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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신전’이 정경유착으로 무너진다

재벌 배만 불린 구제금융…파국 치닫는 그리스 사태

강성운│독일 통신원 ㅣ 승인 2015.07.07(Tue) 20: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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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여름은 그리스인들에게 꿈같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시작은 포르투갈에서 열린 UEFA 유로 2004 대회였다. 그리스가 7월4일 열린 결승전에서 개최국 포르투갈을 1-0으로 이기고 우승컵을 차지한 것이다. 축제 분위기는 한 달 후 아테네올림픽으로 이어졌다. 그리스 정부는 2주간 올림픽을 치르기 위해 국내총생산(GDP)의 7%에 해당하는 110억 유로를 쏟아부었다. 덕분에 세계 곳곳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은 신공항에 내려 새로 생긴 지하철을 타고 30개의 최신식 경기장으로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이들을 위해 12만개의 관중석과 1만개의 쓰레기통, 100㎞의 울타리가 설치되었다.

   
그리스의 EU 탈퇴 여부를 놓고 대립하고 있는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왼쪽)와 메르켈 독일 총리가 6월25일 브뤼셀 EU 정상회담에서 만나고 있다. 가운데는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 ⓒ AP연합

유로존 가입부터 ‘꼼수’로 출발

거짓말처럼 축제 분위기가 사그라든 그해 가을, 그리스발(發) 유로존 위기의 첫 번째 경고음이 울렸다. 유럽연합(EU)의 감사 결과, 그리스가 그동안 재정적자 비율을 거짓으로 보고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특히 문제가 된 것은 1997년부터 1999년까지의 보고서였다. 그리스의 유로존(유로화 사용 국가) 가입 여부를 판가름하는 결정적인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리스는 이 기간 동안 각각 6.4%, 4.1%, 3.4%의 재정적자를 내고도 이를 속였다. 정부의 연간 적자 규모가 3%를 넘으면 심사를 통과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스는 국가 재정적자 비율을 속인 덕분에 2001년 유로존에 공식 합류했다. 엄밀히 따지자면 그리스의 유로존 가입을 무효화할 수도 있을 만큼 중대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유럽 정치인 중 어느 누구도 나서서 그리스에 책임을 묻지 않았다. 과거 사회당(PASOK) 정권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신민주주의당(ND) 정부에 책임을 물을 수 없고, 그리스의 유로존 가입을 취소할 법적 근거도 부족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사실은 이면에 다른 사정이 있었다. 독일·프랑스 등 유로존 주요 국가도 정부 재정적자 비율이 3%를 넘기고 있던 때라 그리스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주장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스가 허위 보고서 제출이라는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유로존에 가입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독일·프랑스 등 경제 대국과 같은 통화를 쓴다는 것만으로도 그리스 경제의 신용도가 높아지고, 그 결과 저렴한 금리로 자금을 빌려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리스의 10년물 국채 금리는 1990년대 말 10% 안팎이었지만, 2001년 유로존 가입을 전후로 5%대로 급격히 낮아졌다. 쉽게 말해 유로존 가입 이후 돈을 빌려 쓰기 좋아진 것이다.

이렇게 쉽게 자금을 얻게 되면서 그리스는 고질병인 탈세와 부정부패를 굳이 해결할 필요를 못 느끼게 되었다. 특히 정치인들은 ‘올리가르히’라 불리는 그리스 재벌들로부터 뇌물을 받고 그 대가로 방송 허가권을 입찰 없이 내주고, 이들이 운영하는 축구단에도 세금을 매기지 않았다. 심지어 그리스 최대의 건설회사인 엘락토르가 “고속도로 통행료가 너무 적게 걷힌다”고 불평하자 그리스 정부는 3억8000만 유로의 보상금을 내주었다. 이들은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선거운동을 후원하기 때문에 탈세 사실이 드러나도 처벌을 받지 않았다. 그리스의 무분별한 복지가 아니라, 이 같은 정치권과 재벌의 유착 관계가 그리스를 금융위기의 수렁으로 몰고 간 가장 큰 원인이다. 이들이 운영하던 기업과 은행이 도산 위기에 처하면 그리스 정부가 구제 기금을 마련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리스 제2의 해운 재벌 스피로스 라시스가 소유한 유로뱅크도 이런 식으로 2012년 42억 유로의 구제 기금을 받았다. 42억 유로는 그리스 정부가 EU로부터 빌린 돈이었다. 금융위기를 통해 그리스에서도 부는 사유화되고 부채는 공공화되는 일이 벌어졌다.

