이가 대박을 칠 줄 누가 알았는가? 그녀의 미래 또한 알 수 없긴 마찬가지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끝은 창대하리라. 갑자기 필자의 머릿속에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본격적인 은퇴를 맞고 있는 우리나라 베이비부머들이 각자의 경험과 지식을 살려 골목마다 나만의 작은 워크숍을 열면 어떨까. 큰 돈벌이야 기대할 수 없겠지만 나만의 재능을 후대에 전하고 소통하면 보람이 있을 것 같았다.

여행 경험 살려 밤마다 여행자 워크숍 

“좋아요. 은퇴자들이나 중장년분들의 여행 경험은 젊은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책을 만들어 유통시킬 수도 있고요. 어디 여행뿐이겠어요? 골목 워크숍은 어떤 분야든 가능해요. 골목마다 전문 분야가 다른 워크숍 공간이 생긴다면, 그 골목이 즐겁고 유익한 여행 코스가 되지 않겠습니까?” 

요즘 젊은이들이 윗사람을 무시하거나 버릇이 없을 것이라는 필자의 선입견은 그녀 앞에서 보기 좋게 꺾이고 말았다. 어디 그녀뿐이겠는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향해 주변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껏 도전하는 연부역강한 젊은이는 많고 많을 터이다. 그렇다면 필자는 그들 앞에서 과연 어떤 워크숍을 열 수 있을까. 먼 하늘을 멍하니 한참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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