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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쩐의 전쟁’에서 이겨야 대권 거머쥔다

미국 대선 ‘클린턴 vs 부시’ 유력 지명도 높은 후보에 돈 몰려

김회권 기자 ㅣ khg@sisapress.com | 승인 2015.07.01(Wed) 14:2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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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미국 일리노이 주 시카고 백인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난 소녀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성장기를 보냈다. 그녀의 집은 공화당을 지지했다. 아버지 휴 로댐은 시카고에서 나름으로 성공한 섬유업자였다. 소녀는 뭐든지 잘했다. 스포츠에 관심이 많아 테니스·배구·스케이트 등을 즐겼다. 성적도 우수했다. 하지만 전 과목 A를 받은 성적표 앞에서도 그녀의 아버지는 “학교 수준이 낮은 것 같구나”라고 말하며 쉽게 칭찬하지 않았다.

소녀는 일찍부터 정치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다. 1964년 열린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공화당의 배리 골드워터 후보를 응원하는 젊은 공화당원이 됐다. 매사추세츠 주의 명문 여대인 웰슬리칼리지에 입학했고 1학년 때는 교내에서 청년 공화당의 대표가 됐다. 하지만 이내 베트남 전쟁과 인권에 관한 공화당의 정책에 의문을 갖게 됐고, 의문이 확신으로 변하면서 사임했다. 이때만 해도 공화당을 응원했던 이 소녀가 먼 훗날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나서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 UPI 연합·DPA 연합

1953년 텍사스에는 요즘말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내아이가 있었다. 소년의 집은 텍사스에서 석유 개발로 부를 이뤘다. 경제적 권력만 손에 쥔 게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텍사스 주 상원의원을 지내고 있었다. 소년은 필립스 아카데미라는 명문 사립학교를 다니며 엘리트 교육을 받았다. 열일곱 살이 됐을 때 그는 멕시코로 향했다. 교환학생으로 건너가 멕시코에서 영어를 가르치기로 했다. 이곳에서 평생의 반려자가 될 현지 여성 콜룸바를 만났고 21세에 결혼했다.

정치자금 많이 거둔 후보가 대권 거머쥐어

1989년 그의 아버지는 대통령이 됐고, 형도 2001년 대통령이 됐다. 대통령의 아들과 동생을 경험한 그가 직접 대선에 나설지도 모를 미래를 알고 있었을까. 가난한 멕시코 여성과의 결혼이 공화당 후보 중 히스패닉 유권자에게 가장 친숙한 후보로 만들어줬고 유권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인생사를 얻게 해줬다는 사실을 20대 초반에는 예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짐작한 대로 소녀는 민주당의 대권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소년은 공화당의 대권 후보인 젭 부시다. 이미 유력 대선 주자로 떠오른 두 사람은 2016년 대선에서 맞붙을 경쟁자로 점쳐지고 있다. 아직 수많은 후보가 도전장을 내미는 가운데서도 이들이 주목받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일단 개인의 자질은 나쁘지 않다. 힐러리는 퍼스트레이디와 국무장관 그리고 상원의원을 지내면서 워싱턴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아는 정치인이 됐다. 젭은 가족 중 2명이 대통령을 지낸 ‘대통령 가문’의 막내로 플로리다 주지사를 지냈다. 형인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보다 정치적 자질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듣는다. 하지만 능력 이상으로 이목을 끄는 것은 그들의 ‘이름’이다. ‘클린턴’과 ‘부시’라는 이름이 갖는 정치적 자산에 사람들은 주목하고 있다.

클린턴과 부시의 대결이 성사돼 둘 중 하나가 대통령이 된다면, 미국은 1989년 이후 벌어진 8번의 대선 중 6번에 걸쳐 클린턴 혹은 부시 대통령을 맞게 된다. 유일하게 제외된 8년은 버락 오바마 현 대통령의 시간이다. ‘아버지 부시’인 조지 H.W. 부시가 등장한 1989년부터 다음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는 2021년까지의 32년 중 무려 24년이 클린턴이나 부시 정권인 셈이다. 혹여나 재선이라도 하게 되면 그 기간은 28년으로 늘어나게 된다.

‘민주주의’가 그 무엇보다 강조되는 미국에서 마치 가족 사업처럼 돌아가는 대통령 세습이 문제가 될 것이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린다 파울러 다트머스 대학 교수는 이런 흐름을 미국 대선의 ‘자금’에서 찾았다. “대선은 막대한 자금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정치자금을 모으려면 초기 여론조사에서 지명도가 필요하다. 유권자는 승리를 확신할 수 있는 후보가 아니라면 기부하지 않는다. 승리에 대한 신뢰를 얻기 위해 잘 알려진 후보자를 내세워야 하는 전술적 악순환에 빠져 있다.”

이건 미국의 역사적 경험에서도 증명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8년과 2012년 모두 공화당 후보(존 매케인·밋 롬니)보다 선거 자금을 많이 모았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 2000년과 2004년 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앨 고어, 존 케리 후보)보다 선거 자금을 많이 모았고 결국 승리를 거뒀다. 캠프의 조직력, 후보의 정책과 자질 등 유권자가 고려해야 할 항목은 매우 많지만 선거 결과에 가장 확실하게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자금’이며, 그렇다 보니 자금 모집에 필요한 ‘지명도 높은 후보’가 필수적이다. 그리고 이런 후보들에게는 해결사들이 몰린다. 승리 가능성이 높아서다. 미국 대통령 선거의 배후에는 전면에 등장하지는 않아도 “이 사람이 없었다면 승리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해결사들이 있다. 그중 한 부류가 자금을 모금해오는 로비스트들이다.

