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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의 땅에서 ‘정치 왕조’ 대결 막 오르다

재력 바탕으로 ‘전국 체인망’ 된 부시가에 맞서는 자수성가형 클린턴가

김원식│미국 통신원 ㅣ 승인 2015.07.01(Wed) 14:2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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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4일 CNN 방송과 가진 인터뷰에서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는 “나는 조지(아버지와 형)와 다르다. 나는 가족을 사랑하지만 내가 성공하려면 내 진심을 알리고 내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화당 유력 대권 주자인 자신의 캠페인에서 ‘부시’를 뺐고 대신 ‘젭(Jeb)! 2016’이라는 단순명료한 구호를 내밀었다.

민주당의 유력 대권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도 젭 부시와 같은 생각이다. ‘클린턴’ 대신 강조되는 것은 ‘힐러리’다. 유권자들이 클린턴을 잊어주길 바란다. ‘부시가(家)와 클린턴가(家)의 대결’이라고 불리는 이번 미국 대선 레이스에서 막상 자신들의 출신을 전면에 내세우길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인 8명 중 1명은 부시에 의해 지배”

2004년 ‘아들 부시’로 불리는 조지 W. 부시가 재선에 성공하자 부시 가문의 좌장 격인 ‘아버지 부시’ 조지 H.W. 부시에게는 ‘부시 효과’에 관한 기자들의 질문이 빗발쳤다. 그럴 때마다 그는 “또 ‘부시 왕조’에 대한 것이냐. 부시 효과보다는 ‘부시의 좋은 영향력’이라고 해달라”고 일일이 답해야 했다. 왜 이렇게 조심하는 걸까. 여기에는 미국만의 독특함이 있다. ‘귀족’ 등 계급을 인정하지 않는 미국 헌법에서 보듯 ‘문중(clan)’이나 ‘왕조(dynasty)’를 체질적으로 미국 국민은 거부한다. 미국 국민의 감정에 거슬리지 않겠다는 부시가의 정치적 제스처인 셈이다.

   
선대부터 명문 정치 가문으로 인정받는 부시 가문(왼쪽 사진)과 달리 클린턴 가문은 신흥 정치가문이다. ⓒ AP·EPA 연합

부시 가문을 흔히들 ‘텍사스의 석유 재벌 가문’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들의 힘은 텍사스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전국적으로 마치 체인망처럼 연결돼 있고 보이지 않는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아버지 부시’, 조지 H.W. 부시는 텍사스로 이주해 석유 개발 사업에 뛰어들면서 막강한 재력을 일궜다. 하지만 부시 가문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아들 부시’인 조지 W. 부시는 본거지인 텍사스에서 가문의 뜻을 이었다. 반면 ‘동생 부시’인 젭 부시는 플로리다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다른 부시들 역시 버지니아나 콜로라도 주로 거처를 옮겨 그곳에서 자신들의 터전을 닦고 있다. ‘가서 실패를 하더라도 각자의 터를 만들라’는 게 부시 가문의 전략이다.

실제로 연방 상원의원을 지냈고 부시 가문의 선구자로 불리는 ‘할아버지 부시’ 프레스컷 셀던 부시부터 가문의 막내로서 떠오르는 별로 평가받는 텍사스 주 국토부장관인 조지 P. 부시(젭 부시의 아들) 모두 각자의 터전에서 1~2회 낙선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젭 부시 역시 애초부터 플로리다 주에서 주지사 재선에 성공하며 텍사스가 아닌 플로리다를 정치적 고향으로 만들었다. 정치 분석가들이 부시 가문을 ‘전국 체인망’이라고 부르며 “넓게는 미국 전역의 50개 주에 부시 인맥이 퍼져 있고 친인척을 합칠 경우 막강한 파워를 형성한다”고 평가하는 이유다.

여기에 젭 부시의 어머니인 바버라 부시 쪽, 즉 외가의 인맥을 합친다면 그 힘은 실로 막강하다. 1999년 바버라 부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인 8명 중 1명은 부시에 의해 지배받고 있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는데 이것이 과장처럼 들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부시 가문은 귀족처럼 굴지 않는다. 실패를 경험하고 철저하게 몸을 낮추면서 ‘나’를 배제하는 대신 ‘우리’를 강조한다. 이런 철두철미한 가풍은 부시가가 케네디가를 넘어서게 만들었고 미국 최고의 정치 가문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젭 부시가 대선 캠페인에서 부시라는 단어를 뺀 것은 부시에 대한 피로도가 높은 미국민의 정서를 고려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혼자서 터전을 만들어가는 가문 전략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백악관을 향해 도전하는 것은 부시가의 ‘가업’이지만, 대신 ‘용의 발톱’을 보이지는 말라는 것이다.

이에 비해 클린턴가는 가문으로 불리는 것이 오히려 억울할 수도 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당선에 가문의 힘이란 전무했다. 그는 자수성가로 성공한 인물이다. 전통적으로 미국 국민은 ‘미국=기회의 땅’이라는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별 볼일 없는 집안 출신의 인물이 대통령이 되는 현실에 뿌듯해했다. 에이브러햄 링컨,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리처드 닉슨, 로널드 레이건 등은 모두 자수성가형 인물이었고 현직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는 여기에 흑인 대통령이라는 특별함을 더했다.

클린턴 부부의 딸 첼시도 정계 진출 유력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비슷했다. 태어나기 3개월 전에 부친이 사망했기 때문에 아버지의 얼굴도 모른 채 자라야 했다. 이후 계부 밑에서 폭력에 시달렸고 어머니는 4번이나 재혼을 했다. 힘든 성장 환경을 헤치고 대통령에 당선된 인물이었다. 클린턴가는 빌 클린턴이 부인 힐러리 로댐 클린턴을 만난 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힐러리 클린턴이 대권의 바통을 이어받겠다고 나서면서 명실상부한 ‘클린턴 가문’의 등장이 완성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그래서인지 최근 미국 언론들은 클린턴 부부의 외동딸인 첼시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첼시는 이미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클린턴 재단’ 부회장을 맡고 있는데, 이 재단을 중심으로 정가에 진출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게 미국 내 시각이다. 그러나 힐러리 역시 ‘가문’으로까지 불리고 있는 현재 상황이 자신에게 그리 유리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부시 피로도 탓에 클린턴 시절의 향수를 미국민이 가지고 있더라도 자신의 등장이 남편인 빌 클린턴의 그늘 아래서 이뤄진다면 표심에 유리하지 않다는 점을 깨닫고 있어서다.

가문의 힘으로 한층 유리한 위치에 있는 젭 부시와 힐러리 클린턴은 지금 자신의 기반을 스스로 부정해야 하는 동병상련에 처해 있다. 그럼에도 이번 대선이 가문 전쟁으로 갈 가능성은 커진 상태다. 어찌 됐든 이뤄진다면 24년 만에 또 한 번 클린턴과 부시가 붙게 된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이런 미국을 두고 ‘신귀족 사회’라고 정의했고,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3선 대통령은 금지하면서 막상 정치 왕조의 교체에는 미국 국민이 둔감하다”고 지적했다. 미국 밖의 관심만큼 두 가문의 대결이 미국 내에서도 주목받을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 미국 국민의 피로감 탓에 양가의 리턴매치가 무관심과 저조한 투표율 속에서 치러질 것이라는 전망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역대 최고로 흥행하는 대선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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