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자고 출근한 당신, 왜 이리 신경질을 부리시나요
  • 노진섭·안성모 기자, 박상희 인턴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5.07.15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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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 건강’ 비상 걸린 대한민국…개인·사회 병들게 하는 주범

대학 3학년인 허희주씨(23·여)는 하루 수면 시간이 4시간 남짓이다. 아침 7시에 일어나 시흥에 있는 집에서 서울에 있는 학교까지 지하철과 버스로 거의 2시간 동안 이동한다. 오후 6시까지 수업을 듣고 도서관에서 밀린 공부를 한다. 늦은 시각에 귀가한 후 자정쯤 잠자리에 들지만 쉽사리 잠이 오지 않는다. 미국 드라마·만화·스마트폰 등을 보다 새벽 3시쯤 지쳐 잠든다. 낮에 잠이 쏟아지고 밤잠은 부족한 생활의 연속이다. 학교에 가지 않는 날에는 종일 잠만 잔다는 그는 “수면유도제를 먹어보기도 했지만 수면 부족의 주요 원인은 잘못된 생활습관인 것 같다”고 말했다.

수면 부족, 조기 사망 가능성 1.7배 증가

권장 수면 시간을 발표하는 미국 국립수면재단(NSF)은 성인의 경우 하루 7~9시간 잘 것을 권고했다. 한국인은 얼마나 잘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해 조사한 한국인의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은 7시간 49분으로 회원국 18개국 가운데 최하위였다. OECD 국가의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은 8시간 22분이다. 가장 오래 자는 프랑스 국민은 8시간 50분을 잠자리에서 보낸다. 이 통계대로라면 다른 나라보다 수면 시간이 짧지만 우리 국민은 수면 부족 상태가 아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왜 그럴까. 잠을 많이 자는 아이들까지 통계 대상으로 잡은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한국갤럽이 2013년 19세 이상 성인 남녀 1만여 명을 대상으로 수면 시간을 알아봤더니 평균 6시간 35분으로 나타났다. 이상암 서울아산병원 수면장애클리닉(신경과) 교수는 “세계적으로 한국은 수면 부족 국가로 유명하다”고 말했다.

수면과 건강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들은 에디슨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 약 10시간이던 하루 수면 시간이 전구 발명 후 급격히 짧아졌기 때문이다. 잠을 시간 낭비라고 여긴 에디슨은 하루에 3~4시간만 잤다. 주민경 한림대학교성심병원 뇌신경센터 교수는 “에디슨은 짜증을 달고 살았고 가족과의 관계도 파경에 이를 정도로 좋지 않았다”며 “수면이 부족하면 화를 잘 내는 등 몸과 정신에 이상 증상이 나타날 뿐만 아니라 사회적 문제도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수면 빚’이라는 말을 쓴다. 잠이 부족하면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의미다. 개인적으로는 건강 문제가 생기고 사회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은 문화가 싹튼다는 것이다. 밤샘 작업을 한 사람을 검사했더니 스트레스 호르몬(코티솔)이 정상인보다 2배 이상 높게 측정됐다. 이는 심장혈관에 압력이 높아져 고혈압·심장병 등에 취약해짐을 의미한다. 수면 부족으로 비만·유방암·대장암·뇌졸중 등 심각한 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커진다는 연구 결과는 수도 없이 많다. 우울증, 자살 충동, 집중력 저하 등 정신 건강을 해치는 요인 중 하나도 수면 부족이다. 심지어 조기 사망 가능성도 커진다. 학생의 경우에도 잠을 충분히 자야 낮에 공부한 내용이 뇌의 장기 기억장치로 옮겨져 지식이 된다. 잠이 부족하면 성적이 오르는 데도 한계가 있다. 신철 고려대 안산병원 수면장애센터 교수는 “올해 세계 학회에 나온 논문에는 수면 부족으로 생명이 60% 이상 단축된다는 기록이 있다”며 “연구해보니 수면 시간이 5시간 미만 또는 8시간 이상은 각종 질병에 걸릴 위험이 크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욱하는 사회’의 배경은 수면 부족

