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무문 정치
  • 윤길주 편집국장 ()
  • 승인 2015.07.07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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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무문(大道無門). 직역하면 큰길에는 문이 없다는 뜻입니다. 옳은 길을 가는 데는 거칠 것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치 철학이기도 합니다. 김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외국 정상들에게 직접 쓴 ‘大道無門’ 휘호 액자를 선물하곤 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대통령을 꿈꿀 때부터 이 말을 가슴에 새겼습니다. 대통령으로서 공과를 떠나 그는 통 큰 정치인이었습니다. 그의 남다른 배짱이 아니었으면 군 사조직 하나회를 뿌리 뽑고, 전두환 전 대통령을 감옥에 보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대한민국 경제사에 한 획을 그은 금융실명제 도입도 한참 뒤로 미뤄졌을 것입니다. 그의 저돌성과 자신감이 우리 역사를 진보시킨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외환위기 주범이란 비판과는 별개로 말입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김 전 대통령을 정치적 사부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는 우람한 체구만큼이나 배포 큰 정치인으로 비칩니다.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무대’(무성 대장군)라고 부르기도 하고, 가까운 후배 정치인들은 ‘형님’이라고 합니다. 그런 ‘무대’가 요즘 궁지에 몰렸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그 친위대인 ‘친박계’가 숨통을 조여오고 있는 것입니다.

 박 대통령의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야 한다’는 발언이 유승민 원내대표 하나만을 겨냥한 게 아니란 걸 그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대통령을 이길 순 없다”며 슬며시 꼬리를 내린 것으로 보입니다. 유 원내대표가 스스로 물러나 대통령의 노여움이 풀리기를 기대한 것 같습니다. 그는 유 원내대표가 계속 버틸 경우 친박계 최고위원들이 사퇴하고, 이로 인해 당 지도부가 붕괴하면 자신도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는 듯합니다. 박 대통령의 임기는 아직 반환점을 돌지 않았습니다. 권력이 조금씩 새고 있긴 하지만 누군가를 쓰러뜨릴 ‘자산’은 검찰·국세청·국정원 창고에 가득 쌓여 있습니다. 김 대표가 이를 잘 아는 까닭에 청와대의 기침 소리 하나에도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권을 노리는 인물치곤 몸을 사리는 게 지나칩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해 ‘이원집정부제 개헌’ 파동 때도 청와대 홍보수석 한마디에 “제 불찰”이라며 황급히 후퇴했습니다. 집권당 대표이자 여권 내 차기 대권 선두 주자로서 체면을 구겼습니다. 유 원내대표를 축출하려는 청와대와 친박계의 공세

 

에 무기력하게 끌려 다니는 모습에선 씁쓸함을 느낍니다. 국회의원들이 뽑은 원내대표를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도려내는 게 명분이 없다는 걸 김 대표도 잘 알 것입니다. 그럼에도 청와대 눈치 보기에 급급하면 국민에게 믿음을 주지 못합니다. 그렇게 해서 2인자로 남을 수는 있겠으나 1인자의 자리에 오르긴 어렵습니다. 당·청 관계를 원만히 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이해할 순 있지만 원칙을 지키는 게 그보다 우선입니다.

 김 대표에게 지금은 기회이자 위기입니다. 그른 일에 당당히 맞서 결기를 보이면 정치인 ‘김무성’은 몇 단계 업그레이드될 것입니다. 그렇잖고 당장의 이해득실에 휘둘린다면 그저 그런 정치인으로 남게 될 겁니다. 어느 신문의 표현처럼 뒷골목 왈패들이 설치는 판에서 국민은 ‘대도무문’의 정치를 보고 싶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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