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뇌섹남’들 돌직구를 던지다
  • 하재근│문화평론가 ()
  • 승인 2015.07.07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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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회담>, 젊은 시청자 사로잡은 비결

 

1주년을 맞은 JTBC의 <비정상회담>은 토크쇼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순항해왔다. 기미가요 파문이나 에네스 카야의 사생활 논란 등 위기도 있었지만 그런 사건들은 ‘비정상회담’의 본령을 위협할 만한 수준은 못 됐다. 위기는 곧 수습됐고 제51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지상파 프로그램들을 제치고 예능상을 받을 정도로 JTBC 대표 킬러 콘텐츠의 위상을 확립했다.

리얼리티 대두와 함께 토크쇼는 사양화되는 추세였다. 그런 와중에 토크쇼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게 이 프로그램이다. 특히 젊은 층을 사로잡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시청자 고령화로 방송이 점점 기성세대용으로 획일화되고 있었는데 <비정상회담>은 젊은 시청자들을 다시금 토크쇼 시청자로 만들었고, 이것은 JTBC의 방송국 이미지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딱 1년 전인 2014년 7월1일 JTBC 예능 제작발표회에서 한국인 MC와 외국인 패널들이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뉴시스

외국인 꽃미남들의 ‘뇌가 섹시한 토크쇼’

잘 알다시피 <비정상회담>에서는 외국 남성들이 토론을 벌인다. 사실은 KBS가 <미녀들의 수다>로 <비정상회담>의 선구적 역할을 한 적이 있다. <미녀들의 수다>는 꽤 오랫동안 방영되면서 아마도 외국인 토크쇼가 우려먹을 대로 우려먹은, 흘러간 장르라고 KBS는 판단한 것 같다. 남성판을 미처 시도하지 못한 이유다.

그런데 이것은 한국 시청자의 성향을 간과한 판단이었다. 외국에 대한 한국인의 관심은 무궁무진하다. 우리 자신에 대해 충분히 만족한다면 외국인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지만, 우리가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외국 사례에 대단히 민감한 편이다. 특히 요즘에는 기존 시스템의 발전 모델이 한계에 직면했다고 여기면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는 시기라 외국인들의 이야기에 더욱 관심을 쏟는다. 젊은이들은 한국을 탈출해 외국으로 이민 가겠다는 말을 할 정도의 상황이다.

한국인들에게는 구한말 이후 쌓여온 서구 콤플렉스가 있다. 그들이 한국을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백인들이 김치를 아는지, <강남스타일> 춤을 따라 추는지, 이런 것들이 뉴스가 되는 나라다. 시청률을 좌우하는 여성 시청자들은 해외여행 바람을 선도할 정도로 외국에 대한 관심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인들의 토크는 한국에서 지속적으로 인기를 끌 수밖에 없다. 일시적인 부침은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그 위상을 유지할 것이다.

여기에 <비정상회담>에는 꽃미남 코드까지 들어 있다. 요즘 성공하는 작품들은 꽃미남이나 훈남 코드, 혹은 인간미 있는 아저씨 코드, 둘 중 하나가 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비정상회담>은 백인 꽃미남과 강대국 훈남(중국·일본)들을 대방출했기 때문에 더욱 시선을 집중시킬 수 있었다. 거기에 ‘뇌섹남(뇌가 섹시한 남자)’ 코드가 추가됐다. 학력이 높고, 말을 잘하며,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유머 감각이 있으며, 외모가 샤프한 남성을 뇌섹남이라 하고 젊은 여성들은 이들에게 열광한다. <비정상회담>에서는 고학력처럼 느껴지는 백인들이 지적으로 느껴질 만한 주제를 가지고 토론을 하기 때문에 뇌섹남 트렌드를 제대로 저격했다. 조민기의 딸인 조윤경이 중국인 장위안을 좋아한다며 ‘지적이고 말 잘하는’ 남자가 좋다고 했는데 그게 바로 뇌섹남 코드다.

