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노는 ‘최재성의 작업’을 의심한다
  • 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5.07.07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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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 정당’ 추진에 위기감…친노 유리한 ‘게임의 룰’ 경계

“혁신을 위해서다.” 최재성 새정치민주연합 사무총장 임명에 대대적으로 반발하고 나선 ‘비노계’를 향한 문재인 대표의 대답이다. 문 대표는 지난 6월28일 페이스북에 공개한 글에서 자신과 최 사무총장이 내년 4월 총선 공천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대신 공천제도 혁신 의지를 수차례 강조했다. “공천제도 혁신은 당 대표와 사무총장의 의지에 더해, 혁신된 제도를 당헌·당규에 못 박는 것으로 완성된다”고 언급했다. 공천권을 내려놓고 관련 제도 및 절차의 개혁을 주도하겠다는 것, 그 파트너로 최재성 의원을 선택했다는 게 문 대표가 밝힌 의중이다.

비노, 최재성의 ‘시민 참여 공천’ 전력 경계

김상곤 혁신위원장이 “사무총장을 공천과 관련된 모든 기구에서 배제하고, 당 대표 역시 공천 개입을 극도로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며 중재에 나선 바 있다. 여기에 문 대표도 ‘공천권 내려놓기’를 다짐하며 사태 진화에 나섰던 것이다. 그럼에도 비노 세력의 반발은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았다. 당 지도부 ‘투톱’ 중 하나인 비노계 이종걸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 보이콧을 열흘가량 지속했다. 갈등은 7월2일 문 대표와 이 원내대표가 두 차례 심야 회동을 갖고서야 봉합됐다. 일부 당직 인선에 관해 소통이 부족했다는 점에 양자가 공감했으며, 향후 문 대표가 당무 운영 전반에 관해 원내대표 및 최고위원들과 원만히 소통하기로 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7월1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재인 대표가 ‘공천권 내려놓기’를 공개적으로 시사하고도 약 일주일간 잡음이 이어진 것이 주목된다. 그만큼 ‘최재성 카드’ 강행은 비노 진영에 또 다른 심각성을 내포하는 예민한 문제였다는 뜻이다. 표면적으로는 친노 그룹의 득세에 대한 우려로 읽힌다. 공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무총장직에 ‘범친노계’를 앉힌 것에 대한 반발이다. “문 대표가 친노를 대표하는 상황에서 공천 실무를 책임지는 사무총장도 친노에 맡겼다. 친노 패권주의 청산에 역행하는 인사”(주승용 의원), “특정 계파가 독점하고 편한 사람과만 함께 가겠다는 신호탄”(박지원 전 원내대표) 같은 반응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전후 맥락을 따져보면 이번 야권의 내홍에는 좀 더 복잡한 속내가 깔려 있다. 당초 문 대표의 최재성 사무총장 지명 방침이 알려지자 강하게 반발하고 나선 이종걸 원내대표는 재고를 요구하며 세 명의 인물을 ‘대안’으로 제시한 바 있다. 우윤근·김동철·노영민 의원이다. 하지만 이 가운데 김동철 의원만 비노일 뿐, 노 의원은 문 대표의 비선 실세로 알려진 친노 핵심이고, 우 의원 또한 친노에 가까운 범친노계 인사로 분류된다. 이에 대해 비노 성향의 한 새정치연합 당직자는 “‘정세균계’(범친노)인 최재성 의원은 상대적으로 친노 색깔이 옅은 의원으로 분류된다. 그런 최 의원 지명에는 격렬하게 반발하면서 정작 문 대표의 핵심 측근인 노영민 의원이 포함된 대안을 제시했다는 것은, 이번 논란의 핵심이 단순한 계파 문제는 아니라는 증거”라고 말했다. 범친노라는 최 사무총장의 ‘성분’ 이상의, 좀 더 결정적인 반발 요소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최재성 카드’를 향해 비노 진영이 “공천 물갈이의 전주곡”이라며 날을 세운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최 사무총장의 ‘전력’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관측이 정치권 안팎에서 나온다. 지난 2010년 6·2 지방선거 때 최 사무총장은 ‘시민공천배심원제’ 도입을 주도했다. 시민과 각계 전문가들이 지정된 지역구의 후보 선출에 참여하는 방식의 공천 개혁이었다. 문재인 지도부의 ‘물갈이’ 가능성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는 당내 비주류 측에서는 이에 대해 민감한 반응이 흘러나왔다. 만약 공천제도 개혁이 시민 참여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간다면 결국 친노 주류 세력에 유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시민공천배심원제는 광주시장 후보 경선과 서울 은평·강서, 경기 오산·화성, 인천 연수·남, 충북 음성 등 기초단체장 경선 과정에 적용됐다. 일반 유권자에게 공천의 문을 열어젖힌 실험적 시도로 주목받았으나, 도입 전후로 ‘비주류 물갈이용’이라는 당내 반발이 나오는 등 진통도 컸다. 호남 출신 주승용 의원은 지난 6월24일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최 사무총장이) 시민공천배심원제라는 제도를 처음으로 도입해 공천을 하면서 상당히 많은 부작용이 있었던 사례가 있기 때문에 많은 걱정을 하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최재성 사무총장이 6월25일 국회에서 사무총장 인선과 관련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재인·최재성의 공통분모 ‘네트워크 정당’

문재인 대표가 인선 과정에서의 ‘소통 부족’에 공감하는 것으로 갈등은 일단 봉합됐다. 하지만 향후 각 계파 간 관계가 원활하게 흘러갈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관건은 문 대표와 최재성 사무총장이 추진해나갈 ‘혁신’의 정체다. 문 대표가 강한 의지를 보이는 제도 혁신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드러나게 될지, 각 계파의 실리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에 따라 새정치연합 계파 간 관계도 요동칠 가능성이 크다.