일본 홋카이도 대학 연구팀이 2012년 국제 학계에 발표한 결과는 놀랍다. 당뇨병 가족력이 없는 35~55세 직장인 가운데 수면 시간이 하루 5시간 미만인 사람은 7시간 이상인 사람에 비해 당뇨병 발병 위험이 5배 더 높았다. 수면이 부족하면 혈당을 떨어뜨리는 인슐린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주 교수는 “만성 수면 부족은 비만 다음으로 혈당 조절에 위험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하루 7시간도 못 자는 사람은 뚱뚱해질 가능성이 크다. 식욕 억제 물질(렙틴)의 분비가 감소해 식욕이 증가하기 때문에 식사량이 늘어난다. 게다가 잠이 부족하면 면역력도 떨어져 몸은 본능적으로 지방을 축적하려는 기능을 발동한다. 짜고 기름진 음식을 찾다가 비만으로 이어진다. 신 교수는 “30~40대 몸이 뚱뚱해지는 이유 중 하나가 잠을 적게 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영국 워릭 의대 심혈관 전문의 프란체스코 카푸치오 박사는 2007년 영국수면학회에서 “1만여 명의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17년에 걸쳐 조사한 결과 하루 수면 시간이 5시간 미만인 사람은 심혈관 질환으로 사망할 위험이 2배, 모든 원인에 의한 사망 위험이 각각 1.7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또 “수면 부족이 혈압을 상승시키고 이것이 심장마비와 뇌졸중 위험을 키우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수면 부족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도 심각하다. 가장 흔한 사례가 졸음운전 사고다. 졸음운전은 전체 교통사고 원인의 24%를 차지한다. 가장 큰 교통사고 위험 요인이다. 매년 200여 명이 졸음운전으로 사망한다. 졸음운전은 운전면허 취소에 해당하는 혈중 알코올 농도 0.17%로 음주운전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역사적으로 큰 사고의 배경에는 수면 부족이 있다. 1986년 구소련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는 새벽 1시 수면 부족으로 몽롱한 상태에 있던 직원의 조작 실수로 발생했다. 미국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폭발, 일본 신칸센 열차 사고 등도 수면 부족이 원인이었다.

최근 국내에서 발생하는 이유 없는 살인·방화·성폭행·보복운전 등도 수면 부족과 무관하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송재룡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국민 전체가 집단적 수면 부족 상태에 놓이면 사회적 불안 조건이 형성된다. 부정적이고 공격적이 된다. 욱하는 문화, 자살 증가, 불안·우울 상태 모두 수면과 직간접적인 인과 관계에 있다”며 “잠을 충분히 못 잔 아이가 공격적으로 변한다는 독일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런 사람이 많아지면 국가적 수면 부족 문화가 형성돼 바람직하지 않고 위험한 분위기가 형성된다”고 분석했다.

충분한 수면으로도 다양한 질병 예방과 사회적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는 등식이 성립한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충분한 수면에 익숙하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경쟁 사회다. 아이들은 많이 자야 성장하고 뇌도 발달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어릴 때부터 늦은 밤까지 공부하도록 만든다. 성인도 아침 일찍 회사에 출근 도장을 찍어야 성실한 직원으로 인정받는다.

 

밤에 뭐라도 해야 한다는 집단 강박증

한국인의 평균 노동 시간은 2000년부터 2008년까지 OECD 국가 중 내내 1위를 기록하다 2008년부터 멕시코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자살률(2013년 인구 10만명당 28.5명)은 OECD만이 아니라 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해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일하지만 노동 생산성은 선진국 중 최하위”라고 보도한 바 있다.