고급 소재로 만든 정장을 입은 신사들이 서류 가방을 들고 바삐 오가는 워싱턴D.C.의 K스트리트. 워싱턴D.C.를 가로지르는 이 K스트리트는 ‘로비스트의 거리’라고 불릴 때 사용된다. K스트리트의 일부는 이미 힐러리를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다. 미국 의회 전문지인 ‘더힐’은 “힐러리를 위해 K스트리트의 로비스트들이 힐러리의 명령이 있기 전부터 기꺼이 움직이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고 전했다.

   
1992년 대선 후보 토론에서 만난 조지 H.W. 부시(왼쪽)와 빌 클린턴(오른쪽). 24년 만에 가문의 재대결이 성사될 수도 있다. ⓒ AP 연합

“힐러리처럼 유리한 위치 점한 사람 없다”

2008년 힐러리의 대선 출마 때 캠프 금융위원회에서 활동했던 데이비드 존스도 그중 한 명이다. “그녀가 대선 레이스를 시작하면 나 역시 그녀를 지원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그는 다른 후보를 고려조차 해본 적이 없다. 힐러리를 지원하는 로비스트들의 대다수는 2008년 경선 과정에서 그녀를 도왔던 인물들이다. 로비업체인 ‘엘멘 도프 라이언’은 K스트리트에서 영향력이 특히 강한 곳으로 가장 눈에 띄는 모집책이다. 대표인 엘멘 도프 역시 “민주당 후보 중 그녀처럼 승리에 유리한 위치를 점한 사람은 없다”며 힐러리를 위해 뛰고 있다. 허핑턴포스트가 “로비스트 네트워크의 중심”이라고 평가했던 BGR그룹의 조나단 만츠는 ‘Priorities USA Action’이라는 슈퍼 PAC(특정 후보의 기금 모집을 하는 특별정치활동위원회)의 수석고문이 됐다. 이 조직은 2012년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움직였지만 이제는 힐러리를 위한 조직으로 재편될 예정이다. 특히 주목할 곳은 아킨검프다. K스트리트에서 자금 조달에 가장 영향력이 강한 곳인데 이곳이 힐러리의 선거운동과 탄탄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아킨검프의 워싱턴 사무실에는 대략 5~6명의 ‘힐스타터’(힐러리를 위해 움직이는 로비스트)가 있다.

보통 로비스트들은 중요한 정치적 조언이나 전략을 제공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선거 국면에서 이들은 전국 단위의 선거운동에 필요한 자금을 가져오는 현금 조달꾼 역할을 한다. 2008년 당내 경선을 뚫기 위해 힐러리가 전력을 다할 때, 로비스트들 역시 모금을 위해 힘썼다. 미국 시민단체인 책임정치센터(CRP)에 따르면, 2008년 힐러리를 위해 로비스트들이 모아온 자금은 1800만 달러(약 200억원)에 달했다.

   
 

“나는 그에게 ‘올인’했다, 젭은 내 것”

로비업계의 선수들은 젭 부시 뒤에도 줄을 서 있다. 6월15일 자신의 텃밭인 플로리다에서 출마를 선언한 젭 부시의 행사장에는 주요 로비업체인 포데스타그룹과 BGR그룹의 수장들이 섞여 있었다. 플로리다 주지사 선거 때부터 그를 도왔던 킴벌리 프리츠 포데스타그룹 CEO는 “내가 본 그의 연설 중 최고였다. 나는 그에게 ‘올인’했다”며 “젭은 내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K스트리트의 주요 거물 중 일부는 젭 부시의 선거 모금 행사에 최소 2만7000달러 이상을 내기로 약속했다는 게 ‘더힐’의 이야기다.

워싱턴포스트는 젭과 연결돼 있는 K스트리트의 주요 인물들을 하나하나 열거했다. 이들은 대부분 ‘부시 가문’을 도와 정권을 만드는 데 공헌했던 사람들이다. 특히 힐러리를 돕는 아킨검프는 젭 부시 측도 돕고 있다. 아버지 부시 때부터 가문을 도왔던 톰 뢰플러는 아킨검프의 멤버로 젭을 위해 뛰고 있다. 뉴욕 하원의원 출신인 빌 팩슨 역시 아킨검프의 멤버로 젭을 위해 모금 활동을 한다. 젭의 출마 선언 행사에 참석했던 BGR그룹의 CEO인 레니 그리피스는 ‘형님 부시’를 도우며 최소 20만 달러 이상을 내는 기부자를 조직했던 인물이다.

힐러리 클린턴과 젭 부시는 전국구 인지도를 가진 정치인이다. 두 사람을 모르는 유권자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남은 과제는 얼마나 많은 자금을 모아 효율적으로 사용하느냐다. 내년 미국 대선의 선거 자금 규모는 대략 40억 달러, 우리 돈 4조원이 넘는다. 이 시장을 누가 더 많이 빼앗느냐가 중요한 선거판에서 ‘클린턴’과 ‘부시’만큼 영향력을 가진 이름은 없다. 지명도와 돈의 순환 고리가 가져온 세습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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