향후 시도될 문 대표의 ‘혁신’과 관련해 주목할 개념이 있다. ‘네트워크 정당’이다. 네트워크 정당이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결합해 시민 참여를 확대하는 새로운 정당 모델을 말한다. 전통적인 정당이 가입 당원 중심, 수직적 조직 구조 중심이라면 네트워크 정당은 수평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당원이 아닌 일반 지지자들의 참여를 폭넓게 보장한다. 당원 수 급감 및 관심·참여 저조 등으로 위기를 겪는 전 세계 주요 정당들 사이에서 주목받고 있는 모델이다. 갈수록 위축되는 정당의 위상을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결합한 시민 참여형 정당’ 구축으로 극복하려는 시도다. 정당의 문호를 일부 개방하는 수준이 아니라, 주요 의사결정에 시민들이 온·오프라인으로 대폭 참여할 수 있도록 당 조직 체계 및 운영 방식을 바꾸는 것을 말한다.

문 대표는 2012년 대선 후보 당시부터 네트워크 정당 도입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당 대표 선출 직후에는 ‘3대 혁신 추진단’ 중 하나로 ‘네트워크 정당 추진단’을 설립하는 등 강한 의지를 보였다. 지난 3월부터 추진단장을 맡은 이가 바로 최재성 사무총장이다. 추진단 사정에 밝은 한 야권 관계자는 “온·오프라인 통합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상당한 비용과 지원이 필요하다. 최 사무총장이 당의 예산을 관리·집행하고 행정 지원을 총괄하는 사무총장직에 오르는 것이 향후 네트워크 정당 본격 추진의 관건이라는 것이 내부의 지배적인 인식이었다”고 전했다. 공천 제도를 포함한 문재인 지도부의 ‘혁신’이 시민 참여를 확대하는 방향의 네트워크 정당 시스템 확충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시민의 참여 확대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인 만큼, 새정치연합 내에서도 네트워크 정당은 당이 나아가야 할 미래로 공공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당헌에도 ‘당원과 지지자를 포함한 국민 네트워크 정당을 지향한다’는 점이 명시돼 있을 정도다. 하지만 ‘명분’에는 합의했더라도 ‘실리’ 면에서는 다를 수 있다. 시민 참여를 확대하는 혁신 방향이 아무래도 당 바깥에 열성 지지층을 가진 친노 세력에 유리하다는 인식이 비노 측에 강하다. 지난해 9월 문재인 당시 비상대책위원이 네트워크 정당 구현을 주창하자 당내 중도파에서 즉각 ‘전당대회 룰 개입’ 의혹을 주장하며 반발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7월2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문재인 대표와 심야 회동을 마치고 나오는 이종걸 원내대표. 이 원내대표는 다음 날부터 당무에 복귀했다. ⓒ 연합뉴스

“친노에 유리한 모바일 투표 전면 도입”

특히 어떤 시민을 어떤 방식으로, 당내 주요 의사결정에는 어느 정도 수준으로 개입시킬지 등은 ‘혁신’을 어떻게 설계하는가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다. 당 지도부를 중심으로 모바일 투표 도입, 네트워크 정당 도입 필요성 강조 등에 대한 언급이 있을 때마다 비노 진영에서 반발이 나왔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천·경선·전당대회 등 각 계파 간 이해관계가 첨예한 사안을 앞두고, 시민 참여를 명분으로 내세워 친노에 유리하게 게임의 ‘룰’을 뒤흔드는 것 아니냐는 비판들이었다. 정치평론가 김능구 이윈컴 대표는 “새누리당을 포함한 정치권 전반이 시민 참여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래야 젊은 정당으로서의 외연 확대가 가능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그런데 새정치연합에서 유독 논란이 되는 것은, 시민 참여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결국 친노 성향 지지자들이 주로 확충되는 것 아니냐는 부분이다. 친노 지지자 중심으로 당을 탈바꿈하려 한다는 (비노 진영의) 위기의식”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번 최재성 사무총장 인선을 둘러싸고도 “친노 세력에 유리한 모바일 투표를 전면 도입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기성 정당 정치에서 소외되어온 시민들의 정치적 욕구와 참여 의지를 온·오프라인 연계 플랫폼을 통해 담아내는 것이 네트워크 정당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새롭게 정당 구조를 개편하는 일은 이해관계의 충돌을 낳기 마련이다. 강장묵 고려대 교수는 “전문가 그룹의 활동에 독립성을 부여하고 결과가 나타날 때까지 긴 호흡을 갖고 추진해야 제대로 된 혁신이 가능하다. 당리당략 혹은 계파에 좌우되지 않고 독립적인 혁신 그룹이 운신의 폭을 확보해야 제대로 된 네트워크 정당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연 문재인 대표는 친노 계파를 위한 ‘혁신’이 아닌, 총선 및 대선 승리를 위한 ‘혁신’임을 당과 국민들에게 설득시켜나갈 수 있을까. 최재성 사무총장 인선을 둘러싸고 터진 당내 내홍을 어렵게 봉합한 문 대표에게 주어진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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