이런 현상을 두고 전문가들은 과거 경제 발전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던 습관에 관성이 붙은 것이라고 진단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제까지 경제 발전에 전념하느라 과하게 일을 많이 하는 습성이 생겼고, 노는 것에 죄책감을 느낀다”며 “회사에 얼마나 오래 앉아 있느냐가 평가의 기준이 됐다”고 설명했다. 또 송 교수는 “밤늦게까지 뭘 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다. 개인을 넘어 집단적 강박증”이라며 “30~40대는 특히 삶의 의미를 찾고 즐기기보다 성공을 위해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심리적 압박에 시달린다”고 지적했다.

선진국과 달리 우리는 일하는 시간과 휴식 시간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다. 송 교수는 “가정에서도 개인과 가족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다. 어른이나 아이의 시간 관리에 구분이 없다. 어른이 늦게 자면 아이도 늦게 잔다. 외국의 경우 아이들은 어른들과 같이 있다가도 오후 8시30분 정도가 되면 자기 방으로 가서 자게 한다”고 말했다.

기이하게 발달한 밤 문화도 수면 부족의 원인이다. 서울 홍대 주변 등 유흥 지역은 밤과 낮이 따로 없이 불야성이다. 전국 어디에서도 식당·커피숍·술집·편의점 등 24시간 영업점이 즐비하고 새벽에도 야식을 배달한다.

굳이 외출하지 않아도 밤에 즐길 것들이 널려 있다. 예컨대 수백 개의 케이블방송은 24시간 영화·오락 프로그램을 쏟아낸다. 특히 요즘은 음식 방송까지 인기여서 비만을 부추긴다. 주 교수는 “안 그래도 수면 부족으로 비만 가능성이 커진 데다 먹는 방송 때문에 야식을 먹어서 더욱 비만을 재촉한다”고 지적했다.

고3인 한수림양(19)은 5시간 정도 잔다. 아침 6시40분에 일어나 학교에 도착하면 7시40분. 이때부터 밤 10시까지 수업과 야간 자율학습이 이어진다. 귀가 후 부지런히 씻고 잘 준비를 해도 새벽 1시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뒤척이다가 새벽 2시쯤에야 잠에 빠진다. 수면 시간이 부족한데도 스마트폰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 그는 “집에 와서 1시간 정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데 이것도 수면 부족의 한 원인인 것 같다”면서도 “잠을 깨기 위해 커피·비타민제를 먹는다”고 덧붙였다. 송 교수는 “온라인에서의 삶의 영역이 점점 확장되고 있는 것도 수면 부족의 원인 중 하나”라며 “혼자 방에 있어도 인터넷으로 외부와 접속하는데, 오프라인에서 억압받는 삶에 대한 대안으로 온라인에서 혼자만의 생활을 즐기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서울의 대표적 유흥가인 홍대 앞 거리는 새벽 4시에도 불야성을 이룬다. ⓒ 시사저널 포토

“수면 부족으로 감당 못할 사회적 비용 발생”

20~30년 전에는 혈압이 높아도 고혈압약을 먹지 않아서 뇌출혈 환자가 많았다. 지금은 으레 약을 먹어 혈압을 조절하므로 뇌출혈 빈도가 현저히 낮아졌다. 그만큼 고혈압은 약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인식으로 바뀐 것이다.

수면 시간에 대해서도 국민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문이다. 이상암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는 “무엇보다 국민이 수면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다. 병이 아니기 때문이다. 적게 자고 공부나 일을 많이 하면서 버틸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잠은 시간의 낭비가 아니다. 수면 시간은 에너지를 보존하고 면역력을 보강하며 신경세포의 기능이 유지되는 시간이다. 이 교수는 “잠을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시간, 즉 허비하는 시간으로 여기기 때문에 잠을 많이 자는 사람을 게으르다고 한다”며 “그러나 뇌는 우리가 자는 동안 많은 일을 하고 육체도 재충전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사회적인 분위기도 바뀌어야 한다. 주 교수는 “가까운 미래에 수면 부족으로 국가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환자와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송 교수도 “개인적인 인식 변화도 필요하지만 집단적인 경향은 개인의 힘으로는 역부족이므로 정부 차원의 수면 권장 노력이 있어야 한다”며 “이제는 삶의 질적 측면에서 수면 부족 문제를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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