오히려 독이 된 구제금융과 긴축 재정

2009년 10월, 총선에서 5년 만에 정권을 되찾은 사회당 출신 파판드레우 총리가 폭탄 발표를 했다. 그동안 보수당 정부가 연간 적자 비율을 낮춰 발표해왔다고 공개한 것이다. 파판드레우의 폭로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았다. 그리스가 2004년 이후에도 계속 거짓 정보를 공개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순식간에 세계 금융 시장에서 신뢰를 잃은 것이다. 불신은 곧바로 신용등급 하향 조정으로 나타났다. 2009년 12월 피치가 그리스 국가 신용등급을 A-에서 BBB+로 강등했다. 이때부터 그리스의 경제 위기가 본격화됐다. 그동안 4~5%대를 오가던 그리스 정부의 10년물 국채 금리는 2010년 1월 6%대를 돌파한 이후 계속 상승했다. 투기 자금이 빠져나갔고 채권 가격은 끝없이 추락했다.

결국 자금난으로 국가 부도 직전까지 간 그리스는 2010년 5월과 2012년 2월 두 차례에 걸쳐 국제통화기금(IMF)과 EU, 유럽중앙은행(ECB) 등 이른바 ‘트로이카’로부터 총 2400억 유로 규모의 구제금융을 받기로 합의했다. 독일 공영방송사 ARD에 따르면, 올해 6월 실제로 지급된 구제금융 액수는 2160억 유로에 이른다. 트로이카 채권단이 빌려준 돈에는 이자와 함께 조건이 붙었다. 공적 영역과 노동 시장, 세금 제도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 분야에서 긴축 재정을 실시해 재정적자를 줄이라는 것이다. 공무원 임금과 연금 삭감, 공무원 해고, 최저임금 인하, 각종 세금 신설 등 긴축 재정이 실시되었고 실질소득은 40%나 감소했다.

그럼에도 그리스의 긴축 재정은 실패로 돌아갔다. 정작 돈줄을 쥔 재벌 개혁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구제금융 기금의 대부분이 그리스 경제 재건이 아니라 은행권 구제에 쓰이면서 금융위기에 책임이 있는 재벌은 자산을 보전받았다. 독일 온라인 뉴스 사이트 ‘슈피겔 온라인’은 “2013년 중순까지 그리스에 흘러들어간 2070억 유로 가운데 77%가량이 금융권에 들어갔으며 나라 살림에는 4분의 1도 채 안 되는 돈이 쓰였다”고 보도했다.

부패와 조세 불평등의 고리에서 가장 바깥쪽에 있는 이들은 더욱 혹독하게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그리스가 채권단과 새로 협상을 할 때마다 실행해야 하는 긴축 재정안이 늘어나면서 기형적인 악순환이 생겨났다. 구제금융을 받기 시작한 이후 그리스의 GDP는 5년 만에 26%나 감소했고, 청년 실업률은 64%(2013년 5월)를 기록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좌절하고 분노한 그리스인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지난 1월 총선에서 긴축 정책 철폐를 내세워 당선된 치프라스 총리는 사태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부패와의 전쟁을 선언했다. 그러나 5개월이 지난 지금 개혁의 성과는 보이지 않는다. 개혁과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를 건 그의 모험이 정체하는 동안 독일과 그리스에서는 상대국에 대한 혐오 감정이 점점 커지고 있다. 그리스의 금융위기가 어떤 국면으로 접어들든 두 나라 사이에 깊게 파인 갈등의 골은 쉽게 메워지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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