<미녀들의 수다>와 다른 점은 단순히 성별에만 있는 게 아니다. <비정상회담>에는 돌직구 토론이 등장한다. <미녀들의 수다>는 출연자들이 돌아가며 한국에 덕담하는 성격이 강했다. 반면 <비정상회담>은 출연자들이 각자의 나라를 대표해 말싸움을 벌인다.

<비정상회담>만의 매력 ‘사유와 인식의 제공’

프랑스인 로빈은 사르코지 대통령이 ‘미국식으로’ 비싼 시계를 과시해 프랑스 국민이 싫어한다고 했고, 여기에 미국인 타일러가 발끈해 “왜 그게 미국식이냐”며 공격한다. 그러자 유럽인들이 합세해 “미국은 원래 과시적”이라고 하고, 러시아인과 중국인은 그 틈에서 자국의 우월성을 말하려고 한다. 독일인이 프랑스를 가리켜 ‘노잼’(재미없다)이라고 말하자 반대편에서 발끈하고, 중국인과 러시아인이 “우리 나라가 똑똑하다”고 하자 유럽과 미국이 협공한다. 자고로 싸움구경은 불구경과 쌍벽이라고 했다. 이런 직설적 토크 배틀은 요즘의 돌직구 독설 트렌드와 맞는다.

<비정상회담>이 가지는 독특한 지위는 인식과 사유의 기회를 준다는 점에 있다. 연예인 사생활 토크쇼에 사람들이 지쳐 있던 찰나에 이 프로그램 속에는 새로운 ‘인식’이 있었다. 인간에게 인식욕은 본능이다. 알고자 하는 욕구가 그만큼 강렬하다. <비정상회담>은 각 나라의 문화를 알게 하고, 그것을 통해 우리 사회를 성찰하게 했다. 혐오 논쟁에서 미국인이 ‘절대적 표현의 자유’를 말하자 독일인은 자기네 헌법 첫머리에 ‘인간의 존엄성을 공격할 수 없다’라는 조항이 있다며 반론을 폈다. 이런 논쟁은 최근 ‘일베’로 심각해져가는 우리 혐오문화를 돌아보게 했다. 통일 이야기도 나왔다. 독일인 다니엘이 “동독은 서독에 비해 매우 작은 규모였고, 동독이 경제적으로 북한보다 훨씬 부유했는데도 흡수 통일로 인한 심각한 부담이 있었다”며 “한국은 흡수 통일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인 타일러는 통일 얘기 전에 ‘종전’부터 확실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것은 북한과의 평화 공존을 위해 단계적 노력을 하기보다 ‘흡수 통일’에 치중하고 있는 현 정부와 다른 관점을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비정상회담>에 등장하는 외국인들은 우리말을 유창하게 한다. 그런 모습은 우리가 마치 대단한 제국이라도 된 듯한 만족감을 안겨준다. 한국이라는 장(場)에서 다양한 가치가 논의되는 모습을 통해 우리가 선진 사회가 된 것 같은 뿌듯함도 들게 해준다. 젊은 출연자들의 사는 이야기를 통해 88만원 세대는 이들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다.

물론 아쉬움도 있다. 단지 외국인일 뿐 출연자들이 깊이 있는 사회 연구자는 아니다. 그들의 지식에는 한계가 있고 논의의 깊이도 얕다. 출연자들이 점점 연예인처럼 유명해지면서 그나마 있던 지적인 의미가 조금씩 퇴색하는 경향도 보였다. 출연진들의 모국이 대부분 서구권과 강대국 중심이고 백인 출연자들 중심으로 꾸려진 것도 우리가 갖고 있는 한계를 보여주는 지점이다.

지적할 점도 있지만 <비정상회담>에는 미덕과 가능성이 더 많다. 경박한 청년인 줄만 알았던 벨기에 출신 줄리안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과 중국 패권을 논하고, 독일인 다니엘이 미국의 소프트파워를 논하는 모습을 다른 토크쇼에서 볼 수 있을까.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살려간다면 더욱 의미 있는 토크쇼로 다가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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