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심장에서 정보가 줄줄 샌다
  • 김지영 기자 (abc@sisapress.com)
  • 승인 2015.07.15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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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기무사령부에서 군사 기밀 유출 올해만 3건

 

 권력은 정보에서 나온다. ‘카더라’가 아닌 팩트에 기반을 둔 정보보다 권력을 강하게 만드는 건 없다. 정보를 효율적으로 활용해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이상적인 정부다. 어떤 정권이든 고급 정보를 갈망하는 욕망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게 권력의 속성이다. 이를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 있다. 바로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다. 보수 정권이든, 진보 정권이든 기무사는 언제나 권력의 핵심에 있었다. 이메일 해킹, 민간인 사찰 논란이 있기는 했지만 이는 정보를 잘못 활용한 것이지 기무사라는 조직 자체를 부정할 일은 아니다.

‘밖으로 드러나지 않게 비밀을 지켜야 할 중요한 일.’ 기무(機務)의 사전적 의미다. 밖으로 드러나지 않게 비밀을 지켜야 하는 조직이 기무사이고, 비밀은 국가를 위해 존재하고 사용돼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권력(power)과 정권(regime), 국가(state)를 구분하는 일이다. 과거나 지금이나 기무사의 ‘파워’는 군내 동향을 밀착 감시하는 정보력에서 나온다.

ⓒ 시사저널 이종현

요원 한 명이 2년 동안 27건 유출

군 당국에 따르면 기무사 요원 규모는 5000여 명(병 포함)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국방부와 예하 부대에 배치돼 군 수뇌부와 일선 지휘관 동향 등 내부 상황을 깊숙이 들여다본다. 그런 기무사에서 올해만 세 건의 정보가 유출됐다. 국가를 위해서도, 정권을 위해서도 아니다. 오로지 개인의 이해관계를 위해 정보를 팔아넘겼다. 민감한 사안인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정보도 넘겼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이 정보를 넘긴 것으로 의심되는 해군 A 소령이 7월10일 중국에 군사 기밀을 유출한 혐의로 구속 기소돼 수사를 받고 있다.

국방부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렇다. A 소령은 3급 비밀 1건을 서울에서 신원이 미확인된 사람에게 전달했다. A 소령이 정보를 넘긴 인물은 중국 연수 시절 알게 된 중국 정부기관 요원으로 알려졌다. A 소령이 유출한 군사 비밀에는 해군 함정에 관한 내용이 담긴 것으로 확인됐다. A 소령은 지난 2월 후배인 기무사 소속 B 대위로부터 대전 계룡대에서 비밀을 넘겨받고 이를 손으로 다시 써서 SD카드에 저장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컴퓨터를 활용해 비밀을 작성할 경우 컴퓨터에 기록이 남는 등의 가능성을 피하기 위해 손으로 비밀을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A 소령이 팔아넘긴 군사 정보는 이게 전부가 아니다. 지난해 비슷한 수법으로 팔아넘긴 군사 정보만 모두 26건이 넘는다. 2013년 6월에 9건, 지난해 10월에 17건을 팔아넘겼다. 군 검찰은 A 소령의 범행 동기를 파악하기 위해 계좌 등 금전 거래 기록을 수사 중이다. 또 A 소령에게 군사 기밀을 넘긴 B 대위에 대해서도 조만간 기소한다는 방침이다.

김민석 대변인은 A 소령이 넘긴 대부분의 군사 정보가 기밀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특정 언론이 보도했던, A 소령이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와 관련한 자료를 제공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군사 기밀 여부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군사 정보를 담당하는 기무사에 ‘보안 마인드’가 없다는 사실이 이번에 또 한 번 확인됐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여겨야 한다. 2002년 발표된 한국국방연구원의 <군 보안교육 실태 및 개선 방향>을 보면 “정보 활동을 전개함에 있어서 정보 보안 마인드의 보유가 절대적으로 요구된다”며 “‘지키고자 하는 의식’의 유무가 보안, 즉 정보 보호 활동의 성패를 좌우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기무사의 해이한 보안 마인드로 인해 발생한 정보 유출 사건은 이번을 포함해 올해만도 세 번째다. 지난 4월 기무사 군무원 변 아무개씨 등 2명은 무기중개업체에 2급 군사 기밀 등을 유출하고 1500여 만원을 받아 구속됐다. 이들은 방위산업체에서 군사 기밀이 유출되는 것을 막는 것을 임무로 했지만 정작 자신들이 군사 기밀을 유출한 것이다. 한 달 뒤에는 기무사 소속 양 아무개 소령 등 전·현직 장교가 전략물자인 소총 탄창 3만여 개를 자동차 오일필터로 위장해 레바논에 밀수출한 혐의로 구속됐다.

“문건 유출은 국기 문란”이라고 했던 박근혜 정부에서 군사 기밀 유출은 국기 문란을 넘어선 국가안보와 직결된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기무사 내부에서도 정보 보안과 관련해 매년 국방정보보호 콘퍼런스를 열고 있고, 국방보안 분야에 대한 전문 연구를 위해 ‘국방보안연구소’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늘 꼬리 자르기로 끝나는 게 문제

그렇다면 정보 유출을 막아야 하는 기무사에서 이렇게 끊임없이 유출 문제가 터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군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문제는 늘 개인적 일탈로 치부하는 데 있다. 군, 특히 기무사는 어떤 문제든 항상 꼬리 자르기로 끝난다”며 “보통 이런 문제가 터지면 기무사가 먼저 수사를 해서 검찰에 넘긴다. 이래서야 근본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는가. 기무사 내부에서 감찰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조차 ‘기밀’이다”고 비판했다. 군의 한 인사는 기무사 자체가 가진 유리 천장을 문제로 꼽는다. 그는 “대부분 대령에서 진급이 끝나는데 전역 이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나. 이들이 갖고 있는 정보는 말 그대로 국가 기밀이다. 어떤 식으로든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견제 세력이 없는 게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기무사는 청와대에 직보를 올리는 몇 안 되는 정보기관인 데다 꼭 방산업체가 아니더라도 어디에든 포진해 있다. 견제받지 않는 조직에 부패가 없는 게 더 이상하지 않으냐”는 것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쿠데타 이후 보안사령부(현 기무사)는 국가안전기획부(현 국정원)를 제치고 정권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기관으로 부상해 정국을 주도했다.

이명박 정권 때는 기무사 210부대가 조선대학교 교수에 대해 이메일 해킹까지 했고, 2009년 쌍용자동차 집회 땐 기무사 신 아무개 대위가 사찰을 하다가 발각되고, 2012년 대선에 개입한 의혹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논란 중 하나다. 때문에 기무사 내부 쇄신을 얘기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정권의 울타리 안에서 수십 년간 견제받지 않은 조직에서 내부 쇄신이라는 말 자체가 어떻게 보면 ‘하지 말자’는 말의 동의어처럼 느껴진다. “미래 전장에서는 정보 우위를 통해 전쟁 승리를 추구하는 정보작전(Information Operations)이 그 중심에 서게 될 것이다.” 10년도 전에 나온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미래전의 요체 정보작전>은 아직 한국에는 요원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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